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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목회컬럼'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5.07.28 2015년 수련회를 준비하며...
  2. 2015.04.04 성경필사를 시작하며...
  3. 2014.12.27 죽을 생각하고 살아가기(스데반의 순교 축일)
  4. 2014.11.27 사랑이라는 이름의 잔치

2015 로고스 교회 수련회가 북가주 샬롬 수양관에서 7월 31일 (금)부터 8월 2일 (주일)까지 있습니다.

주소는 1243 Fig Ave. Patterson, CA 95363입니다.

수련회로 이번 주일 예배는 수련회 장소에서 드립니다.

 

수련회를 할 때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머무름과 떠남의 의미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며칠이나마 집을 떠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떠나지 못하기에 얻지 못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머물고 있던 장소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라는 것은 이제부터 내가 네게 채울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신 장소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올해 사순절을 시작하며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영성 훈련으로서 전교인 성경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필사를 하기 전 몇 주에 걸쳐서 설교를 통해 성경 필사의 역사, 필사 할 때의 규율, 그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져 온 하나님의 말씀들을 먼저 나누면서 이것이 단지 '쓰고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사명'이었다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손을 통해 전해 내려왔지만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나를 함께 생각해 보았답니다. 한 글자라도 정확히 지키고자 했던 그런 엄격함과 정직함이 결국 필사자의 기본 자세라는 것이 성도님들의 입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백되어졌습니다.


"말씀을 필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전달한다는 사명감과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시금 멈추어 목욕하고 기도하며 다시 말씀을 시작하고……. 그러다가 한 글자 실수하면 멈추어 그날을 반성하며 또 내일을 준비하며……".

 

먼저 사순절 기간 동안 성도들끼리 나누어 신약성경을 필사하고자 신약 27권을 각각 종이 파일에 담아 자원자를 모집했습니다. 다행히 성도님들께서 27권 모두를 자원해 주셨습니다. 파일를 나누어 주면서 "한 글자라도 틀리면 찢으셔야 합니다. 다시 쓰셔야 합니다."하면서 필사자의 마음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 부터 90세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적은 인원이지만 전 성도가 성경 필사에 참여했습니다. 필사를 시작한 다음 날부터 한 두 통씩 전화가 걸려옵니다.


"목사님, 이거 저 도저히 못하겠어요. 쓰는 종이보다 버리는 종이가 더 많아서 이건 정말 낭비입니다"

"목사님, 뒷면까지 잘 쓰다가 막판에 틀렸어요. 마음에 시험이 들 것 같습니다."

"필사하면서 은혜가 되기보다는 낙심되고 시험이 됩니다. 한 글자 틀려서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또 찢고 성질이 더 못되지는거 같아요……."

 

정말로 저 자신부터 한 장을 넘기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맥락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조사나 어미를 잘못 적는 실수를 할 때마다 '그냥 넘어갈까'하는 내면의 갈등이 오기도 했습니다. 잘 아는 구절일수록 아는 대로 쓰다가 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확하지 않게 기억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원망과 불평을 들으며 첫 주가 흘렀습니다.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주쨰가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교회일에 적극적이지 않던 한 노년의 집사님은 신약성서 네 권을 마치고 구약의 창세기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틀리고 종이를 찢을 때마다 처음엔 목사님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젠 내 신앙이 이렇게 실수에 둔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결국은 내가 틀린 것인데 남을 원망하기나 하고……."

"내가 틀릴 때마다 참아 주시고 또 다시 시작했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답니다. 실수 투성이인 나를 그 분은 불평하지 않고 또 다시 시작했겠지요."

"똑같은 부분에서 자꾸 틀리면 그 부분은 나에게 특별히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구나 생각하니 더 말씀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불평하는 성도들이 있고 구약을 다 마치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연말에 성도들과 함께 필사한 것을 성경으로 만들면서 하나님께 성경 봉헌 예배를 드릴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고 설랩니다.  왠지 한 권의 성경으로 만들어질 저희 성도들의 노력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9-60)


 12월 26일,  초대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의 순교를 기리는 날이다.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이 초대 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축일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조용한 아침,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순교자의 죽음을 묵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어찌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삶과 죽음은 똑같이 하늘의 영광을 가리킨다. 바로 전장에서 사도들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초대교회의 집사로 임명된 스데반은 뜻밖에도 사도들처럼 기사와 표적을 행하다가, 대제사장 앞에서 당당히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한다. 예수님처럼 그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맡긴다.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었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추구한다. 


몇 주 동안 아팠다. 아프면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가장 아쉬운가 생각하다가 참느라, 기다리느라, 다하지 못한 설교가 가장 마음에 걸린다. 혹시라도 상처 입을까봐,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천천히, 느리게 가기 위해서 아끼고 아껴왔던 말씀들…….


결국은 살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할 말을 다하지 못한다. 살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미운 채로, 화해하지 못한 채로, 용서를 빌지 못한 채로 그렇게 살아간다. 하루를, 또 한 해를 그렇게 넘긴다. 차라리 죽을 생각하고 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미워해야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말들, 편히 말할 수 있다. 설교자는 살 생각 말고 죽을 생각하며 말해야 한다. / 소리벼리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추수감사절 주간이 되면 몇분의 성도님들이 전화를 한다.

"이번 주도 새벽예배 있나요? 금요예배 드리나요?"

"네, 그냥 저 혼자라도 교회를 지켜야지요. 부담갖지 마시고 시간되면 나오세요..."

 

그런데 긴 휴일 덕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여행을 가고 쇼핑을 가고 그런 주간에라도 흔들림없이 교회를 지키시는 분들이 계시다.

 

몇분이 새벽예배 끝나고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며 혼자 교회에 들어오는데 또 다른 성도님 차가 눈에 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시간에 잘 뵈지 않던 그 분은 또 교회의 한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휴일이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다 여행을 가기 때문에 홀로 남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모르다가 옆에 사람들이 다 사리지고 나면 비로서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은, 교회는 그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평안한 안식처가 아닌가 싶다.

"이제 쓸 것 다 쓰고, 할 것 다 하고, 이제 남은 것이 없을 때에 날 품꾼으로라도 받아주소서"하며 찾아 왔을 때에,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손길로 탕자를 안아 주며 종들에게 잔치를 열라 하셨다.

새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겼다.

 

주님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잔치를 여셨다. 

 

이제 다 떠나고 혼자 남게 된 텅빈 교회당...

이제 주님은 날 위한 잔치를 열고 계신다.

그 잔치의 이름은....

사랑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