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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에 해당되는 글 63건

  1. 2018.01.13 고독(solitude)와 관계(relationship)
  2. 2017.08.12 한 사람 (4)
  3. 2017.03.23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4. 2017.01.10 속히 내려오라
 

사람들은 외로운 것(loneliness)을 싫어한다. 

그래서 늘 분주함(business) 가운데 거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무료해하고, 진저리치며, 숨막혀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고립(isolation) 되어져 갔다. 


분주한 삶 가운데 고독(solitude)를 선택하며 떠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음(noisy) 대신에 침묵(silence)을 선택했고, 분주함 대신에 평안함(peace)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독 가운데 거했던 사람들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고립(isolation)되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것들과 관계(relationship)을 맺기 시작했다. 


영성이란 관계 맺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사람과 관계 맺고, 그리고 푸르른 하늘과 구름과 달과 별들까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자연과 관계 맺는 것이다. 

관계 맺기 위해선 때로 나 홀로 되는 고독의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나로서 모든 주위의 것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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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한 사람



새벽 4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면 습관적으로 눈이 떠진다. 잠시 동안 잠자리에 누워 씨름하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후다닥 옷을 입고 교회로 향한다. 교회에 도착하면 4시 15분.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말씀을 준비한다. 하루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섭취하는 영의 식사 시간. 그런데 6시가 가까울수록 만나를 통한 기쁨을 뒤로 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마음 속 깊은 구석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혹시 못 오시지 않을까? 오늘도 또 오실까?’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성도를 기다리는 한편의 마음과 성도가 안 오기를 바라는 또 한편의 마음이 치열하게 대립한다. 나의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6시가 되면 한 영혼이 계단을 올라온다. 오늘도 늘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온 한 사람의 성도. 


결국은 논문을 쓰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에서부터 나오는 생각이다. ‘목사가 새벽예배 나오는 성도를 귀찮아하다니…….’ 하루 종일 마음이 영 죄스럽고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충고랍시고 해 주었던 사람들의 음성이 뒤섞여 웅성거리는 듯하다. “논문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그 분께 양해를 구해야지! “주일날 출석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교회 교인인데, 그 사람 때문에 논문을 못 마친다면 나중에 누구를 탓하겠나?” “자기 몸도 생각하고 돌보면서 목회를 장기간으로 보아야지.” 등등. 


박사과정 종합시험을 앞두고, 전임 목사님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의도치 않게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이 되었다. 목사님의 권유와 교회의 급박한 상황이 그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작은 교회였지만 그중 다섯 명의 권사님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새벽예배를 지키시는 분들이셨다. 그 열심과 신앙을 알기에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매일같이 나와 새벽예배를 인도했다. 1년 쯤 뒤에는 교회 근처로 이사까지 했다. 하루하루가 바쁜 삶의 연속이었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이런 목회의 기회를 얻고 열심 낼 수 있다는 것이 흥에 겨웠다. 


3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무력감이 왔다. 몸의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고 건강의 악신호가 울렸다. 공부와 목회를 병행한다는 것, 늦둥이 딸마저 태어나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 산다는 것. 목회도, 공부도, 산다는 것 자체가 큰 짐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성도는 늘지 않고 오히려 이사를 가시는 권사님, 병상에 누워 예배 참석이 어려우신 성도님들, 다섯 명이던 새벽예배 참석이 세 명으로, 세 명에서 두 명으로…….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낯선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 나가시는 집사님인데 출석하시는 교회가 멀어 새벽예배는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시는구나!’ 그분을 생각하며 또다시 식은 열정을 되살렸다. 그런 기쁨도 잠시, 한두 명 나오시던 권사님들마저 새벽예배 출석이 어렵게 되었다. 80이 훨씬 넘으셨음에도 가장 열심히 기도하시던 권사님의 남편이 쓰러지셔서 새벽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권사님은 딸이 출산하여 아이를 봐 주느라 어렵단다. 그때부터 그 집사님과 나, 둘이서 한 사람은 설교자로, 한 사람은 성도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서 새벽예배를 드린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가끔씩 손녀를 보시던 권사님이 나오시기라도 하면 집사님 하시는 말씀이 “와, 오늘을 출석률이 두 배가 되었어요.”하며 기뻐하신다. 2년 여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시는 집사님을 보며 언젠가 우리 교회 출석하면 큰 일꾼이 되리라는 기대도 점점 사라지고, 정작 내가 담임하는 교회의 교인은 한 사람도 새벽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니 점점 마음속으로 불평이 쌓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오늘은 그분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불손한(?)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교회에 도착해서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집사님을 보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드리고…….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었다. 마치 그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사용하면 써지지 않던 논문도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고 여기저기 일어나는 안 좋은 건강의 신호도 금방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오니까 새벽예배 시간이 점점 고통스런 시간이 되어갔다. 


그날 새벽도 그런 모습으로 교회에 왔다. 사무실에 들어와 설교문을 프린트 해서 올라 가려는데 벽에 걸린 한 액자에 눈이 멈췄다. 그곳에 있은 지 한참 된 액자인데, 사실 걸려 있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내 취임예배 신문기사 스크랩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목회!” ‘한 영혼’이라는 글귀가 갑자기 액자 전체보다 크게 튀어나와 보인다. 이 말은 내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존경하던 교수님이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요, 평생을 목회하시다 은퇴하신 어머니가 내게 늘 하던 말씀이요, 내가 교회의 담임이 되었을 때에 당연스레 가장 먼저 떠 올린 글귀다. 한 성도를 앞에 두고 갈등했던 나에게 하나님이 비춰주신 내 첫 마음의 기억! 언제까지일지, 혹은 평생이 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을 위해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고, 또 기도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 그 어떤 인생의 순간보다 더 순결하고, 빛나는 그런 감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한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일상에 빠져 시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처럼 느껴졌다. 


무릎 꿇어 기도하는 내 모습 위로 우뚝 서 있는 십자가가 그날은 무겁지 않고 가볍고 친근히 느껴졌다.



출처: http://spirituality.co.kr/550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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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

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마음은 급한데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익숙해져 있는 하나의 습관을 고친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점점 세상을 바꾸기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남들이 보면 항상 바쁘게 보는 나.

      그러나 스스로 나를 돌아다보면 언제나 게으른 나.

      움직이는 자는 염려하지 않는다.

      염려는 게으른 자가 하는 것이다.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때에 40년을 치리했던 엘리.

      그는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진실을 전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한 한 사람이 된다.

     "나이 많고 몸이 비둔한 연고"로.


     움직이자.

     게으르지 말자.

     염려하지 말고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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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속히 내려오라


새해의 표어를 구하며 몇주일을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 라는 말씀을 주셨다. 아니 그 말씀 밖에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구절을 가지고 표어를 만들려니 영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새해에 진취적이고 발전적으로 "올라가라!" 라는 말은 모를까 내려오라니.... 그것도 속히 내려오라니... 아무리 말을 붙이려 해도 새해 표어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다. 며칠을 다른 말씀을 달라고도 기도해보고 마음 속으로 내년도 계획에 맞는 이런 저런 말씀들을 떠오리려 해도 막상 아무런 말씀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속히"라는 말에 생각이 꽂힌다. 


어릴적 담장 옆에 나무 위에 놀던 때가 있었다. 어른 들은 항상 올라가지 못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이 보이지 않으면 나무 위에 올라가 놀곤 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 놀던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큰일 난 것처럼 달려와서 혼이 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혼을 내려 달려와서도 나무 위에 있는 아이들에겐 항상 "천천히 내려와, 조심히 내려와"하시곤 했다. 아무리 화가 나고 급해도 어느 누구도 "빨리 내려와, 말씀대로 속히 내려와"하는 어른은 없었다. 급하게 내려오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신다. 나이는 많아도 키는 아이처럼 작은 삭개오에게 '천천히', '조심히'가 아니라 '속히' 내려오라 하신다. 왜 그랬을까?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무로 올라갔다. 자기의 작은 키를 탓하지 않고 그는 주님을 보기 위해 올라갔다. 올라감은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다.  올라감이 없으면 그 은혜가 무언지 깨닫지 못한다. 올라가 본 자 만이 의로움이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 죄가 얼마나 무엇인지 깨닫는다. 올라감의 신앙이란 의로움을 향한 몸부림, 하나님을 향한 갈망, 자기의 연약함을 이기려는 싸움이다.


올라간 삭개오에게 주님은 속히 내려오라 하신다. 왜? 

그 위에 머물러 있으면 갈급함이 곧 교만함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 서 있으면 남들이 다 낮아 보이고, 주님 마져도 내려다 보기 때문이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밑에 있다. 남는 것은 자기의 의로움 뿐이다. 

신앙의 열심과 교만함은 순간이다. 

어쩌면 교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는 올라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려오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내는 사람들이 남들을 향해 나는 이정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말하면 싸움이 된다. 

올라감이 없으면 주님을 보지 못했듯이 내려오지 못하면 주님과 함께 거하지 못한다. 사람들과 함께 사랑할 수 없다. 


삭개오의 올라감과 내려옴 속에서 슬며시 영성의 오랜 두 갈래 길, 긍정의 신앙과 부정의 신앙을 떠올리게 된다. 상승의 신앙과 자기 부인의 신앙을 생각하게 한다. 


"아....!" 

 주님의 말씀엔 항상 깊음이 있다. 감사하며 한달간의 표어를 향한 씨름을 마칠 수 있었다. 

 

 "속히 내려오라!"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표어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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