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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온 백성 (여호수아 9장1-27절) 

 

아이성 전투의 패배 : 아간의 범죄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백성과 여호수아 

-> 회개와 순종으로 다시금 승리 

에발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읽음- 새언약. 순종의 예배 

축복의 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의 상징인 에발산에서 예배

-> 저주받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의 민족이 됨->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 

 

1-2절: 그들에게 남아 있는 가나안 모든 족속과의 전쟁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통해 얻은 교훈: 

대적이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어 순종하는가? 아니면 자기 뜻대로 행하느냐? 

 

기브온 족속- 히위족속, 아이성 인근의 작은 족속: 가나안 연합군에 가담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투항하려 함 

거짓으로 꾸미고 속임 

 

분별력의 부재- 사신들의 외모를 보고 판단함. 낡고 기운 옷차림- 대표자의 자격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먼나라라고만 함. 

기도의 부재-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14절) 

순종의 부재 - 출애굽기 23장 - 가나안 어느 민족과도 언약하지 말라. 그것이 너희의 올무가 되리라. 

 

결과 - 원망, 누구에 대한 원망인가?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한다. 

(수 9: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수 9: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수 9: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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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8장 30-35절 - 에발산 언약의 갱신 

 

[여호수아 8장 30-35절]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1. 에발산에서의 율법낭독 

아이성과의 두 번의 전투가 모두 끝이 났다. 첫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였고, 두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이;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승리가 더 기쁘고 신났던 것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성 자체를 제외한 성안의 모든 귀한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에 참가했던 3만명의 군사들은 저마다 아이성에서 취한 값진 전리품들을 손에 들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개선행진을 하며 돌아오고 있다. 

 남은 것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나머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때에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뜻밖의 일을 행한다. 

 바로 에발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전쟁을 기뻐하고 축하하기 전에 사람들을 모두 모으고 굉장히 엄숙하고 진지한 예식을 행한다. 꽤 멀리 떨어진 에발산까지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왜 신나고 감격스러운 순간에 이런 일을 행했던 것일까? 신명기 27장에 그 근거가 나온다. 

 

  • 신명기  27:1-8

(신 27:1)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신 27:2)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신 27:3)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신 27:4)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신 27:5)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신 27:6)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7)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신 27:8)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승리에 때에 그들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하나님과 맺은 하신 언약을 기억했다. 

31절, 33절 모세의 명령을 재반영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온 이스라엘과 장로들과 관리와 재판장들이 본토인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궤 좌우에 섰다.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다.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고 명령한 것이었다. 

2. 반복되는 말씀 교육 

34-35절 율법의 낭독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낭독하였다. 곧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였다.

 

(레위기- 1세대, 신명기 - 2세대, 그리고 여호수아 - 또 새로 합쳐진 거류민, 새로 태어난 아이들...) 

-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누는 하나님의 말씀, 교육은 윗 세대로부터 계속적으로 들려주는 말씀이다 .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바로 서지 못한다. 

죄에 대한 기록- 끊임없는 반복의 기록, 사사기- 또 죄를 범하였다- 또 짓는 죄. 

우등생 - 오답노트를 잘 정리하는 사람. 틀린 곳에서 또 틀리지 마라. 경각심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늘 넘어지는 곳에서 넘어진다. 

 

3, 다듬지 않은 돌 위에 단을 쌓으라 - 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 변화 받는 것이다.  

특별히 다듬지 않은 돌 위에 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사를 원하심은 인간의 인위적인 가식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순수함 자체를 받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고 온전한 제사를 원하신다. 불순물이 첨가되어 부자연스럽거나 온전하지 못한 제사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출 20:25)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에발산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 그러니까 참된 헌신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본격적인 언약예식에 들어갑니다. 우선 여호수아는 돌 위에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다시 기록하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왜 그렇게 이미 있는 율법을 다시 기록했고, 또 백성들에게 그 지루한 과정을 모두 지켜 보게 했을까요? 

 

4. 그리심산이 아닌 에발산에서 세운 언약갱신

이것이 이야기해 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지게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저주로 채워지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언약 안에서 사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모양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심 산에 세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에발산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애석하게도 복된 쪽만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받아들이지 않을 방도는 없습니다. 34절을 보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데요. 지금 전쟁에 승리해서 한 껏 기쁨과 흥분 속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모아놓고 여호수아는 ‘율법책이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듣는 일은 참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그러나 저주의 말씀을 듣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런 기쁨과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성이라는 한 장소에서 그들은 축복도 저주도 경험했습니다. 장소도 같았고, 이스라엘 백성도 같았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니님도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정욕과 탐심과 교만으로 스스로 행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느냐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열매가 달라진 것 입니다. 

 

축복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려주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모두 불편하고 힘들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주의 말씀이나 경고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없고, 듣는 사람도 그 말씀을 유쾌하게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도들을 마치 소비자나 고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교회들 안에서는 죄에 대한 이야기,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위로와 축복의 말씀만 넘쳐나고 있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는 항상 가벼운 웃음 소리와 부담 없는 걸음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참으로 성도들을 사랑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성도들을 그리심 산 앞에 뿐만 아니라 에발 산 앞에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심판의 말씀도 가감없이 전해야 합니다.

 

(질문) 

1. 신앙 여정에서 난 주님께 약속한 것들을 신실히 지키고 있는가? 

2. 반복적으로 말씀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게 맡겨진 가족과 영혼에게 그 말씀을 또한 나누는가? 

3. 다듬지 않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를 드리는가? 내 예배에는 가식과 위선이 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드리는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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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8장 1-14절 - 아이성 탈환 

 

지난 주 여호수아 7장은 여리고성 전투에서 승리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아간의 죄가 발각이 나고 아골골짜기에서 심판당하는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

여호수아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거듭남 이후에 성화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영적인 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는 우리의 돌처럼 굳은 심령을 깨뜨리는 전투였습니다. 그 방법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찬양하며 말씀 따라가는 예배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전투 이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아이성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한 번 은혜 받고 내 자아가 깨졌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는 그냥 무너지지 않습니다. 끊질기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도록 순간마다 우리를 걸고 넘어지며, 우리를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 7장의 아이성의 전투는 여리고를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다시 실패하는가를 다룬 신앙인의 실패를 다룬 장입니다. 

아이성의 의미는 황폐한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고, 열두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아이성의 패배는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어난 패배였습니다. 

신앙인의 실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때와 달리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로 움직입니다. 저 곳은 쉬운 곳이니 군사 이삼천만 데리고 가면 된다는 말에 묻지 않고 가다가 혼비백산합니다.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해야 할 우리의 삶이 황폐해 질때에 실패가 임하고 고통이 임합니다 .

 

아간은  곤란이라는 뜻입니다. 왜 곤란해졌습니까? 정욕과 탐심때문입니다. 

승리했던 신앙은 결국 탐심으로 인해 곤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가로채다가 아간은 심판을 당합니다. 

외투 한 벌과 금덩이로 구원의 은혜를 맞바꿉니다. 

우리는 떡으로 사는 삶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삶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떡으로 인해 말씀을 버리면 결국 우리의 삶이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무엇입니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탐심이 아닙니다. 

필요치 않은 것을 욕심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탐심과 욕망에 진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36명으로 인해 마음이 녹아집니다. 

작은 손해가, 작은 고통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무너집니다. <->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 <-> 별 거 아닌 것에도 무너지는 것  

 

과거에 집착합니다. 애굽이 더 좋았더라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광야가 더 좋았더라고 불평합니다. 

탐심의 결과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은 언제나 가장 크고 과거는 언제나 살기 좋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신앙은 현실을 이기라는데 불신앙은 현실이 항상 가장 최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골 골짜기 곤경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이제 8장입니다. 8장은 회복의 장입니다. 회개한 후에 일어나는 은혜의 장입니다. 

수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회개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상황이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세워지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빛이 비추이게 됩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올라가 : 정탐꾼이 했던 말? 이삼천명만 데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쉬운 싸움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싸움이다)

오직 거기서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전부 불사르거나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 오직 침묵하고 나팔을 부르고 부르짖으라. 

 

- 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가?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주시는 말씀이 다르기 떄문입니다. 문제마다 해결책이 다릅니다. 

우리는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을 꿰뚫어 보신다. 정확한 해결책을 아신다. 

 

7장의 전쟁: 묻지 않고 스스로 정탐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하다가 실패한 전쟁 

8장의 전쟁: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여호수아가 명령하고 백성이 따른 전쟁 

여리고성은 낮에 침묵하며 성을 돌다가 나팔이 울리면 소리질러 무너뜨린 전쟁 

아이성은 밤에 매복했다가 낮에 돌격하는 전법 

 

여호수아가 전쟁을 걸면 군사들이 나와 그들을 쫓을 것이고 그러면 매복한 군사들이 성으로 들어가 점령하여 성을 불태우라. 

-> 성 안에 있는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정탐꾼을 속인 것이다. 정탐꾼이 보지 못한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10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수아서를 통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절. 믿음은 행함으로 하는 것이다. 성실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아이성왕의 대비 - 

일찍이 일어나 (14절) - 그들은 잘 준비하였다. 그들 역시 성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정한 때에 싸우려 하나 (14절) 그들은 전쟁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복병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 만이 안전하다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17절) 그들은 동맹군도 있었다.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18절) 
  •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6절) 

-> 마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진멸시키려 했던 아이성의 모략이 결국 그들이 진멸되는 사건으로 끝이 났다. 

 

(묵상에 필요한 질문) 

  • 오늘 하루의 삶에 필요한 말씀을 공급받았는가? 
  • 매 순간 하나님께 묻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 또 다른 여리고와 아이성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지는 않은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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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장 - 여리고성 정복

 

모세의 적 (중생) - 애굽, 아말렉 족속 : 세상, 세상의 가치관, 죄의 유혹들...

여호수아의 적 (성화, 성결) - 가나안, 여리고성 - 내 안의 죄성, 나 자신의 연약함, 깨어지지 않는 내 자아

                       하나님께 굴복되지 않는 내 자아- 그것을 나타내는 것 - 여리고성 

                       

 가나안 -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 

               그 땅의 정의- 황금 송아지 사건 이후 

(출 33:15-16)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 하나님의 응답 

[출 33:21-23]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가나안이 가나안일 수 있는 전제조건- 하나님이 함께 하심- 임마누엘 

그 응답 - 반석 위에 서라. 

               반석 위에 있으면 죄를 덮고 가리우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 (임마누엘)할 수 있게 하심. 

               그 반석, 임마누엘은 곧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내 맘에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것 - 여리고성 점령. 내 마음을 온전히 주께 열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 나 자신의 여리고성 

(민 13:28)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그 자아는 애굽보다 강하다. 

중생하여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가 자기를 정복하지 못하면 광야 인생으로 끝난다. 

이 땅에서의 평안이 없다. 안식이 없고 즐거움이 없다. 신앙생활은 늘 짐이고 부담이고 염려이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고 그 분이 날 점령하시면 참 가나안의 은혜가 임한다. 

임마누엘 그리스도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아가 너무 강하다. 

그 성은 너무 견고하다. 틈이 없다. 그리고 내 속의 공간은 너무 넓다. 수많은 나의 인격들이 그 곳에 거한다. 

 

(수 6:1)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계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왜 문을 닫고 있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5장 1절의 내용이 그 근거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오면 변한다. 그가 오면 나를 지배한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성을 닫게 한 것이다. 

 

요나가 왜 니느웨로 가지 않는가? 그들이 변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죽어야 할 자들이 용서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떨어지면 변한다. 성경은 말씀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사례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가 교회 현장에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 중의 하나는 사람은 참 안변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변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의 교회 현장은, 삶의 현장은 안변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가? 

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고 반응하는가? 

바로 말씀을 가로막는 장벽, 우리 안의 여리고성 때문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내가 필요할 때에만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내 부분을 그 분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한 부분만 소유코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은 그 분을 내 주인으로, 왕으로, 전부로 맞이하는 것이다. 

내 전부를 그 분 앞에 내어드리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교만하고 어리석어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한 부분만을 고치고 싶어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가지신 어떤 것, 그분의 힘, 능력, 지혜, 풍요, 평강, 하나님의 극히 일부분 중 자기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 만을 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받으시면서 동시에 그분의 전지전능을 체험케 하신다. 그 열매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내 존재의 터전, 그 근원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한다.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말씀과 죽어도 안변하려는 우리 인격의 격전지가 교회다. 그곳이 바로 여리고성이다! 

 

2-5절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내린 작전 명령

6-7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내린 작전명령 

3절: 약속의 확인, 그 땅을 너에게 주었다. 내가 너에게로 들어갈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너는 내 것이다. 

(수 6:3-5)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것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예배의 모습이다. 

나팔- 은나팔은 백성들이 진격할 때 (민 10:6) 

         양각나팔은 주로 제사 의식때.

         시내산의 나팔소리 (하나님의 임재) 

(출 19:16)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여리고성 점령- 내 삶을 예배하는 산 제사로 드려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케 하라 .

                        내 중심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로 채워라

                        

(수 6:8)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ㅡ 찬양과 말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는 가장 중요한 예배

 

챤양은 우리의 감정을 노래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이다. 

출애굽의 사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현재를 사는 내 삶에 임하도록, 체험토록, 노래하는 것이요, 그 사건의 승리가 내 삶의 승리가 되도록 고백하는 것이다. 그 때의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임을 확신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수 6:10)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한꺼번에 외치는 것과 한꺼번에 조용히 하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외치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침묵은 길다. 인내해야 한다. 자신을 죽여야 한다. 

왜 침묵하라 하는가? 

그들은 불평하여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배로 채워지지 않는 소리는 소음이고 불평이고 실패다. 

찬양이 우리 삶에 끝나면 남는 것이 바로 불평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소리는 절망의 탄식뿐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 (침묵할 때) - 

여리고성 내의 사람들- 점점 더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시한다.  

이스라엘 사람들 -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 진다. 이 때 그 두려움을 가지고 소리치기 시작하면 그 불안함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여리고는 또다시 닫혀지고 은혜는 사라진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다. 

 

다시는 여리고성을 짓지 말라 - 아합의 시대 때 여리고성을 지음.      

불순종할 때마다, 우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을 멀리 할 때 마다 우리 안에는 또 다른 여리고성이 세워진다. 

다시는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같이 여리고성을 쌓는다. 바벨탑을 쌓는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것은 온전한 예배이다. 

우리 안에 찬양이 넘칠 때에, 말씀이 가득 찰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때에 우리의 여리고는 무너지고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무너져야 한다. 

부서져야 한다. 

깨져야 한다. 우리 모두 여리고를 무너뜨리자.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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