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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새아가서 강해)

아가서 1장 8-11 여인 중에 어여쁜 자

by 소리벼리 2021. 12. 16.

아가서 1장 8-11  여인 중에 어여쁜 자 

8절은 술람미 여인의 친구들이 하는 말이라는 해석과 이어지는 9-11절까지와 함께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왕의 말이라는 해석이 갈리지만 저는 8-11절까지를 함께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왕의 첫 말이 등장하는 부분으로 보고자 한다. 

왕의 첫 마디는 무엇인가?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아가서 song of songs. 노래 중의 노래, 최고 중의 최고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당연한 표현이지만 왕의 여인을 바라보는 첫 마디는 여인 중에 가장 어여쁜 자, "여인 중의 최고"라고 자신의 여인을 부른다.
사랑은 대상을 최고로 대우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업슨 최고라고 여기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연인들이 다툴 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저 사람이 더 이뻐 내가 더 이뻐? 
처음 사귈 때는 아무리 예븐 연예인과 비교해도 자신의 연인을 가장 이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오래된 연인- "너 자신을 알라" "누가랑 비교를 해..." 
그런데....사랑은 그게 누구건 내가 사랑하는 자를 가장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 우상숭배 
중고등학교 때 성경을 배우면서 우상숭배를 간음에 비유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세아서를 비롯한  성경의 여러 곳에서 우상숭배를 간음에 빗댄다. 
왜? 최고이신 신랑을 버리고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피부가 검은 술람미 여인을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이라 부른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날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은, 아들을 주시면서까지 날 구원코자 한 그 사랑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날 그렇게 최고로 보신 것이다. 

지금 술람미 여인과 비교되고 있는 여인들은 어떤 여인들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날마다 자신을 치장하며 왕에게 잘보이기 위해 애쓰는 여인이다. 그런데 왕의 관심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자들에게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왕이 맡긴 일을 하느라 외모를 관리할 여력이 없이 거무잡잡하게 변한 그 여인을, 하나님의 포도원을 가꾸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보신다. 세상은 외모를 치장하지만 신앙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7절에서 당신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여인의 물음에 왕의 답변은 무엇인가?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8 b) 

우리는 영이신 주님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한다. 그분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 분은 당신이 계신 곳을 말씀하신다. 
1) "양 뗴의 발자취를 따라" - 성도들의 무리를 따라.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떨어져 있을 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그 무리와 함께 거할 때, 주님은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도마를 만나주신다. 주님은 성도의 무리 가운데 거한다. 또한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2)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는 자다. 좋은 목자는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신다. 가장 좋은 목자는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이시다. 그는 우리를 예수께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신다. 또한 좋은 영적 지도자는 우리를 단순히 지식으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다. 늘 기도한다. 목사이기 전에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3) 너의 염소새끼를 먹이라: 양들틈에서 염소는 늘 말썽을 일으킨다. 그러나 염소는 또한 양 틈에서 양들이 엉커붙지 않도록 늘 떼어 놓는 역할을 한다. 목자를 따름과 동시에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의 염소새끼를 먹이는 자이다. 공동체 안에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외면하지 말고 먹이는 자, 돌보는 자, 주님은 무리가 아닌 그 안의 제자를 찾으신다.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준마는 왕이 타는 훈련된 말이다. 히브리 전통에서 준마(훈련된 말)이 의미하는 것은 "온유함"이다. 온유함은 훈련된 말이라는 의미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 온유한 목자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따른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였다. 
왕은 겉만 치장하며 수근덕 거리는 자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며 말씀에 훈련된 자를 바라보신다.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10) : 예루살렘의 여인들처럼 따로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았어도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포도원을 돌보고 자신의 염소새끼를 먹이기 위해서 땋은 머리털로, 치장한 보석이 아니라 소박한 목의 구슬꿰미로 인해서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왕이 원하는 아름다움과 자신이 준비한 아름다움이 다르면 어떨까?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1) : 술람미 여인은 이미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정결한 마음과 순결한 사랑으로 인해 아름답다. 그런 여인을 위해 왕은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할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금사슬은 왕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자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진 선 미 - 히브리 전통에서도, 철학의 전통에서도 참된 것은 곧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은 곧 아름다왔다. 
그런데 현대의 문화는 미의 기준을 바꾸어 버렸다. 아름다움은 참된 것과 상관이 없고 오히려 위조되고 꾸미고, 가장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다운 자들이 선함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 세상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과 멀어졌다. 

주님은 지금도 아름다운 자를 찾으신다. 
그 아름다운 자는 어떤 자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의 피부가 검어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의 치장대신 소박하고 순수하게 따은 머리, 구슬목걸이라도 주님은 우리 안의 중심에 녹아있는 아름다움을 보신다. 

그 주님의 눈에 띄이고 싶지 않은가? 술람미 여인처럼 주님의 눈에 아름답게 비취이고 싶지 않은가? 

찬양)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