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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1993-1997 대학시절

비가

by 소리벼리 2012. 8. 23.

비 가

 

1. 나에 대한

 

보고 싶다.

네 존재 뒤에 숨어 있는 너의 모습을,

너를 찾아 들어가 보지만

갈수록 험해지는 네 마음의 구조가

널 숨긴다.

 

찾을 수 없는 너의 존재는

널 슬프게 만들고

날 슬프게 만들고

 

슬픈 가운데 만들어진

또 하나의 매듭이

더 깊은 곳으로

널 감추어 놓는다.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가

오히려 널 웃게 만들고

웃어버린 너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구조 속으로

사라져간다.

 

 

 

 

 

 

 

2. 너에 대한

 

내가 너라는 존재라면

난 널 사랑할 수 없겠는데

네 안에 내가 있기에

난 날 숨기려는 모양으로

널 사랑해야 한다.

 

네 안에 든 나의 모습은

나를 더욱 더 검게 만들고

그 검은 내가 네 안에 있기에

넌 그런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똑같은 존재가 숨겨있다는 것은

서로를 순수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랑을 순수하지 못하게 만든다.

 

너를 볼 때마다

그 속에 울고 있는

나를 본다.

 

 

 

 

 

 

 

 

 

 

 

 

3. 삶의 이유

 

지구가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삶이 돌아간다.

 

인식하지 못하는 내가

돌아가는 지구를 만날 때마다

또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후회한다.

 

계속 돌아서 끝없이 반복되지만

너무 돌아 낯설기만 한 세상이

무서워서 운다.

 

너무 낯설어 버려

난 돌아가는 나의 삶을 멈추려하지만

삶이 멈추려면

내가 멈추어야 하는데 내가 멈추려면

지구가 멈추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내가

슬퍼서 운다.

 

 

 

 

 

 

 

 

 

4. 마지막

 

머무르지 말라 한다.

그게 순수라 한다.

더럽지 않으려면

길을 가야 한다고

슬프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고

처절히도 말한다.

 

이젠 앉고 싶다고

지친 눈 깜박이며

머무른다 하면

그저 웃기만 한다.

허락지 않는 슬픈 웃음이

날 움직이게 한다.

날 순수히 꾸민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다른 길로 간다하면

아니라는 침묵이 날 가게 한다.

그 길로,

그 어둠 속으로.

어둠이 있어라야 빛을 알 수 있다 한다.

어둠에 눈 아파야

밝음에 눈부실 수 있다 한다.

 

한 번도 울지 않고 웃기만 하는

당신의 슬픈 몸짓이

날 울게 만든다.

그 울음이 날 순수히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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