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행복을 캐는 자 (마태복음 13장 42-44)
[마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지난 주 설교 - 힌놈의 아들 골짜기- 자녀를 불태우는 우상의 제단 - 쓰레기 소각장 - 지옥의 어원
- 지옥은 땅 속 깊이 있는 천국의 반대편이 아닌 예루살렘의 바로 밑- 가짜 제단, 잘못된 열심,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예배와 삶
오늘 -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해서
성경 66권 중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성경 -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주제)
그 마태복음 중에서도 천국의 장- 마태복음 13장
이중적인 개념
1) 내세(장소적 개념), 죽어서 가는 나라. 이 땅이 아닌 저 세상, 육신적 세계를 넘어 거하는 저쪽 나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거할 수 있는 나라 (Final City)
2) 관계적 개념 (지금 여기):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함께 거하시는 나라,
- 관계적 개념으로서의 천국의 모델 - 에덴동산, 우리가 창조되었을 때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거하였다. 에덴 (즐거움, 행복)의 의미
- 실낙원 (낙원을 잃어버렸다) - 왜 잃어버렸나?
- 아벨만 아니라면, 다윗만 내게 없다면... (미움과 시기)
- 항상 if~(가정)의 세계를 동경하고 추구하게 만든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항상 부족(결핍)하거나 지금 있는 것에 대한 불만족, 미움의 상태다.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무엇을 가져야 얻을 수 있었는데(이스라엘의 자치권), 무엇이 없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로마, 부패한 정치가, 부패한 종교인)
-> 예수님의 진단 - 네 마음을 돌이켜라. 마음을 바꾸라. 그러면 천국이 다가온다.
[요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주님의 말씀에 거하면, 제자가 되면 얻게 될 자유, 행복, 천국)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사람이 자유를 동경하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자유로부터 도피되는 삶, 무엇엔가 지배되는 삶으로 나아간다.
예수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진리는 무엇인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예수가 곧 진리다.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실낙원(천국을 잃어버린 인간) - 항상 현실을 부정한다. 애굽에서는 애굽이 못견디겠다고 하고 광야에서는 광야가 못견디겠다고 한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왕을 달라하고 왕을 주니 우상을 섬긴다. 달라는 대로 주어도 언제나 부족하고 주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다.
예수의 구원 - 어떠한 현실에도 긍정, 자족,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음
바울은 스스로 터득했다가 아니라 배웠다고 말한다. 배웠다는 것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고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누구로부터? 바로 내게 능력주신 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앙은 스스로 깨우니는 도가 아니라 예수로부터 배우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다. 깨우침이 진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거할 때에 진리안의 자유를 누린다.
헬라철학 - knowing은 곧 understanding이지만 히브리인에게 knowing은 기노스코, 즉 경험하는 것이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
기독교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실의 종교다.
다가올 내세만을 강조하며 현실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현실을 긍정하며 현실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적어도 맛보게 하신다.
현실의 천국과 내세의 천국을 이어 그 두개의 천국이 결국 하나님이 주인된 하나의 세계임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 천국의 비유, 천국장 (청국장이 아니라 천국장)
- 씨뿌리는 자 - 밭의 비유 (1-23절) - 같은 씨앗이 밭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 가라지의 비유 (24-30절) - 잘못된 씨앗이 뿌려지는 경우 - 추수 때에 골라내자 - 그 씨앗에 속한 열매인지, 아닌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인지, 세상에 속한 악한 자의 아들들인지...
- 겨자씨와 누룩 (31-35절) -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되어 그늘이 되고 안식처가 된다.
-씨뿌리는 자를 통해서 우리는 밭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밭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마음 밭, 말씀이 심겨지는 우리의 심령이다.
- 가라지의 비유에는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삶의 현장에는 참된 씨로부터 열린 열매도 있지만 잘못된 씨로 부터 열린 열매가 있음을 말한다. 밭에 농사를 지어도 항상 주인이 뿌린 씨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부터 날라온 지 모르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현재의 교회, 현재의 우리의 심령에도 그 두가지 열매가 뒤섞여 있다. 그런데 추수 때에 그 두가지 열매를 반드시 걸러내겠다고 하신다.
하나님 믿으면서도 믿음없이, 순종없이, 자기 생각과 자기 열심으로 이룬 열매 - 가라지
- 겨자씨와 누룩: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열매-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남들이, 나 자신조차 대부분 외면하는 말씀이지만 그것이 삶에 나타날 때 모든 새가, 사람이 머물며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처소가 됨을 말한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마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밭은 무엇인가? 내 마음, 말씀이 뿌려진 심령. 그런데 천국이, 보화가, 말씀이 그 심령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왜 이 말씀이 내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가? 왜 내 마음 속에서 발견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가?
기독교 역사에서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 - 퀘이커교의 창시자, 조지 폭스 (퀘이커 - 오트밀로 유명, 오트밀 제품에 그의 사진이 있다)
영국의 기독교가 가장 혼탁하던 시절 - 가톨릭, 성공회, 청교도, 그 외의 모든 교파들이 난립하던 시기
진리에 목마른 청년 - 조지 폭스
교회가 진리의 장소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장사하는, 말씀을 팔아 배를 불리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
교회라는 말 대신에 뾰족탑 건물이라고 칭하면서 어디서 참된 스승을 구할 수 있을까? 모든 교파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참 스승과 참 교회를 찾아다녔던 사람
그런데 그가 찾은 빛은 외부가 아니라 그의 마음 깊숙히 새겨진 말씀과 성령-> 외부에서 빛을 찾지 말고 네 심령 깊숙히 있는 빛에 머무르라(성령님의 음성) .
그들의 예배- 자기 안의 성령이 말씀하실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
당시 모든 교회의 은혜의 통로로서 주어지던 예식, 성찬식, 심지어 찬양도, 심지어 설교도 자기 안의 음성을 듣는데 방해된다며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침묵으로 자신 안의 빛에 집중.
특별한 시대, 특별한 자에게 주신 메시지.
영국을 거쳐 미국의 시작에 함께 해서 그들이 모여 이룬 도시 - 펜실베니아
오늘의 본문과 똑같은 의미의 구약의 말씀
[잠 2:4-5]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구하고 찾는 것 - 열정을 다해 수색하고 구석구석 살피는 것-> 어디를 찾는가?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심겨진 말씀을...
- 그러면 얻는 것 - 여호와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 그 분을 얻으면 누리는 것 - 바로 천국,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그 분의 통치
45절부터 댓구가 되는 구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44절) - 내게 심기워져 있는 말씀 - ㅡ수많은 설교와 말씀을 듣고 읽으며 다 잊어버린 것 같고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내 영혼에 새겨져 있는 그 분의 말씀- 찾으라. 구하라. 두드려라.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5절)
- 진주: 조개 안에 작은 모래나 뼈조각이 들어오면 그것을 내보내지 않고 품다가 그것이 주는 고통 때문에 조개 내부의 콘키오린이라는 진액을 뿜어내어 그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싸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모래알을 둘러싼 액이 굳어져서 진주가 되는 것
-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어떤 말씀은 나를 찌르고 수술하여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게 날 아프게 하지만 그 말씀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 내 마음 속에서 품으면 그것이 진주가 되고 내 삶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 보화와 진주가 댓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화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댓구를 이룬다.
왜 보화와 진주가 댓구가 아니라 보화와 장사가 댓구를 이루는가? 숨기어진 것을 찾는 것을 강조
모든 자들에게 말씀을 주시지만 각자가 자기가 생각한 것만을 듣는다. 말씀에 나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말씀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밭에 감추인 보배를 찾듯이, 조개 속에 감추어진 진주를 찾듯이 그 말씀에 나를 던지는 자는 말씀을 만난다. 말씀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를 만난다.
Boudin이라는 빵집 - 샌프란시스코 Pier 39에도 있고 체인점이 몇 군데 더 있다고...
그 빵집의 싸인판을 보면 그 역사가 1849년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금이 발견 된 것이 1848년 -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인구수가 1000명도 안되는 척박한 곳
금이 발견되자 수만명의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금만 찾으면....행복을 찾아..."
그런데 그 금을 찾은 사람은 극소수, 그 극소수. 나머지 수 많은 사람들은 그저 찾지 못한채 허송세월.
모두가 금을 찾아 헤매고, 저 멀리 서부 어딘가 있을 법한 보석을 찾아 헤매고 있을 그때, 바로 그들의 옆에서 열심히 맛있는 빵을 구웠던 사람. 그리고 황금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이 그 어떤 것도 손에 얻지 못할 때, 금을 향해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루 세 번씩 매일 먹어야 하는 빵을, 나를 위해, 저들을 위해, 같이 나누고자 열심히 구원던 사람은 15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 한 번쯤은 찾아가는 유명한 명소가 되었던 것.
외부에 있을 어떤 것을 찾기에 무지개를 찾아다니듯 천국을 찾아,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족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 천국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지금 여기, 우리의 삶 속,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캐낼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 베데스다 연못 (은혜의 집)
수많은 병자들이 물을 바라보며 물이 동하여 천사가 임하기를 기다린다.
38년 동안 물이 동해도 그 곳에 홀로 갈 수 없는 자, 은혜의 집이 아닌 어느덧 절망의 집이 되어 버린 곳에 예수가 오셔서
"그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한다.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날 수 있다고, 내가 이미 말씀을 주었다고 말한다.
행복은 시험쳐서 합격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꼴보기 싫은 사람 사라진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들어왔던 그 말씀을 내 안 깊은 곳에서 발견하여 그 말씀이, 그 예수가 내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천국이고 행복인 것이다.
여러분에게 천국은 어떤 곳인가?
여전히 내게 무언가 있다면, 아니면 저사람만, 이 사건만 없다면....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인가? 그런데 그런 삶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도 채워질 수도 없다.
감사는 내 안에서 캐내는 것이다.
내 안에 심겨진 말씀을 내 마음의 진액으로 싸매어 아프고 또 아프더라도 그 모래알 같은 말씀이 내 안의 가장 귀한 보물이 되도록 묵상하고,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 내 마음 속에 진주를 만들어가는 것.
2022년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깊은 고난과, 답답함과, 어려움과 환란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우리 마음 속 깊은 곳 심겨진 말씀을 통해 보물을 캐낼 수 있는, 천국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지혜가, 그런 간절함과 진실함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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