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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

 

복되도다. 애통하는 자여,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보다- 주목하다. 의지를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보다.

어떤 무리인가?

 

[마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5절 -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 무리의 정체는 모든 병든 자, 모든 약한 자, 모든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주님의 관심은 병든 자에게 있다. 병듦을 알고 모여드는 자에게 있다.

왜 우리는 모두가 다 병든 자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두 병든 자이라는 말.

문제는 어떤 이는 자신이 병들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자.

어떤 이는 병든 것을 철저히 감추면서 사는 자.

어떤 이는 남의 병만을 들추어 내는 자.

어떤 이는 자신은 괜찮다고 하는 자.

 

예수는 이러한 자를 외식하는 자, 무지한 자라고 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나오질 못한다.

어떤 자가 나오는가? 자신이 병듦을 아는 자가 나와서 주님께 간구한다.

 

그러한 상태를 십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신다.

 

그런데 모든 병든 자가 모두 병들 고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나오는 자가 나 주님의 은혜를 맛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돌아가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죄용서 받는 것이 아니다.

 

어떠 자들에게 은혜가 임하고 어떤 자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까?

 

  • 산 위에 오르는 자.

예수님은 다가오시는 무리를 보신 후 홀로 산 위에 올라 앉으신다. 그들의 손을 붙잡고 산 위로 끌고 가지 않으신다.

그들을 산으로 데려오라고 하지도 않으신다.

산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잠깐 멈추고 주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산 위는 각자에게 주어진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장소이다.

가장 보편적인 산은 바로 예배의 처소이다.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산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예배의 개념이다. 어떤 이는 골방이 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예배당이 그 사람의 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정이 그 사람의 산이 되기도 하다. 그 산은 누구의 방해받지 않고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주님과 대면할 수 있는 당신과 주님과의 공간이고 또한 시간이다.

 

주님께 예배하는 이 시간이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는 산이 되기를 소망한다. 축원한다.

 

지난 시간에 이어 주님은 두 번째 주님께 나오는 자들의 상태를 말씀하신다.

하늘 나라의 주인공들의 상태를 말씀하신다. 이 주님의 선포는 세상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이야기한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행복하도다. 슬퍼하는 자여, 너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왜 애통하는 자가 행복하다 했을까? 그 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팔복에 대한 유명한 설교를 남긴 17세기 위대한 설교가 토머스 왓슨은 이 애통을 설교하면서

진정한 애통함과 유사품, 가짜 애통을 나누어 설명한다.

 

  • 그가 말한 유사품 애통, 가짜 애통은 무엇인가?

- 자기 연민(절망)의 애통: 가룟유다의 애통 -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뼈아픈 후회, 그런데 그 애통으로 주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사망의 길로 내모는 애통.

- 위선의 눈물: 사울의 눈물, 다윗을 추적하는 사울- 늘 후회하고 눈물, 그런데도 여전히 시기,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다윗을 추적, 순간 애통하지만 곧 다시 자신의 욕망과 감정과 죄를 이기지 못하는 애통

- 억지 눈물: 가인 - "내 죄과가 너무 중하오니..." 그 죄를 경고했음에도, 짓고 나서 자신을 살려달라는....

- 외식의 눈물 : 바리새인들의 눈물, 전정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눈물.

- 헛된 애통: 탐욕에 젖은, 자기가 원한 것을 얻지 못하는 애통.

 

  • 진정한 애통

애통하다 "팬테오"

됴셉을 잃어버린 야곱의 슬픔을 나타내는 언어 -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

[창 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가슴을 부서버리고, 옷을 찢고 창자를 끊어버리고, 뼈를 갉아내고, 창자를 끊어버리고, 심장이 절절한

죄와 고통으로 인하여 용서와 긍휼을 구하는....신성한 슬픔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 - 느혜미야의 고통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겪었던 고통 - 무능력의 고통, 무소망의 고통, 에배할 수 없는 고통

이 시선이 향하는 단 한 곳 - 메시야- 날 구해주세요.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시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 자기 죄를 통회하는 슬픔 - 다윗의 애통

다윗의 통곡 - 자기 전 존재를 잃어버리고 낸 통곡

내가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우슬초로 날 씻으소서.

- 내 안에 의가 없음으로 주를 갈망하는 애통

나의 죄로 인하여 울라.

경건한 자는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죄를 깨닫는 자요, 죄를 고백하는 자요, 그 죄를 예수로부터 용서받는 자이다.

 

  • 생명을 구하는 기도 - 히스기야, 한나, 욥

욥의 울음, 한나의 울음, 히스기야의 울음 - 자신의 슬픔을 그냥 슬퍼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바꾸어줄 대상을 향해 우는 것.

 

[약 4: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위로하다. - 파라칼레오 -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계 21:3-7)

완전하게 용서하시고 완전하게 회복하시고, 성대한 잔치에 초대하신다.

천국의 것을 순간 경험케 하신다.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 완전한 회복 - 이전 것은 다 지나가게 하시는 회복
  • 새롭게 하시는 구원
  • 생명수 샘물 - 갈급한 심령을 채우는 은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마르지 않는, 물덴 동산 같은 생명
  • 이긴 자 - 이만희가 이긴 자가 아니라 애통하는 자,

자기 죄를 위해, 성전을 위해, 생명을 위해, 민족을 위해 우는 자- 그가 곧 이긴 자이다. 이긴 자에게 주신 이름 -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애통하는 자의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행복한 자이다. 소망이 있고 변화가 있고, 끝낼 것이 있고 새롭와 질 것이 있는 인생이 애통하는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이 메마른 시대다. 영혼은 갈급해 하면서도 울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고 울기 싫어하고, 헛된 웃음으로 가장한 인생이다.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애통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날마나 불행하다고만 여긴다. 사는 게 힘들다고 한숨만 내쉰다. 힘들어 죽겠다고 탄식만 하고, 병들어 아프다고 걱정과 염려만 쌓아간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하나님 앞에서 왜 울어야 되는지 그 이유도 모르는 인생이 많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병들었습니까? 인생이 답답하십니까?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깊이 통회하고 우십시오. 절망과 좌절 속에서 탄식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애통해야 합니다. 그렇게 울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눈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 그는 행복한 자로다.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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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절 -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찌게 - 1위 - 된장찌게, 2월 - 김치찌게

왜 그런 찌게들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답변 - 복을 복을 끓어서....

복을 좋아하는 민족

 

마태가 바라본 복 - 하나님 나라의 복을 대표하는 예수님의 설교

같은 설교를 다룬 누가복음의 표현 (눅 6:23) -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 심령이 가난한 자

- 왜 누가복음의 표현 위에 심령이라는 표현을 덧붙였을까?

 

구약적 배경이 필요하다.

 

[마 4:12-17]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언약의 땅으로 들어오는 그 행렬을 이사야가 꿈꾸면서 소개한 내용

회개의 본질 - 뉘우침이 아니라 연약 백성들이 먼 땅으로 끌려 갔다가 다시 언약의 땅으로 회복하여 돌아오는 행렬

- 그 땅에서 돌아오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으니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돌아와 이리로 오라.

 

조건절이 아니라 초대된 백성들의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조건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설명이다. 조건절이 아니라 결과절이다.

심령이 가난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의 삶을 보니 그들의 삶은 심령이 가난하였도다.

 

"심령이 가난하다"의 의미

1. 이사야의 의미에서...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마음이 상하다 - 억눌리고 짖눌리고 지친 상태 - 너덜너덜한 상태

포로된 자 - 자유

갇힌자 - 놓임을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사야가 말한 마음이 가난하다고 말한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애굽의 포로된 상태와 바벨론의 포로된 상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물리적 가난은 똑같다. 사회적 가난도 똑같다.

애굽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알았어도 예배를 경험하지 못한 무리들

바벨론의 포로들 - 예배를 경험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

 

경제적, 사회적 가난 위에 더해진 가장 고통스런 가난- 믿을 데가 없다. 의지할 데가 없다. 기도할 데가 없다.

 

예배도 중단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자, 노동해도 삯을 받지 못하는 때

고향의 소식 - 성전은 훼파되고 예배가 사라진......-

바로 그 상태 - 가난 (심령이 가난한 상태)

 

내 안에, 이스라엘의 공동체 안에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자원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 - 누군가 우리를 구원할 자, 되돌릴 자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좋았던 때, 사실은 아직 오지 않은 때이지만 그 때로 나를 데리고 갈자를 기다리는 상태

 

그 누군가....바로 메시야.

 

  • 히브리적 가난함 - 물리적, 육체적, 심리적, 종교적으로 내 안에 이것을 해결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밖에는 이것을 해결할 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상태

 

돈이 있어도 살 것이 없는 상태,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는 데도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가 없고...가난을 경험하는 상태 (지금의 상태)

그렇게 잘 산다고 하던 사람들이 가족의 장례조차도 치룰 수 없는 상태 심리적 가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가난

 

2. 다윗의 가난 - 그는 왕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고, 찬양하는 자 - 그가 경험한 가난은...

 

[시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다윗 - 왕이 뭐 이런 표현을 하는가 - 지난친 엄살, 공감할 수 없는 가난?

 

[시 40:1-7]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이 무엇이었을까?

다윗의 인생에 가장 기막혔던 사건 - 밧세바와의 사건 - 하나님 앞에 감추었던 나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 - 그 때의 심정 - 내가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죄악의 상태...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 반석, 곧 구원,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 깊은 죄의식과 고통 속에서 나를 그리스도 위에 세워 건지신 주.

새 노래 - 나의 모든 죄와 죄의식을 용서받고 드리는 노래.너덜너덜해졌던 마음이 회복된 후 드리는 노래.

그 새 노래를 보고 - 듣는 것이 아니라 회복된 다윗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가난함이라는 것 -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분을 통하지 않고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

 

다윗이 받은 계시 - 하나님의 음성

6-8절)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 다윗이 받은 계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 다윗의 말인가?

No, 바로 오실 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히 10:1-7]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매일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치지 않는 죄- 영원한 제사장, 단번의 예배, 더이상 그 수렁과 구덩이같은 죄악에서 헤어나오게 하는 그런 제사를 꿈꾸는 자.

바로 다윗이 받았던 그 기사를 예수님의 언어로, 단번의 제사, 단번의 제사장, 더 이상 죄악 속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는 그 심령으로 우리 안에 오신 메시야.

 

왜 첫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 한 것인가?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의 가난 - 을 해결할 길이 없다.

그 가난이 바벨론 백성들이 경험했던 물리적, 사회적,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그냥 본 것이 아니다. 있기에 쳐다 본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주목하여 본다는 의미다.

그가 본 무리는 어떤 무리인가?

 

[마 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약하고 병든 자. 예수님이 찾으시는 자. 예수가 주목하는 자.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무리 중에 제자들이 나아왔다.

어떤 제자들인가? 자신이 약하고 병든 것을 아는 사람들. 예수가 필요한 자.

 

팔 복의 이야기는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자녀들에게, 주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

 

2절)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입을 열어 가르치신 내용 - 그 안에서 나오는 내용

사람에 대하여 , 하나님 나라

 

원래 어순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하늘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니.

왜 복된가? 심령이 가난해져서...

김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겸손

 

베드로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사야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 주님 안에 비친 나를 보는 것

 

부자 청년 -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다 지켰나이다.

그럼 그것 다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근심하여 돌아갔다.

그는 채울 준 알아도 그것을 내어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번제와 속죄제도 필요없다. 바로 내 안에 사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부부의 세계> - 정상인 사람이 없다. 다 비정상

좀비 영화 -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 - 결국 인간.

40대 이상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겪는 병 - 불면증, 우울증, 두통...

 

여러분은 괜찮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장애가 없습니까?

너무 가난한 마음으로 여유도 잃고, 정상적인 사고도 되질 않고 내가 원하는 말도 표현 할 수 없고 남의 말도 그대로 들을 수 없는...나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

스스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태...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한 우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이리로 오라 하십니다. 나랑 만나자.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날 정죄치 않으시고 내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사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해방시키시는....

 

그리고 하늘나라가 바로 그런 자들의 것이다.

배운 자, 놓은 자, 잘난체 하는 자, 교만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병을 아는 자,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 그 고통 속에서 너덜너덜 난 자.

 

바로 하늘나라는 너희들의 것이라고.... 너희들이 그 나라의 주인이라고...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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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이땅에 임한 천국 (마 5:1-10절)     


신명기 28장 1-14절 - 구약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하나님의 복에 대한 약속 

  • 요약하면: 땅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번영의 복
  • 그 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름에서 시작/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자, 하나님을 모르던 자.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복이 되게 하리라.  

   -  떠나서, 나의 땅으로 가라. 너를 하나님이 예비한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얻게 하고 그 복의 기원으로 삼겠다. 

  • 구약의 역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우상에서부터 떠나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우상을 왜 믿느냐? 땅의 복을 달라고… 그런데 그 땅의 복도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누구냐?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바알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 


문제제기) 그런데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신약의 시대, 신약 성경에서 복받은 인물은 누구인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에는 구약에서 명시한 복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이 곳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도 그러한 복, 땅을 얻고, 자식을 많이 낳고,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디모데도 이런 구약의 복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고,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제시한 이른바 팔복, 여덟가지의 가장 최고의 복에 대한 기사이다. 

부자 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오래 살 생각 말고, 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 바칠 각오 하라! 왜 그럴까?

세상에서 환난, 핍박당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약의 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를까? 

구약과 신약이 제시하는 복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그 기준, 근거가 무엇인가? 


복을 보는 기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한 마디로 답하면 →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팔레스틴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세상적 왕국은 꿈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그런데 에녹의 기사라든가 엘리야의 기사를 보면 분명 "하늘나라"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나라를 자기들과 연관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 ‘하나님의 나라’가 110회 이상 반복되어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것 - 영생, 천국

'영원'이라는 시간을 누릴 천국이 주어진 우리에게 이땅에서 잠시 장수하고, 배부르게 살고, 땅의 소산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인 팔복-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8가지 통로, 복. 하늘 나라의 통로


우리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에 얻는 복: 땅의 복과 하늘의 복

  • 여호수아, 갈렙의 딸 악사가 웃니엘과 혼인하며 윗샘과 아랫샘을 얻은 것의 의미
  • 에덴 동산: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의 주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권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복. 

그런데 사탄의 꾀임에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가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땅도 저주를 받고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고 힘껏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정복자에서 만물의 지배를 받고 만물의 도움을 받아야 만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땅의 복. 그런데 하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신명기 28장의 말씀-> 네가 내 말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 선악과 안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주시는 축복. 다시 회복시키리라. 1-14절이 축복의 말씀이면 20-68절까지는 지키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저주의 말씀. 

그런데 사람들은 14절까지의 말씀은 잘 기억하여 기도하지만 그 뒤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읽는 것 조차 싫어한다.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있는 자라면 오히려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뒤에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해 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관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복이 팽팽히….

탕자의 비유: 아버지 나에게 유산 주세요. 내가 나가서 살래요. 난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 필요해요. ->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자기 몫"이라고 말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자마자 생겨난 결과- 허랑방탕, 곧 가난, 궁핍, 비굴, 초라....

"아버지의 것"을 다 잃고 갈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어서 그냥 종살이라도 하려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어떤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아들을 반기고 잔치를 배품-> 다 잃어도 관계가 회복되어서 좋은 거다. 


그러면 구약에는 하늘의 복에 대한 개념이 없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모세의 청원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도 필요없다. 

구약의 구원의 한 사이클..

출애굽- 광야- 가나안... 

그러면 가나안에 들어가면 적어도 "행복"이라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잃어벌였을 때에 일어나는 비극의 내용이 바로 사사기서이다. 

사사기: 땅의 복을 가졌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 나타난 결과 


신명기 28장: 네가 지키면, 지키지 않으면~  그 조건이 "내"가 지키면과 지키지 않으면이다. "내"가 기준이다.

하나님의 의도" 내 관계 안으로 들어와라" 

사람의 생각: 내가 지키면 복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지키는 자가 역설적으로 얻게 되는 죄- 교만, 탐심, 판단, 정죄, 비교...

지키면 지킬 수록 하나님의 정말 싫어하시는 죄들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겪게 되는 경험- 그 분이 날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그 분이 달리셨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깨달음은 내가 그 분을 찔렀다. 

그가 찔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나올수록 교만한 근거를 잃어버렸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 분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된다. 

그것이 팔복이다. 


어떤 자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 산으로 나아온 자: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단 둘이 교제하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잔뜩 가지고서는 산으로 올라갈 수 없다. 빈 손, 빈 마음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하는 것이다. 

은혜를 위해서 세상의 일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 받는다. 

세상 것 다 하고, 세상것을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인해 반드시 넘어진다. 그러나 은혜 받기 위해 세상 것 잠시 내려 놓는 사람은 은혜도 받고 세상도 얻는다. 

성경은 5장 1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 산으로 올라온 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이 제자라고 불러 주신 것이다. 산으로 올라온 자들은 그 자체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세상의 만사를 제쳐두고 지금 예수님께로 올라온 자이다.
  • 예수님께 간절히 나온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압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과, 내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의 사악한 죄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악한 감정, 내 행동, 내 생각, 말들… 그것이 주님과의 관계에 담을 쌓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말씀을 듣지 못함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은혜 받지 못함을 압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한 것은 나의 죄,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나온 자들은 자신의 죄성,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남의 아픔이나 상처 때문에 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우는 사람입니다. 나의 허물과 욕망, 나의 더러움과 추함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자 입니다. 그래서 이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고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애통함으로 자신을 비운 자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온유는 말씀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욕망, 자기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 말씀으로 길들여진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곧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의 약속이 말씀으로 길들여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말씀으로 훈련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신앙생활 했고, 남들보다 더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의 순종을 자꾸만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의만 드러내다가 하나님께 내침을 당합니다. 신앙생활은 남과 비교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로 보고 말씀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가 자신의 삶에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나오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 자는 배부를 것이라 말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이 충만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입니다. 
  •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의 상태에서, 부족함에서, 연약함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왔는지 알기에 올바로 서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시고... 긍휼은 용서가 넘치는 사회를 만듭니다. 
  •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의 복,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을 담고 있는 복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루고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는 일은 평화를 만드는 자, 평화의 사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온전한 자녀, 온전한 천국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나 자신을 희생함으로, 포기함으로, 오직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에 이룰 수가 있습니다. 분열은 왜 생기는가? 다툼이 왜 일어나는가? 내가 온전히 죽지 못해서 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는 나를 희생함으로 얻는 유익이고 복입니다. 
  • 결국 결론으로 마지막 복으로 주신 말씀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하나님 뜻대로 사는데 왜 박해를 받나요?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박해를 받는데 그게 왜 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본문에서도 신약 성경 곳곳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면 너희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왜 박해를 받습니까? 1)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뒤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의 것을 사모하기 위해서입니다. (롯의 아내) 

어제 본 제자 옥한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난 너무 세상에서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서기 부끄럽다. 그 젊고 어렵게 목회하는 목사에게 진심으로 "네가 부럽다..." 

천국에서 높은 자가 되려느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낮아져라. 섬김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섬겨라.... (천국의 역설적인 표현) 

2)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나누어 주기 위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노아)

믿음을 위해 박해 받는 자가 얻는 소망 - 바로 부활의 소망... 


제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이유... 박해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 

부활의 소망. 

예수의 부활- 천국이 이땅을 이겼다. 이 땅에 천국의 자리가 열렸다. 

죽은 자가 가는 곳- 하늘나라,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이 부활이고 우리 성도에게 약속으로 주신 것이 부활이다.



그리스도인들이나 아닌 분들도 죽은 자들과 만날 “꿈”들을 꾼다. 죽을 때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진 모습으로, 알지못할 공간에서 재회를 꿈꾸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소망일 것이다. 

부활”은 그 꿈이 현실을 정복했음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우리가 꿈꾸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이미 이 땅에 임했음을, 그 때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가 꿈같은 세계가 되고, 부활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그것이 부활의 소망이다. 

그 때가 오면 우리가 살던 지금의 삶을 꿈처럼 여길 때가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거짓과 죄가 없고, 슬픔이 없고, 어둠이 없는 세상에서 잠시 잠깐 살았던 불확실하고 혼탁한 세계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았던 지금을 잘 이겼다고, 잘 살았다고, 결국 믿음이 이겼다고 추억하는 그 때

부활은 꿈 같은 하늘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정복하고 꿈의 세계가 현실로, 현실의 세계를 꿈같은 세계로 전복시키는

천국이 이 땅을 정복한, 그런 믿음의 세계의 시작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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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복 5

마태복음 5 1-12

이제 팔복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오는 이유와 목적들이 다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들 고치러, 어떤 사람들은 가난을 극복하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이 그저 좋아서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더 깊은 교제, 더 깊은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산으로 그들을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신에서 이삭을 받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믿음이 인정함을 받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서 구원의 방주를 짓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살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명을 받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단 둘이 교제하도록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잔뜩 가지고서는 산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빈 손, 빈 마음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위해서 세상의 일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습니다. 세상 것 다 하고, 세상것을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은 세상것으로 인해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러나 은혜 받기 위해 세상 것 잠시 내려 놓는 사람은 은혜도 받고 세상도 얻습니다.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5 1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산으로 올라온 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이 제자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산으로 올라온 자들은 그 자체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세상의 만사를 제쳐두고 지금 예수님께로 올라온 자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살 수가 없어서, 오직 예수님으로만 모든 삶에서 구원을 얻기에 지금 세상을 뒤로하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나온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압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과, 내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의 사악한 죄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악한 감정, 내 행동, 내 생각, 말들그것이 주님과의 관계에 담을 쌓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말씀을 듣지 못함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은혜 받지 못함을 압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한 것은 나의 죄,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나온 자들은 자신의 죄성,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남의 아픔이나 상처 때문에 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우는 사람입니다. 나의 허물과 욕망, 나의 더러움과 추함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자 입니다. 그래서 이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고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고,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애통함으로 자신을 비운 자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온유는 말씀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욕망, 자기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지 같은 왕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왕자로서 부르심은 받았는데, 오랜기간 동안 거지처럼 살아서 왕자의 매너, 왕자의, 품성, 왕자의 생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법적인 자녀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자녀로서의 모습을 가다듬어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했을 때에 그들은 이미 법적으로 자유인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만나를 주심으로 그들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단하십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길들이시는 것입니다. 그 후에야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 말씀으로 길들여진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곧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훈련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신앙생활 했고, 남들보다 더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의 순종을 자꾸만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의만 드러내다가 하나님께 내침을 당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독사의 자식들아!”하며 자기가 노력했던 것의 하나도 칭찬듣지 못하고 꾸지람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남과 비교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로 보고 말씀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가 자신의 삶에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나오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 자는 배부를 것이라 말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이 충만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의 상태에서, 부족함에서, 연약함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왔는지 알기에 올바로 서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단순히 동정이나 불쌍한 느낌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이 하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나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금 하나님의 의로 채워주십니다.

그렇게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죄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봅니다. 모든 인간들 안에 스며있는 그 안의 보물, 그 안에 하나님이 심기운 값진 씨앗, 보화를 봅니다.

프란시스라는 유명한 성자가 날마다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후로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누어 주고, 무너진 교회를 세우는데 열심이 특출한 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문등병자들을 잘 돌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잘려고 하는데 밖에서 한 문등병자가 잘 곳이 없다고 하며 문들 두드립니다. 그를 데리고 들어와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자신의 침대 밑에 자리를 내어주고 자라고 하는데 유난히 그 문등병자는 프란시스의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얻어먹는 주제에 정말 염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문등병자들의 성자라 해도 침대까지 내어주는 것은 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위험위험한 것이지요. 그래도 꽉 참고 그를 침대에서 재웁니다. 아침이 되니 언제 일어나서 나갔는지 그 문등병자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또 하루를 보내고 하나님께 또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어제 너와 함께 머물지 않았느냐?”

헨리나우엔- 아담, 하버드 교수직을 내어 놓고 조그마한 정신 지체아 수용서에서 아담이라는 한 젊은이를 보살피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그 아담을 통해서 느꼈다고 기록하나님은 어느 때,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방문하셨는데, 알지도 못하고 외면하고 모욕하면….

그러면서 지난 시간의 화평케 하는 자를 나누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의 복,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을 담고 있는 복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루고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는 일은 평화를 만드는 자, 평화의 사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온전한 자녀, 온전한 천국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나 자신을 희생함으로, 포기함으로, 오직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에 이룰 수가 있습니다. 분열은 왜 생기는가? 다툼이 왜 일어나는가? 내가 온전히 죽지 못해서 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는 나를 희생함으로 얻는 유익이고 복입니다.

그래서 결국 결론으로 마지막 복으로 주신 말씀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하나님 뜻대로 사는데 왜 박해를 받나요?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박해를 받는데 그게 왜 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본문에서도 신약 성경 곳곳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면 너희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은 온전한 신앙생활에는 곧 박해가 따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받는 박해인가? “나로 말미암아예수로 말미암아

어떤 박해? : 욕먹고, 핍박받고, 거짓으로 누명을 씌우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을 억압하는 나라는 중국을 포함하여 16개 나라입니다. 심각한 박해를 가하는 나라는 12위 라오스, 11위 에리트레아 10위 파키스탄, 9위 이라크, 8위 예멘, 7위 우즈베케스탄, 6.몰디브, 5.이란, 4.소말리아, 3.사우디아라비아, 2.아프가니스탄 1위가 북한입니다.

북한은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지하교회에서 숨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평양 대 부흥 운동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이젠 사라지고 그 후손들이거나 다른 지하 선교사들에 의해 신앙을 가진 사람들….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목숨을 걸고 지하에서 예배하는 사람들그런데 이제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다. 기독교인들마저 통일에 회의적이다. 그 곳에서 여젼히 북한에서의 신앙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목숨을 바쳐 기도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신앙인의 박해 중에 오로지 주님 때문에 받는 박해가 아닌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1)     자신의 죄와 허물, 실수, 지혜롭지 못해서 받는 박해.. –이건 자신의 죄값을 받는 것이지 신앙으로 인해 박해 받는 것이 아니다.

2)     자신의 성격, 고집, 잘못된 신앙관으로 받는 외면-

3)     자신의 신앙만 고집하다가 당하는 박해….

그리스도인의 박해는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에게 가장 박해를 받느냐? 믿는 자들끼리 서로 박해한다? 이것은 박해가 아니지요. 이것은 정말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끼리는 세상에서 핍박 받은 자들을 위로하고, 신앙으로 격려하여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여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핍박 받은 자들이 새 힘을 얻고 돌아가는 곳이지 잘 믿지 못한다고, 바로 서지 못한다고 질책하고 꾸짓고, 잘못을 드러내고, 헐뜯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말씀으로 길들여지며 평화를 만들어가는 곳이 교회이지요.

 

요금 제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서 여러 권면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불세례 받고, 능력받고, 성령 충만 받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불세례, 성령 세례의 모습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면 권능, 능력을 떠 올립니다. 병을 치료하는 능력, 귀신을 쫓는 능력, 방언을 주는 능력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 하면 떠 올리는 생각은 우리랑은 전혀 다른 신령한 사람, 초능력자 같은 능력자를 마음 속으로 그립니다.

실재로 많은 신학자들이 한국의 조용기 목사님 같은 능력 있는 목사님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했던 말은 우선 그 앞에 서봐라. 병자가 낫고, 방언을 받으며, 불 같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면 모든 신학, 도덕, 이론들이 다 필요 없고 오직 존경과 우러름만 남는다는 소릴 많이 했습니다.

물론 저는 방언도 하고 신유의 능력도 믿고, 통변도 믿고, 그리고 입신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앙적으로 가장 소원하는 것은 그런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날마다 주님 없으면 못살기 때문에 기도로 아침을 시작하며 매일 같이 말씀 묵상하고 통독하는 것이고, 그 말씀이 내 성격도 고치고, 인품도 고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내 인격 가운데 드러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 보면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그 성품을 찾고 개발하고 사용하도록 도와주고 기도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난 그것이 제자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신앙은 현실을 초월하지도 않고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고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예배 시간에 집사님께서 하도 교회에 이단도 많고 잘못된 지도자도 많으니까 신앙생활하는 것도 이게 맞는 것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올바른 신앙 생활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내 삶도, 내 가정도, 교회도 온전케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결코 맹목적으로 가정을 희생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믿음을 보이면 하나님께서 가정을 지키신다고 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나와 내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 하셔서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피해 많이 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시간에 다른 일 했으면 훨씬 더 유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 예배생활, 기도생활, 말씀 생활은 만복의 근원입니다. 모든 관계를 바로 잡아 주는 행복의 통로입니다. 결코 내 삶을 망치지 않습니다. 바로 가게 해줍니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해 줍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해 집니다. 세상 사람들이라면 포기했을 일도 인내할 수 있도록 이끌며 참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나타나도록 우리를 단련시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팔복의 말씀은 온전한 성도,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천국의 통로이고 이 땅에서, 우리 로고스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매뉴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없으면 안됨을 알고 이 자리에 예배하러 나오신 분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애통하며 회개했던 경험이 있던 분들입니다. 이제 이 교회가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도록 우리 스스로가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당할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되 이 곳에서는 서로 붙들어주고, 용납해주고, 사랑하며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통치가 가득찬 로고스교회를 위해 의를 위하여 값지게 박해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해 받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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