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7:9-삿 7:18]

(삿 7: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삿 7: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삿 7: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삿 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삿 7: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삿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삿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삿 7: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삿 7: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드온과 300용사가 미디안 군사 13만 5천명의 군사와 싸워 승리를 이루는 전쟁 역사상 가장 기가 막힌 승리를 나타낸 장면입니다.  

 

  • 미디안 족속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 미디안 족속이 두려워서 포도원 틀에서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므낫세에서 가장 작은 가문, 그 집안에서도 가장 약한 자였던 기드온을 택해서 "큰 용사"다라고 부르시며 그에게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었다"(6장 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1. 우리가 읽은 본문 9절은 "그 밤에"란 구절로 시작됩니다. 그 밤은 어떤 밤입니까? 

기드온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과 몇가지 사연을 거쳐서 미디안 족속과 아말렉 족속과 전쟁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모으니 3만 이천명 정도가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보시고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들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 7:2) 하면서 (1) 두려워하는 자를 돌려 보내니 2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만명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디안 병사의 숫자가 얼마인줄 아십니까? 자그만치 13만 5천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병사를 다 모아보았자 3만 이천명인데 그것같다 이겨도 기적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기면 또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내 노력이, 내가 잘해서 이겼다 할까봐 그 숫자를 줄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물가의 시험 (4절) 

더 기가 막힌 것은 나머지 만명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 "백성이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개처럼 핥아서 마시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또 다 돌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험코자 하시는 말씀입니까? 

당장의 문제 앞에서 허둥대다가 허겁지겁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에 무릎꿇는 자들을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가 삼백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고난 앞에서도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거두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천 700여명이 돌아갔습니다. 3만 2천명 중에서 3만 천 700명이 다 사라지고 300명만 남은 것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얼마라구요? 13만 5천명입니다. 

미디안이라는 지금 그들의 앞에 닥친 

자꾸 줄이기만 하시는데 여러분 기드온의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그리고 미디안을 치라고 연약한 자 기드온을 불러놓고 자꾸 힘을 실어도 모자란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 줄여라. 더 줄여라... 하면서 내가 의지하고 있던 것들을 자꾸만 없애고 줄이고 하실 때 그런 상황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막 타들어갈 것입니다. 조마조마 하면서 "하나님, 나 못해요..." 그러겠지요. 

 

저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일기처럼 묵상한 내용을 남기곤 하는데 이 본문을 2013년에 묵상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 때 건물 렌트비가 제 사례비보다 많을 때이고,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전도사님도 계셨습니다.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만 지출해도 교회 한달 지출비가 최소 7000불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

그 때 교회 은행잔고는 1000불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안수집사로 계시던 집사님께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시면서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또 한 성도가 성도들사이에서 시험이 들어 출석을 않고 있었습니다. 

남은 성도 20여명, 한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7000불,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감당해야 할 제 학비, 생활비....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숨이 막혔을 때였습니다. 그 때 기록한 묵상일기의 내용입니다. 

 

"자꾸 숫자에만 눈이 간다. 내가 이겨야 할 숫자. 내가 감당해야 할 숫자. 내가 살아야 할 숫자. 내가 써야만 하는 숫자. 내가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숫자...." 

자꾸만 숫자에만 눈이 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 숫자를 없애신다. 계속 줄여나가신다. 숫자를 보면서 절망하고 숫자만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겐 믿음이 없는 것일까? 헛된 믿음만 있는 것일까? 믿음이라 여겼던 고집만 있었던 것일까? 사라지는 숫자를 보면서 입술이 타고 믿음이 타고 마음이 탄다. 하나님, 내 눈에서 숫자를 지워주세요. 숫자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네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숫자를 지워 주세요. 숫자가 아니라 성도의 얼굴이, 그들의 영혼이 보이게 해 주세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밤에...는 기드온에게도, 이 본문을 읽는 저에게도 고난을 통해 거품을 제거하는 기간이었다. 
    고난은 32,000 에서 내가 의지하는 세상의 거품, 자존심의 거품, 정욕의 거품을 빼서 300 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문제나 환경과 싸울 나의 32,000 의 안전장치를 모두 내어버리고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300 용사와 하나님만을 안전장치로 삼는 '거품제거기간'이다. 그 거품이 제거되는 그 때에... 그 밤에... 하나님은 작전은 개시되고 일하시기 시작한다. 

 

  • " 그 밤에"는 줄어가는 숫자를 보면서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토로하는 시간이고, 왜 32000 을 300 으로 줄여가시는지 답이 안가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정말 힘들고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그래도 절대로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시간이고, 가나안 정탐을 하고 부정적인 열명의 시각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각으로 바꿔지는 시간이다. 

 

그게 "그 밤에... "로 표현되는 내 개인의 정화의 시간이다. 
어제 새벽에 나누었던 토기가 완성하기 직전에 겪어야 하는 '불가마'라는 고난의 시간이 지난..사르밧이라는 정련의 시간, 정금이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시간, 바로 ."그 밤에" 이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지금 그 "그 밤에"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시며 기드온에게 주어졌던 큰 용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그 밤에" 등장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 "그 밤은" 내가 의지하는 것을 모두 내려 놓는 시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시는 시간입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어려움과 고난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제 의지할 것이 없냐? 이제 내가 너의 써포터, 돕는자, 심부름꾼이 아니라 너의 주인, 너를 다스리고, 너를 인도하는 구원자로 등장하는 시간입니다.  

 

  •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점입니다. 인간적인, 세상적인 관점이 바뀌어서 영적인 관점,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세상적인 관점, 세상적인 기준에 대해서 세뇌당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실력만큼 사는 것이 최상입니다. 가장 잘 되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자기 그릇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에게 맡겨진 것만을 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의 자기 인생의 그릇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관점, 믿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꿈꾸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은 자기 인생의 크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지근하던 인생이 열정을 품게 되고, 안된다고만 여겼던 것들을 믿음 안에서는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고 있는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부하와 함께 진영으로 내려가 그들의 말을 듣게 합니다. 

(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 내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수가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 같은지라.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암울합니다. 변한 것이 없고 그들의 수는 자신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내려가서 염탐하니 그 병사들 중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꿈을 말하는데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앞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하면서 기드온의 칼이 자기의 진영을 무너뜨릴 것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합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무엇이 바뀝니까?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에서 희망이 보입니다. 자기는 미디안을 두려워하는데 그들은 이미 기드온의 칼이 자기를 무너뜨릴 것이라 염려하며 두려워합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을 상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갔더니 오히려 미디안이 기드온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보리떡 한 덩어리가 들어와 미디안 진영을 무너뜨렸다는데 보리떡 한 덩어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실 때에 사탄이 나타나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유혹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광야에서 내리는 떡덩이는 무엇입니까? 만나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드렸던 소년의 보리떡 다섯개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말씀 앞에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떡덩이가 들어와 그것이 기드온의 칼이 되어 미디안의 진영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시면서 17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의 검입니다. 
  • 관점이 바뀌니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선포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삿 7:15) 

 

4.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클라이막스) 

  • 지금 300명의 용사는 어떤 용사입니까?  3만 2천명 중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정예 군사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들입니다. 그럼 그런 정예 부대를 통해서 전쟁을 한다면 전략적으로는 게릴라 전이라든가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도저히 상식밖의 일을 명하십니다. 
  •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라. (16절)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1) 나팔 :

  • 이스라엘의 전쟁은 항상 나팔을 분 자들이 가장 앞에 섭니다. 나팔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사망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며 외치며 진격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기드온의 명령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기준과 잣대로 부정하게 적용했다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듯 이들은 기드온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그것이 곧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 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에게 순종하며 나아갈 때 전쟁은 승리합니다. 

 

2) 빈항아리

  • 항아리는 담는 것입니다. 
  •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항아리는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 영혼입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 마음 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빈항아리를 가져오라 명하십니다. 내 욕심, 내 판단, 내 기준 다 버리고 오직 순종하는 빈 마음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와서 그 빈항아리를 깨뜨리라 하십니다. 부스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숫자를 의지하고, 약을 의지하고, 환경만을 의지하는 가득찬 항아리를 비우고 가져와서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며 남긴 글 

  • "항아리가 뭘 뜻하죠?" 하고 묻는데, "넌 거기에 뭘 담고 싶니?" 라고 되물으신다. 항아리에 무엇을 마실까...의 물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무엇을 먹을까...의 양식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횃불을 담으라신다. 횃불은 성령입니다. 내 두려움과 내 욕심과 내 기준을 버리고 그 속에 성령의 기름, 성령의 충만, 활활 불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기도로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사 7:17절) 

 

* 능력은 하나님을 믿는대서 나옵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그냥 믿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단지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 할테니 내 부족한 것 도와주세요.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못하면 도와주세요...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직 그 분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방법, 내 기준, 내 관점을 버리고 철저히 그가 하는대로 내가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결론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그 시기를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승리의 시간으로 바꿀 수가 있었습니다 

비겁하고 소심했던 자에서 하나님의 큰 용사되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숫자만 바라보다가 비로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영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개척 2년째, 새해를 맞이하면서 정말로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잘 갖추어진 교회가 아닌 아무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개척교회를 다닌다고 결정하는 것,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정말로 감격스런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가장 기뻐해야할 순간에 또한 가장 힘들 때에 힘이 되었던 말씀을 주십니다, 

어려울 때에 숫자만을 두고 기도했듯이, 잘되고 부흥 할 때도 숫자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 그릇 안에 만족함이나 교만함이 아니라 빈그릇 안에 성령을 담아 삶이라는 이름의 전쟁터에서 끝까지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잘될 때도 안될 때도 있습니다. 잘되면 목이 굳어지고 안되면 움츠려드는 것이 세상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교만해질 이유도, 소심해질 이유도 없습니다. 주 안에 생명이 있고 만족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큰 용사 (사시기 6장 11-16절) 

 

1.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의 사사기의 배경 - 여호수아, 사사기 -> 가나안을 배경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정 및 가나안 이후의 삶

여호수아- "모세가 죽은 후" 에 시작 

사사기 - "여호수아가 죽은 후"로 시작 

 

홍해를 건너 세상으로부터 구원받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정복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까지 왔다. 

우리의 신앙 여정으로 표현을 하면 구원받아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면서 참 예배의 맛도 보고 순종하면서 평생의 기도의 응답도 받고, 신앙의 깊은 은혜도 체험했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신앙생활하여 구원 받고 난 이후의 삶

도대체 나에게 가나안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기도의 신비도 알고, 나름 신앙 생활 하면서 복도 받고 은혜도 받고,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리더도 되었다.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행복한다. 참 안식이 있는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사사기서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나안은 가졌는데 정작 하나님은 잃어버린, 축복은 얻었는데, 정작 영적인 평안은 잃어버린, 기도 응답 받았다고 나름 뿌듯하고 만족했던 내가 

어느날 보니 교만해지고, 삶은 게을러지고, 온갖 세상의 향락에 빠져 도대체 안믿는 자와 다른 것이 없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수 더 뜨는 그런 영적 타락의 극치에 빠진 그리스도인의 철저한 실패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른바 하나님을 통해 복을 얻고자 했던 자들이 복을 얻자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기복신앙의 결말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 당시의 가장 신앙적인 존경을 받거나 높은 직분에 있었지만 예수께 책망듣는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의 신앙을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사사기이다. 

지금의 한국과 미국의 교회가 가장 심각하게 잃어야 할 성경 중 하나가 바로 사사기 

 

사사기서의 결론은 짧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더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들은 대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신앙의 흉내는 내는데 자기 생각대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혜는 그런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교회를,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각 시대마다, 지파에 맞게 사람을 보내어,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어제 새벽예배 룻의 이야기처럼, 이삭줍기를 통해 하루 하루의 만나를 얻게 하시고, 그 날의 구원을 이루어주신다. 

악한 그들이라도 구원의 손길을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시대에 부름받은 자가 바로 사사이다. 

 

이 주간이 될 지 좀 더 긴 시간이 될 지 몇 주간에 걸쳐서 사사기서를 대표하는 두 명의 사사, 그렇지만 너무나도 상반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드온과 삼손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1. 기드온 (다섯번째 소개되는 사사) 

  • 사사 (JUDGE- 판관) : 하나님의 사람 선택 - 최고의 사람을 뽑지 않는다. 그 시대 불구자로 여겨졌던 왼손잡이 에훗, 여성이었던 드보라, 그리고 오늘 다룰 기드온, 약점이 있고 스스로 리더가 되기에 부족한 자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신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모두 약점이 있고 연약함이 있는 자들이다. 

 

2. "또 짓는 죄" 

6장 1절이 어떻게 시작하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신앙생활 중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죄. 우리의 자존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을 갖게 만들어 관계를 깨뜨리고, 점점 마음이 완악해지게 하는 무서운 죄. 

이 구절을 묵상하는 중에, 나의 신앙생활을 통해 가장 날 무너뜨리는 죄가 무엇인가? - 또 짓는 죄

 

하나님 역시 또 짓는 죄를 싫어하신다.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또 다시 반복적으로 온전히 돌이키지 못하고 조금만 여유가 생기고, 살만해지고, 틈만 나면 짓게 되는 반복적인 죄. 다시 짓는 죄. 회개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으면서 또 다시 짓는 죄는 성도들을 병들게 하고, 끊임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또한 고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마태복음 12장 -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갔는데 여기 저기 떠돌다가 다시 그 사람을 보니 그 안이 청소되었는데 아직 비어있다. 주님이 그 안에 안계신다. -> 떠도는 더 악한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 이전보다 더 악하게 된다. 

 

거짓말이 습관이 될 때에, 도박이 습관이 될 때에, 인터넷이 습관이 되어 내 삶을 황폐화시킬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내가 저를 구원했건만, 내가 저를 용서했건만... 

이스라엘 민족이 반복적으로 또 지은 죄는 무엇이었인가? 바알과 앗세라를 섬긴 것이다. 

농사의 신, 물질의 신, 경제의 신 바알과 쾌락의 신, 탐욕의 신, 정욕의 신 아세라를 섬긴 것이다. 

우리를 반복적으로 넘어지게 하는 것, 결국은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우선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보다 나 자신의 쾌락과 정욕을 탐하는 것

그것이 우리 성도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회개해도 또 넘어지게 하고, 이긴 것 같으면 또 넘어뜨리는, 우리의 죄의 근원이다. 

사사기에는 ‘또,’ ‘다시’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모릅니다. 

 

사사기의 시대- 또 짓는 죄의 결과로 맞이하게 되는 것 - 미디안의 통치 

 

3. 미디안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고나서 맞은 후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식이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과는 친척의 관계이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갈 때에 미디안족속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의 제안을 거절하고 광야에 남는다. 

 

정반대의 사상이 신앙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비슷한 것 같은, 유사 신앙,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그런 말들 - 디모데전서에서 나오는 다른 교훈, 허탄한 신화와 생각들..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 민족에 비해서도 작은 민족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보다 훨씬 강한 민족인 가나안을 정복하고도 지금 하나님 앞에 반복적으로 “또” 범죄하니까 미디안에게도 꼼짝 못하는 약한 민족이 되는 것이다.   

왜 미디안같은 작은 문제에도 꼼짝 못하게 되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더 이상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소같으면 쉽게 이길 전쟁에 이스라엘이 흩어지고 자기만 살겠다고 하니까 미디안 작은 민족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곡물을 바치고 땅굴이나 파서 피하는 궁핍한 민족이 된다. 

아가서에서 포도원을 헤치는 것 - 작은 여우. 그 작은 여우가 바로 미디안 족속  

 

  • 이기심과 분열된 이스라엘 백성 

2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전쟁이 나도 자기 살 궁리만 한다. 미디안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것은 힘을 모아 그들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 웅덩이와 굴과 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숨어서, 자기 것이 어떻게 될까 전전 긍긍하여 몰래, 숨어서,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 자기만을 위하여, 숨고 피하고...

 

초대교회 - 성전에서 모이고 흩어져서 가장에서 교제하고...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그런데 점점 교회에서 모임이 폐하여지고, 교회 밖에서의 교제는 점점 사라지고...유튜브 시청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I am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 시대의 신앙을 나타내는 학문적 정의) - 난 신앙은 있지만 교회는 싫습니다.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에서 목사가 하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지금 2년넘게 교회모임이 사라지고 있는 실태 - 안모이니 좋으냐? 집에서 혼자 신앙생활하니 유익하냐? 

 

자기만 괜찮으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함. 전쟁이 나도 자기만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 그러다가 정말 민족적인 위기가 찾아오면 그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4. 부르짖음에 또 응답하시는 하나님 

결국 미디안의 손길이 이스라엘 전 민족에게 미쳤을 때에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삿 6:6-7]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성경은 두 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백성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었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 자신 때문에 부르짖지 않고 그저 미디안 때문에 부르짖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건, 반복해서 죄를 지어도 부르짖어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또 용서하신다. 부르짖는 자를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또 짓는 죄는 우리의 자존감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부르짖는 자를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언제까지 용서하시나? 일흔 번씩 일곱번 - 하나님의 완전수 만큼, 최후의 심판 전까지 용서하신다. 

 

우리는 사사기를 보면서 어찌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게 또 죄 짓고, 또 죄짓고 그런가만 보지 그럴 때마다 그들이 부르짖는 것은 쉽게 넘겨 버린다.  

고난을 당할 때에 부르짖을 수 있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표시이고, 특권이고, 능력이다. 

문제는 고난이 왔는데도 부르짖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고, 고난이 왔는데도, 삶이 황폐해지고, 우울해지고, 영혼이 죽어가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목사로서 성도를 대하다 보면   저 분은 정말 기도해야 하는데 할 정도로 안타까운 처지의 성도들이 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열심히 믿는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위급한데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한다. 사시기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꼭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사업이 망하고 시험이 떨어지고 해야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 영혼에 만족이 없고, 평안이 없고, 자꾸만 어두운 생각이 들어오고,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과, 좌절감이 몰려올 적에 그러한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자녀답게 살게 해 달라고, 사명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 다시 정욕과, 탐욕과, 습관적인 죄가 나를 엄습할 적에 내 영혼이 강건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5. 한 선지자 

(삿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이름도 나와있지 않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무어라고 말씀하냐면 "난 너희를 구원하여 이 땅을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고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과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 (10절) 

이것이 그들의 부르짖음의 응답이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으로, 세상적인 방법을 따르는가? 두려움 때문이다

세상 속에 살면서 그들과, 그들의 가치관, 그들의 기준,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처럼 살지 못하면 뒤쳐질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홀로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바알과 앗세라, 또 짓는 죄, 반복되는 죄에 빠진다. 이방의 신, 경제의 신, 정욕의 신, 탐욕의 신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놓치 못하고 따른다. 자꾸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이름없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응답.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이미 그들을 쫓아내어서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냐? 왜 두려워하는가? 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가? 하는 한가지. 모든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 분의 말씀을 온전히 듣지 않은 것. 그리스도 인의 모든 실패의 원인. 

 

6. 다시 기드온 

그리고 나서 선택한 사사 - 기드온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자 (11절) . 왜? 미디안 족속이 두려워서…. 

원래 밀은 타작마당과 같은 큰 장소에서 황소를 끌고 다니며 타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미디안 몰래 포도주틀과 같은 작은 기계로 조금씩만 타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 어떤 자였는가? 므낫세 중에서 가장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약한 자. 

믿음도 별로, 집안도 별로, 그 집안 중에서도 더욱 연약한 자. 

그를 가리켜 무엇이라 부르셨는가? 너는 큰 용사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2절) 

모세가 죽고 방향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운 리더자 - 여호수아 

여호수아에게 끊임없이 하시는 말씀 - 힘써 대장부가 되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누가 큰 용사요, 누가 대장부인가? 남자만? 아니다. 힘쎈 자만? 아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자. 대장부요 큰 용사다. 

 

물고기 낚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75세 된 자식 없는 노인 아브라함에게 "네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나이 80된 목동 모세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라!" 

불구자 에훗을 통해, 여선지자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어떻게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갈렙이, 여호수아가 그렇게 외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린 큰 용사다. 큰 용사는 다름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이다. 

 

성경에 나온 큰 사람 -

모세 - 한 사람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쳐 40년을 도망자로 산다. 

이 미디안이 두려워서 몰래 숨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 하던 자, 

가장 연약한 므낫세 지파에서, 또 그 집안 에서 가장 약한 자 - 기드온을 부르셔서 "큰 용사여!"라고 지명하신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이름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보장된 말씀이다. 

 

7. 결론 

 

큰 용사가 되고 싶은가? 

무엇으로 이 땅에서 큰 용사가 될 수 있는가? 

물질로, 학력으로? 가문으로? 체력으로? 

몇 사람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큼으로는 이 세상의 큼을 이길 수 없다. 

진짜 큼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연약함이 있을 것이다. 

미디안을 피해 산에 올라가 굴을 파고, 웅덩이를 파고 자신을 숨기듯 숨기고 싶은 내 안의 연약함 때문에 두려울지 모른다. 

또 짓는 죄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을 숨기고 사는 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몰래 초코파이 숨겨두었다가 취침시간에 몰래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먹는데...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불의한 아이들을 보면서도 외면하는 어른들...비겁해진 모습들... 

 

무엇이 여러분의 힘입니까? 무시당하지 않으려 학력을 쌓고 사회적 지위를 쌓고 돈을 쌓아도 그 힘이 유지될까? 

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할 터이니 넌 이제 큰 용사다!"하고 부르신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 - 다윗 

시편을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약한 자로 선다. 작은 일에도 자기가 스스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하나님께 아뢴다. 

하나님께서 둘 사이를 재판해달라고 한다. 유치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아뢴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니 세상이 그를 높인다. 

이스라엘에 수십명의 왕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강하고자 했던 모든 왕들은 사라지고 오직 다윗의 이름만 빛난다. 

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 역시 실수하고 범죄했을 때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 - 주의 성령을 내게 거두지 마옵시고

 

다음 시간에 어떻게 비겁하고 소심했던 기드온이 정말 하나님 약속하신 큰 용사로서 살아가는가를 한 시간 더 묵상할 것이다. 

한 주 동안 여러분 안에 여러분을 무너뜨리는 "또 짓는 죄"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내 영혼의 두려움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부르짖을 수 있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란다. 

큰 용사로 부르시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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