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3장 1-5절 영혼의 깊은 밤
2장 끝 부분에서 신랑은 우리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말한 뒤에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가 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연합의 기쁨은 사라지고, 그 은혜의 기억만을 간직하며 그림자만을 바라보는 듯한 영적 고통의 순간이 온다.
신랑을 그 시간을 통하여 우리의 연합을 방해하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한다.
(아 3:1)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영혼의 깊은 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때, 그 분의 은혜를 갈망하나 채워지지 않는 때.
왜 우리에게 영혼의 밤이 올까?
침상- 내 깊은 내면의 공간.
하나님이 경험되고, 기도가 응답되고...그러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또한 공통적으로 느끼는 영적 경험 - 영혼의 깊은 밤.
개신교에서 기독교인의 신앙의 여정을 칭의-성화-영화의 단계로서 설명하듯,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여정을 ‘정화의 길’, 이를 넘어서면 ‘조명의 길’, 그 다음을 ‘연합의 길'로서 설명했다.
그리고 이 단계를 지날 때마다 각각 ‘감각의 어두운 밤(메마름)’과 ‘정신의 어두운 밤(비참함)’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마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가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기 전에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신앙의 단계에서 경험되어 지는 것.- 영혼의 깊은 밤.
왜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는가?
이전에 읽은 마담 귀용은 영혼의 깊은 밤의 필요성에 대해 "그 분을 당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 분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이 오직 그 분 안에서 당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을 나 자신에게서 찾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분을 처음 경험했을 때의 순간에 집착하는 것이다.
부흥회를 통해 만난 사람은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또 다시 이런 저런 집회를 찾아다닌다.
성경암송을 통해 은혜를 받은 자는 성경암송에,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 받은 찬양에 집착한다.
예배, 찬송, 기도...모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여러 신앙의 방법들이지만 우리가 그 어떤 특수한 "방법"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 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경험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님의 "그림자"로 표현한다. 그림자를 통해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비참해지고 비참해지면 겸손해진다. 겸손한 자는 더 이상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 자신에 대한 지식도 확장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이미지들을 거둬가십니다.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 앞에 진정 낮아지고, 온전한 이해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어느덧 나이가 되면 밥을 주어야 된다. 그런데 밥을 주기 위해는 젖을 끊는 고통의 기간을 견뎌야 한다.
젖 맛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밥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다음 단계의 더 깊은 만남을 위한 영혼의 밤의 필요이다.
물론 대다수 신앙인들은 그러한 깊은 연합도, 영혼의 깊은 밤에 대한 아픔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가서는 그 기쁨과 동시에 아픔도 표현한다.
(아 3:2)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지 않는자는 괴롭다. 갈급하다. 가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찾아나선다. 그러나 내가 찾아나선다고 해서 그 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분은 큰 길에 계시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갈망과 영적인 방황을 통해서 정말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발견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그 분은 좁은 길, 좁은 문, 십자가의 길을 통해 나를 만나신다.
(아 3:3)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성안은 그 분이 거하시는 곳, 곧 성전이다. 양 떼의 발자취이고 신앙인들이 거하는 곳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자들에게서도 주님을 발견할 수 없다.
순찰하는 자들은 파수꾼이다. 한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서 살피는 자이다. 영적 지도자들이다.
그들을 찾아가서 신앙의 문제를 묻고 싱담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목회자들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 3:4)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여인의 행로를 살펴보자.
침상- 자기 내면, 자기의 친숙한 공간, 자기가 늘 경험하던 체험의 공간. 그 곳에 예수가 없다. 임재가 없다?
성안을 돌아다니고- 양때들의 발자취를 따라
파수꾼에게 물으며 - 목자들이 거하는 장막에 가서 말씀을 구하고...
그것을 지나치자 그 분을 만나게 된다. 붙잡게 된다.
그리고 붙잡은 그를 놓치 않으려 그 분을 붙잡고 내 어머니의 집, 나를 잉태한 이의 방- 내가 태어난 하나님의 품 안...
내 내면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은밀한 곳
그리고 두 번쨰 연합의 경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꺠우지 말지니라. -> 2장 7절의 반복 - 너무 다른 경험가운데 새로운 길을 통해 두 번째 연합을 경험한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에게도 이런 영혼의 깊은 밤이 있었는가? 그 고통 가운데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친 적 있는가?
2. 내가 경험했던 예전의 경험에 집착하지 않는가? 그 경험 떄문에 새로운 경험을 놓지고 있지는 않은가?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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