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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여호수아강해)'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21.02.17 여호수아 24장 14-28절 (세겜 언약)
  2. 2021.02.17 여호수아 23장 - 고별설교
  3. 2021.02.17 여호수아 22장 1-9절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가다
  4. 2021.02.17 여호수아 21장 - 레위지파에게 주신 땅

여호수아 24장 14-28절 (세겜 언약) 

1. 세겜땅 

(1) 아브라함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본투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셨던 주님 

 

말씀을 따라 간 곳 - 5절에 보면 한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하신 땅은 바로 가나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5절) 

6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절 -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믿음의 조상이 처음 단을 쌓고 예배한 장소"  

 

(2) 야곱 (창 33장) 

라반에게서 돌아와 단을 쌓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예배했던 장소 

 

동시에 야곱의 딸 디나가 비극을 당한 곳.

 

세겜의 양 옆에 있는 산 : 에발과 그리심 산 - 축복과 저주의 땅이 함께 있던 곳 - 선택의 땅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후에 에발산에 올라 모세의 율법을 돌판에 기록하며 백성들과 함께 읽었다 (8장) 

가나안의 명과 암. -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면서 바로 이곳 세겜에서 언약을 맺으신다. 

 

역사적 진술 

아브라함 시대(2-4)-출애굽 시대 (5-7)-가나안 정복 시대 (8-13) 

 

1) 아브라함 시대: 우상숭배하던 너희를 내가 택하고 불렀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2-3절) 강건너 - 세상에서 살아 갈 때에...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2) 출애굽 시대: 애굽이 우상 (5-7) - 다시 세상으로...탕자처럼 세상의 노예가 되어.....

모세와 아론을 보냈다 (지도자 파송) - 재앙을 내렸다(심판) - 인도하여 내었다 .(구원)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 (노예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다) 

 

3) 가나안 정복시대 :가나안 우상 

가나안 동편의 아모리 사람과 모압의 아들 발락으로부터 구원 

12절 : 너희의 칼이나 활로써 이룬 것이 아니다 

13절: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나니...

 

이 모든 것을 내가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함. 

왜? 깨닫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한다. 은혜가 떨어지면 내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애써 기도하지만 이미 이루어지면 끝이다. 은혜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14절) - 모두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한다면.... 

그를 섬기라. 그만 섬기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두 신을 섬기지 말고, 세상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 

 

너희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을 때에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를 기억하라!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몰아내셨는가를 기억하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지만 그 구원을 누리고 구원을 경험하는 삶은 끊임없는 우리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한다. 

신앙은 끝없는 선택이다.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통하여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 권리는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신다. 

좋은 것을 보여주시되 그것의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신앙인의 삶, 불신자의 삶...한 쪽을 택하라는 것이다. 

결코 두 삶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왜? 우리를 인격으로 대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하려면 우리에게 묻지 말고 그냥 모두 구원하고, 에덴동산 만들었으면 선악과 같은 것 놓아두지 말고 다 치워야지....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꼭두각시나 심부름꾼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교제의 대상, 동역의 대상, 종이 아닌 자녀로, 친구로 삼으셨다. 

비밀을 나누셨다. 뜻을 알리신다. 그리고 복종이 아닌 깨닫고 판단하고 따라오라 하신다. 

 

->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리.. (16절)

자기 입술의 고백, 시인, 결단. (17-18절)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반전: 19절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You are not able to serve the Lord) 

너희에게는 그를 온전히 섬길 능력이 없다. 

너희는 여호와를 온전히 섬길 수 없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거룩과 질투가 함께 할 수 있는가? 

거룩은 순전한 것, 순결한 것, 질투도 순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증인이 되어라. -> 되겠습니다. 

 

23절: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라. 

그들이 여전히 이 와중에 각각 이방 신들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다. 

 

이 돌이 증거가 될 것이다. (옛언약) 돌로서 주신 언약 

마치 베드로가 자기가 배반하지 않음을 단언해도 그 날 새벽 세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함을 알고 있었던 것 처럼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심했어도 그들이 곧 돌아설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이 돌아서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부으셔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인도하실 것임을 예언하셨다. 

 

새언약 

예레미야 31장 31-34절 

[렘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서 36장 16절부터---38절) 

 

세겜은 선택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는가? 정욕, 세상, 사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해야할 영역에 도움은 주실지언정 그 선택 자체는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옳은 선택을 위해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 바로 경건의 삶이고 영성적 삶이다.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보면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성화되어 가는가를 다룬 말씀이다. 

그 길은 성령의 세례 (요단강)을 건너 자기의 성(여리고성, 아이성)을 무너뜨리는 자기와의 싸움, 정욕과의 싸움이다. 

언약궤(말씀)을 앞에 두고 걸어가야 하는 영적 전쟁터이다. 

믿음 안에서 소명과 비전을 발견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싸움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데 처음엔 하나님의 길, 말씀의 길이 어렵고, 힘들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할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우리의 마음이 따라갈 때에, 비로서 성령께서 우리의 선택에 함께 하신다. 

 

(묵상) 

  • 예수로부터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가? 그러면 그 예수가 당신의 삶의 중심에서 역사하고 계신가? 
  • 구원받은 당신의 삶에 진정한 성화의 변화된 삶을 경험하고 있는가? 
  • 신앙생활을 통하여 진정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그 안에서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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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3장 - 고별설교 

 

  • 쉬게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의 나이 많아 늙은지라 

 

모세와 함께 광야 생활,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요단강을 건너면서 정복전쟁 시작 . 

(수 13:1)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정복전쟁을 마친 후에 이미 나이가 늙었지만 각 지파마다 땅을 분배하기까지 또한 오랜 시간 

그 후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나안 정복을 끝내었을 때의 나이가 90세, 임종시 110세 

약 20여년이 흐른 것이다. 

늙었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다. 끝까지 자기 사명을 완수한다. 

 

엘리제사장, "나이가 많아 늙은지라."

자식이 범죄해도 훈계하지 못하는 엘리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 야곱, 모세, 다윗, 사도 요한, 바울, 그리고 여호수아...

최후의 순간까지 영적으로 깨어 있다. 사명을 감당한다. 

 

마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도 요한이 

(요일 1: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하듯이 그의 설교는 

(수 23: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 남아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 이미 멸한 나라에 남아있는 나라까지가 기업이다. 남아 있는 나라, 정복해야 할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복해야 할 나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싸우셔야 한다. 하나님이 싸우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떠한 전쟁도 승리할 수 없다. 

->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지켜 행하는 것. 순종하는 것. 

구원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는 자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과 유혹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또 넘어지고 낙심하고, 실패한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하루 하루의 삶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숭배 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멀리 할 때 나타나는 현상, 우상 숭배하는 것.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엔가 중독되고, 무엇엔가 의지하고, 무엇을 우상으로 만든다. 인간은 스스로 홀로 설 수 없다. 

이미 이루신 구원을 매일 매일 이뤄가는 것, 하루 하루 주 안에서 살아가며 그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곧 가나안 백성의 삶이다. 

 

안식은 계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안식은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관계를 떠난 안식에는 타락이 온다.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주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고 다윗이 전쟁터에서 홀로 쉬다 밧세바를 범한다. 

안식은 일을 멈추고 몸을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자

(수 23:10-11)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12절) 돌아서서 가까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면 우상과 혼인하게 된다. 중독되고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채찍이 되며 가시가 되어..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그런 세력들을 쫓아내신다. 우리 인생에 해가 되는 것들을 피하게 하시고 쫓으시고 영향 받지 않게 하신다. 

 

  •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이 아는바라 (14절) 

- 이것을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그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때로 더디고 지루하다.  

 

  •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5절) 
  • 선한 말씀도 이루실 뿐만 아니라 불길한 말씀도 임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땅이라는 말이 반복- 하나님이 주신 땅. 하나님과 함께 하는 땅

처음 에덴 동산은 오직 선악과 하나만 주의 하면 되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그들이 주위에 편재해 있다. 물리치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집어 삼킨다. 

 

아름다운 땅은 신혼집과도 같다. 신혼 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신랑과 함께 거하기 때문이다 .

집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함께 거하니까 좋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신혼집을 얻어도 신랑과 신부가 관계가 깨어지면 그 집은 지옥이 된다. 

우리 삶이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을 때이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산 백성 - 레위기 말씀에 보면 그들의 삶엔 근친상간, 동성연애, 수간 등 여전히 말도 꺼내기 힘든 죄악으로 넘쳐났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백성들도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하면서 여전히 죄악에서 떠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역사하는 그 순간에도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더러웠다. 

여호수아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말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라. 그러면 산다. 

역사의 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현장에서 자신을 스스로 깨끗이 하면 정결케 하는 자가 있다. 

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와 하나님 거하는 그 집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 있는가? 

 

묵상질문) 

  • "나이 많아 늙은지라"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연약하여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맡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가? 
  • 고별설교의 끝은 축복이 아닌 불길한 말씀으로 끝맺음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은 어떤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가? 
  •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땅, 가나안은 무엇인가? 그 중심에 신랑된 그리스도와 신부된 자신과의 바른 관계가 있는가? 단지 외형적인 축복과 성공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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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2장 1-9절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가다

 

  • 땅 분배- 갈렙에서 시작해서 여호수아까지 : 각자의 인생마다 살아갈 달란트를 주심
  • 도피성 7곳 - 살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와 회복, 보호와 인도하심을 나타냄 
  • 레위인의 거처 48곳 - 마지막으로 주신 것- 예배 처소, 어느 곳, 어느 때에든지 예배를 통해 회복하라. 

 

사후 처리 - 르우벤,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로 하여금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가게 함. 

(민 32:2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수 1:15)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그 때에: 요단강을 넘어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 대한 땅의 분배가 완전히 끝난 후에 

이제 돌아가서 너희 땅을 차지하라. 

 

1-3절: 그들의 책임감과 인내를 칭찬. 

          떳떳하고 명예롭게 자기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4-6절: 이제는 , 자기의 책임을 완수한 후에, 사명을 감당한 후에 

여호수아의 당부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율법을 행하고 

여호와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기라. 

 

군사적인 의무는 끝이 나지만 그들의 축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헌신의 삶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가장 두려운 죄악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지는 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만을 섬기라. 

 

전쟁을 통해 획득한 많은 탈취물들을 요단 동편의 형제들과 나눠가지라. 

  • 원래 이 세 지파에게는 가나안 땅의 어떤 소유도 얻지 못하도록...그러나 전리품을 챙기도록 허락, 그리고 당부 
  • 돌아가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주라. - 공동체를 지키라. 기득권을 버리라. 전리품을 나누라. 

-> 누군가의 기득권을 내세우지 말라. 공로를 따지지 말라.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게 하라. 

제자의 존재- 무리를 맡기기 위함. 

베드로 - 내 양을 먹이라. 치라. 하나님의 관심- 가장 힘없고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 

그것을 위해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십자가를 따르게 하신다. 상주기 위하심이 아니라 보다 연약한 자들을 구원케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 

 

가나안 땅에 안식이 임했다. 그리고 7지파 반은 가나안 땅에 남고 두 지파 반은 요단 동편 땅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이스라엘 전체의 안식을 위해 함께 일했지만 누군가는 그 안식의 땅에 남고 누군가는 그 안식을 뒤로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안식을 향해 길을 떠난다. 

 

여호수아는 떠나는 그들을 향해 축복하고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지키고 그 분을 섬기는 것, 그것이 본분임을 상기시키며 그들을 보낸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열심히 믿어서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땅을 얻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복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복이다 

 

묵상) 내 삶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때로 열심히 기도했는데, 열심히 봉사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을 느낀 적이 없는가? 그러면 그 기도와 봉사의 목적은 결국 자기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인생의 여정이 자기의 생각대로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 분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인해 행복을 회복한 적이 있는가? 

 

찬양) 너희는 하나님을 생명다해 사랑하라.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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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1장 41-45절  - 레위지파에게 주신 땅 

 

레위지파, 아론의 후에 제사장 지파가 되어 하나님의 제사를 담당한 지파.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제사장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시작은 참담하였다. 

(창 49:6-7)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 그들의 분노는 잘못된 분노였는가? 어찌보면 의로운 분노였고, 당연한 분노였다. 자기의 누이동생 딤나를 강간한 세겜 족속을 멸절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의 분노대로 행하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다. 거룩한 할례를 원수를 갚기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다윗은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모세도 자기의 분노를 표현하여 바위를 두번 침으로 온유한 자가 분노로 인해 결국 가나안 땅 앞에서 주저 앉았다. 분노는 결국 죄를 일으킨다. 가인이 아벨에 분노하여 죽이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의 회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자신의 감정대로 분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분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분노로 바뀌었을 때에 그들은 의로운 자가 되었다. 제사장 지파가 되었다. 

  • 황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출 32: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발람의 꾀에 빠져 모암여인들과 혼음할 때에 

(민 25:11)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 25:12)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민 25:13)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어쩌면 똑같은 노의 행위이고 소멸하는 행위였지만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내 자존심, 내 자격지심이 상했을 때에 분노하지 않은가? 

자기를 향한 분노는 결국 죄를 낳는다. 갈등을 낳고 폭력을 낳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위한 분노는 자기를 깨끗이 하고 주위를 깨끗이 하고 거룩하게 한다. 결국 평화를 가져다 준다.

 

  • 레위인들의 분깃 

- 1-3절 :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자기들의 땅을 요구- 말씀에 근거하여

(민 35:2-3)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정착한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을 제비 뽑아 각각의 지파에서 나누어준 땅 48개 고을에 흩어져서 살게 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해서 8번의 제비를 뽑는다. 하나님의 뜻을 거듭 거듭 물은 것이다. 
  • 이들의 흩어짐은 각 지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심이요, 또한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기 위하심이다. 
  • 이들의 거하는 땅- 각각의 도피성이 모두 레위지파에게 할당되었다. 
  • 도피성, 살인자들의 땅. 그들을 위한 피난처.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그들의 안전은 보장되었다.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 목초지: 양을 치는 땅. 목회, 목양. 기르고 양육하고 먹이고 쉬게하고.... 
  • 왜 레위인들에게 목초지가 필요한가? 농경 사회에서 목초지는 곧 가정이었고, 양과 소를 돌보는 것이다. 즉,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의 제물 되는 제물을 돌보는 것이었고, 각기 흩어져 있는 양들, 곧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것이었다. 

 

43절: 여호와께서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그들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The Lord gave them rest on every side...)  

=> 동서남북에 각각 땅을 주고 그 땅에 안식이 임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맞선자가 없었더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들의 관심: 언제 안식 얻지? 언제 땅을 차지하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까지의 여정. 

계속 불평하고, 조급해하고, 안달하고, 낙망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은 어느 날, 사방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그 땅에 안식이 임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라." 

 

로마서 6장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절) 

 

이제 원수들의 종이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신다. 

요셉- 감옥에 갇혔으나 감옥을 치리하는 자로, 애굽의 노예였으나 애굽의 총리로서, 다니엘, 느혜미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종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우리를 자녀로, 친구로 부르신다. 그의 명령은 강압적이지 않다. 무조건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판단하고 생각하라 하신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삶이 가장 자유한 삶을 주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내어드리는 않는 분량만큼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묵상질문) 

  • 내 삶의 원동력은 내 감정이 중심인가, 하나님을 향한 감정이 우선인가? 하나님을 위해 분노하고, 행동한 적이 있는가? "나를 위한 분노는 죄를 낳고 하나님을 향한 분노는 의를 낳는다"는 말을 깊이 묵상해보자. 
  • 자기 분깃이 없이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레위지파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모든 땅에 자기의 처소가 있었고, 분깃을 얻었다. 자기를 위한 삶은 자꾸만 타인으로부터 차단되지만 하나님을 향한 삶은 모든 관계에 열려있는 사람이다. 내 삶은 이웃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는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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