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8-25절 돕는 베필 

 

돕는 베필 (에제르 크네그도): 에제르 (도움)+크네그도(동등한)= 베필인 돕는 자 

* 동등하게 돕는 자 (상하관계나 우월-하등한 관계가 아니다)  

* 하나님의 도움을 주는 통로 

왜? 도움을 의미하는 에제르 단어는 원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부여된 속성이었다. 

 

시편 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시편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잘못된 오해 

창세기 1장에서 6일 째 창조된 인간 - 오직 남자만...

2장에 가서 하와를 만들다. 

 

5일째까지 창조하신 후 하신 말씀 - 보시기 좋았더라 

6일 - 인간을 만드신 후 하신 말씀 -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 가장 좋았더라 

어느 학자는 이것을 good 에서 best로 발전된 창조의 완성 

 

그런데 2장 18절의 표현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보시기 심히 좋았던 인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좋지 아니하게 된 것인가? 

창세기 3장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전 모든 것이 선하고 좋았던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좋지 않게" 표현된 구절.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는 우주적, 하늘에서 이루어진 창조 -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2장의 창조기사 - 2장 4절을 축으로 땅의 관점에서 일어난 창조기사 

공통점 - 인간을 가장 중심에 두셨다. 

 

1장에서 인간의 특별함 - 하나님의 형상 (Image of God) 

어떤 학자는 이미지라는 표현을 거울을 토대로 설명한다.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이 곧 이미지다. 

이 의미는 본질과 이미지는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맞상대, 파트너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사람을 세우셨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영적 존재라고 한다.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간 만의 특성이다. 

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을 왕같은 존재로, 에덴 동산이라는 성소에서 제사장 같은 존재로 삼으셨다. 

 

사람을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로 부터 생명을, 그리고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과의 적절한 거리를,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라는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을 넘지 말아햐 하는 긴장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파트너임과 돋시에 하나님과 같아 질 수 없는 그 인간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바로 돕는 베필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면서도 동시에, 친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만드신 것이 돕는 베필이다. 

 

18절에서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온다. 그리고 21-22절에 가서야 이른바 하와를 만드신다. 

그 사이에 논리상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등장하는데 19-20절에서 

각종 들짐승과 각종 새를 주시면서 아담이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붙이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곧 소유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아담의 소유 중에서 그에게 돕는 베필의 모양이 갖춘 자를 찾지 못하셨다.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움의 통로가 되는 존재를 찾지 않으셨다. 

 그래서 20절 끝에 가서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이지만 아담에게 돕는 베필이 없었다로 끝난다. 

 

21절에 가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는 표현을 쓴다. 그냥 잠드는 사이가 아니라 깊이 잠들다... 성경에 있어서 깊이 잠들다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전신마취를 하시듯 그가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 - 갈빗대의 의미는 beside- (옆에- 동등한)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를 보자 아담이 말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 달리 말하면 "그는 곧 나다"라는 표현이다. 비로서 동등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의 통로가 될 존재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비로서 사람은 남자 (이쉬)와 여자 (이샤)로 존재하는 둘이 한 몸을 이룬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는 표현은 다름이 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뜻 밖의 표현이 또 하나 등장한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면서 갑자기 그 둘의 부모를 이야기한다. 나중의 가정을 염두에 두고 삽입된 구절이라 해석하기도 하지만 부자연스럽다. 

이 때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독립하고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섬긴다":의 의미를 지닌다.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론을 이야기하면서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이 성경에서 세우신 기관은 오직 교회와 가정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신약에서도 구약에서도 가정과 교회를 구별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교회가 이루어졌고, 교회가 가정의 모습을 추구하였다. 

가정도 교회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며 서로에게 돕는 자로서 동등하면서도 하나되듯이 교회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동역하며 도울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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