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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받는 삶 (마태복음 25장 14-30절)

 

1. 복습과 문제제기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 - 깨끗한 그릇 

어떻게 깨끗한 그릇이 되는가? 

시편 109편 - 우리의 죄악된 모습 그대로, 감추지 말고 하나님께 드러내라. 

빌립보서 4장 4-7절: 연약한 감정을 기도의 언어로 바꾸라. 

 

오늘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는 누구나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쓰임받는다. 

어떤 이는 선한 일을 위해, 어떤 이는 악한 일의 도구로 쓰임받는다. 

내가 어떤 일의 도구로 쓰임받는가? 하나님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 잘 알려진 달란트 비유를 가지고 쓰임받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함꼐 나누어 보도록 하겠다.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이다.  

달란트는 화폐 단위로서의 달란트가 있고 그 외에 흔히 talent라고 말하는 재능, 능력, 혹 은사라는 의미도 있다.

달란트라고 하면 두가지, 물질과 재능 모두 포함이 된다. 

 

언뜻 이 비유를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재능이나 물질을 주셨는데, 잘 사용하여 이윤을 남긴 자는 칭찬하고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시고, 아무 것도 사용하지 않고 남겨 둔 자는 책망받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이 이해는 자칫 복음의 내용을 변질 시킬 위험이 있는데, 하나님의 칭친을 받으려면 열심히 일해 이윤을 남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책망을 받는 행위구원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은 우리 개신교 신앙에서 이해하고 있는 그 은혜를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믿음과는 상응할 수 없는 하나님 이해이다.  

 

말씀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보자. 

 

남긴 자는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자"라는 칭찬을 들었고, 하나도 남기지 못한 자는 "악하고 게으른 자"라는 꾸중을  듣는다. 더욱 유심히 볼 것은 꾸중의 내용이다. 하나도 남기지 못한 자는 꾸중을 넘어  '무익한 종'이라는 이름으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것은 결국 지옥의 심판을 당한다는 것이다. . 

 

남긴 자가 칭찬을 받고 못남긴 자가 꾸중을 받은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갈 만히디. 그런데 남긴 자가 "성실하다, 잘했다"를 넘어  "착하다"는 칭찬을 들을 만한가? 못남긴 자가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그의 성품이 "악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합당한가? 많은 이윤을 남긴 자는 선한 것이고, 남기지 못한 자는 악한 자인가? 그런 논리라면 세상에서도 장사 잘 하여 성공한 사람은 다 착한 자들이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악한 자라는 결론을 맺게 된다.  

거기다가 그것이 돈이 되었건 재능이나 은사가 되었건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 자가 꾸중을 들을 순 있어도 그것으로 인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원의 복음마져도 결국 "우리가 맺은 열매대로"라는 "행위 구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신앙과 말씀의 메시지가 어긋날 때에 우리는 이 구절들을 넘기지 말고 세심히 살펴야 한다. 세상의 상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 이 비유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깊히 묵상해야 한다. 이 달란트 비유는 단순히 재능이나 은사를 잘 활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라고 결론 짓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2.  전체 장의 맥락을 보라. 

무화과 나무의 저주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 사건 전후로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가?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의 맥락 안에서 그 구절들을 살피는 것- 전통적인 성경 연구 방법이다. 

마태복음 25장은 이른바 천국의 비유장이다.  

첫 부분에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가 나오고 달란트 비유 다음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온다. 

결국 마지막 때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자로 나뉠 것을 분명히 나타내는 비유들이다. 

열처녀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천국은 일상적으로 깨어있는 자, 늘 준비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일상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살았는가?하는 삶의 기본적인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거하다가 결국 갈라지듯이 깨어있는 자와 깨어있지 못한 자, 양과 염소, 알곡과 쭉정이가 결국 갈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신자와 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리이다. 

 

성경에서 지시하는 마지막 때, 세상에 대한 심판에 앞서 교회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어 참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갈린다. 코로나 19- 믿음 있는 자는 더욱 깊은 믿음에 거하고 반석 위에 서지 못한 자들은 결국 흔들리며 요동하며 갈라서게 되어 있다.  

 

그러면 앞 뒤 비유와 맥을 같이해서 다시 이 본문을 가지고  달란트 비유에서 나타내고 있는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착하고 충성된 자의 삶의 자세와 악하고 게으른 자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한다.  

 

  • 14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새 

어떤 사람은 곧 주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가 지금 타국에 갔다고 이야기한다. 종들 입장에서는 타국이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로 간 것이다. 바로 아버지 계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의 자리로 가신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정체가 드러난다. 즉 우리는 그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그곳은 이곳과는 다른 나라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그리스도가 데려가실 영원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청지기이다. 단지 정해 놓은 기간동안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주님과 함께 그 나라로 가야 할 존재들이다

 

  • 14-15절: 자기 소유를 각자의 재능대로 맡겼다. 

우리가 기진 모든 것은 그 분 것이고 그분이 내게 맡긴 것이다. 어떤 자에겐 많이 맡긴 자도 있고 적게 맡긴 자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분량대로 맡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라고 결코 적은 양을 맡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달란트는 그 당시 돈으로 6000데나리온이다. 

그 당시 장정 하루의 일당이 바로 한 데나리온 이었는데 한 달란트는 6000일에 대한 품삯이니까 연수로 따지면 15년- 20년치의 수당이 바로 한 데나리온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장정만 오천명 모인 그 현장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했을 때에 빌립이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장정만 오천이면, 여자들과 아이들 포함하면 2만여명 쯤 된다고 하니까 이만 명 먹이는데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만여명을 30번 먹일 수 있는 금액이 한 달란트이다.  

 

그러니까 요지는 우리 모두에게 맡기신 것이 그 만큼 넉넉하게, 크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작게 맡긴 자라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도 부족함이 없게끔 맡기셨다. 모두에게 크게 맡기시고, 크게 주셨다. 

그리고 크게 맡기신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ex) 여호수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 받는다. 땅을 분배 받는 것만 해도 큰 은혜이다. 자기 들이 세우지 않은 도시를 받고, 심지 않은 열매를 얻을 땅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들어가서 더 큰 땅을 개척하라 하시고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라 하신다. 분배받은 것을 기반으로 생육하고 다스리고 번성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 한 달란트 남긴 자 

그는 주인에게 받은 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재능, 은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살았다면 과연 그는 무엇으로 산 것일까? 

종이 주인의 것으로 살지 않으면 그는 자기 재산을 숨겨 두었거나 세상의 다른 것을 가지고 먹고 산 것이다.  

세상의 것,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서 산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주인이 왔을 때에 그가 한 변명은 무엇이었나?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무슨 소리인가?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생각한 주인은 "자기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자 하는 굳은 사람, 나쁜 주인"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존재로서 주인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열심히 해서 주인이 이득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 반대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은 어떠했는가? 

주인이 맡긴 것을 가지고 장사했다. 누구의 장사인가? 주인의 이름으로 장사한 것이다. 

장사하여 이득을 남긴 자들은 주인이 없어도 늘 주인의 이름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그 주인이 준 것으로 자기도 풍성하며, 주인에게도 풍성하며, 이 장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준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불의한 방법으로 자기의 삶을 영위했다. 주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는 삶을 살았다. 

결국 주인의 은혜를 모두 땅에 묻은 자는 육신적으로 게을러서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불신과 편견으로 고의로 불순종하여 자기 멋대로의 삶, 탕자로서의 삶, 세상 속에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는 충성과 게으름이란 결국 주인을 신뢰하고 천국에 소망 둔 삶을 사는가? 주인을 불신하고 이 땅에 소망 둔 삶을 사는가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 본문의 해석에 근거가 되는 내용의 비유가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 나옵니다. 

눅 19:12-13)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주인을 배신할 음모를 꾸입니다. 

나중에 주인이 와서 그를 심판하면서 하는 말이 

27절)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결국 그가 왜 악한 종인가?  그는 달란트를 받을 때부터 주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불신자가 왜 불신자인가? 

여러분, 만물은 하나님의 손길로 가득 차 있다. . 

육체의 신비, 자연의 신비, 우주의 신비가 다 하나같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런 신비에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게으르고 심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 공전, 물이 경계를 넘어가지 않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긴 자들에게 주인이 말한 것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되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좀 전에 우리는 한 달란트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큰 은혜이고,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인지를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그 큰 것을 주님은 "적은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는 한달란트 가진자가 열달란트 가진 자를 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 속에서 열등감과 불행함을 맛볼 것이지만 하나님 눈에는 한달란트도, 열달란트도 그저 적은 것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많이 가졌다고 교만할 이유도, 적게 가졌어도 비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 아버지는 온 세상을 창조한 만물의 주인이요, 난 그 분의 자녀이면 만사 끝이다. 

 

그런데 그 마음 중심.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분께서 주신 것을 통해 그 분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에게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큰 것을 맡기신다 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그것이 고을을 맡기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의 의미는 이 땅의 의미를 벗어나는 일이다. 어린 양들을 맡겨 충성을 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맡기시는 것과 같을까?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분은 나에게 어떤 왕이신가? 선한 왕이신가? 나를 구하시기 위하여 이 조각목각도 같은 쓸모없는 존재에게 하늘의 귀한 것을 맡기시고 살게 하신 분, 하늘 나라로 가게 하신 분....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하나님 주신 힘과 능력이 아닌 내 힘으로 일하는 사람 

  • 떨기 나무에서 만난 모세 - 애굽의 왕자의 신분으로 애굽 병사 한 사람 죽이고 도망하여 40년을 숨어살던 자 
  • 로뎀나무가의 엘리야- 내가 열심이 유별하여 나만 홀로 남았더니....

-> 자기 열심으로 일한 자들은 넘어지거나 교만해진다. 

  • 자기가 이룬 성과로 하나님께 창찬받으려는 자

-> 한나가 자기가 만든 요리라고 주면 한 두 번은 맛있는 척, 먹어주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러면 혼을 내 줄 수 밖에 없다. 

 

주인의 즐거움

- 장사해서 이윤 남기는 것? 

아니다. 하나님이 준 것으로 풍성하게 하고도 남아 이웃까지 풍성하게 하는 것 

오병이어의 기적 - 거기 있는 사람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주신 힘으로 일할 때, 우리 자신만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까지 축복이 흘러 넘치게 하신다. 우리가 예배 끝에 부르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 

 

간증) 

우리 아버지가 주셨어요....

 

우리 트레이시 제일교회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분의 풍성함.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 분께서 하시고 우리는 누린다. 그 분을 통해 우리가 풍성하고, 우리의 풍성함이 주위를 풍성하게 한다. 쓰임받는 삶이 가진 기쁨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들끼리 이 시간 동안 예배하게 하실까? 

누가 일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여지는 전통이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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