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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와 엘림 (출애굽기 15장 22-27절) 

 

우리가 읽은 본문의 바로 전장 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사건을 다룹니다.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세례를 받은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세상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건이고 그것은 홍해를 건넘으로 인해 이제 뒤돌아 서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이에서 그들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았고, 또한 그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별하시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열번째 재앙이었던 애굽의 장자가 죽고 오직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만 그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건은 세상을 추구하는 삶의 최후를 보여 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을 체험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요, 역사의 주권자요,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홍해 사건을 다룬 14장의 마지막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15장에 들어가면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이 나옵니다. 이들은 바로 및 애굽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로 시로 찬양을 합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이제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이제 인도하시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쁨이 걱정으로, 원망으로, 고통으로 변하는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입니다. 

작심3일이듯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이제 그 분을 믿기고 세례 받고 결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3일만에 좌절과 고통과 원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출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처음에 성경을 읽을 때는 무슨 백성이 이리도 우유부단 할 수 있을까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언제고 고작 3일 지나서 인생의 쓴물을 보았다고 있는대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백성 편에서 볼 때에 그들의 불평은 한 편 이해할 만하기도 합니다. 물이 없이 사막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장정만 60만 추정 이동 인구 200만이나 대는 대규모 사람들이 가축과 함께 마실 물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겠습니까? 억지로 참아가며 광야길을 걷다가 며칠 만에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물을 발견했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으니까 바로 모세를 향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바로 3일 전에 목격했던, 체험했던 전능하신 하나님, 만물의 통치자 하나님이 물이 없자 바로 무력하고 자기랑 상관없는 하나님, 당장 무엇을 마실까 염려해야 하는 인생으로 전락해버립니다. 

 

3일동안 뜨거운 사막에서 물이 없이 지내는 상황. 누구라도 원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도 아닌 3일을 물이 없이 지내야 했다. 

그것도 단지 가만히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사막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3일 만에 만난 물이 먹을 수 없는 쓴물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아무리 자신들이 눈으로 본 하나님이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당장의 삶의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너무도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럴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은 무엇인가?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 대다수가 선택하게 되는 자연스런 결과. 

그런데 모세가 한 선택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 신앙인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그런데 대다수가 신앙생활 중에 이런 쓴 물을 만났을 때에 기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반응인 원망과 불평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켜 그 나무를 물에 넣게 합니다. 그 나무를 넣자 물이 달게 됩니다. 

 

(출 15: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이스라엘 역사- 실재 사건임과 동시에 하나 하나가 마치 시처럼 영화처럼 상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장면 장면들을 삽입하면서 나중에 그 장면이 무슨 암시를 주고 의미를 주는지를 관객과 함께 나눕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는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하나님이 주관하신 신앙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먼저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것은 "한 나무"의 의미입니다. 

유대교 주석은 이 나무를 그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의 대다수의 주석가와 신학자들은 이 나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낸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닮는 것- 신앙생활의 목적 

그 목적을 잃어버릴 때 우리가 빠지게 되는 함정 - 열심히 믿는데 고난을 당하면 시험들고 원망하는 것 

그런데 그 때 예수를 바라볼 때 - 고난마져도 인생의 단맛이 된다. 왜? 내가 예수를 따르고 있구나, 내가 에수를 닮고 있구나. -> 내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예수없이, 십자가 없이 신앙생활 하는 자들에게 신앙의 여정은 마라, 쓴물입니다. 

힘들기만 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할 때는 찬양하고 즐거워하지만 쓴물을 맛볼 때면 언제그랬냐는 식으로 험한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뭐기에 나한테 쩔쩔매야 합니까? 내가 뭐길래 하나님이 내 비위를 맞추어 주어야 합니까? 

 

(출 15: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거기서: 어디서? 예수 없이 살아갔던 신앙인들에게, 십자가 없이 하나님을 부렸던 그런 사람들에게

오직 믿음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을 알게 하신 뒤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 가장 먼저 주신 법도와 율례

- 시헙하신다 -> 떨어뜨리고 가르기 위해? 

                  -> 그 다음 단계의 신앙으로 넘어가게 하기 위해... (입학시험) 

 

(출 15: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들을 것이냐? 신앙 생활은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듣는 것이다. 들음이 없는 신앙생활은 다름아닌 우상숭배다. 미국 사람들. 교회 나가지 않아도, 순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예수의 복음. 난 다 안다. 신앙생활은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 의: 관계가 바른 것. 하나님과의 관계, 
  • 귀를 기울이는 것은 - 집중해서 듣는 것,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 경청- 존경하며 바라보는 것.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유언을 듣듯이 내 모든 신경을 모아서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것. 
  • 그리고 지키는 것. 
  • (롬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럴 때 일어나는 것- 치료하는 여호와다. 여호와 "라파"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애굽의 가치관, 세상적인 가치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니까? 근본적으로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계속적으로 마라, 쓴물로서 다가오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나뭇가지는 곧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것. 

날마다 말씀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경청하고 따르며 행하는 것. 

 

그럴 때에 인도되는 곳 - 엘림

엘림의 뜻- 큰나무.  엘림이 곧 나무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었고 그분의 제자가 된다.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 

제자공동체, 교회 공동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 12제자와 70인의 문도.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랐던, 예수님과 함께 동거했던, 동행했던....그 분의 제자들. 

 

복있는 사람은... 

(시 1: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마 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하나님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그러면 또 묻습니다. 

제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듣고 순종하며 따르겠습니까? 

 

내 길, 내 방법, 내 목적을 버리고 그 분의 길, 그 분이 정하신 통로, 그 분이 정하신 목적, 사명을 향해 나가시겠습니까? 

 

그 분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 분의 계획은 완전하십니다. 

그 분께 내 계획을 맡길 때에 참 평안이 임합니다. 

 

엘림을 지나서 하나님께서 곧바로 하신 일은 만나를 내리시는 일.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 

날마다 새벽마다 그 말씀 가지고 나아가는 것.

그 말씀 듣지 못하면 하루를 살아갈 수 없없다.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4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으로 그들을 영육간으로 먹이신다.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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