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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2장 18-27절 (사두개인과의 논쟁)

by 소리벼리 2021. 4. 17.

(사두개인과의 논쟁 (마가복음 12장 18-27절)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이 당시 일반 민중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회당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룹이라면 사두개인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 사독의 후예들로서 대부분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터를 두며 활동하던 그룹을 말합니다. 

 

구약시대로 치면 바리새인들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 같은 사람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주로 성전에서 말씀을 가리키며 백성을 인도한 제사장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성경에 사두개인은 10회 정도만 언급되고 바리새인이라는 용어는 100회 이상 언급이 되는데 실제 사두개인들의 인구수는 바리새인들에 비해 훨씬 적었지만 그들은 대다수 상류층 귀족들이었고 성전이라는 확실한 터전이 있었기에 그들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AD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화재로 소실되자 그들 그룹의 발자취는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바리새인들은 토라(모세오경) 이외에 선지자들의 글이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들을 함께 연구하며 그 폭을 넓혀 갔던데 반해 사두개인들은 오직 토라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며 그 외의 글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바리새인들은 어느정도 진보적, 자유주의적 색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두개인들은 토라 이외의 어떤 말씀도 인정하지 않고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식 중심으로 보수주의의 대표적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대표적인 신학적 차이를 보인 것이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가하는 영혼에 대해 사두개인들은 토라에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기에 철저히 부정했고, 이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선지자들이나 구전에서 전해지는 영혼의 불멸과 몸의 부활에 대해 깊이 사모하며 믿었습니다. 

 

2. 사두개인, 예수께 와서 부활을 말하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세금문제를 언급한 후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서 언급한 "형사 취수제", 즉 형제가 죽으면 남은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아 후손을 내게 하는 제도를 언급하고, 당시 중동지방은 많은 나라에서 일부다처제를 실질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기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이 남편이 죽자 다른 형제의 아내가 되고 또 그 남편이 죽자 거듭 일곱명과 결혼 한 후 죽게 되었을 때, 그 여인이 남편들과 함께 결혼하면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하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 앞에 나옵니다. 

 

이 질문은 독창적이라기 보다는 당시 사두개인들이 바리새인들과 부활에 관해 논쟁할 때에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잘 알려진 질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알듯이 부활한 후 입게 되는 육신은 이전 생의 연속이 아닌 새몸과 새영으로서 근원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던 사두개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 하시며 부활 후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두개인은 지금으로치면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주류는 70-80년대까지 근본주의가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오직 성령에 의해서 받아쓰기 하듯이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기계적 축자 영감설"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개입이나 참여는 전혀 없이 오직 성령이 성경의 저자요 인간은 기계적으로 받아쓰기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전혀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꼭두각시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할 때에도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행합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백성들의 상황과 감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이용하시지 않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의 또 한가지 오류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의 어느 부류는 오직 킹제임스 버전만이 하나님 말씀이고, 다른 성경들은 모두 거짓 성경이다고까지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지키기 위해서는 성경의 원본이 훼손됨 없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번역본이나 필사본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번역하고 필사하는 동안에도 성경의 정확한 문자가 왜곡되거나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도 지성소에 보관해오다 예루살렘 성전 훼파로 인해 사라지고, 구약 시대, 신약시대의 성경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서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렌 기간 필사와 번역을 통해서 성령님은 각 사람을 감동시키셔서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 나와있는 음식에 대한 법이나 정결법등을 지금 그대로 지키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어떤 성경의 말씀은 시대나 대상에 관계 없이 모든 인류 모든 시대에게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어떤 구절들은 그 시대, 특정한 대상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은 어찌보면 자기 한계에 갇혀 자기 모순 속에서 신앙생활하는 좁은 지평을 가진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지식보다 큽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어도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의 극히 일부분일뿐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우리에게 성경을 주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지만 살아있는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모든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신앙은 우리의 눈을 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바꾸십니다. 우리는 한계에 갇힌 사두개인 신앙이 아닌 주님과 더불어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산 신앙인, 넓은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질문1.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는 말을 곰곰히 생가해보자. 나는 지금 죽은 지식을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는가? 

 

2.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소리쳤던 바디메오의 기도를 기억해보자.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더 깊이, 더 넓은, 더 높은 하나님과 영적세계를 향한 갈망함이 있는가? 

 

(찬양) 주 내 소망은 주 더 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