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놈의 아들 골짜기 (렘 7:30-32절)
힌놈의 아들골짜기 - 성경에서 "지옥의 어원"이 되는 개념을 설명하는 개념.
대다수 성도들이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잘 설교되지 않는 본문.
그런데 지난 주 아침묵상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에서 끝났다.
그 본문도 더불어 꼭 짚어야 하는 개념이기에 이 시간을 통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는 곳은 지명입니다. 예루살렘 바로 밑에 서쪽으로 뻣어있는 골짜기고 그 우편으로 힌놈의 골짜기가 있는데, 두 이어져 있는 골짜기의 이름을 힌놈의 골짜기,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이름 붙인 것입니다. 힌놈이라는 바알과 앗세라를 섬기던 모압 족속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거가 확실치가 않습니다. 그냥 힌놈의 골짜기,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과 이어지는 그 밑쪽의 골짜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시온 산위에 건설된 도시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주변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동편에는 감람산이 있는 기드론 골짜기가 있는 것이고 남쪽에 힌놈 골짜기와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쭉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는 도벳이라는 산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아이들을 산 채로 잡아 바치는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역대하 28장 1-4절에 보면 유다의 12대 왕이었던 아하스왕이 자기 아들을 산채로 불태워 바알에게 제사하는 장면이 소개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레미야 시대에 이 도벳에서 자녀들을 하도 많이 불살라서 그 시체를 더 이상 매장할 자리가 없었을 정도라고 하니까 그 제사가 얼마나 자주, 빈번하게 이루어져 왔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도벳에서 아이들을 산채로 드리는 제사가 성행하게 되었을까?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곧 이방여인과 혼인하게 됨으로 곧 우상을 위한 산당이 세워짐으로서 도벳이라는 몰렉 신을 섬기는 산당이 세워졌을 것이라 동의합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두로와 시돈, 암몬과 모압, 애굽과 애돔 등 주변 거의 모든 국가들과 정략결혼을 함으로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내가 700명, 첩이 300명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에게 닥치는 대로 산당을 지어주고 도벳 산당도 그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요시아 왕 때인데 이 때 요시아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성전에서 신명기서로 여기는 두루마기 성경을 발견하여 그것을 읽다가 회개하여 유다 땅의 마지막 신앙 부흥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솔로몬 이후 300여년동안 역대왕들이 섬겼던 우상과 산당을 제거하는데 6년이 걸립니다. 열왕기하 23장에 보면 요시아의 개혁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요시아 당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가져다 놓고 그것을 섬겼으며 해와 달과 별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 한 가운데 남창 (남자 기생)을 위한 집을 세우고 동성연애가 성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시아왕은 그 모든 우상과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들을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아이를 제사했던 도벳에 모아 싸그리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이곳은 이방인의 무덤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다 모아 큰 불을 피워서 태워 없앴고, 각종 오물을 버렸습니다. 특히 율법을 어겨서 죽임 당한 사람, 이방인, 반역자, 문둥병 등 부정한 질병으로 죽은 자, 그리고 오갈 데 없이 살다가 이름도 없이 죽은 거지나 유랑자들의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힌놈의 골짜기 주변에서는일년 내내 온갖 악취와 불 태우는 연기가끊이질 았았습니다.
(1)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지옥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면서 지옥을 헬라말 "게헨나"라는 말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게헨나가 바로 게힌놈 (게- 언덕, 힌놈)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게헨나- 지옥의 의미가 바로 쓰레기 소각장, 쓰레기장으로 풀이되는 것입니다.
(2) 또 한가지 이 힌놈의 골짜기 중심부에 "아켈다마"라는 곳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의미는 "피밭"이라 이름하는 밭을 의미합니다. 이 장소는 어디인가하면 바로 예수님을 은 30에 로마군병에게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을 맨 곳입니다.
왜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있는 곳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의 밑에 있습니다. 인접한 곳입니다.
지옥은 교회의 반대편, 세상 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로 교회의 인접한 곳에 있는 곳이지요.
사탄의 시작이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하나님 반대편에서 활동하던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면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적그리스도는 불교나 힌두교같은, 전혀 다른 종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하였던 자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적그리스도는 교회에 속하였던 자가 나가서 세운 것입니다. 철학적, 정치적으로도 그리스도를 가장 적대시한 마르크스나 히틀러, 니체 그러한 자들은 모두 신학교 출신이거나 뿌리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던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사라지고 은혜가 사라지니까 가장 기독교의 안티 세력이 되고 사탄의 종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분노하시고 꾸짖으신 대상은 이방인들도 아니었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 전혀 하나님의 뜻대로 믿지 않는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을 향해 분노했고, 백성들을 속이고 장사하는 교회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 뱀- 사탄-그냥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사탄이다라고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나름 열심히,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종교인들을...
지옥은 천국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할 때에 생기는 타락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자를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신자는 전도의 대상이지 저주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대로, 똑바로 믿지 못하는 무리들에게는 사탄의 자녀라고 저주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불신자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제대로 믿지 못하는 자가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산 채로 희생제물로 바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물론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몰렉에게, 바알에게, 앗세라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자 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인지 알고 하나님앞에 자기 자녀를 불태워 드린 것입니다. 자기들의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생물을 잡아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31절에 "그것은 내가 명령하지도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자녀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닌가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대 사회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거의 모든 문명에서 나타나는 원시적 제사 형태였습니다. 인디에나 존스에서도 나오고 우리나라 심청전에서도 나오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첫 열매인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사람을 바치는 제사를 용납지 아니한 것입니다. 나를 다른 신과 비교하지 말라. 다른 신들은 아들을 바치라 하지만 난 내 독생자 아들 예수를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함으로 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성과 그 깊이를 확증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삭을 받치라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나는 사람을 제물로 받지 않는다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입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것?
그것은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 철저히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믿음을 드린것이지 제물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 어떤 일로도 하나님께 서원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제물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 7장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문에서 선포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 입니까?
3절에 보면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고 방식과 삶의 방법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5절 6절 -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억울한 자를 만들지 말라.
뭡니까? 이웃들 사이에 사랑하며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게 살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며 그렇지 않으면 실로처럼 될 것이다.
실로- 여호수아때 성막이 정착되어 언약궤가 보관되던 곳- 엘리 제사장이 다스리고 사무엘이 자라던 곳,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역할을 하던 성전의 중심지가 바로 실로.
그런데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지니까 우리가 법궤를 안가지고 가서 졌다 해서 법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서 죽고 엘리는 그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은 곳-
그 후로 실로는 황폐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어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너희들도 바르게 믿지 않으면 실로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언약궤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아니라 부적- 이거 가지고 나가면 승리한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4절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마라"
성전 안에 있다고 안심하지 말아라.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것 (18절)
(렘 7: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 열심히 무언가 하는데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여왕- 아세라 - 우상을 향해, 물질을 향해 예배드린 것
[렘 7:22-렘 7:23]
(렘 7: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렘 7: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하신 것은 제물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 말씀대로 살라. 그러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 주문외듯, 부적을 지니듯, 맹목적 신앙, 욕망적인 신앙. 물질적인 신앙....
온누리교회 출신으로 이 베이에어리어 지역에서 올네이션스 교회를 개척해서 꾀 성장하는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
올네이션스 - 온누리 교회 중심의 찬양과 경배 운동
그런데 지금 그 이름을 만민 중앙교회라는 교회가 마치 자기들의 것인양 사용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
이미 20년전도 전에 이단으로 심판된 교회
이재록이 이미 우상화 된 교회
20대 꽃다운 청년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여기는 에덴이다. 천국이다. 여기서는 남녀가 다 벌거벗은 채로 지낸다 하면서 몇십년간 수많은 여자 성도들을 추행하고....
참담한 광경. 그래도 성인인데 왜 그것을 분별하지 못할까?
신천지- 기성 교회 안에 스며들어 몇년씩 성실히 교회의 일을 행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무너뜨리는 무리
교회 안의 불신을 통해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이단.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 기성교회는 그럼 안전한가? 완전히 다른가?
끊임없이 비난 받는 세습과 학력위조와 스캔들.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죄악을 짊어지고 회개치 않는 공동체 - 어쩌면 예루살렘 밑의 힌놈의 골짜기인줄 모른다.
신앙생활을 위해서 가정이 깨지는 것도 당연시 하고, 빚을 내서라도 성전건축 하게 하고, 작정헌금---우리 나라에만 있는 헌금 아닌가?
아이들을 바치는 부모는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자기 자녀를 불태우는데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도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것은 사탄이 하는 짓 아니냐? 너희가 만든 우상이 행하는 짓 아니냐?
나는 개신교 목사(성결교)이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정체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개신교 자체도 깨끗하지 못하다. 총체적 위기이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신앙적 중심지였던 실로가 언약궤, 말씀이 없어지니까 황폐한 땅이 되었다.
예루살렘도 그 화려한 성전이 말씀을 떠나니 불타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말씀을 알려도도, 살려고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여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분명 길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 사랑의 길, 좁은 길로 세상을 이기라고 하신다.
지옥은 교회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 역할을 못하면, 성도가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어떤 열심도 자기 자녀를 죽이고, 우상에게 바치는 힌놈의 골짜기 도벳의 예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 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용서하리라
- 아브라함때에 의인 열명만 있으면 이 성을 불태우지 않으리라.
그런데 예레미야 때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성을 용서하리라.
다른 교회 탓할 필요가 없다. 다른 교회는 틀렸고 우리만 맞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 하나만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모든 교회를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옷을 벗기고 천국이라 속이는 목사, 그런 목사를 바라보며 13만명이나 모여 예배드리면서 그 목사를 하나님이라 여기는 교회. 하나님은 그것이 다름 아닌 지옥이라 하신다.
그리고 바른 교회, 바른 성도 하나만 있어도 내가 용서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비록 스무명도 채 안되는 우리 교회이지만 13만명의 성도가 부끄럽지 않은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자, 말씀 안에 서고자, 정직하게 믿고자 하는 공동체이기에, 주의 십자가와 부활을 따르는 교회이기에, 아무리 적어도 이 한 교회가 바로 선다면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에게 이 땅을 회복하고 치유할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이 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위해 그 한 사람이 되어 기도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하자!
(찬양) 주를 위한 이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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