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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새아가서 강해)

아가서 1장 12-17절 (만남)

by 소리벼리 2021. 12. 16.

아가서 1장 12-17절 (만남) 

 

서로를 사랑하며 갈망하던 왕과 술람미 여인이 드디더 만나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바로 12-17절까지의 장면- 남녀가 서로 주고 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으로서 1장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7절에서 ""네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했던 여인이 8절에서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했던 왕이 드디어 12절에 만난다. 연합한다. 

사랑하는 자를 갈망하는 기다림이 12절의 참되고 복된 만남으로 이어진다. 

"기다림"의 대림절의 끝에 이런 참된 만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12절)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품어냈구나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비로서 그에게 다가가 꽃이 된 것처럼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를 가진 여인은 비로서 왕의 곁에서 그녀의 향을 품어냅니다.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바로 그 "나드 한 옥합" 

감히 사람들이 값을 매길 수조차 없었던 그 값비싼 나드 한 옥합-  술람미 여인의 삶의 전부가 담긴 향기가 비로서 왕 앞에 퍼져 나가는 것입니더,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

그러나 우리의 향은 결국 그리스도께 품어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품어내느라 애쓸 필요없이 오직 주님 보시기에, 그 분께 드리는 향기라면, 순전한 나의 삶의 나드 기름내음이라면 가장 향기롭고 고귀한 삶일 것입니다. 

 

13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자신의 순전한 나도 기름의 향을 품는 여인이 이젠 사랑하는 남자를 통해 흘러나는 향기를 표현합니다.. 

내 품 안의 몰약 향주머니,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 

 

- 어제 동방박사의 예물을 소개하면서 몰약 -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구별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던 관유에 사용된 기름, 모든 성전의 기구들을 구별시키는데에 사용되었던 기름,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나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닦았던 그 기름이 바로 몰약 

 

나드 기름이 아름다운 향으로 주위를 향기롭게 하는 향기였다면 

몰약은 그 의미가 "쓰다"라는 의미로 악취를 제거하며, 부패를 막았던 방부제로 사용했던 향이 바로 몰약입니다 

그래서 시체의 부패를 막고, 죽음으로 발생되는 모든 향을 억제하기 위해 몰약을 썼던 기름이 몰약입니다. 

 

왜 술람미 여인은 왕을 내 품 안의 몰약 향주머니라고 표현했을까요? 

궁전이 아닌 포도원의 고된 노동을 통해 감히 왕 앞에 나설 수 없는 땀냄새와 세상의 악취가 그 분 앞에 가면 내 안의 모든 악취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감히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그 분의 보혈의 피가 내 모든 삶의 죄와 악취를 깨끗게 하실 분입니다. 

 

  • 엔게디라는 곳은 "염소새끼의 샘"이라는 뜻으로 다윗의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했던 지역의 이름입니다. 군대장관이었던 다윗이 도망치며 삶의 극한에 쫓겨야만 했던 그 장소는 동시에 그 지역의 온갖 꽃들이 많았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고벨화는 가장 높이 피는 꽃으로서 그 지역의 모든 꽃들을 다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헀다고 합니다. 
  • 즉 수많은 꽃들이 있지만 그 꽃들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특별한 꽃이 고벨화, 수 많은 여인들 중에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고 만들어준 왕의 아름다움, 왕의 향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여인의 사랑의 고백에 왕은 화답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비둘기 같은 눈은 어떤 눈일까요? 

1) 비둘기의 눈은 특징이 있는데 그들은 정면만을 응시하지 곁눈질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비둘기의 눈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순결한 눈입니다. 

2) 요나서를 통해 나누었지만 비둘기의 의미는 평화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비둘기의 눈은 평화의 눈입니다. 사랑의 눈은 심판의 눈, 비난의 눈이 아닌 평화로운 눈입니다. 

3) 비둘기는 또한 신앙적으로 온유함을 상징합니다.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듯 그 눈은 온유한 눈입니다. 성경에서 온유란 "길들여진"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에 훈련된"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 순전하고 평화로우면, 온유한 눈, 왕은 술람미 여인을 통하여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

눈 속엔 마음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왕은 술람미 여인의 눈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느끼며 그녀의 안에 있는 진정한 어여쁨을,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구나" 

왕과 술람미 여인은 지금 왕의 침상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일하고 있는 자연, 술람미 여인이 헤메던 대 자연 속에서 만나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곳이 결국 가장 아름다운 침상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세상은 점점 편안한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기계가 대신 일을 해주고 

이젠 인공지능이 대신 생각까지 해 주려 합니다. 

사람들은 힘든 노동을 피하고, 좀 더 편하고 쉬운 삶을 향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우리 삶을 평안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평안함으로 인도하는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평안함은 우리를 희생의 삶, 십자가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희생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그래서 결국 완전한 평안함을 얻도록 인도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을 통해 지신의 진정한 내면의 향을 드러내고, 왕의 향으로 자신의 밖에 스며든 모든 세상의 악취를 몰아냅니다. 

 

그리스도와 함꼐 하는 신앙생활은 진정한 내 향을 찾아 그 분께 드리는 것이고 그 분으로 인해 잘못된, 악취나는 내 모습을 닦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찬양) 주 보혈 날 정결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