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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9:1-7]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가 반복적으로 등장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등장 

그 사이에는 어떤 논리가 없다. 그들이 돌아와서 구원하신다. 그들이 회개하여 회복하신다. 그렇지 않다. 

 

8장의 끝 - 

[사 8:21-22]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그런데 9장의 시작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왜 그런지 그 이유가 없다.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이 9장에는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이리로다 

 

설명이 없다. 단지 3절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6절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으니....이미 난 아이- 하나님이 하신 역사의 증거, 징조, 싸인

 

7장에 나온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때 나을 아이 -> 9장에 이미 태어난 아이 ->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성취되고 구체화 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사야가 외친 이 아기는 그 당시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되었는가? 

아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고 구체화 된 - 모든 것의 정답 

그런데 그 사이에 이루어진 그 역사적인 체험을 잊는다면 우리 삶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임마누엘, 기묘자, 모사의 징조를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기다리면, 그분을 바라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시작된다. 그 분은 새 창조의 역사를 발한다. 

 

 당시 - 아기, 임마누엘 - 아기에게 관심이 없다. 단지 기다림의 기간이 중요할 뿐이다. 

 

 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기로 표현하는가? 

[사 8:16-18]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봉함하라. -> 타임캡슐 (시간이 지나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안잃어났는지...) 

 

이사야 - 백성들에게 깨달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그러나 그들이 깨닫건 말건 이사야의 이름은 "하나님이 너의 구원이시라" 

 

스알야숩 - 결국은 이스라엘이 남겨질 것이다.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마할살렐하스바스 - 너희들을 친 그들이 망할 것이다. 

 

아기를 통해 주어지는 징표 -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미래를 기다리게끔 하는 소망 

 

아기 안에 녹아있는 전혀 새로운 세계 - 지금 이 세대에 기대할 수 없는 새 소망, 그 분의 약속과 성취, 신실하심. 기묘하고 알 수 없는...

 

[롬 8:30-3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것 - 잘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그 분을 바라보는 것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 - 옳음이 아니다. 옳음은 1+ 1= 2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값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도무지 계산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받는 자의 원인을 찾아내 공식을 만들려고 한다. 은혜를 공식으로 바꾼다. 은혜가 공식이 되면 그것은 율법이 되는 것이다. 

 

사탄의 참소 - 자꾸만 공식을 대고 우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벌받고 저주받아 마땅한 자로 자멸하게 한다. 

아니면 그 공식이 깨어지는 불합리를 통해 시기하고, 미워하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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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8: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사 8:16-18]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아람과 에브라임 동맹이 유다를 침략하자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 그들의 침략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그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주시는 말씀이 임마누엘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는 임마누엘 징조의 말씀입니다. 

 

[사 8:9-10]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 이 말씀은 유다를 공격하는 아람과 에브라임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함성을 지르고 허리를 동이고 띠를 띠고 무장하며 근신하며 유다를 공격할 지라도 그들은 끝내 패망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할 아하스와 유다 백성이 이 말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데, 그들을 보호하신다고 하는데 정작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의 힘을 더 의지합니다. 

 

[사 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이사야를 불러 석판에 마할살렐하스부스라고 쓰라고 명하고 제사장 우리야와 스가랴를 불러 증인하게 함 

마할살렐하스바스 - 침략이 신속히 이루어진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이 황폐해질 것이다. 

큰 서판에 통용문자라는 것은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큰 글씨로 써서 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사야가 아이를 낳자 그 아이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쓰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 마할살렐하스부스라고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 할 나이가 되면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아람과 에브라임이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행하시는 그 기간 

7장 8절)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 

7장 16절)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약 12년) 

8장 4절)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2-3년 내에...) 

 

그런데 이 말을 믿지 못하고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당장 두려운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모든 값을 치루고 앗수르를 찾아 갑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이러한 아하스와 유다 백성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사 8:7-8]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들이 나 대신 의지했던 앗수르가 이 유다에 들어와서 너희 목에까지 미치게 하겠다. 

이것 또한 임마누엘- 왜?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사 8:11-13]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 그 백성의 길로 가지 마라. 아하스의 길로 가지 마라.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라. 하나님 살아계신 줄을 알라. 

 

메신저 성경) 

이 백성을 따라하지 말라. 그들은 늘 누군가 자신을 헤칠 것이라 두려워 떤다. 그들이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염려하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려거든 만군의 하나님, 거룩하신 분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은 그 분께 피하는 자들에게는 은신처가 되기도 하지만 고집센 이스라엘의 두 집안의 가는 길을 막아서는 바위, 철조망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는 자들은 그 바위에 부딪쳐 뼈가 부러지고, 그 철조망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 8:16-18]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큰 서판에 통용 문자로 쓰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이젠 그 말씀을 봉함하라고 하신다. 왜 그럴까? 

들을 자는 이미 들었을 것이요, 안듣는 자들은 계속 안들을 터이니 차라리 그들에게는 말씀을 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을 서판 뿐만 아니라 무엇을 통해? 

자녀의 이름을 통해...그들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성취되리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자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나의 자녀 처럼 가까이, 사랑을 가지고, 친밀히 부를 수만 있다면...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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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7:1-9]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웃시야의 손자, 요담의 아들- 조부와 아버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하려고 애썼던 왕 

당시의 정세 -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아람이 쇠퇴하고 앗수르가 신흥제국으로 주변국들을 정복하던 시기 

위기를 느끼던 아람왕이 에브라임(북왕국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주변국들을 모아 앗수르에게 맞서려고 하던 시기 

그들이 유다 아하스 왕에게도 동맹을 제의 

아하스왕은 아람은 이미 기울었고 앗수르에 맞서기는 부담스럼고...동맹을 거절하니 아람과 에브라임 군대가 유다에 침공

이른바 아람과 에브라임 동맹 전쟁 (BC735) -> 아하스를 몰아내고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자

 

  • 실제 상황 

[사 7: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 그들이 동맹을 하고 왔으나 유다를 이기지 못함 -> 실제적 상황 

  • 그런데 아하스의 인식 

[사 7: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 흔들리다. 요동치다. 연약해지다. -> 무너지다

  •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러 (선지자를 보낸다) -> 하나님의 마음 -> 무너진 심령을 세운다. 견고케 한다. 

1) 삼가며 조용하라 (여리고성) -> 차라리 침묵하라. 마음을 다스려라. 

2)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 그들은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 나무가 다 잘려나가고 마지막 발버둥 치는 것이다. -> 어떤 그루터기가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루터기, 발버둥치는 그루터기 

  • 하나님이 말씀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마지막 말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9절) 

 

하나님의 말씀 -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능력, 만물이 그에게 복종 

그런데 사람에게 적용될 때 - 하나님이 말씀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만날 때 일어나는 일 

우리의 믿음의 반응을 요구 

예수의 말씀 - 일어나라. 회복하라. 승리하라. 

그런데 그 일을 명령하시면서 주시는 말씀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 아하스의 선택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앗수르에게 달려가서 원조를 구함, 그 결과가 역대하 28장에 생생히 증언  

 

[대하 28:19-25]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 도와줄줄 알았던 앗수르왕이 오히려 그들을 공격 
  • 엄청난 조공을 받쳐도 유익이 없다-> 효과가 없다. 
  •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다메섹의 신, 곧 아람의 신들에게 제사 
  • 그가 저지를 엄청난 죄악 

[대하 28: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 자기 자녀들까지도 흰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 산당에서 인신 제사를 드림 - 흰놈의 아들 골짜기 - 게헨나 - 지옥불의 어원이 되는 지명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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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1-9절 

 

1. 전체 구성

  • 이사야는 전체 6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9장까지는 유다 멸망 이전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심판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40장부터 55장까지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구원)의 메시지, 56-66장까지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에게 주는 계시와 당부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한 사람이 쓴 거냐? 예언자는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 후대의 사람들이나 그 동료, 혹은 제자의 무리들이 그 예언자의 삶과 설교를 기록한 것이다. (제 1 이사야, 2 이사야, 3 이사야라고 나눌 필요없다.  이사야서는 긴 형성과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한권의 말씀으로 형성된 책이다. 신학적으로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 이사야서에는 많은 시간과 장소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심판과 구원 신학을 표현하기 위해 한권의 책으로 읽는 것 - 그것이 교회와 성도들이 이 책을 대하는 태도로서 읽기를 원하는 것이다. 
  • 특별히 기독교 교회 공동체에서는 신구약 성서 전체가 66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전체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불리기도 특히 40장부터 55장 사이에 나와있는 여호와의 종에 관한 예언은 그리스도를 정확히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2. 이사야  

[사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 이사야 BC 740년 부터 BC 680까지 4대의 왕(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어 걸쳐서 약 60여년간 예루살렘에서 사역한 선지자 

 

  • 이 때의 가장 큰 사건 

BC 743-32: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사건  (아하스 왕때) 

BC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 정복 

BC 701년 앗수르 산호렙 왕이 예루살렘 침공 (히스기야 왕 때) 

 

  • 이러한 시대적 배경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구원이 이스라엘 역사적 현실에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성경과 예배를 통해 경험하는 신앙적 삶이 우리의 매일 매일의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체험되어 지는가? 

성경의 사건은 역사임과 동시에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야 하는 하나님이다. 

 

 

  • 이사야의 소명 - 6장에 가서야 비로서 시작 (웃시야 왕이 죽던 해) 

1-5장: 이사야의 소명 이전에 역사적 정황이 먼저 소개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언자의 직분을 받는 데서 이사야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사 1:1-9]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시간순서대로 쓰여졌다기 보다는 이사야가 살았던 역사적 전체의 맥락을 보여 준 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유다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전하는 데에 역점을 둔다. 

-> 이것을 이미 경험한 이사야의 입장에서 이 재앙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아니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왜 일어났는가? 

-> 역사적 주체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 지점에서 구약의 역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자. 

  • 출애굽기 - 애굽을 빠져나오면 행복한가? 
  • 여호수아 - 광야를 벗어나면 행복한가? 
  • 사사기 - 가나안에 들어가면 행복한가?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더라. - 먹고 살만하면 드는 교만함. 애굽때 보다도, 광야 때 보다도 가장 패역한 모습을 보인다. 
  • 열왕기, 역대기 - 왕이 있으면 좀 나아지려나, 누군가 질서를 잡아주고...

-> 하나님을 제외한 삶의 모든 추구, 행복의 추구는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하고 점점 더 추락하기만 하다. 

 

왕정 

왕-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메개자. 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청지기 

그런데 이 일은 매번 실패한다. 

다윗이라는 한 명의 왕만을 남기고....

 

솔로몬 - 성전 건축, 그에게는 업적이지만 백성들은 이것으로 인해 매우 고단해한다. 

그는 성전을 건축했지만 성전을 짓고 나서 1000여개의 산당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쪼개어 놓는다. 

 

어떤 신학자는 현대의 물질문명 하에서의 교회

화려한 성전을 짓고, 그보다 훨씬 많은 자신들의 신전, 우상들을 만드는 교회

화려한 성전을 짓기 위해 성도들은 늘 피곤하지만 그 성전을 바라보며 어느덧 화려한 성전에 취하여 드는...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화려한 건물에 취하여 가는 성도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그 성전을 다시 지어줄 메시야... 그들이 정말 기다리던 메시야는 다윗 같은 하나님가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왕이 아니라 솔로몬 처럼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 눈에 보이는 부흥을 일으켜 세워 줄 자. 

비록 1000개의 산당을 지어도, 그 성전만 지어준다면.... 얼마든지 그 산당은 눈 감아 줄 수 있는... 

 

솔로몬의 죽음 이후, 왕국은 10개의 지파와 베냐민 반 지파 - 대다수가 이쪽으로 가서 나라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유지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은 베냐민 반 지파와 유다지파 - 그 유다 지파가 곧 국호. 

그런데 성경은 대다수의 선택을 받은 북왕국을 하나님을 배역한 나라로 여기고 역대기에서는 유다의 왕들의 이야기는 다루어도 북왕국의 왕조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그리고 19명의 왕이 나오는 동안 정말로 한 명도 하나님앞에 바로 서고자 한 왕이 나오지 않는다. 

 

유다지파 - 다윗의 신앙을 이러가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향력 또한 크다. 하나님을 바라면서도 또한 북왕국처럼 세상을 본다. 그들의 왕도 둘로 갈라진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외면하는 자. 

 

이사야에 등장하는 네 왕 - 유다의 왕들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웃시야 - 16세 때 왕위에 올라 오십년간 통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함, 

[대하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런데 사사기 시대처럼 먹고 살만 해지자 그가 교만해진다. 

[대하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 분향 - 제사장 만... 그가 더 이상 스가랴 같은 선지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을 상대하려 하다가 문등병에 걸려 왕궁에서 별궁으로 쫓겨나서 자기 아들 요담을 왕위에 앉히고 대리 청정하는 왕으로 전락.  요담은 명칭은 왕이었지만 웃시야의 지배를 받는 이름 뿐인 왕으로 살아간다. 

-> 왕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세상의 왕됨을 추구하는 모든 인간상을 보여준다. 

 

  • 아하스- 앗수르가 당시의 실권을 잡는데 앗수르 제국은 역사상 가장 혹독하게 식민지를 지배했던 무자비한 세력 

당시의 앗수르에 대항할 수 있는 강국 - 아람 (나아만이 군대장관으로 있던 나라) - 북왕국 이스라엘- 엘리사가 활동하던 때 

 

아람과 북왕국이 주도하여 앗수르에 맞서려고 동맹을 결성하여 유다의 동참을 요구하는데 아하스가 거절- 아하스를 죽이고 자기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려고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

 

[사 7: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줄 것을 약속 (7장에 자세히 기록) 

그런데 아하스가 이사야의 말을 듣기 보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냐면 앗수르에게 지원군 파견을 요청하여 앗수르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데 그 댓가로 엄청난 조공을 앗수르에게 바치게 되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아들을 몰록이라는 신에 제물로 인신제사를 드리며 앗수르의 모든 종교를 유다로 들어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요나 - 엄청난 뱃삯을 지불, 태풍으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세상에서 요구하는 삯은 너무나 크다. 

 

왜 이사야의 말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했을까? 

현실은 어렵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에... 

앗수르의 힘은 눈에 보이고 강력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감추어져 버린다.

당시의 왕-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으로 인해 제사장이나 선지자로부터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어야 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말씀을 보아도 막상 위기가 닥치자 앗수르를 찾는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 히스기야: 왕에 오른지 6년만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아하스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행. 그러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바치던 조공을 내지 않고 멀어지자 유다를 침공하여 다 내어주고 예루살렘 한 도시만 남음. 하나님이 기가 막힌 방법으로 앗수르의 대군이 스스로 자멸하게 하고 히스기야를 구하여 위기를 지났는데, 갑자기 죽을 병에 걸려 그 유명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살아나게 됨. 그러나 죽을 뻔하였다가 살다가 그의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 - 바벨론의 사신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와서 (율법을 어김) 성전 안의 모든 기물들과 그 위치를 보여 줌. 웃시야 왕의 반복. 

 

남왕국 유다의 역사에서 이사야가 경험했던 시기 

유다왕조 20대 왕의 역사 중에서 10-13대까지의 중간을 넘어 후반부의 역사 - 네 명의 왕들 중에서 아하스를 제외한 3명이 하나님께 바로 서고자 했지만 불완전한, 형통할 때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실수했던 때 - 멸망을 향하여 추락해가는 과정 .

 

물론 그들의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회개하라는 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아무리 뛰어나고 신앙좋은 왕이라도 형통에서 시작되는 교만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를 조명한다.

아무리 악했던 아하스 때에도, 서고자 노력했으나 넘어질 수 밖에 없었던 웃시야나 히스기야를 넘어 39장까지 이사야는 끊임없는 우리의 한계와 고난의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모든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희망을 준다. 

하나님의 사랑과 경륜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감싸 안고 넘어서며,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위로와 용서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신다. 

 

탕자의 비유 

나가겠다는데 나가게 하시고 재산을 달라는데 주신다. 다 경험하고 깨달으라는 것인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크기와 그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신다. 

우리는 아버지 날 사랑한다면 내가 나가겠다고 했을 때에 말렸어야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전능하신 하님조차 건드시질 않는다. 

 

설교자로서 내가 단상에 설 때에... 나는 없고 주님만 드러나게.....NO, 철저히 네 안에서 역사하시는 삶을 보이라. 네 입술로, 네가 경험한 나를 네 목소리로 증거하라. 

잘못한 것 벌주시는 데서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통한 결과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것이 이사야를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죄악과 연약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다. 

 

  • 그리고 이사야가 임한 상황....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 

그리고 그 원인: 

[사 1:2-3]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난 내가 필요할 때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별 애원의 소리를 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고, 외면할 때는 너무도 쉽고 차갑게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지 않는가? 

 

  • 그리고 그들이 임한 현실

[사 1:5-6]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 하나님을 떠난 자의 현실 - 머리가 병든다.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한다. 온통 비뚤어지고 왜곡되고 피해망상적인 생각만 할 뿐이다. 

마음은 피곤하고 -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깊이 생각하면 깨닫는데 좀 생각하다 포기하고 벗어날 줄 모른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 떠난 자의 모습은 이토록 처참하다. 

 

그럼 이젠 멸망으로 가는가? 희망이 없는가? 추락하는 유다 백성에게는 심판만이 남아 있는가? 

 

  • 마지막 희망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생존자, 남은 자-> 우리를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 -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불에 탄 나라. 음행과 범죄가 가득찬 나라- 에덴 동산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날. 

하나님은 모든 약한 자의 실패를 넘어 구원을 이루시지만 동시에 누구를 통하여 그 구원을 이루시는가? 

생존자. 남은자. 모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꿋꿋이 노아처럼, 엘리야처럼, 세례 요한처럼, 악한 세대 가운데서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바라보는 자. 

그들을 통해 이 땅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게 하지 않으신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예배하는 성도여러분! 

생존해 계십니까? 아직 살아계십니까? 

아직 여러분의 영혼이 깨어 하나님을 갈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끝없이 절망하다가 넘어져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으십니까? 

머리는 병들어 진리에 어둡고 마음은 피곤하여 기도조차 나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그러한 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 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아무리 내가 넘어졌어도 들으면 삽니다. 아무리 상처가 났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곪은 마음을 짜고 터진 상처를 싸매며 성령의 기름을 부어 부르럽게 하면 우리는 삽니다. 살아납시다. 이 시대의 생존자가 되어 이 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오르지 않게 합시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얻은 교훈 

심판 중에서도 그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을 가진 자는 결코 심판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심령에 어린양이 없고, 십자가의 길이 아닌 자기 욕망과 솔로몬의 영광만을 구하면서도 믿는다고 여기는 자, 입으로 주여 주여 외치면서 말씀과는 상관없이 사는 자. 이들을 어찌할꼬... 

 

계시록을 마치고 다음 강해를 준비하면서 기도할 때에 주신 말씀  - 이사야

 

아직 그 깊은 뜻을 모른다. 

그런데 계시록을 전하면서 가진 아쉬움, 녹화하고, 실시간으로 언제, 몇명이 이 말씀을 나누는지 체크하면서 

매일 꾸준히,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별로 없다. 

물론 매일 같이 보내주는 설교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줄 안다. 

그런데 그 결과 우리의 심령이 어떠한가? 오늘 본문처럼, 어느덧 하나님에게서 시선이 멀어져 발바닥에서버터 머리끝까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음은 병들고 피곤해져 있지 않은가? 

 

Zoom으로 모이고 교제하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같이 보고 듣고 그 분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사야 강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성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하루 30분 보내주는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이기는 생존자가 되자. 소돔과 고모라를 구할 수 있는 시대를 이기는 생존자가 되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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