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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에 해당되는 글 63건

  1. 2016.06.16 4. 네 목회의 비전이 무어냐?
  2. 2016.06.15 3. 첫사랑……실패
  3. 2016.06.10 0. 저널을 시작하며
  4. 2016.06.10 2. 대학 실패…재수..입학.

4.   네 목회의 비전이 무어냐?

 

서울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어느 수업인가 첫 시간에 들어갔더니 교수님께서 너희도 이제는 목사가 되기 위한 길로 들어섰으니 확실한 비전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목회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생각해보고 제출하도록!” 하셨다.

 

기독교 상담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들어오긴 했지만 한 번도 내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는 것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어떤 목사가 될까…… 어떤 교회의 목사가 될까…”

 

제출날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은 숙제를 준비할 겸, 자신의 비전도 세울 겸, 나름대로 교회를 탐방하기도 하면서 비전을 세워가고 있었다. 학교 화장실에는 ‘5만 명의 교회를 품을 수 있는 목사가 되게 하소서라는 낙서가 붙기도 하였다.

난 저녁에 교회예배당에 앉아 나에게 비전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난 큰 교회를 가고 싶지도 않고 몇 명을 감당할 능력도 없어요.. 단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사로서의 내 인생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얼마를 기도했을까, 마음 속에 예수님의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승구야, 난 내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를 얻고 그들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다. 많은사람들이 내게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지만 내 관심은 오직 12명의 제자, 그들이었단다. 승구야, 너도 불확실한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기보다는 네게 감당할 만한 12명의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맘껏 사랑하고, 그들과 삶을 나누며,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믿음을 그들에게 심어주지 않겠니?”  

 

그 분의 사랑스런 한 말씀 한 말씀이 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처음엔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 두 명이라면, 평생에 열두 명이라면 그들에게 내 삶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열 두 명을 목회하면서 힘들어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

 

승구야, 열 두 명을 목회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네 삶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그들 중의 한 명도 너를 이해하지 않을 지도 몰라. 끝까지 어리석은 말과 행동만을 하겠지…… 네가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네가 가장 힘들 때엔 아무도 옆에 없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중의 몇은 자기 목적을 위해, 아니면 아주 사소한 일을 위해 너를 팔겠지.”

 

갑자기 열 두 명이라는 숫자가 세상의 가장 큰 숫자가 된 것 마냥 커져버렸다.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열 두 명의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만나고 그들을 어떻게 세우고, 그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주지?

 

가만히 기도 할 때에 세밀한 그분의 생각이 들어왔다. “한 명씩 한 명씩 내가 네 인생을 통해 만나게 해 줄께….. 내가 그들을 너에게 인도할 때, 승구야,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을 지나치지 말고 안아주고 사랑하고 그리고 너의 삶의 모범을 보여줘라나처럼…”

 

그때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었다. 12명 중에 몇 명을 만났는지 난 확신할 수 없다. 몇은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그렇지만 난 12명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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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실패

 

내 청춘의 이상은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내가 평생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한 번 이길 소원했다 

그것이 순수라고 믿었고 순결이라 생각했다.

이런 개방적인 시대에 난 나의 이상을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하게 생각했다. 하나님도 이 생각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대학 생활 중에 난 여러 번의 연애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괜찮은 친구들도 막상 평생을 같이할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7, 대학교 졸업할 나이에 난 내가 생각하기에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 바로 그녀를 만났다. 나의 눈에 비친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그러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남을 이끌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여인이었다. 난 내 이상을 고백했고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난 내 이상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고 근본주의적인 그녀의 집안과 교회의 반대가 있었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그녀를 설득하고, 그 부모를 설득하고, 그 교회를 설득하면서 난 추호도 의심 없이 내 이상을 믿었다. 3년간의 연예 끝에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고, 그리고 우리가 살 집을 구하면서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혼식 날짜가 가까워오면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결혼식 한 달을 남긴 날, 우리는 헤어졌다.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하나님께서 이런 길로 날 인도하시지?

시간이 지나면서 난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교만함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내 이상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난 내 뜻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허락하실 그런 완전한 것으로 믿었다.

 

그런 교만함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날 돌아가게 하셨고 내 뜻보다 위에 있는 그 분의 뜻으로 인도하셨다. 때로는 그 인도하심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뜻의 완전함을 믿는다. 완전하지 못한 것은 내 성숙되지 못한 인격이고 신앙일 테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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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를 목회 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아와의 투쟁이다.

 

자칫 영적인 게으름에 빠지게 되면 추락하듯 영적인 침체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사랑이 아닌 욕망에, 사명이 아닌 이상에 나 자신이 노출되고, 그런 길은 결국 돌아가는 광야길일 뿐이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작은 나눔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고 삶의 작은 움직임을 통헤 그 분의 현존에 거해야 하는 끊임없는 몸부림이 없으면 일상은 늘 피곤함으로 눈감는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다.  

 

영적 저널(Spiritual Journal or spiritual autobiography)는 내면으로의 집중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려는 나름의 목마른 몸짓이다.

 

하루 하루의 삶에 그 분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안전한 길에 거하고자 하는 연약한 영혼의 갈구이다.

 

한 연약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과거는 늘 객관적일 수 없다.

 

왜곡하지 않으려 해도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내 한계 안에서 바라보는 착시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한 발치 떨어져 내 삶을 바라보면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간 큰 바위 얼굴처럼 내 눈도 그 분의 눈을 조금은 닮아 있을지 모를까 하는 기대서린 기도이다.

 

2016년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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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 실패재수..입학.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우리 가족은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인천으로 이사했다. 나만 서울에 남았다. 3이 되는 나는 학교를 옮길 수 없었다. 6개월을 독서실의 추운 공간에서 담요를 덮고 자고 후반기 6개월은 하숙을 하면서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고생이랴 싶지만 부모들이 떠받들던 남들의 고 3생활에 비하면 난 참 외로웠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들은 가 있을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했다. 쉴 곳이 마땅히 없었다. 그 여름 때에 고 3 수험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개봉했고 주위의 독서실에서 몇 명의 고 3생들이 자살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방황을 시작했다.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원망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인천에 가면 예배를 참석하고 어머니는 반드시 청소를 하게 했다. 그것이 필요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훈련을 위해서인지 분명치 않지만 난 마치 홍당무가 된 마냥 나 자신을 구박덩이처럼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아 주시겠지…… 속으로 이 삶을 보고 있을 하나님을 위해 거래 아닌 거래를 했다. 대학 합격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떨어짐에 대한 두려움은 남들과 마찬가지였지만 내 신앙 안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홀로 이곳에 남아서 살고 있는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면 용납이 되질 않았다. 원서도 그리 모험을 걸진 않았다. 담임이 쓰라는 곳에 썼다. 썩 좋지는 않은 대학이었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전기를 떨어지고…… 더 낮추어 쓴 후기마저 떨어졌다. …… 어떻게 이럴 수가……

 

청년부 수련회를 가서 난 독방에 홀로 앉아 하나님께 따졌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잖아요남들은 부모들이 고3이라고 떠받들고 과외하고 그랬는데 난 당신의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지 않았나요? 아주 논 것도 아니고 그래도 최선을 대했는데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내버려두시죠?”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이전까지 홀로 이렇게 오래 기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년 동안 내가 행했던 모든 악행들이 생각났다. 주위를 방황하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고 음란한 상상을 하고

그 죄가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의 원망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저 어쩔 수가 없었잖아요하는 항변이 생각 안에서 꿈틀댔다. 그렇지만 회개의 열매로서 주일 저녁 찬양예배 때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으로 특송을 했다.

 

학원에 등록을 했다. 재수 생활이다. 첫 시험을 보았는데 1등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일등을 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내내 반장을 했어도 성적은 언제나 10등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입시에서 떨어지고 낙심해서 본 첫 모의고사에서 1등이라니….

재수하면서 새벽예배를 다니고 저녁에는 거의 독서실에서 잤다. 인천으로 왔지만 1년 전처럼 똑같이 독서실 생활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젠 방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롭지도 않았다. 학원을 가면서 버스를 타면 항상 인하대 앞을 지나서 갔다. 차창 너머로 본 대학의 모습은 낭만 그 자체이다. “저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1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등수는 쭉 1등에서 3등 사이를 맴돌았고 그렇게 우등생 소리를 들으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난 1년 전이라면 꿈 꿀 수 없었던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매일 보아오던 인하대그것도 문과에서는 가장 높은 과인 영문과에 말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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