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강 닛사의 그레고리, 침묵기도
지난 주 복습:
- 초대 교회 순교의 영성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 혹은 변화 발전 되었는가?
- 현대 기독교 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수덕적인 삶의 방법은 어떤 모습들이 있고 어떤 모습들이 부족한가?
- 자기 비움의 영성과 자기 채움의 영성이 영성을 구분 짓는 한 방법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 두 가지 영성은 어떻게 표현 되는가?
- 닛사의 그레고리의 영성 (Gregory of Nyssa: 332-395) - 모세의 생애
- 오늘날의 터키지방인 카파도니아 지방에 Cappadonican Fathers라고 불리우는 세 명의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의 바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그리고 오늘 다룰 닛사의 그레고리이다. 그 중 닛사의 그레고리의 형인 바실은 교회의 감독으로 교회의 제도 속에서 수도원 운동을 수용하여 공동체적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즉 은둔적인 수도원 운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교회에 정착시키는데 공헌한 인물이다.
- 그레고리는 당시의 고전적인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과 헬레니즘 문화를 공부하여 고전 문화와 기독교, 헬레니즘과 기독교 정신을 종합시킨 한 당대 최고의 사상가요 학자였다.
- 또한 그는 신비가로서 교리보다는 영성을 중시하며 교리란 이성적인 작용을 전제로 하지만 영성은 그것의 원천이며 완성이라고 보았다. 수도생활에 대한 중요한 글들, '모세의 생애,' '아가서 주석' '완전에 대해서'' 등 많은 영성적 저술을 남겼으며 그를 비잔틴 영성의 대표적 인물로 보고 있다.
- 그는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기독교란 신성을 닮는 일이다." 즉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우리 인간을 그들의 근원적인 축복된 상태, 즉 하나님의 모양/형상대로 창조된 바로 그 원상태로 환원시켜 준다. 따라서 기독교란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을 닮아가는 삶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삶의 한 방식이며 길인 것이다.
- 플라톤 주의와 기독교
- 로마로부터 자유를 얻고 기독교에 대한 공인을 받은 후 기독교는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올 하나님이 나라에 대한 복음 (Good News)을 대중들에게 전해주워야 할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의 전통과 교육에 익숙한 지식인들을 포함한 열방에 복음을 소개할 사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성서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성서, 즉 예수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유대교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고도로 발달한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들보다 미개한 (Barbarian)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아시아의 종교를 통합적, 혹은 혼합적으로 수용할 의사는 있었지만 절대적인 메시야나 기독교 신앙에 회심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닛사의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를 저술했다. 그의 이전에 이미 유대인 필로 (the Jewish Philo)와 오리겐 (the Christian Origen)과 같은 사람들은 이미 헬레니즘과 유대교 성서 사이의 다리놓는 작업을 시도했고 그레고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 따라서 닛사의 주요 업적은 그가 성공적으로 교회와 성서, 그리고 헬레니즘 전통을 타협이나 혼합없이 유지하면서 동시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모세- 유대인이지만 동시에 애굽이 학문에 밝은 자. 세상에 눈이 띄여진 자.
- 그레고리의 학문적 목적- 헬레니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전달할 것인가? 그들에겐 전적인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어떻게 그들 학문과 지평의 확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가 아닌 메시야로서 받아들에게 할 수 있는가?유대인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헬레니즘이 사람들의 관점에서 다가갈 수 있는, 초대할 수 있는 하나님.
- 부정신학의 시초 (모세의 인생)
-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세가지 단계
- 빛 (출 3:3-5): 불타는 떨기나무 숲에서 하나님 자신을 모세에게 계시
- 구름 (출 19:9): 구름 가득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 대면
- 어둠 (출 20: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 속으로 가까이 가니라.
- 하나님을 경험하는 여정은 빛으로부터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이 어둠은 나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절대적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출 20:2, 4: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 in the form of anything
- 일단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점점 하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서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미 자신이 제한해버린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미 우상이다. 따라서 그 하나님과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편견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은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 긍정신학: 성육신 신학, 어떻게 하나님이 창조 질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시는가? 교회에의 참여, 하나님께 대한 체험, 공동의 훈련, 자연 등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방식, 이해, 언어 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지 우리에게 알리시는지 설명해 준다. 그러데 한계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경험과 이전의 모든 세대가 남겨준 신앙의 경험들과 이해들을 다 수집하고 배운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아는 한계에 스스로 하나님을 가두어 버린다.
- 우리가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이해의 신학에서 신비의 신학으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을 표현하는 언어는 더욱 더듬거리게 된다..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 분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 긍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내재하신다) 부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우리 너머에 계신다. (초월하신다) 긍정신학은 하나님이 이 물리적 세계를 통해 우리를 어떻게 드러내시는지를 알게 한다. 그런데 동시에 그 물리적 세계를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인도하신다. 부정신학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엄청난 한계를 직면함을 또한 배우게 한다. 우리는 항상 전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Practice 1. 침묵기도 (solitude and silence) – 사막 영성
- 기도할 때 자주 경험했던 일- 기도작정(시간, 장소, 도구..) 방해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외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방해 받은 경험들
-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해지기 위한 기도의 시작이 곧 침묵과 고독의 기도이다.
- 사막으로 간 그리스도인들 – why? 하나님과 방해 없이 기도하고 교제하기 위해.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침묵하고 홀로 기도에 안식하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고,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바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 하나님이 내 삶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공간을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곧 침묵 기도의 목적이다.
- 내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이야기를 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과 생각에서 멈추고 그 분이 나에게 말걸어오시도록 내 공간을 비우는 것이 곧 침묵기도이다.
- 내 안의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끊임없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 속에 조용히 계속적으로 'NO'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감정에 'Yes'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 내가 날 비우고 침묵해도 그 분이 잠잠할 수 있다. 내가 침묵했으니 말씀하라는 것도 나 중심적인 생각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분이 말씀하실 때에 내가 들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다.
- 실천
- 하루 중에 가장 고요하고 혼자 될 수 있는 시간을 찾으라
- 하나님께 그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임을 아뢰고 잠잠하라. 그리고 내면 속에 혹은 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점검하라.
- 특히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나 감정들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라. (어떤 방해거리가 있는지..)
- 당신의 마음이 침묵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라 (화가 난다던지, 답답하다던지, 혼란스럽다던지, 아니면 평안하다던지?)
- 모든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감사하라. 좋은 경험을 못했더라도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살피고 내려놓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그 공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채워질 수 있도록 간구하고 기도를 마쳐라.
- 점검 및 적용
- 내 신앙 안에 육과 영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는 없는가?
-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만들어낸, 혹은 잘못 생각한 하나님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가?
- 침묵기도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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