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19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어느 새벽기도 시간에.....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고

너무 가난해서....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이 갈급하고

앉으면 "주여!" 한마디에 가슴이 매어지고

한 마디 말할 수조차 없어서 한숨만으로 이루어진 기도를 드리는


그저 날 불쌍히 여겨달라고

날 좀 구해달라고

하는 그런 숨막히는 공간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가장 순수하며

가장 진실하며

가장 갈급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때라는 

감동이

위로가

하나님의 따스한 격려가


오늘

나에게 주어졌다.


'개인 글 모음  > 목회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0) 2017.03.23
속히 내려오라  (0) 2017.01.10
어느 새벽 기도 시간에  (2) 2016.10.18
예배는 천국의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4) 2016.08.18
믿음 소망 사랑  (0) 2015.08.12
목회는 사랑입니다.  (0) 2015.08.12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감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24 08:06

    위로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감사합니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11 05:03

    시간이 지난 글 이네요 늦었지만 힘든시기에 은혜받고 갑니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난 군대에 갔다.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세계...

통제되고, 한계에 도전해야 하고, 훈련받아야 하고, 끊임없이 순종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점호를 준비하며 한시간 정도 TV시청의 시간이 주어진다. 

뉴스를 보고, 쇼프로를 보고, 떄로는 잠든 척 고참들이 보는 드라마 소리를 들으며

고향을 꿈꾼다. 집을 생각한다. 


그래, 내가 저 곳에 살았었지...

그래, 조금만 참으면 내가 다시 저 곳에 돌아가는거야... 

주어진 한 시간 동안 난 고향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갈 집을 생각한다. 

그 곳에 있는 내 가족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내 사랑하는 친구


예배는....

현실에 부족한 것을 채우는 AS 서비스 센터가 아니다. 

하나님께 현실에 필요한 것을 도와달라고

여기서 잘 살게 해 달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지금 내게 와 달라고 투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내 영혼이, 내 존재가 태어났던 곳

그 분과 함께 행복이란 단어를 쓰기에도 모자랄 만큼 즐거웠던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의 시간 동안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여기 있는 게 다가 아니라고, 

내가 있었던 곳을 기억하고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을 꿈꾸는 것이다. 


예배는 천국의 기억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개인 글 모음  > 목회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히 내려오라  (0) 2017.01.10
어느 새벽 기도 시간에  (2) 2016.10.18
예배는 천국의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4) 2016.08.18
믿음 소망 사랑  (0) 2015.08.12
목회는 사랑입니다.  (0) 2015.08.12
2015년 수련회를 준비하며...  (0) 2015.07.28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수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21 18:08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좋은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10.21 19:04 신고

    신앙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믿음 안에서 천국을 누리시기 바래요^^

  3. 정경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1.12 17:32

    빌립보말씀 검색하다가 블로그 들어왔습니다. 좋은글 읽고 감동가지고 갑니다~

6.    한 사람이라도 날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야-인하대 성경모임 알레데이아

 

첫 시작은 창대했다. "숨지말고 나와 하나가 되자!"라는 슬로건 아래, 30여명 넘는 한 과의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영문과 안의 새로운 신앙모임을 시작했다. 예배를 드리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정기적인 신문도 제작했다. 대학원생에서부터 2학년 학우들까지, 동기 선배 할 것 없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우리 과에 그렇게 기독교 친구들이 있는지 잘 알지 못했었다. 많은 친구들이 감격했고 모임을 더 자주하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그렇게 1주일에 두 번씩 모여 성경을 나누었고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이던지 C.S. Lewis의 책을 원어로 읽으며 신앙을 나누었다. 방학 때는 엠티를 가고 또 기도회를 했다. 대학 4학년 여름에 난 몇몇의 학우들과 영문과 기도 동아리 알레데이아를 만들고 이끌었다. 신학을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내가 몸 담은 처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자는 감동으로 세운 동아리였다. 신문을 만들어 학과 사무실 앞에 가판대를 설치해 가져가도록 하기도 하고 영문과 강의실은 온통 알레데이아 신문이나 모임을 위한 광고지로 넘쳤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신대에 입학했다. 입학을 하고 출판사에 근무하고, 또 과외를 하면서도 난 알레데이아 모임만큼은 빠지질 않고 나갔다. 아니 빠질 수가 없었다. 인도해야 하므로..

한두 명씩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면서 절반이 빠져 나가고 학기가 지나면 또 절반이 빠져나갔다. 신문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중지되고 모임도 어느덧 한 번 이상 모이기 어려웠다. 리더를 세우지 않고 신대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서 인도까지 했으니 아무리 내가 열성적으로 인도를 해도 더 이상 그들과의 끈끈한 끈이 유지 될 수 없었나 보다. 

  

이제 가면 어쩔 땐 서너 명, 어쩔 땐 두세 명, 그들도 내가 일찌감치 가서 전화하고 찾아 다니면서 모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차츰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렇게 정겹게 느껴지던 인하대의 모습들이 조금씩 낯설어가기 시작했다.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날, 난 하나님께 고백했다.

큰 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여기까지인가 봐요이젠 아무도 날 반기지 않고 그리고 이 장소가 너무 낯설게 느껴져요이 곳에 알레데이아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지만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하나님의 뜻을 알 순 없지만 이 모임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셨기를 바래요…”

 

그렇게 마음 먹고 모임 날인 월요일 날 이제 마지막 모임이다는 심정으로 학교에 갔다.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나 아무도 받지 않는다. 아무도 날 반기지 않는다. 귀찮게 생각하는지도, 이젠 낯설어 버린 얼굴일수도 있겠다 하니 씁쓸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하리라는 마음을 다지고 모임장소인 빈강의실로 향했다. 마지막 기도일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을 열었다.

한 명이 앉아있었다. 조금 낯선듯한, 가만히 보니 조금씩 낯익은 듯한

같이 모임을 하다가 군대갔던 후배 하나가 까까머리가 되어서 휴가 나온 것이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역시 형 오네요너무 보고 싶었어요…”

녀석은 멀리 군대에서부터 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라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밝게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네가 올 줄 알고 왔지하하

 

늦게 나마 두 명의 후배들이 와서 네 명이서 모임을 하고 뒷풀이를 했다.

밥 먹으러 가는 길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 영혼이라도 널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너에게 보낸 양이다. 한 영혼이라도 널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뜻이다…..”

그 후 2년 간을 우리는 계속해서 모였다. 어쩔 땐 다섯 명, 어쩔 땐 두 명,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 날,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그 문을 나올 수 있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5.  내가 너의 관객이 되고 천사들이 너의 그룹이 되어 줄께..

 

중고등학교 시절 난 음악에 미쳐있었다. 중창단과 성악을 하면서 무대를 꿈 꾸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면서 또 성격이 좀 다른 열광적인 무대를 누렸다. 서울의 크고 작은 무대를 다니며 노래를 했고 고 2 때는 수학 선생의 교회에서 솔리스트로 오라는 청이 들어오기로 했다. 당시 고등학생에게는 기대 할 수 없었던 사례금도 약속받았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멤버로서 난 우리 교회를 떠날 수 없었다. 대학에 와서도 난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고 학교 앞 카페에서파트타임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우정의 무대에 나가 마지막 결선에 까지 나가 스포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군대의 군인 교회에서부터 난 성가대 지휘자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군인교회 지휘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부대에서 일반대생으로는 처음으로 군종병으로서의 사역을 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다니고 있던 교회에서 지휘를 시작했다. 아직 신학을 결정하기도 전에 난 먼저 성가대 지휘자로서 교회의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교회가 작았기 때문에 열명 남짓 한 성가대 인원과 찬양을 하고 또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어떨 때는 한없이 기쁘다가도 어쩔 땐 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엔 교회에서 자는 날이 꽤 많았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난할 때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기도를 하다가 그대로 의자에 누어서 잠이 들었고 그렇게 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기도 중에 내 속상함을 하나님께 고했다.

하나님, 내 안의 열정을 알잖아요.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찬양하고 싶고 또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찬양하고 싶어요내가 이젠 세상 음악 안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 좀 많이 붙여주시고 악기 하는 사람도 보내주시고 같이 찬양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세요…”

 

그런 내용의 기도를 몇 번 드렸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성가대 인원은 늘지 않았고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신디를 구입하고 드럼을 세팅해 놓고 그리고 마이크를 여러 개 사 놓아도 할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승구야, 사람들을 찾지 말고 오직 날 향해 찬양해야지네가 찬양 할 때 언제나 그 무대 앞 중앙에는 내가 너의 관객이 되어서 너의 찬양을 들으마내가 너의 관중이 되어 주고 천사들이 너의 찬양그룹이 되어 줄꺼야…”

그 분의 마음을 느끼며 난 다시 큰 무대를 꿈꾸지 않았다. 아니 내가 찬양을 인도하고 성가대와 함께 성가를 부를 때마다 그 무대가 가장 큰 무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이는 사람들을 적었어도 그 가운데는 항상 하나님이 날 바라보며 흡족히 나의 음악을 들으셨고 그리고 천사들이 나와 함께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난 하늘의 궁중 지휘자 였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바뀌면서 중등부 여학생들을 모아서 드럼을 가리키고 그들을 성가대원으로 세웠다. 처음엔 목소리가 너무 어려서 잘 융화하지 못했지만 자꾸 함께 하며 불러보니 나름대로 특색있는 화음이 나왔다. 1-2년 지나 그 아이들이 드럼을 치고 같이 찬양하며 찬양을 드렸고 난 그렇게 찬양을 하는 그 아이들도, 또한 그 아이들에게 악기며 찬양을 가르쳤던 나 자신의 모습을 대견스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많지 않은 성가대 인원을 데리고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고 잘 따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찬양을 인도하지만 그래도 난 그 가운데 항상 내 무대를 바라보며 웃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때로는 성가대를 지휘하고 금요 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벅차기도 하고, 좀 더 솔직히는 좀 지겨워질 때가 있었다.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 찬양에 집중하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언제까지 제가 성가대를 인도하고 찬양인도를 해야 하나요? 이젠 설교에 집중하고 싶어요, 주님!" 하면서 기도를 할 때에 예전 내 찬양의 무대 한 가운데서 '내가 너의 관객이 되어 줄께!"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난 네가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는 것도 귀하게 보지만 네가 날 위해 찬양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단다." 하시는 듯한 주님이 마음이 느껴졌다.

이 사역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여전히 모른다.

나이가 들며 때로는 내가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찬양의 주인, 내게 음악주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때까지 그 분 앞에 계속적으로 찬양하는 사역을 힘다해 할 것이다. 그 분이 내 관객이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