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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28-30절 쉼과 멍에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교회 다니시는 분이라면 누구나가 들어본, 그리고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냥 말씀을 읽기만 해도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같이 함께 28절만 읽어볼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중에서 몇을 오라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자격을 가진 자보고 오라는 것도 아니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빠짐없이, 예외없이 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해서 피곤한 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자에게 나에게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신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쉼, 안식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뒷 구절로 가면서 말씀이 조금 이상해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시더니 뒷 부분에 가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다가 "내게 배우기"까지 하랍니다. 

멍에가 무엇입니까? 

소나 나귀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서, 혹은 밭을 갉게 하기 위해서 등에 받치는 나무장치입니다. 

자유한 동물에게는 멍에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다시 말해 주인의 일을 대신 해주는 가축에게 멍에를 지우는 것입니다. 

그니까 세상에서 힘든 사람들 모아서 쉬게 해 주겠다고 불러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니까 앞 구절에서 은혜를 받다가 뒷구절로 넘어오면 "에이 교회오니까 짐하나 더 얻어가지고 가네...."그러면서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왜 이리 많냐...그러면서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간다고들 합니다. 

 

세상살이 힘들어서 교회 왔는데 세상살이하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도 않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채우려니 짐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 하신 적 혹시 있으십니까? 

 

이것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깨달아지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은 또 다른 짐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세상의 짐은 여전히 있고 교회의 짐만 얻어갈 지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짐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멍에가 무엇인지를, 그 멍에가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 와서 배우고 메라고 하시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그럼 세상에서의 수고와 짐에 대해서 먼저 살펴봅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저마다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권력자나 힘없는 자나, 부자나 가난한 누구나 다 나름대로 인생의 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일로,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가사일과 자녀 양육일로, 어떤 사람은 학생으로 전공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목회자들 또한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영적 책임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 문제로, 질병으로, 장래 염려로, 자녀 문제로, 혹은 인간관계의 억눌림으로 그리고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짐에 눌려 살아갑니다.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수고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되어 평생 육체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만남을 통해서 남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 빚을 내고 평생갚아야 하는 금전적 짐을 지고 가는 사회가 현대 사회입니다. 

이렇게 수고하며 살다 죽는 것이 정해진 인생입니다. 창세기 3장7,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3:7,19). 

 

수고는 끝이 없습니다. 종신토록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될 것 같지만 살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이 짐을 피하면 가벼울 것 같지만 또 다른 짐이 주어집니다. 최후에는 죽음이란 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을 따먹고 죄를 지었습니다(창3:17). 결국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을 좇겨나게 되고 평생 수고하며 살다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 17-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육신은 화려하게 사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죄로 인한 무거운 짐 때문에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많이 소유 할수록 ,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짐이 더 큽니다. 가인이 죄를 짓고 유리하는 자가 되어 쫓겨날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창4:13). 위대한 장수요, 위대한 왕으로 부족함이 없던 다윗은 죄로인한 영혼의 고통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죄의 짐 외에도 율법의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인들이 가지는 짐 - 뜻대로 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죄의식, 자존감 상실, 무력감....

 

율법을 받은 백성은 이스라엘이지만 이방인들은 양심이라고 하는 마음의 율법을 멍에로 지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생명을 얻고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이처럼 율법은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저주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 율법을 지키는 일로 하나님의 의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이처럼 말했습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니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해결은 주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자기의 문제만 보이고 죄만 보이니 얼마나 그 짐이 더 커지겠습니까? 

 

2.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쉬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세상에 누가 이런 초청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도, 부모도 우리 짐을 대신 져주지 못합니다. 세상에 훌륭한 스승들도 우리 인생의 짐은 져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짐을 대신 지고 쉬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그 분이 어떻게 우리를 쉬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까? 

 

1) 죄로부터의 자유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요일 1:9) “아멘.”  

 2)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근심,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죄뿐 아니라 장래에 대한 염려, 근심 걱정의 무거운 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능히 이기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인생을 사는 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문제입니다. 이것도 주님께 내려놓으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고 내 인생 전체를 맡기지 못하면 평생 인생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업이 잘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자녀들이 좀 늦게 들어와도 혹시?” 염려가 됩니다. 우리는 애당초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자녀들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잠언 16: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주님께 맡기면(commit yourself to the Lord) 우리 인생은 더 이상 운명이 되지 않습니다. 짐이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주님의 멍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9,30절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분이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앞뒤가 안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씀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의례히 하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잘 살펴야 합니다. 

멍에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짐을 지거나 밭을 갈기 위해 메어 놓은 장치입니다. 그런데 그 멍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 작동을 합니다. 주인없는 소나 나귀에게 멍에를 메지 않습니다. 주인이 뒤에서 움직여야 작동하는 것이 멍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멍에를 매면 따로 갈 수 없습니다. 멍에를 매는 것은 주인과 한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주님과 멍에를 메는 것은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님이 가시는 대로 가고, 주님이 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멍에를 메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무 멍에나 메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약한 자와 멍에를 매면 나도약한 자가 됩니다. 무지한 자와 멍에를 메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악인과 멍에를 메면 악한 자가 됩니다.

 

세상의 직장 - 멍에를 줍니다. 때로 나의 의식주의 문제, 자기 성취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양심을 팔고, 건강을 헤치며, 기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킵니다. 우리에게 삯을 주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받는 삯 이상의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4.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두가지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멍에를 주시는 분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주시는 멍에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쉽고 가볍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2-3) 

 

주님을 믿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실제로 함께 멍에를 메고 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멍에를 메지 않고 내가 하려고 하면 그렇습니다. 일하는 것도 , 공부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도, 예배드리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양들 섬기는 일도, 제자양성 하는 것도, 세계선교 하는 일들을 내가 하려면 무거운 짐이 되지만 주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되고 오히려 힘이 됩니다. 주님은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십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 그것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멍에라는 것입니다. 내게 배우라. 무엇을 배웁니까? 그 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멍에- 신앙인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멍에- 그것이 뭐냐? 결국은 예수님의 성품, 온유와 겸손.

 

(1)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메야 할 멍에는 온유입니다. 온유란 일반적으로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로 끄지 아니하시는 마음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되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까지 하신 그런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멍에- 신앙인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멍에- 그것이 뭐냐? 결국은 예수님의 성품, 온유와 겸손.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유란 단지 착한 심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유는 그 원어의 뜻이 들판에서 내 맘껏 다니던 야생마가 주인에게 길들어지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길들어진 야생마가 바로 온유함의 뜻입니다. 무엇에 길들여져야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진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성경에서 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자라로 칭함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

 

왜 그가 가장 온유한 자인가? 바로 말씀을 받은 자요 그 말씀 안에서 훈련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온유한 자는 자기를 꺾고 말씀을 따르는 자요,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하는 자입니다 . 

온유한 자의 반대를 성경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 또한 자기 의로 충만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누가 온유한 자인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자, 바로 겸손한 자임니다. 길들어지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자는 결코 길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겸손과 온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삶으로 이 온유함과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겸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온유)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온유와 겸손의 정점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1) 엘리야 (여름 수련회때 준비하고 있는 말씀) 

[왕상 19:9-10]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어느 때인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 선지자 앗세라 선지자를 죽이고 무언가 상황이, 나라가, 이스라엘이 변할 줄로 기대했다가 환경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오히려 이세벨이 위협하며 달려들자 굴 속에 들어가 있는 엘리야

 

열심이 유별하오니- 마치 제자들처럼, 바울처럼....

                 - 다른 사람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오직 굴 속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모습만.... 

                 

그 때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 

로뎀나무 가에서 그를 쉬게 한 후에

호렙산으로 인도해서 그곳에서 그와 교제하시는 장면. 

자기 열심으로 충만했던 엘리야를 말씀과 쉼이 있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창세기 1장 (말씀이 임하기 전의 상태 - 혼돈과 공허

그 위에 말씀이 임하니 창조의 사역이 6일동안 임하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 - 쉼과 안식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 여전히 끝없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짐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무거워지고 있는 삶을 살진 않는가?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멍에를 메고 있는가? 주님이 당신을 움직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가 원하는 데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이 목자 되신 삶은 쉼이 있는 삶이다. 열매가 있는 삶이다. 그 열매는 외부환경과 상황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온유와 겸손의 열매이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팔복의 말씀에서 유일하게 땅의 복에 관해서 하신 말씀- 온유한 자에게 주신 축복 - 말씀에 길들여진 자- 아브라함 - 땅의 약속

우리가 왜 신앙생활에 실패하는가? 왜 주님의 멍에를 배우지 못하고 메지 못하는가? 결국 온유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 안에서 자유합니다. 물을 떠나면 물고기는 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으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입니다. 

영적존재가 영적 생활을 잃어버리면 물질에 갇힌 존재가 되어집니다. 자기 욕망에 갇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자유하고 말씀 안에서 우리의 존재는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시는 분도 겸손과 온유한 선하신 목자요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도 바로 온유와 겸손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얻으시는 저와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젊은 청년 - 결혼하려 하지 않는 세대. 자기 만을 위하는, 섬기는 시대 

결혼해라 - 나 너무 바빠요.. 연애하면 책임져야 하고, 그리고 얽매이는 것이 많아서 싫어요.그리고 실재 그의 삶을 보면 바쁘다. 

회사생활하면서 틈틈히 학원에 등록해서 자기 개발하고, 교회생활, 취미 생활....

 

그런데 어느날 그가 연애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너처럼 바쁘게 사는 녀석이 언제 연애하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밤새 통화해도 또 보고 싶고, 그리고 전화하느라 잠도 잘 못자지만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 일할  때도 더 힘이나요....

 

그런 사랑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주님 사랑해서 손해보는 자 보질 못했다. 

주님 사랑해서 내 인생 망가졌어요 하는 사람, 때로 사람에게 실망해도 주님께 실망해서 떠난 사람 보질 못했다. 

왜?  그 분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을 사랑하면 우리 안에도 그 겸손과 온유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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