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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기도, 염려를 은혜로 바꾸는 언어 (빌 4:4-7)

by 소리벼리 2021. 2. 6.

기도, 염려를 은혜로 바꾸는 언어 (빌 4:4-7) 

 

지난 주 시편 109편 - 어떻게 깨끗한 그릇이 될까? 

다윗의 영성의 비밀 

그 안에도 우리와 똑같은 분노와 억울함, 저주와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마음 속에 넘쳐났다. 

그런데 그 어둔 감정, 미운 감정, 저주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냈다. 

우리는 반대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죄를 감추고, 그 안에서 해결받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감추지 못한다. 

얼마간 참다가 퍼붓고, 분노하고, 저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언어도 받으시고, 우리가 내어드린 우리의 어둔 심령을 그의 은혜로 바꾸어 주신다. 

기도는 우리의 속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언어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을, 빛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의 속마음을 바꾸는 기도의 연장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약, 빌립보서의 본문을 가지고 이 기도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빌립보서 4장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6절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기뻐하는 것, 염려하는 것 - 감정의 문제다. 감정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이나 충격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감정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쁘고, 문제가 생기면 염려하는 것,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다. 

 

‘염려’와 ‘기쁨’은 ‘어둠’과 ‘빛’같아서, 한 공간에 같이 머물 수 없습니다. 염려가 들어오면 기쁨은 사라지고, 기쁨이 들어오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염려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염려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끊임없이 이 감정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라. 

우리의 인간이 지(knowledge), 정(emotion),  의(will)로 구성되어 있다면 사랑이라는 가치는 어떤 순서로 우리에게 경험되는가? 

감정(호감)이 먼저 오고 그러면 상대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지식이 축적되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를 가지고 결혼을 하거나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순서를 과감하게 바꾼다. 

사랑하라는 말씀 (지식)을 먼저 준다. 그리고 그 말씀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순종한다. 그러면 가장 마지막으로 감정이 따라오게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항상 기뻐하라. 다 이런 순서대로 열매맺는 말씀들이다. 

 

결론적으로 말씀(지식)에 의지적으로 순종함에 의해서 감정을 다스리게 한다. 

왜 성경은, 하나님은 일관적으로 말씀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실까? 

말씀 - 로고스: 원리, 근원, 논리적이다. 

감정 - 외부 작용에 대한 반응이라고는 하지만 무논리, 무원칙, 항상 변화한다. 

저 사람이랑 다신 안살어, 말도 안해야지 하면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릴 듯 하면서도 말 한마디에 풀린다. 

도무지 사람의 감정은 종잡을 수 없다. 

속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신앙생활에서도 은혜 받을 때 보면 세상을 다 이긴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새 집에 가다가 말 한마디에 결심을 놓아버린다. 성령의 은혜를 닫아버린다. 

 

그 많은 감정 중에서 신앙생활을 가장 흔드는 감정 - 염려이다.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이고 은혜를 마르게 하는 원동력이다. 

 

염려에 대한 중국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기원전 12세기경 중국의 주(周)나라가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운다. 새 왕조의 창립자인 무왕(武王)과 그 아들 성왕(成王)은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직접 통치하기 힘드니까 친족과 공신들에게 하나씩 떼어 나눠주었다. 그 가운데 기(杞)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주(周)왕조의 인척이나 건국공신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까마득한 시절에 정복된 망국의 유민들이 모여 살던 나라였기 때문에 따로 왕을 파송하지 않고 계속 그 나라를 유지하도록 했지만 설움과 천대가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항상 주나라 임금이 자기들을 어떻게 할까봐 사람들은 불안 가운데 살았다. 그 중에도 유난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걱정은 “올려다 보면 장엄하게 돌고 있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었다. 기우(杞憂)는 기인지우의 준말로 그러한 기 나라 사람의 걱정을 나타내며, <쓸데없는 근심>, <괜한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격언 으로도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걱정을 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 2 병, 고 3 병, 산후우울증, 이러한 염려가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 공포(fear)와 불안 (anxiety) : 특정한 대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 

 

사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염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회 외부적으로는 이제 로마로부터의 핍박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복음을 증거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고, 영적인 리더인 바울도 지금 감옥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내적으로는 교회가 분열되어 하나되지 못하고 어지러웠다.  

안팎으로 편할 날이 없는 때이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로부터 편지가 날라왔는데 그 편지 속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낙천적이라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가? 상황을 무시하라는 것인가? 어떻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는 것일까? 

어떻게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바울의 권면

 

1.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 주 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4:6a) 

염려를 중단하라는 명령이다.  ‘염려하며 사는 것이 싫으냐?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라!’는 것이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사람들은 처음에 언급한 기나라 사람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한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여러분, 염려라는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휩싸이지 말고 중단하십시오. 아니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이 염려를 기쁨으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2. 염려대신 기도하라. (핵심)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론 우리의 인생길에 염려해야 할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염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 때에 기도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안고 사는 그리스도인들 - 기도하라 하면 당연히 기도하지요 하면서 불쾌해 한다. 그들의 기도는 단지 한숨이다. 염려 가운데, "주여~~~' 후렴구 처럼 내뱉는 한숨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기도는 염려의 대상이나 상황, 내 감정이나 문제를 소상히 아뢰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내 염려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 염려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게도 한다. 

 

바울은 기도를 하더라도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한다, 즉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기도제목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죽고 사는 큰 문제만 가지고 나오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들도 주님께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다만’이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다만’은 ‘오직’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라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우선 기도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염려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3.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라.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장에 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한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행복과 기쁨을 보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하나님은 문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평강을 먼저 맛보게 하신다. 해결을 먼저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약속을 먼저 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맏음을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정한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때에 틀림없이 해결될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해 주신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평강으로 응답해 주신다. 해로운 상황도 결국 나의 유익으로 변하게 하신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더 이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 일부터 시작하신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보내는 편지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어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In Chrust, 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 이것이 바울의 능력이었고, 확신이었고, 그리고 체험이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가(370장) 가사처럼, 주 안에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딴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도 진실입니다. 주 안에 있지 않으면 없으면, 즉 주 밖에 있으면 그때부터 나에게 딴 근심이 생겨납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 

각 지파 중에서 수령을 보냈다고 말씀합니다. 초짜배기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신앙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 

그들 중 10명의 보고 

[민 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의 보고: 그 땅, 그 곳의 백성-신장이 장대하고 거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 메뚜기...난 아무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들을 보았지만 이들이 본 것은 여호와... 그들은 보호자가 없지만 우리는 여호와가 함께 있다. 하나님이 우리 보호자시다. 

 

하나님의 행하심.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들이 취한 행동, 말한 내용대로 행하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메뚜기라고 한 자들은 그렇게 죽어갔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을 취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고 신앙의 법칙. 

우리가 취한대로, 선택한 대로....하나님께서 또한 일하신다. 

 

그래서 염려가 생길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고 끝으로, 결론적으로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라. 옳은 생각, 신앙적인 생각, 깨끗한 생각, 유익한 생각, 남을 세우는 생각을 해라.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오늘 배운 바를 실천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평강을 줄 것이다. 잠 잘 것이다. 잘 먹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제일 큰 피해 - 성도들의 기도가 준다. 

목회자인 나에게도 기도가 절실하다. 

아침 묵상과 더불어 기도의 훈련을 하자. 

기도는 우리 그릇을 꺠끗하게 만들어준다. 

기도는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기도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만나시고, 역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