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16-26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땅의 소산으로 살던 가인이 아젤을 죽이고 땅의 저주를 받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 삽니다. 

유리하는 자라는 것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살 처소가 없는 인생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인을 "본향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입니다. 

우리는 때로 길을 잃어버리고, 넘어지고, 때로 시험에 들진 모르지만 탕자처럼 돌아갈 집,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자가 곧 유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본향을 잃어버린 가인을 위해서도 "죽임을 면하는 표"를 주셔서 그를 보호하십니다. 집 떠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긍휼을 나타내십니다. 

죽임을 면하는 표를 주신 하나님의 심정은 아마도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일 것입니다.

더 이상 유리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납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했던 가인이 이젠 "여호와의 앞"을 떠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앞을 과연 떠날 수 있을까요?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앞을 떠날 공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내 앞에 있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떠나"라는 의미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차"는 도망하다. 피하다의 의미입니다. 

 

"놋"땅에 거주했다는 것은 일종의 언어유희입니다. 왜냐하면 "놋"이라는 의미가 유리하다. 방랑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17절)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더라 

 

고향을 잃고 방황하던 가인이 "에녹"을 낳습니다. "에녹"의 의미는 "새롭게 시작하다"의 의미입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성을 짓고 거기서 새 삶을 일구어 나갑니다. 

 

그가 지은 아들의 이름 "에녹",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일까요? 

그 아들의 이름으로 지은 성은 무슨 의미로 시작된 성입니까? 

 

성을 쌓았다는 뜻은 "자기 영역을 만들었다"라는 말입니다. 그 곳의 주인은 자기입니다. 또한 울타리를 침으로 다른 존재의 출입을 막습니다.

"성" "굴" "탑" 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이 없이 자기가 주인된 삶,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을 위한 처소.

아들을 낳자 가인은 아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없는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공간 -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시간이 처음엔 두렵고 낯설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 안에서 즐거운 안식을 얻는 듯 합니다. 

이랏에서 므후야엘, 므드사엘에서 라멕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만의 왕국이 세워지는 듯합니다. 

 

19절)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니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더라.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일부일처제의 가정을 파괴하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 히브리 원문대로 직역하면 "라멕이 자신을 위하여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의 의미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만을 위한 성을 짓다보니 점점 자기 욕망을 위한 성이 됩니다. 

그리고 두 아내로부터 나은 자녀들은 각각  

가축을 치는 자 (야발), 수금과 퉁소 잡는 자 -> 음악인 (유발), 두발가인 (기구 만드는 자)

로서 이른바 "문화와 문명"의 시조가 됩니다. .

 

에덴 못지 않은 완전한 왕국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명으로 삶은 정착되고, 더욱 편안한 문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23절에 가서야 그 결과가 드러납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ㅜ

 

잘 해석해야 할 문장입니다. 

어느날 라멕이 두 아내를 불러 말합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라멕에게 한 말입니까? 라멕 스스로가 아내들에게 한 말입니까? 

가인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여놓고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신 가인을 죽인자는 벌을 칠배나 받을지어다라는 말을 자기 맘대로 확대해서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스스로에게, 아내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성을 짓던 라멕은 자기 성 안에서 살인을 저지르며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나를 죽이는 자는 벌이 칠십 칠배가 될 것이다.   자신이 죽으면 누가 벌을 내립니까? 

 

여기서 역사가 끝났으면 소망없이, 아무런 빛없이 세상은 절망을 향해 가지만 가인이 스스로 성을 짓고 하나님 없는 왕국을 쌓을 때에 하나님은 멈추지 않고 또 일하십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이 에녹성을 짓고 하나님 없는 그만의 왕국을 세우려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또 다른 씨- 바로 노아로, 노아에서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새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셋 - 대신 두다, 마련하다 

에노스 - 사람, 연약하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 여호와께 말을 걸기 시작하다. 기도하다. 예배하다. 

 

 

라멕의 말: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다." 원가 비슷한 구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이사야 53장 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나님 없이 자기 성을 쌓는 가인과 그의 후손 라멕- 스스로 하나님 되어 사는 것 - 얼마간은 그것이 평안한 것 같고 견고한 것 같지만 하루 아침에 죽음의 장소, 사망의 장소가 된다. 

어떤 실패에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 

 

어떤 시작을 할 것인가? 하나님 없이 자기 성을 쌓는 시작을 할 것인가? 

새마음으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예배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 것인가? 

 

 

가인의 길 (창 4장 8-15절) 

 

 (요일 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누구와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속함은 존재의 본질임과 동시에 현재형이다. 

가인의 이름의 뜻 : "얻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성서학자들은 하와가 가인을 얻었을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으로 받았을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머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삶을, 그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와의 소통을 끊어버리지 않으셨다. 

 

그의 삶과 예배를 받지 않으셨지만 탕자처럼 그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기를,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시고 또한 말씀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는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장 7절)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표현은 베드로가 설명한 대로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장 8절) 나의 삶의 문으로 들어오려고 지금 호시 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다. 

 

선은 착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은 하나님의 뜻 안에, 하나님께 소속된 자로 사는 것이다. 

 

1. 하나님의 길과 반대길로...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8절) 

말하고 - 고대 역본에 "우리가 들로 나가자" -> 

사람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곳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 뱀을 들짐승이라 표현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아우를 그곳으로 불러내어 그를 쳐 죽인다. 

 

2. 하나님께 대한 분노를 연약한 아벨에게 푼다. 

사탄의 길은 강한 자에게 엎드리고 약한 자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화풀이할 연약한 대상에게 화를 푼다. 

사탄은 하나님께 분노를 풀지 못한다. 그가 노리는 것은 오직 연약한 자다. 

 

신앙인들도 떄로 우리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떄, 엄청난 고난 중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도무지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 화가 날 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노마져도 용납하시고 받아주시면서 우리가 하나님 뜻 안에 머무를 수 있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중에 고난을 당할 떄 -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의 분노를 드러내지 못한다. 오직 모세에게, 아론에게, 그들의 감정을 푼다. 

 

3. 거짓과 책임전가, 탓 

가인이 아벨을 죽였음에도 하나님이 그냥 외면치 아니하시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찾아오신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도 먼저 찾아오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모르셔서 묻는가? 

무엇을 행했는지, 살인의 현장에서도 그에게 다가가 돌아오기를,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가인의 답변은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완전한 거짓)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자신의 책임을 회피, 외면.... 왜 내가 그를 지켜야 합니까? -> 형이 아우를 지키는 것 당연하지만 적어도 해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 당신이 그의 제물을 받아셨으면 그의 삶도 지켰어야지요... - 당신이 자키지 못하셨네요....

 

자신의 죄의 현장에서 자신의 죄는 언제나 없다. 

연약한 미물에게 탓을 하고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 탓이라 말한다. 

 

4.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비겁함, 억울함...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1절)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2절) 

아담이 범죄함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는데, 그 땅에서 또 범죄함으로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던 자가 땅에서부터도 저주를 받는 자가 된다. 땅의 소산으로 살던 그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된다. 유리한다는 것은 소유함이 없고, 다스림이 없고,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인의 답변은 무엇인가?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3절) 

 

이것이 회개의 소리인가?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경각심이 조금도 없다. 

내 죄에 대한 형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내 죄는 인정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처벌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정말 너무 파렴치한 소리가 아닌가? 

 

하나님 안에 속하기는 싫지만 하나님 품에서 벗어나 닥칠 위험은 너무도 두렵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어 죽임을 면하게 하신다. 

 

징계 중에서도 은혜를 베푸신다. 

 

아벨은 죽고 가인은 유리하는 자가 된다.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는 이 외침은 타인에게 주는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하는 소리이다. 

 

1. 가인과 요나와 같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삶과는 정반대로 가는 삶

 

2. 신앙의 의문이나 낙심에도 감히 하나님께는 기도하지 못하고 애꿋은 데다가 화풀이 하며 범죄하는 우리 모습 

 

3. 자신의 잘못은 여러가지 이유로 합리화 하면서 끝까지 남탓, 환경탓, 하나님 탓하며 자신의 죄를 조금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 

 

4. 그럼에도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한없이 억울해하며 회개함도 없이 그 고난에서는 벗어나고 싶어하는 옹졸하고 비겁하며, 소심한 모습....

 

가인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 숨겨져 있는 연약한 모습, 죄인된 모습, 어두운 우리 민낯이고 바위로 막아선 동굴처럼 깜깜한 우리 속 마음이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표를 주셔서 죽지 않게끔, 살 수 있도록 그를 통해 여인의 후손이 아닌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악의 머리 사탄을 무너뜨리는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하신다. 

 

세기 4장 1-7절   가인의 제물, 아벨의 예배 

 

창세기 4장 - 가인과 아벨의 사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창세기 3장의 죄의 시작 -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첫 죽음에 대한 기사 

 

죄의 결과 - 이는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로다 ->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그 여자 때문에 -> 탓 

-> 탓의 결과가 결국 4장에 쳐 죽이니라 ->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아까? 

죄의 영향력 -작은 죄가 눈덩이처럼 커 진다. 급속히 퍼진다. 

 

1. 문제의 발단 

4b-5A: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살인의 동기) 

 

2.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나 

1) 제물의 종류 - 양의 새끼와 땅의 소산...

  • 땅의 소산 : 

창 3:17-18)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저주받은 가시덤불과 엉겅퀴 

  •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 첫 새끼. 첫 열매, 그 기름 -> 그를 잡아 피의 제사, 향기의 제사 

 

어떻게 그들이 제사를 드리게 되었을까? 사람이 먼저 제사를 시작했을까? 하나님이 명하셨을까? 예배가 확립된 것은 모세에게 명한 계명을 따라...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까? 

 

  •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죄를 지은 바로 그 순간부터 제사라는 통로를 통해 인간과 교통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볼 수 있다. 
  • 창세기 3장 21절 -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장면을 통해 그들이 에덴에서의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는 멈추게 되었지만 동물의 피를 통해 죄가 가리워지고 하나님과 부분적인 교제가 유지되었음 알 수 있다. 
  •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제사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안에서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제사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대로 그 길대로 들어가는 것. 

내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정하신 방법으로 들어가는 것- 예배의 정신이요, 신앙인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예배는 내 정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 방법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2) 제물을 바치는 자의 삶-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제물 이전의 그 사람의 삶

 (요일 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세월이 지난 후에 - 어쩌다 한 번 드린 제물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서, 인생의 열매로써 드린 제물이다. 

결국 가인은 땅의 소산, 땅의 열매를 드린 것이요, 아벨은 삶의 첫 열매로 시작된 삶의 열매, 피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드린 것이다. 

 

 아벨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가인과 교통하지 않으셨을까? 

 아니다. 그 분은 가인에게도 말씀하셨다. 두번씩이나 그에게 나타나서 그의 죄를 멈추도록 말씀하셨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선- 선악과 - 사사기 -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 - 악 

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네가 선을 행하였으면...-> 네가 내가 말한대로 살았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렸다면 왜 얼굴을 피하겠느냐? 

죄를 다스려라!-> 그러나 살인...끝까지 자기 감정대로, 고집대로, 성질대로,,, 

 

예배는 우리 자신의 정성이 아니다. 치성이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가 신앙생활이 아니다. 

신앙생활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창세기 3장 8-15절 유혹의 내용과 결과, 그리고 구원

 

1. 유혹의 내용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뱀의 유혹에 미혹된 결과 - 먹으면 죽는 그 열매가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졌다. 

 

요한일서 2장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 현상 

1)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을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수치심, 부끄러움, 두려움  ,->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더라 (구원이 있는 곳엔 타인의 죄를 통해 나를 본다) 

-> 무화과나무 잎으로 수치를 가린다. -> 분열 (하나님과의 분열을 통해 하나였던 인간이 분열된다) 

 

이사야 59장 6절)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 그 행위(자기를 가리는 모든 행위)로 자기를 가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죄악의 행위다. 

 

이사야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 가리는 행위: 인간의 자기 의를 위한 행동, 몸부림 - 죄를 가리기 위해 

  -> 그러한 모든 자기 의는 영원하지 못하고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시들어 버린다. 

  

로마서 13: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2) 탓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 

10절)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단절-> 듣고 두려워하여-> 사탄의 무기)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죄가 드러난다. 

11절)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의 탓- 여자의 탓) -자신의 잘못은 없다. 

13절)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 결과 

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돌아가셨다) 

18절)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19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4. 하나님의 구원역사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루아흐) - 영이 움직일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성소에 거하신 하나님의 임재) 

(아담이 죄를 짓자 성령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임재하신다) 성자 예수는 어디에 있는가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원 복음: 여자의 후손으로 올 예수의 언약의 시작 

20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됨이더라 

(여자를 창조했을 때에 하와라 이름 붙인 것이 아니라 그가 범죄했을 때에, 그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 피조물인 뱀을 장악한 머리, 사탄을 멸하시리라 약속했을 때에 그 때, 그를 하와, 산 자의 어머니라 이름 붙인다. 심판 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섭리이시다. 

 

그리고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사라지는 무화과 나무잎이 아닌 어떤 동물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가죽으로 옷입히셨다. 

그리고 앞에서 나눈 대로 그 가죽옷은 바로 영원히 우리를 덧입히실 예수 그리스도시다. 

 

5.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4장) 사탄의 유혹, 시험을 이기심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육신의 정욕) -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하나님을 주관하는 이생의 자랑) -권력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피하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안목의 정욕) 

->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대적하라)  

-

요한복음 19장 41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동산을 회복하시고, 그가 친히 무덤에 갇히고 또한 나온다) 누구의 무덤이었는가? 아담의 무덤 속에 그가 갇히시고 또한 그가 나오신다. 

 

(찬양) 하나님 나 부르실 때에 

 

창세기 3장 1-6절 뱀의 정체와 유혹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창조의 주역으로 에덴동산에서 왕과 제사장 역할을 담당했던 인간이, 그 위치를 잃어버리고 죄로 말미암아 영적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성경의 역사, 구속의 역사, 우리 개인의 신앙의 역사에서 두구 두구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장 - 창세기 3장 

 

유혹자 뱀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1. 뱀의 정체

- 신학상 난제- 뱀의 정체가 무엇인가? 

사탄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 하나님이 사탄을 창조하셨는가? 

들짐승 중에 하나 - 천지 창조의 과정 중에 창조된 피조물 - 사탄이 될 수 없다. 

 

사탄에 대한 성경의 설명 -

(이사야 14장 12-14절)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놓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계명성이라고 번역, 혹은 샛별, 또는 금성에 대한 영어식 표기가 라틴식, 영어식 표현이 루시퍼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 피조물이 아닌 영적 존재로서의 사탄에 대한 설명. 

 

요한계시록 12장 9절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사탄은 하늘- 이 때의 하늘은 천지창조를 통해 탄생된 피조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천상의 공간으로서 하늘

 

그가 어떻게 뱀을 통하여 역사하게 되었는지는 설명이 어려운 문제다. 

그로 말미암아, 뱀과 여자와 남자 모두가 저주를 받게 된다. 

 

즉, 뱀은 사탄 자체가 아니라 사탄에게 사로잡힌, (군대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 돼지에게 들어가듯이) 짐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애굽과 뱀 

창세기 - 모세오경으로서 시내산에서부터 모세애게 전해진 하나님의 계시

모세 당시의 뱀이 상징하는 것- 

애굽왕의 왕관에 새겨져 있던 문양 - 애굽의 왕을 상징 

바로왕 앞에서 행한 첫번째 기사 - 출애굽기 7장 

아론의 지팡이를 들어 바로에게 던지면 뱀이 되고, 애굽의 마술사들이 똑같이 행하자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킨다. 

 

지팡이- 하나님의 도구 - 너희의 왕 바로도 결국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사탄 = 바로 애굽의 신 

 

창세기를 편집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대적 - 바벨론왕과 그들의 신 

뱀은 바로 사탄의 세력 안에 조정당하는 그들의 세력을 가리킨다. 

 

왜 그들은 뱀을 숭배했을까? 뱀의 독이 때로 고대사회에서 치료제로 쓰였기 때문

실재로 현대에도 세계 의료 협회 (WMA)나 대한 의사협회, 심지어 엠블런스에도 그들의 마크에 뱀이 새겨져 있다. 

 

3. 뱀의 특징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간교 - 히브리어로 "아룸" 좋은 의미로는 영리하고 신중하다. 나쁘게 사용될 때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이다. 

중립적 단어다. 악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의 간교함을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 - 두개로 갈라진 혀 

그는 두개로 갈라진 혀를 가졌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존재. 

그의 약점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한 몸이었던 남자와 여자에게 다가와 연약한 여자를 공략한다. 

오해) 뱀이 여자를 유혹 할 때 남자는 곁에 없었는가?  마치 여자가 혼자 있는 순간 뱀이 여자를 유혹하고 유혹에 넘어간 여자가 남자에게 가서 선악과인줄 이야기 하지 않고 준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뱀의 질문은 "계속해서 단수아닌 복수로서 "너희에게, 너희가" 둘 모두에게 질문한다. 

 

또한 6절에 보면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같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책임은 둘 모두에게있는 것이다. 

 

그의 기술 -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말을 어지럽힌다. 간교한 말로 유혹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만 왜곡시켜서 혼동시킨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금했다. 

 

40일을 금식하고 있던 예수에게 나타난 사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공격한다. 

예수님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신다. 

 

사탄은 약점을 공격한다. 

그리고 성경의 언어, 신앙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교묘하게 왜곡한다. 

 

이러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 

요셉 - 그 자리를 피했다. 말을 섞다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예수님 - 정확한 말씀으로 그 공격을 대응했다. 

야고보사도 -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내일 - 유혹의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해서 

 

찬양) 마귀들과 싸울지라 

 

 

창세기 2장 18-25절 돕는 베필 

 

돕는 베필 (에제르 크네그도): 에제르 (도움)+크네그도(동등한)= 베필인 돕는 자 

* 동등하게 돕는 자 (상하관계나 우월-하등한 관계가 아니다)  

* 하나님의 도움을 주는 통로 

왜? 도움을 의미하는 에제르 단어는 원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부여된 속성이었다. 

 

시편 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시편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잘못된 오해 

창세기 1장에서 6일 째 창조된 인간 - 오직 남자만...

2장에 가서 하와를 만들다. 

 

5일째까지 창조하신 후 하신 말씀 - 보시기 좋았더라 

6일 - 인간을 만드신 후 하신 말씀 -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 가장 좋았더라 

어느 학자는 이것을 good 에서 best로 발전된 창조의 완성 

 

그런데 2장 18절의 표현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보시기 심히 좋았던 인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좋지 아니하게 된 것인가? 

창세기 3장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전 모든 것이 선하고 좋았던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좋지 않게" 표현된 구절.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는 우주적, 하늘에서 이루어진 창조 -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2장의 창조기사 - 2장 4절을 축으로 땅의 관점에서 일어난 창조기사 

공통점 - 인간을 가장 중심에 두셨다. 

 

1장에서 인간의 특별함 - 하나님의 형상 (Image of God) 

어떤 학자는 이미지라는 표현을 거울을 토대로 설명한다.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이 곧 이미지다. 

이 의미는 본질과 이미지는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맞상대, 파트너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사람을 세우셨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영적 존재라고 한다.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간 만의 특성이다. 

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을 왕같은 존재로, 에덴 동산이라는 성소에서 제사장 같은 존재로 삼으셨다. 

 

사람을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로 부터 생명을, 그리고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과의 적절한 거리를,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라는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을 넘지 말아햐 하는 긴장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파트너임과 돋시에 하나님과 같아 질 수 없는 그 인간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바로 돕는 베필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면서도 동시에, 친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만드신 것이 돕는 베필이다. 

 

18절에서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온다. 그리고 21-22절에 가서야 이른바 하와를 만드신다. 

그 사이에 논리상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등장하는데 19-20절에서 

각종 들짐승과 각종 새를 주시면서 아담이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붙이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곧 소유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아담의 소유 중에서 그에게 돕는 베필의 모양이 갖춘 자를 찾지 못하셨다.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움의 통로가 되는 존재를 찾지 않으셨다. 

 그래서 20절 끝에 가서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이지만 아담에게 돕는 베필이 없었다로 끝난다. 

 

21절에 가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는 표현을 쓴다. 그냥 잠드는 사이가 아니라 깊이 잠들다... 성경에 있어서 깊이 잠들다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전신마취를 하시듯 그가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 - 갈빗대의 의미는 beside- (옆에- 동등한)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를 보자 아담이 말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 달리 말하면 "그는 곧 나다"라는 표현이다. 비로서 동등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의 통로가 될 존재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비로서 사람은 남자 (이쉬)와 여자 (이샤)로 존재하는 둘이 한 몸을 이룬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는 표현은 다름이 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뜻 밖의 표현이 또 하나 등장한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면서 갑자기 그 둘의 부모를 이야기한다. 나중의 가정을 염두에 두고 삽입된 구절이라 해석하기도 하지만 부자연스럽다. 

이 때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독립하고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섬긴다":의 의미를 지닌다.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론을 이야기하면서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이 성경에서 세우신 기관은 오직 교회와 가정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신약에서도 구약에서도 가정과 교회를 구별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교회가 이루어졌고, 교회가 가정의 모습을 추구하였다. 

가정도 교회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며 서로에게 돕는 자로서 동등하면서도 하나되듯이 교회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동역하며 도울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창세기 2장 4-17절 에덴에 사람을 두셨더라  

 

1. 서로 다른 창조 이야기 (창 1:1-2:4a; 창 2:4b- 25) 가 나타내는 것 

  • 편집비평, 양식비평 - 두 개의 기사가 편집되었다.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창조에 대한 신화가 혼합된 것이다. 

   (JEPD) - 야훼문서, 엘로힘문서, 제사장문서, 신명기문서 - 성서 본문을 4가지 종류로 조각조각 내어버림. - 4가지 문서의 조합이라면 각각의 이전 문서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가설들만 있지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 

   -> 하나의 완성된 책, 성서로서 읽어야 한다. 

 

            (1:1-2:4a) 하늘이 중심이 된 이야기, 천지 창조의 이야기, 거시적, 우주론적 관점   

            (2:4b~    ): 인간 창조를 중심으로 땅의 이야기, 미시적, 인간론적 관점   

              → 두 가지 창조의 이야기는 상호 모순되거나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역할

            창세기 1장 2절)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더라. 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은 이유- 초목이 없고, 채소가 나지 않은 이뉴 ->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땅의 주체로서 인간을 창조하심.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땅 

            1장 - 모든 것을 다 예비한 이후에 인간을 지으심 -> 인간을 위해 

            2장 - 인간을 짓기 전에는 다른 것을 완성할 수가 없다. 사람이 있어야 관리가 된다.-> 시간적 표현이 아니라 의미적 표현이다.                

 

2. 하나님의 호칭              

 

3. 인간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땅의 흙-> 아파르 (땅의 먼지, 티끌) + 숨, 호흡 (니쉬마)= 사람  
  • 생령: 존재 (내페쉬) + 살아있다(하야) = 살아있는 존재 
  • 티끌같은 먼지에 하나님의 호흡이 입혀져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그 숨을 불어넣으시어 다시금 산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을 외면하는 자는 또 다시 티끌같은 존재이다.  

 

4. 에덴 동산 

8절 -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 창설하다- 텐트를 치다, 심다 (개척하다) - 성소로서의 동산

에덴 -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모습 

그 지으신 사람을 두시니라 - 임명하여 고정시키셨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시는 자로서 인간을 두셨다. (제사장) 

 

에덴 밖에는 사람이 없었는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에덴 밖으로 추방된다. ->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에덴 밖에는 하나님이 통치하시지 않는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창세기 4장의 기사) 

 

그럼에도 에덴은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거하며 교제하는 공간 - 사람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신 공간- 바로 그 곳이 하나님 나라이다. 

 

왕(1장)이요, 제사장(2장)으로 세우신 인간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9절 -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읓 알게 하는 나무 

생명나무 - 그리스도 - 내가 온 것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풍성케 하기 위해 왔다. 

              - 하늘의 만나 

              - 금함이 없고 언제나 먹도록

17절 -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선악과 - 내가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하나의 조건 - 하나님의 임명 아래에서, 하나님의 위임 아래에서 

그런데 그 결정을 내가 한다. 선악과는 곧 하나님의 위치를 빼앗으려는 죄악의 시도 

모든 죄가 그 곳에서 나온다. 

 

동산중앙 - 교회된 성도로서의 가장 중심 

두 나무 - 생명나무 -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 선악과 - 하나님의 주권 

            

5. 네 강 

창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창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에덴에서 4개의 강이 발원합니다. 

강의 이름들을 보면 에덴에서 발원한 물의 목적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강 비손은 “퍼진다” 둘째강 기혼은 “넘친다” 셋째 힛데겔은 “빠르다” 네 번째 유브라데는 “열매를 맺는다”입니다.

 

에덴 - 하나님의 성소ㅡ 그곳에서부터 나온 물(은혜)가 온 세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넘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 - 하나님의 창조의 큰 사진 

 

요한계시록 22장 1-5절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 결국 다시 오실 예수님이 하실 일 - 에덴의 회복, 새 하늘과 새 땅은 다름아닌 에덴의 회복이다. 

 

찬양)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창세기 2장 1-3절 마지막 날의 창조, 안식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 지니라 

천지 - 첫째날 부터 셋째날까지의 창조 - 하늘과 땅, 궁창위의 물과 궁창 밑의 물, 바다와 땅. (천지- 공간)의 구분

만물 - 천지에 채워놓으신 모든 생명체들 

 

그런데 만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 - 챠바. "군대"의 의미 

실재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흠정역 성경에서는 1절을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만물을 군대라는 용어를 써서 기록하였을까? 여러가지 설명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군대는 곧 "명령과 순종의 관계" 

하나님을 만물에 대한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만물의 주, 만유의 주, 만군의 주로 불리게 하는 통치자,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에 순종한다. 

단 고유한 방법으로 창조된 인간만을 제외하고는... 

해와 달과 별들이 한치의 착오도 없이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 아래에서 순종한다. 만약 그러한 행성이 불순종한다면 곧 사람에게는 큰 재앙이 닥친다. 그들에겐 자유의지가 없다.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들,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사람의 질병이 전이된다. 자연 안에 사는 동물은 비만이나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사람의 병이 동물에 전이된다. 

이제 동물의 병이 사람에게 전이될 적에 큰 바이러스가 발생한다. 불순종의 재앙이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재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했을 때에 그들은 히브리인들과 더불어 허다한 잡족들이 모인 마치 "혼돈과 공허, 흑암이 가득한" 백성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택하시어 출애굽시켰다. 

그들이 광야에서 한 것은 군사훈련이 아니었다.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한 번도 군사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하나님의 군사"가 된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여호수아 5장에 등장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끼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 5:13-15)

 

가나안의 첫 전투 - 바로 여리고성 전투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왔는데 그는 바로 하나님의 군대장관이었다. 여기 나온 "군대"가 바로 창세기 2장에 만물로 번역된 "챠바"이다. 

그의 군대는 누구인가? 그는 천사들의 군대를 데리고 왔는가? 아니다. 그는 군대장관이요 그의 군대는 바로 여호수아를 비롯한 히브리 족속이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한 훈련은 무엇이었나? 군사훈련이 아니라 성막을 통한 예배훈련, 십계명을 통한 말씀 훈련이다. 예배와 말씀 - 바로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가기 위한 훈련이다. 

 

2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본문 2절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던 일- 바로 창조의 일입니다. 

창조의 사역은 여섯째 날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 인해 학자들 사이에서 마치신 날이 여섯째 날이냐, 일곱째 날이냐 이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치다라는 동사의 시제가 "had finished the work"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완성하시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던 일의 완성된 날이 일곱째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창조의 사역은 인간의 창조를 통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안식을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안식-안식일 - 모세오경에서 십계명의 대표적 구절. 십계명을 상징하고 율법을 상징하는 가장 큰 계명 - 안식일 

예수님 당시에도, 더 나아가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율법 - 안식일. 왜? 그들이 실패해서 멸망을 경험했기에... 안식일에 대한 하루 계명들이 엄격히 지켜졌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아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란 것을 명확히 합니다. 

안식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노예입니다. 노예는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가 아닌 동역자로, 자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렀습니다. 

 

안식은 무엇의 결과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무엇입니까? 혼돈과 공허, 흑암으로 상징되는 삶에 "빛과 어둠을, 하늘과 땅을, 땅과 바다를 구분짓고 구분된 곳에 거하게 하심의 결과가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별하시고 거하게 하시는 것이 안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라 

안식일이 다른 날과 다른 점 -

다른날 - 보시기 좋았더라 

인간을 창조하신 날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안식일 - 하나님이 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은 구별시키셨다. 다른 날과 다르게 하셨다. 

복되게 하셨다 - "바락"이라는 히브리어 

하나님-> 인간  (복)이라는 개념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쓸 때- 무릎꿇다, 찬양하다. 예배하다. 

결국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예배하고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만물, 군대가 되기 위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 

 

복있는 사람은 ---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복이 되게 하신 날 -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되게 하신다. 순종하여 하나님의 군사가 되게 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꼭 안식일만 중요한가요? 모든 날이 예배하는 날이고 동행하는 날이지....

그러나 똑같이 보시기 좋았지만 오직 안식일을 구별하셨다. 그리고 복이 되게 하셨다. 

안식일을 통해 다른 날도 복이 흘러가게 하신다. 

 

묵상) 

1. 만물은 곧 하나님의 군대다. 당신은 하나님의 군대에 소속되어 있는 군사입니까? 

 

2. 안식일을 구별하여 복이 되게 하셨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복있는 자요,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곧 노예다. 라는 말을 깊이 묵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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