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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따르는 제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10.07 멀찍이 따르는 제자 (눅 22:54-57)

멀찍이 따르는 제자 (눅 22:54-57) 


베드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12명의 제자 중에서도 중요한 곳에 함께 했던 세명의 제자, 그 세명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수제자는 누가 뭐라해도 바로 베드로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5장 1-11절) 이 장면은 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너무나 인상이 깊은 장면이기에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눅 5: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눅 5: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1절: 무리는 해변가에서 말씀을 듣는데 어부들은 대신 그물을 씻고 있다.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들릴 리 없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로 치면 그들은 이 때에 길가에 속한 외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갑자기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배에 오르셨다는 것은 시몬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여전히 무리들을 보면서 가르치십니다. 

예수가 내 삶에 들어오긴 했는데 여전히 그 말씀이 나에게 들리지 않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되긴 했는데 그 말씀의 뜻도, 자신의 관심도 별로 없었던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배에 오르신 주님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다가 드디어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이것은 객관적인 말씀에서 나에게 하신 말씀, 로고스에서 레마로, 일반적인 하나님에게서 나의 하나님인 여호와로의, 얕은 물 신앙에서 깊은 물 신앙으로, 무리에서 제자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중심에 들어오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라"는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로 베드로는 줄곧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으뜸인 수제자가 됩니다.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가로막힌 물 사이로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하며 몰아치는 물에 뛰어들어 예수님을 향해 갔을 정도로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데 가장 앞선 자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해 수많은 인파가 예수께 몰려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하시면서 자신이 하늘로 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임을 말하심과 동시에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갔을 때에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하면서 어려울 때에도 예수님을 지켰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했던 바로 그 고백,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마 16:16절) 라는 교회의 기초가 되고 모든 신앙인의 고백의 기초가 되었던 바로 그 위대한 고백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꼐서 알게 해준 사건이기 떄문입니다. 이 고백은 유대인 누구도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고백입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다윗왕의 영화를 되찾게 해줄 하나님의 대리자, 대언자이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어 오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믿는 자의 고백의 중심이 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 이후로 예수님은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 바로 십자가와 구원의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했던 베드로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단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예수께 항변했다? "rebuke"라고 번역된 이 구절은 예수를 도리어 꾸짖었다. 혼내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고 하니까 안된다고 하면서 예수를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꾸몄던 계획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베드로가 사탄의 계략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마 16:23)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고난을 통한 영광이고 희생을 통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 사탄의 일은 무엇입니까? 적당히 가고 죽지 말고 가고, 고생없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베드로의 모습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앞장섰던 제자에서 가장 실수 많고, 칭찬과 꾸짖음이 반복되는 불완전하고, 무언가 분열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초막을 짓고 살자라는 뚱딴지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하다가 거듭되는 예수의 십자가 예언을 무시하고 외면하기도 하고,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라는 논쟁의 사이에 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발을 씼기시는 예수님에게 절대 안된다고 하다가 그럼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라고 하시니까 그럼 발 뿐만 아니라 온 몸을 다 씻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 장소가 만찬을 하기 위한 다락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베드로의 요구는 좀 엉뚱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 이후로 베드로 삶의 변화 

- 자기 신념, 확신, 고정관념에 의한 믿음 (붙잡고 싶은 말씀만 붙잡고,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믿음, 예수님과 함꼐 있지만 실재로 그가 보는 것은 자기 내면의 욕망만을 보는 것) -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한 목적 (왕이 되기 위해, 크기 위해, 좋은 자리 얻기 위해) 

- VS 예수님의 말씀 (십자가를 향하여...) 구원을 위해, 영생을 위해...


그 절정의 순간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를 앞두고 벌어집니다.

[눅 22:31-눅 22:34]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마 26:33-마 26:35]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왜 그의 이 고백은 거짓 고백으로 될 수 밖에 없을까요? 그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마 26:36절부터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마 26:36)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너희가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다. 

무엇으로부터의 시험인가? 사탄으로부터의 유혹이요, 공격이다. 

사탄을 이기는 능력은 기도 외에는 없다.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검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길 힘이 없다. 

기도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의 고백이자 몸부림이다. 


왜 상식에 근거한 신앙, 자기 확신, 신념에 근거한 신앙이 무너지는가? 

사탄의 공격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무너뜨려서 제 정신을 잃게 만든다. 요동치게 만든다. 결국 잘못된 선택, 잘못된 행동으로 후회하게 한다. 


자, 예수님이 잡혀 갔다. 자기 눈앞에서 함께 죽고자 했던 예수가 끌려갔다. 너무도 힘이 없고, 너무도 무력하게 예수가 세상에 끌려갔다. 

예수님은 자기가 말씀한 대로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데 자기 생각에 갇혀 예수를 따르던 베드로는 멀어져간 주님을 보며 앞장 서던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됩니다. 


가장 앞장 서던 자가 이젠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됩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Peter followed him at a safe distance 

<베드로가 안정거리를 두고 예수를 따라갔더라> 

앞장 서던 베드로가 적당히 신자가 됩니다. 안정장치를 두고 한 발은 예수를 따르고 다른 발은 이제 도망하여 세상으로부터도 욕먹지 않고, 고난 받지 않고, 언제나 도망갈 방도를 마련해 두고 예수를 쫓은 것입니다. 

그래도 뒤돌아서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본 바가 있고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죠. 



이 장면을 요한복음에서는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요 18:15-요 18:18]

(요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요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요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요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요한은 뜰 안까지 가서 예수를 보는데 베드로는 처음에 문밖에 서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한이 블러서 그를 데리고 오는데도 가까이 오지 않고 멀찍이 예수를 바라보다가 이제 아랫사람들과 함께 둘러 서서 불을 쬡니다. 

이것은 무슨 장면입니까? 

자기의 믿음으로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랫사람들의 여론이 어떠한지, 언제나 예수의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베드로가 이제 멀찍이 서서 사람들의 여론을 살피고, 문밖에서, 바깥뜰에서, 사람들 옆에서 예수와 점점 멀어지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다가 "너도 예수편이지" 하니까 부인하고 저주하며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세번씩 부인하는 것! 이것이 멀찍이 따르는 베드로의 결말입니다. 


여러분의 안전장치는 무엇입니까? 

Return Policy: 한국에서는 반품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한데 여기와서 제일 놀라고 좋은 것이 영수증만 있으면 몇개월 지나도 반품....

결혼도, 삶도....결혼 안하고 동거하는 문화... 왜? 피할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조롱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변질되고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도 사람들의 여론을 들으면서 안전장치를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믿긴 믿되 적당히 믿자. 거리를 두자. 안전장치를 두자.....그렇게 점점 베드로처럼 멀찍이서 예수를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은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면 그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십니다. 


은혜는 이미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이미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눅 22:31-눅 22:32]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세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현장에서도 도망쳤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번씩이나 물으시면서 그 안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치유하시고 다시금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양들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수십번 수천번 주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안전장치를 하면서 주님을 멀리하는데 주님은 그런 나를 위해 기도하셨고, 그런 나에게 네가 날 사랑하냐 하시면서 식었던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주님의 친구로,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시는 로고스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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