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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시편 11편 어디로 피하십니까?

by 소리벼리 2023. 2. 5.

시편 11편 어디로 피하십니까? 

 

(1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 "여호와께 피하다."  혹은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는 표현 - 다윗의 시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시편편 중에 아무 페이지나 펴서 살펴보면 이와 같은 표현을 어디서나,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표현 
  • 네 산으로 도망하라- 각자가 피할 자기만의 공간 - 어떤 때는 바위 밑, 어떤 이는 동굴로 피하는 자들

 

(2절)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 악인들, 혹은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각자만의 산으로 올라가지만, 안전할 것 같은 그 곳이 실재로는 악인들의 공격장소, 의인들이 넘어지는 장소,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는 장소가 된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 두 가지 해석 

  • 사람들의 소리 - "지금 네 삶의 터가 다 무너졌는데 어찌 그렇고 있느냐? 빨리 네 산으로 도망하라"의 연장선, 지금 한가로이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기도할 때가 아니다. 지금 전쟁인데 어찌 그렇고 있느냐> 빨리 도망하라 - 위급한 상황 
  • 시인, 다윗의 소리 - 내 터전, 내 삶의 기초는 오직 하나님이신데,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면 내가 아무리 용사요, 왕이라 할지라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주께로 떠나 어디로 갈 수가 있겠는가? 

 

4-7절) 다윗의 신앙고백 

(4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 나보고 어디로 피하라고 하지 말라. 난 오직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만 피한다. 그는 여기 성전에 계시다. 
  • 성전 (장막) - dwelling place - 그의 거처, 그의 처소 
  • 그러나 그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 - 하늘 보좌- 이 땅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온 세계의 통치자- 그의 거처는 성전에 있다. 성전 - 이 땅에서 그의 거처를 두고 우리를 만나주시는 곳 
  • 물론 이 성전의 의미는 다윗의 때는 언약궤를 모신 성전이었지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성전은 곧 우리 몸이 되었다. 우리 안에 그 분의 거처가 계시다. 그렇기에 그 분께 피한다는 것은 곧 위기의 때, 전쟁의 때- 다른 곳을 살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곧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 그것이 곧 예배자의 삶이고, 기도의 삶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이다. 
  • 인생을 통촉하시고 감찰하신다.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가 왕에게 하는 말 - 다시 한 번 생각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성전에서 우리를 생각하시고 감찰하다 - 낱낱이 조사하다. 통촉하다 (Observe) - 관찰하는 것, 감찰하다 (Examine) - 시험보다 - 조사하다. 스캔하다. -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를 살피신다.

      

  • 의인과 악인 - 의인 : 관계가 바른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그 안에 함께 거하는 자 

 (7절)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다. 

 의로운 일 - 주께 피하는 자의 행사, 주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는 자, 그 안에 주와 함께 거하는 자- 어디서? 주가 계신 성전에서... 

 그 곳에서 경험하는 것 - 주의 얼굴을 뵈옵는 것 - 친밀히 교제하는 것, 사랑하는 것, 

 

<예화/간증> 

초등학교 - 피부병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치료할 때는 몇달씩 결석, 중학교 때까지 개근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우등상보다 훨씬 더 받고 싶었던 것 - 개근상 

그러다 보니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그냥 혼자 놀거나 책을 보았다. 초등학교 때 한국 문학 전집 (60권)/ 세계 문학 전집 (80권)을 다 읽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김원중 선생님 - 엄마와도 같은 아줌마 선생님)이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선물로 주신 책 -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 M. 바스콘셀로스) 

7살 소년이었던 제제라는 아이 -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던 한 아이, 마당에 심기워 있던 한 오렌지 나무를 "밍깅뇨"라 이름붙이며 그 나무와 매일같이 일상의 대화를 나누어 가면서 함께 성장하게 되는 성장소설 -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소설 

내 삶에 밍깅뇨는 누굴까? 우리 집에는 나무도 없고....그래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대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존재 -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내가 혼자 있을 때마다 대화의 상대가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교회를 다녔지만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그 책을 통해서 교회에서 만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내 일상에서 만나고 교제하는 일상의 관계, 개인적인 비밀의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목사가 되고, 기독교 영성을 전공하면서 난 그 때 주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다름아닌 기도였고, 그와 함께 매일 같이 삶을 나누었던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제라는 소년이 매일같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곤경을 당하고 마음이 아플 때마다 밍깅뇨라는 나무에게 가서 대화하면서 이해받고, 치유되며, 성장했던 것처럼, 나도 외로울 때마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부르며 내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이해 받았으며, 또 성장했다. 예수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 인생의 피난처였다. 

 

고 3 때, 제수할 때, 어머니가 교회를 개척하시고, 예배당 뒷편에 조그만 방을 두어 형이 사찰겸 그 곳 예배당에서 먹고 잘 때, 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성전에서 자며, 초등학교 때 친밀히 교제하던 예수님과 여전히 대화 할 수 있었다.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땐, 복음성가 책을 펴 놓고 1장부터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한 장씩 한 장씩 찬양을 부르다보면 어지럽던 내 마음도 다시금 평안을 되찾았고, 내 삶의 꿈도, 비전도 다시 자라갈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물으신다면 

난 그냥 예수님과 얘기 나누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제제가 밍깅뇨에게 자신의 일상을 다 이야기 한 것처럼, 

어리고 상차 많았던 내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와 사귀듯 이야기했던 것 처럼...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지 업무보고도 아니고, 청구서를 제출하는 사무적인 절차가 아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녀가 사랑하는 부모에게 나아가듯, 친구에게 나아오듯, 내 마음의 깊은 것도 드러낼 수 있는 친밀한 다가옴을 원하시는 것이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놓라" 

 

누군가 내게 신앙생활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난 아가서 강해를 하면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과 연애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헌신도 봉사도 심지어 예배자체도 아닌 사랑이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또한 사랑하는 존재가 되길 원하신다. 

언젠가 새벽예배 때 나누었던 대화 - "승구야, 난 네가 좀 더 성경을 읽으며 나에 대해 알아갔으면 좋겠다"

- 그 때도 지금처럼 - 정기적인 예배만 7편의 설교를 준비 - 매일 한 편- 

아, 지금보다 더 읽으라구요? 

아니, 그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읽는 것 말고, 난 다른 사람을 위한 교제가 아닌 나와 너와의 친밀한 만남을 하고 싶구나.....

설교 준비 이외의 개인 묵상.....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 무언가 벽 같은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더 깊은 교제를 하고 싶은 데 무언가 문을 닫아논 것 같은....

그런데 사람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그들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그런 깊은 대화를 별로 나누어 본적이 없거나 너무 오래 전이다.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 몇 단어 안된다. 식당에서 쓰는 단어, 직장에서 쓰는 단어...그 단어의 반복된 삶을 살아간다. 

주님과 깊이 대화하는 사람 -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언어는 우리 마음의 깊이이고 표현이다. 

하나님과의 만남 - 우리의 존재성, 인간성, 사람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우리 인간의 기초, 터전, foundation, 바로 반석이다. 

 

그런데 사탄은 그 기초를 무너뜨린다. 죄를 지은 인간에게 나타난 현상 

자신을 가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피한다. 하나님께로 피해야 하는데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피한다. 

 

자신이 왕된 것 처럼 사는 사람도 필요에 의해서는 하나님을 찾지만 어려움이 닥치거나 반대로 너무 편안한 상태가 되면 각자 자신의 산으로 가서 자신의 우상을 섬기며 우상과 논다. 그런데 그 곳에는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인간됨, 사람됨이 파괴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 생기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짐승이 된다.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왕된 것 처럼 살다가 결국 모든 것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 다윗은, 툭 하면 하나님께 피했던 다윗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린다. 하나님을 왕삼았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왕으로 불렸지만, 그보다 훨씬 특별한 지혜와 부를 쌓았던 솔로몬은 천명의 아내에게 각각 산당을 지어주며 그들의 신을 예배하게 하다가 결국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을 남긴다. 

 

터가 흔들리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난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하러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한다. 어떤 의무감이나,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발걸음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 진정한 집에 쉬러, 피하러, 그리고 주님과 연애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또 하루의, 일주일간의 내 삶의 에너지를 받으며, 생명나무로부터의 생명을 공급받는 그런 피난처, 진정한 집,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그 분의 자녀된 살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