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있는 교회 비전 (행 2:46절)
사도행전 2장 -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시작된 새로운 공동체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예배하는 공동체 -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지체들의 모임 - 교회의 시작을 소개하고 있다.
이 새로운 교회 공동체는 예루살렘 성전이 상징하는 구약의 성전, 혹은 성전 파괴 이후에 퍼져 나갔던 회당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동체였다.
성전과 교회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성전은 간단히 표현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聖) 집(殿)'이 바로 성전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거하시는가?
사사시대 전까지 하나님의 영은 언약궤 위에 머무셨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에는 장막에,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 이후에는 성전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셨다.
그런데 그 성전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불타없어졌고,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이 지은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 스룹바벨의 제 2 성전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전 정화하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우상이 되고,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린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셨다.
성전 정화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성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요 2:16) 그리고 그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컫음을 받으리라 (마 21:13)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후의 성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은 어디에 머무는가?
예수님을 주로 믿어 영접한 거듭난 성도들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몸이 곧 성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 20)
1. 먼저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예배당과 성전이다. 예배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적 개념"이고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관계적 개념이다.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예배당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단지 장소가 되어 버린 그 예배당을 무너뜨리신다. 예배당은 언제나 불탈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
예배당 건물을 성전으로 착각, 이를 신성시한 나머지 성전(?) 건축 (이 말도 잘못된 말이다) 에 온갖 희생을 감수해왔던 한국교회의 역사는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성전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집(예배당)일뿐이다. 예배당은 도적도 들고 벼락도 맞고 불도 날 수 있다.
2. 그 다음에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성전과 교회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고, 곧 기도하는 집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성경에 교회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마태복음의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이다.
마 16:15-1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가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교회는 누가 세운 것인가? 사람의 수단과 방법이 아닌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교회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반석"이라고 말씀하시며 이 반석 위에, 이 반석에 기초해서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이 고백은 교육을 통해서, 암기에 의해서도, 결단에 의해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꼐서 주신 마음이요, 하나님꼐서 선택하신 자에게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예수님이 내 그리스도, 내 메시야, 내 구세주라고 내 존재의 고백이 있으면 난 반석이 되고, 주님은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
이 반석 위에 세운 교회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인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 열쇠를 주신다"는 것이다.
사탄은 이 땅에 다양한 음부의 권세를 만들고 있다. 공중권세, 음부의 권세는 무엇인가?
바벨탑과 같은 명예와 권력욕, 우상숭배를 통한 영적, 육적 음란함, 물질 숭배, 이기심, 허영심, 온갖 죄와 타락을 통한 사망의 길이 곧 음부의 권세이다. 지옥의 문이다.
주는 내 그리스도인가? 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그 안에 거하고 있는가? 교육에 의해서, 그저 입술 신앙이 아닌 진정한 삶의 고백과 실천이 있는가?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반석 위에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 - 왜? 그가 주시니까..... 어떤 고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모래 위에 - 모래 (dust) - 흙으로, 사람 위에, 인간의 생각과 계획 위에-> 고난이 오면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다.
내가 신앙생활 중에 자꾸만 넘어진다면, 음부의 권세에 걸린다면-> 무엇을 분별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내 삶과 생각이 반석 위에 기초해 있는가? 아니면 내 감정, 내 생각, 내 이기심, 내 욕망, -> 모래 위에 기초해 있지는 않은가?
성전과 교회는 어떻게 다른가?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도 각 개개인의 영혼이라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성도들의 연합이다.
에베소서 1:22-2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9)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하나님의 영,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즉 성도들의 결합체이다.
이 교회는 지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연합된 교회는 각 지체의 분량, 교회를 이룬 성도들의 분량대로 역사한다 -> 일을 감당한다.
그러나 그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머리에 붙어있다면 머리는 그 지체를 자라게 한다. 그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 간다.
몸은 머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몸이 없다면 머리가 표현되지 않는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들의 연합을 통해 표현된다. 몸이 없다면 머리는 그저 아이디어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고 일하신다.
복음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의 핵심은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한 몸됨을 경험하는 것이고 밖으로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그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3.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
다시 마태복음 16장으로 가서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약속하신 말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마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늘에서 매고 푸는 것 - 두 세 사람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 -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도 각 개개인의 영혼이라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성도들의 연합이라고 말헀다.
지체가 하나뿐인 몸이 있을까? 지렁이, 단세포 동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최소 구성-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다. 내가 그들 중의 머리가 될 것이다.
교회를 표현하는 두 개의 단어
에클레시아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 디아스포라 (흩어진 교회)
사람들은 보통 에클레시아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 교회 안에 뭉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부흥은 교회에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고 헌금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이기에만 힘쓰는 성도들을 세상 가운데로 퍼지게 하신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제자들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산 위에서 사람들이 가득한 땅으로 내려오게 하신다.
2023년도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의 표어 : 모여서 예배하며 흩어져서 떡을 떼는 교회
주제 말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 -> 에클레시아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디아스포라 교회이다.
고린도전서 10:17)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떡에 참여하는 것 - 누군가는 사랑의 교제, 누군가는 "떡을 떼며" 성만찬의 표현, 오병이어 - 만나- 말씀을 나누는 것 - 다 포함된 말씀과 교제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흩어진 교회로서의 예배다.
에클레시아의 역할과 기능 - 높이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분의 말씀을 통해 공급받는 것 - 예배와 교육이다.
디아스포라 교회의 역할과 기능 - 에클레시아 교회를 통해 배우고 예배한 삶을 사는 것, 그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가 바로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가 없으면 내게 들어온 말씀이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자라지 않는다.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두 세사람이 함께 모여 작은 교회, 작은 모임, 작은 나눔을 해야 한다.
4. 결론
내년도 새로 계획된 균형된 교회 비전
중보기도부를 새로 두어 먼저 예배 전에 모여 음부의 권세가 침범치 못하며 메고 푸는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
가정과 일터에서 모여 두세사람이 모여 함께 떡을 떼며 말씀을 나누고 두 세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함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교회, 사랑을 나누는 교회, 한 몸을 이루는 교회..
흥미로운 통계 조사 - 고든 콘웰 신학교의 세계 기독교 연구센터의 조사 결과
2022년 현재 - 전세계 인구 - 79억명이 조금 넘는데 그 중에 기독교 인구 25억
2050년도 기독교 인구는 어떻게 전망될까? 증가할까, 감소할까?
뜻밖에도 앞으로 20년동안 기독교 인구는 33억명으로 증가될 것이고 기독교 퍼센트지도 32->34퍼센트로 올라갈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에서도 다 감소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와 남미의 기독교 인구가 다른 선진국들의 감소세를 능히 능가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런데 남미와 아프리카교회의 특징 - 대형교회 중심, 모이는 중심이 아니라 가정교회, 소모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 교회로 이루어진 나라들.
코로나 이후의 많은 기독신학자들의 전망 - 앞으로의 교회는 많이 모여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대신 믿을 수 있고 친근한 작은 모임들을 통해서 퍼져 나가는 교회가 살아남을 것이다.
그동안 제가 목회하면서 소그룹에 소극적
- 불평, 불만, 세상적 교제
- 리더가 세워질 때까지 위험하다. -> 그러나 디아스포라 모임이 없는 목회의 한계 -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목회자 한 사람 중심의 목회이다.
동역자 없이는 감당하기 힘들다. 나 역시 교회의 한 지체이다. 머리가 될 수 없다. 전하는 자로서의 지체된 역할을 감당하고 여러분들이 저를 통해 공급받듯이 저도 성도들의 동력을 통해 공급받고 서로 자라가는 목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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