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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베데스다 교회 (요 5:1-9) 

 

사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중에 마태, 마가, 누가 - 공관복음 -> 바라보는 바가 같다. 

 아침묵상 - 마가복음 (제일 일찍 쓰여진 최초의 복음서) 

 마태, 누가복음에는 마가복음의 내용이 거의 반영되어 있다. 

 요한복음 - 제 4 복음서, 공관복음이 다루지 않은 요한만이 알고 있는 내용, 혹은 영적인 해석이 필요한 내용

 가장 영적인 복음서-> 가장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빗대어서 독수리 복음서. 

 

 2장 - 가나혼인 잔치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 

 4장 -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오늘 나눌 베데스다 연못의 사건 -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사건이 끝난 다음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이 다른 복음서와 처음으로 같은 사건이 소개되는 것이다. 5장에 가서야... 

 

 오늘 다룬 베데스다 연못에서의 사건 역시 굉장히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사건이다. 

 

 1. 배경 (1-2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 유대인의 명절 (시간) : 어떤 절기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유월절이나 맥추절, 칠칠절 - 온 이스라엘 민족이 모이는 떄
  • 예루살렘: 신앙의 중심지. 예배의 장소 
  • 양문 (양들이 드나드는 문) : 이중적인 장소 - 희생과 제물의 문 Vs 절기 때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 왜? 가지고 온 제물을 검사맞고 교환하고... 성전 정화- 예배를 두고 장사하는 곳. 
  • 베데스다 베이트 (집) + 헤세드 (은혜, 자비, 사랑) : "은혜의 집, 자비의 집" 이라는 뜻. 
  • 많은 환자 : 맹인,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

->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유대인들에게 있어 병이 의미하는 것 - 육적인 질병에 더하여 영적인 의미 

맹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 

다리를 저는 - 절뚝이가 아닌 걷지 못하는... 서지 못한, 연약하여 생명력을 잃은  

혈기 마른 - 무감각한 , 반응하지 않는...

 

2. 문제제기 

  • 그런데 은혜의 집에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은혜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은혜를 찾을 수가 없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베데스다 - 어찌 보면 교회를 나타내는 장소. 예배의 도시, 희생의 제물이 있는 곳에 정말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있는 곳 -> 그런데 상상만 해도 은혜라기 보다는 비참한 광경이 그려진다.  

 

3. 그들이 지금 기대하고 있는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올 때 물이 진동하고 그 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을 듣고 기대하고 있다. 

 

4. 이것이 정말 은혜인가? 

  • 때- 가끔 (결코 풍성한 은혜가 아니다). 백화점 경품 추천보다도 확률이 낫다. 그런데 백화점 경품은 추첨이라도 하지 이 은혜는 언제 있을지 모를 물이 동할 때에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야 한다. 그럼 이건 은혜라기 보다는 경주이다. 1등하면 상주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는 경제적 거래이지 더 이상 은혜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한 것이다. 
  • 대상-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은혜를 기다리고 있는 대상들을 보면 더욱 은혜라는 말을 의심하게 된다. 

               맹인(보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다리 저는 사람 (그는 다리가 불편에 경주할 수 없는 사람이다)

               혈기 마른 사람 (중풍병자, 그 역시 기력이 없어 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 눈에 불을 키고 있다가 아주 가끔 천사가 나타나 요이 땅 하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자에게 기적을 베푼다. 이건 은혜라기 보다는 정말 잔인한 게임이다. 이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더 불가능한 확률을 가지고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만약 어떤 돈 많은 사람이 경품을 걸고 이러한 일을 진행한다고 하면 그를 칭찬하기 보다는 잔인하다고 비판을 할 것이다.  

 

5. 그런데 이런 모습이 지금의 교회 안에는 없는가?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사람들을 더욱 절망시키는.... 

언젠가 나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나타날 거야...(막연한 기대) 

내가 은혜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성이 모자라서, 남보다 믿음이 없어서, 열정이 없어서 그래...

언젠가 나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거야

먼저 못에 들어간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막연한 기대를 품지만 정말 그런 은혜는 희귀한... 

 

6. 율법 주의자들의 신앙

은혜가 임할 때에 그 은혜를 경험하는 자들은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다. 무능한 사람은 절대로 받을 수가 없다. 

율법에 얽매인 자들의 구원관이 이러했다. 

이스라엘 백성만, 그것도 흠없고 거룩한 율법의 완수자들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어린 양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릴 때에만 선택적으로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믿었다. 

 

7. 38년된 병자

여기에 삼십팔년 된 병자가 누워 있다. 그는 여러 병자 중에서 그나마 전혀 은혜를 기대할 수 없는 자다. 

누워서 일어날 수 없는 자가 기껏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동할 때에 남들이 못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는 혼자 서지도, 걷지도, 홀로 물에 들어갈 수도 없는자다.  

 

(요 5:7)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38년이라는 기간만 나왔지 그가 어떤 병에 걸려있는 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병보다도 38년이라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삼십 팔년이라는 그 환자의 병력에서 구약에 나와 있는 어떤 영적인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 출애굽해서 율법을 받을 때까지 - 2년, 38년 - 율법을 받은 후의 시간 - 38년 

       * 가데스 바데아 - 여호수아가 열두 정탐꾼을 보낸 땅. 우리 힘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한 땅. 

        ->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곳에 들어가리라 하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의 모습과 광야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우리 힘으로 절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하면서 유리구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들 모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다. 그들이 거한 곳은 모두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정작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은 한없이 무력하고 무능하고 연약하다.  

야훼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내 여호와가 되지 못하다.  

남들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너무 무정하고 엄격한 분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잔인한 하나님이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 이런 시기가 있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이 계신 것도 확실하고, 내 삶을 그 분이 인도하신 것도 확실한데, 매일의 삶 속에서 은혜가 없다. 즐거움이 없다. 

그냥 똑같이 언젠가 나에게도 복이 오려나 하거나, 아니면 그런 기대감도 없이 인생이란 다 이런 건가 하고 반복적으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던 경험....

 

말씀은 너무 어렵고, 복은 사모하지만 무엇인가 하면 할수록 모자란 것 같고, 남들보다 못한 것 같고....

 

8.  예수, 복음으로 다가오다!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주님: 자기 힘으로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38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며 여전히 절망하고 있는 자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이것이 복음이다!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데스다만 죽어라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열심히 달려 구원을 이루리라 베데스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이 베데스다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에 38년된 오래된 병자를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이것이 38년된 병자에게는 얼마나 울화통 터지는 질문입니까? 

아니 그가 여기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낫기 위해서입니다. 

낫기를 포기하면 여기 나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왜 이 질문을 하시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가운데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앞에 두고 그들은 자기들은 힘이 없어 못들어간다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이 더 좋다고, 광야가 더 좋다고 머무른다.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38년동안....

 

38년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낫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는 어느덧 낫기를 포기하고 그저 익숙한 공간에서 남들이 은혜받는 것을 바라보는데에 만족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교회 나오십니까? 왜 신앙생활 하십니까? 

우리 영혼이 낫기를 원해서 아닙니까? 

세상으로부터 상처입고, 사람들로 부터 상처 받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상처받은 영혼 낫기를 기대해서 나온 것 아닙니까? 십자가의 보혈로 씻고, 죽어서 가야할 영생 뿐 아니라 매일 매일의 구원을 이루면서 예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기 위해서....

 

너무 오래된 병이 되어 어느덧 신앙생활의 목적이 바뀐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어떤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칭찬받기 위해서, 

물론 이미 구원 받았고, 영생을 믿기에 나 자신보다 남을 구원하고, 열매를 맺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재림 때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 

난 아직도 미완성이다. 난 아직도 고침받아야 한다. 

 

난 그저 날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러 나온 것이지 더 이상 바랄 것도, 필요한 것도 없다?

구원의 이중성 - 궁극적, 최후의 구원

오늘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경험되고 완성되는 구원.

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과 그 흔적 속에서 살아가기에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구원히 필요한 존재이기 떄문이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오늘의 은혜가 필요가 없습니까? 

우리의 영혼은 더 이상 고칠 것도 필요한 것도 없습니까? 

찬송가 가사 처럼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오늘의 흡족한 은혜 간절히 기다리네..."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까지 우리가 처한 영적인, 또한 육적인 상태이지 않습니까? 

 

정작 은혜받으러 온 사람들이 은혜 받는 통로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익숙해져 버린 방법에 의지하다가 그저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두리뭉실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그저 난 할 도리 다한다고 자기 위안 삼으면서 자기 한계 안에서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 신앙생활- 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를 초월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자기 안에 갇혀서 신앙생활 한다. 

 

(요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 이건 자기 변명이다. 하느라고 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그러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했는데 남들 때문에 은혜 못받는 다는 것이다.  
  • 자신의 불순종과 믿음없음틀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남이다. 내가 열매맺지 못하는 이유,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당신이 내게 주신 여자 떄문에, 아벨만 없으면, 다윗 때문에....

 

10.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8절) 

변화는 변명이 아닌 순종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능력은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순종할 때에 일어납니다. 

 

예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지금까지 그는 자리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그 자리는 38년동안 그가 의지하던 그의 방법이었습니다. 아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38년 동안 그 자리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에 의지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똑같이 38년동안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날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영혼을 치유하지 못하고, 내 삶에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버리고 내 말을 좀 따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시고 

모세에게 와서 "네 신을 벗어라" 하신 주님이 이제 38년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이제 내가 의지하던 방법을 버리고 내 말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네 노력으로 하는 신앙이 아닌 내 말에 응답하고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말에 너 자신을 부서뜨리고 넘어서고 초월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38년된 신자는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우리 안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타성에 젖어 버리고, 자기 변명하기에 급급한 신앙입니다. 

어떻게든 다가가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던 우리 신앙의 어두운 과거입니다. 

 

네가 진짜 낫기를 원하냐? 네가 진짜 은혜받기를 원하냐? 

그럼 일어나라. 떠나라. 자리를 들고 안주하지 말고,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라! 

 

은혜는 내가 바랄 수 없는 것을, 내 공로가 아닌 것을 받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한 대로 보상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절대 이룰 수 없는,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쳐주시는 분이다.

무엇을 고치기를 원하는가? 낫기를 원하는가?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우리는 지금 트레이시 제일교회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교회는 이름 뿐인 은혜의 집이 아니라 참 베데스다, 은혜의 집이 되기를 원한다. 

참 은혜의 집은 주님을 만나는 집이다. 

주님을 만나 내가 고침받는 집이다. 

우리 성결교회의 교리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거읍날 뿐 아니라 성결을 통해 주님 닮아가고,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이 치료받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 전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아야 한다. 

내 연약한 몸과, 내 불안한 마음과,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이 나아야 한다. 

오래된 병자는 바리새교인이다. 병자이면서 의로운 줄 알고, 연약하면서 강한 줄 착각하는 병자가 바리새교인이다. 

은혜의 성도는 연약함을 알고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그 분이 고쳐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 성전 예배를 통해 다른 성도들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 먼저 고침받고 나아 은혜를 전하는 참 베데스다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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