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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3장 마지막 때 (막 13:1-14)

by 소리벼리 2021. 5. 1.

마가복음 13장 마지막 때 (막 13:1-14) 

 

화요일 변론의 날 끝에 우리는 13장 전체를 걸쳐서 마지막 때의 징조와 분별, 그리고 깨어있음을 말씀하시는 예수의 말씀을 듣는다. 

 

그 설교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1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이 돌과 건물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 - 헤롯 성전을 가리킨다. 

첫 번째 성전은 잘 알다시피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고 두 번째 성전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와서 짓는 이른바 스룹바벨 성전이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던 스룹바벨 성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성전으로서의 역할로 무색하리만큼 이단에 대한 제사와 파괴가 계속되어 명목만을 유지해 오다가,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을 치리하던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며, 동시에 로마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경비를 들어 증축하고 있었다. 그 성전의 위용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다. 예수님 당시에까지도 완공되지 못하고 오랜기간 계속해서 준공되어 가고 있던 때이다. 

 

그리고 11-12장을 걸쳐서 예수님과 논쟁을 일삼던 서기관, 사두개인들, 헤롯당, 그리고 몇몇 바리새인 일파 역시 이 성전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던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일전을 마치고 나서면서, 그들의 힘의 원천인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이 언제쯤 완공될까요? 다 완공되면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 할까요? 하는 뉘앙스를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그 제자들 마저도 성전의 위용 앞에서 주눅이 들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하며 경탄하는 장면이다. 

 

그렇게 경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면서 그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성전은 예수의 승천 후 AD 64년경에 준공되어 10년도 채 유지하지 못하고 AD70년경에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불타 없어지게 된다. 

 

성전과 및 그 성전에 기대어 살던 사두개인 계파는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그런데 그 예언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징조에 대한 예언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시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인류 종말의 때, 예수 재림의 때를 가리키는 예언으로 읽혀지고 해석되어져 왔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6-8절) 

 

10절)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21-22)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이런 글들은 분명 AD 70년 경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때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가 승천하고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날들을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성서적으로 종말의 때는 예수의 승천부터 재림 사이의 기간을 종말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2000여년 가까이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 

 

예수님의 1세대 제자들 역시 자신들의 세대에 이 일이 일어날 주 알았으나 그 날이 지연되면서 종말에 대한 시각도 시들해졌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점점 주의 재림을 기다리기 보다는 지금, 여기를 위한 신학으로 대체되어진다. 

"지금, 여기"의 신앙 역시 날마다 주와 동행하며 누려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지만 재림을 잃어버린 신앙은 부활 없이 십자가만을 생각하는 신앙과 마찬가지다. 십자가는 부활을 통해 완성되기에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결국 공허한 것이다. 

 

그 때가 언젠지 오직 아버지만 아시지만 예수께서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부하신 것은 두 가지 이다. 

 

14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예수의 자리에 앉는 상황이다. 이적과 기사로서 믿는 자들을 미혹할 때이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산으로, 골방으로, 하나님과의 깊고도 직접적인 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떄일는지, 밤 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이 역시 잠들거나 졸지 말고 깨어 주를 기다리고 주와 교제하고 주와 동행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부재 속에서 재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령 안에서 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 없이, 사람에 기대고, 성전이라는 형식에 기대어 사는 자들이 결국 미혹되고, 넘어지고, 잠드는 것이다. 

날마다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자. 

그 사람에게는 어디서 무엇을 하건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코로나시대 - 교회와 성전과 예배가 무너지고 있는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더욱 진실한 주님과의 교제 -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묵상 질문) 

1.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잠자고 있는 때에라도 주의 재림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깨어 있고,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