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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신앙의 안전거리 (눅 22:54-57)

by 소리벼리 2023. 3. 12.

신앙의 안전거리 ( 22:54-57) 

[ 22:54- 22:57]

( 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 22: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 22: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 22: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1. 들어가는 말 - 멀찍이 따르는 제자 

왜 가장 앞장서던 베드로가 이제 멀찍이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

가장 열심내던 제자가 이젠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되었을까

 

가장 앞장 서던 자가 이젠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됩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Peter followed him at a safe distance 

<베드로가 안전거리를 두고 예수를 따라갔더라

 

이 장면을 요한복음에서는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 18:15- 18:18]

(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        예수와 함께 데제사장의 뜰 안에 Vs 문 밖

·        문 지키는 여종 (아무 능력도 없는 종) - 그런데 베드로에게 -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 마치 검사/ 재판장의 따끔한 질문처럼 큰 소리로 베드로를 겁박하는 소리 

·        요한과 함께 예수의 곁에 있을 기회를 놓치고 Vs 아랫사람과 함께 불을 쬐며 (그 결과 누구와 함께 거하게 되는가?) 

 

요한은 뜰 안까지 가서 예수와 함께 거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처음에 문밖에 서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한이 블러서 그를 데리고 오는데도 가까이 오지 않고 멀찍이 예수를 바라보다가 이제 아랫사람들과 함께 둘러 서서 불을 쬡니다

이것은 무슨 장면입니까

자기의 믿음으로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랫사람들의 여론이 어떠한지, 아무 능력과 권위가 없는 문지키는 여종의 질문에 기겁하여 자리를 피하고 언제나 예수의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베드로가 이제 멀찍이 서서 사람들의 여론을 살피고, 문밖에서, 바깥뜰에서, 사람들 옆에서 예수와 점점 멀어지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다가 "너도 예수편이지" 하니까 결국 부인하고 저주하며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세번씩 부인하는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것 - 안전거리를 두고 신앙생활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 본문 

(1) 안전거리 Safe Distance) 

·        Safe Distance - 제일 많이 쓰이는 곳

o   운전할 때 - 앞차와의 안전거리 왜? 가까이 가면 앞차에 위협이 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o   최근 몇년 간 safe distance - 사람 사이의 거리 - 6 feets

 

사람 사이의 안전거리가 필요한가

제 이전 교회에서의 15년 목회 중에 제가 초심과 달리 새롭게 인정하고 깨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처음 마음 - 목사와 성도간의 거리를 줄이고 집을 개방하고, 친구처럼, 가족처럼, 모든 것을 오픈하는 관계

목사로서 내린 결론은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가 사라지면 오히려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된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여호수아 3 3-4)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홍해을 건널 때는 모세로 하여금 물을 갈라 마른땅이 되게 하여 그 길을 걷는데 

요단강을 건널 때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앞서가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가는데 그 사이 거리를 이천 규빗 되게 하고 더 가까이 가지 말라 그러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라 

홍해를 건너는 것이 우리가 중생하게 되는 세례의 의미라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성결, 성화의 의미 -> 성화에 있어서 필요한 것 - 안전거리 

말씀과 나 사이의 거리 - 설교자와 나 사이의 거리를 통해 내가 행할 길을 알게 된다는 것 

해석학에서 거리가 의미하는 것 - 저자와 독자의 거리, 글자와 생각과의 거리를 통해 의미/ 해석이 발생한다는 것 

말씀에 적용하면 말씀을 달달달 외운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과 나 사이의 거리를 두고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되새길 때 그 말씀이 내 삶의 의미가 된다

 

·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지향하는 것 - 부부관계 

2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노라 - 한 몸된 관계 

그 부부관계의 신비를 가장 잘 묘사한 성경 - 아가서 

하나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또 사라지고 쫓아가고, 만났다가 헤어지고....그러면서 진정한 부부가 되는 관계 

순간에 하나된 감정을 느낄 순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기는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어렵다. 불가능하다

내가 이 사람이랑 하나가 된다는 것 - 이 사람을 속속들이 다 안다

다 알다, 다 소유하다, 다 경험했다고 인정되는 순간 그 관계의 가치는 상실된다

오히려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어. 날마다 새로와 하는 관계가 더 생명력있고 깊어지는 관계이다

 

 

저랑 아내랑과 가끔 다툴 떄가 있다

내가 아내에게 제일 많이 들어왔던 말 -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나한테도 그렇게 친절하게, 해봐 

내가 아내에게 제일 많이 투정부리는 말 - 애들한테 하듯이 나한테좀 해봐 

-> 실재로 부부치료사가 강연하는 내용 - 부부끼리 다투는 이유

     상대방을 남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 가까우면서도 서로 예의를 유지하고 적당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2) 신앙의 안전거리 

하나님과 나 사이- 예수와 나 사이의 안전거리는

구약의 사람들 - 하나님 가까이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까이 가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19:21-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이 외에도 여러 구절을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안전거리를 표현한다

구약에는 특별히 기름부음을 받은 특정한 인물 외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금하셨고 백성들은 그것을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벽을 허무신 이후에 그 분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모든 거리를 사라지게 하셨다

(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요한복음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하나님은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면 그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십니다.

오히려 가까이 하지 못하는 자는 베드로와 같이 멀찍이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 예수가 아닌 종들과 함께 거하며 결국 예수를 부인합니다

 

장로교 신학은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주의 자녀가 되는 중생과 자녀됨으로부터 시작되는 성화의 삶을 하나로 바라보지만 성결교 신학은 중생과 성화를 나누어 설명합니다

예수를 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예수를 더 가까이 하지 못하며 언제나 거리를 두는 신앙도 있습니다

저는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행하시는 일방적인 은혜의 사건이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철저히 말씀에의 순종을 요구합니다. 홍해를 건넌 사람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애굽땅- 세상만을 바라보고 삽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더 이상 애굽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왜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야 합니까? 제자가 되야 더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나요? 제자가 되어야 더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안 빠지는 게 목적입니다. 안빠지려고 허우적거리다 더 물 속에서 나오질 못합니다

안전거리를 두고 멀찍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언제나 두 마음, 양다리를 걸치며 세상에서도 신앙에서도 안빠지려 허우적러리다 더 깊은 고통과 침체로 빠져 버립니다

그런데 깊은 물에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몸에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싣고 적은 힘과 몸짓으로도 물 위르 해쳐 나갑니다

주님은 얕은 물가가 아니라 깊은 물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합니다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라 합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와서 하나님을 만나라 합니다

오래 믿었어도 가까이 오지 못한 사람은 베데스다 연못의 오래된 병자일 뿐입니다

 

정말 신앙의 깊은 세계, 주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자신이 설정해 놓은 주님과의 안전거리를 해제하시고 주님과 연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 주의 마음으로, 주가 기뻐하시며, 주가 함께 하며 주관하시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