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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 :

조지 폭스와 존 버니언, 타락한 교회 밖에서 길을 찾다.

 

 

“Spiritual, but not Religious!" 곧,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는 이 문구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제도와 형식의 틀 속에 갇힌 종교를 거부하는 현대 미국인들의 신앙 풍조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엔 이 문구의 약자인 ‘SBNR’이 하나의 관용어가 될 정도로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도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가 아닌 듯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종교의 세속화와 타락과 변질이 SBNR의 성장에 핵심적인 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SBNR과 비슷하게 제도 교회에 대한 회의 속에서 영적 삶을 갈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위대한 영성가들은 제도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을 던져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안적 영성을 제시하며 제도 교회에 실망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깊은 하나님 신앙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절망을 넘어 하나님을 추구하였나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SBNR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와 희망을 제공해 줄 것이다.


 

조지 폭스와 침묵 속의 음성

목사들의 세상적인 생각은 내 삶에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뾰족집[교회]으로 불러들이는 종소리를 듣기가 괴로웠다. 그것은 마치 목사들이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시장의 종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최고의 주교에서 가장 낮은 사제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팔아 설교를 통해 벌어들인 그 엄청난 돈이란! 세상에 어떤 장사와 비할 수 있겠는가?

- 조지 폭스, 《조지 폭스의 일기》(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12), 91.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가 살던 영국은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영국의 기독교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여전히 가톨릭의 제도와 형식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국교도’와 가톨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청교도’로 분열되어 있었다. 공화정이 출현하면서 국교회를 지탱하던 왕권이 약화되자 장로교, 침례교(재세례파), 랜터파(Ranters, 열광주의자들) 등의 크고 작은 집단들이 각기 개혁을 외치며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다양한 분파의 출현은 오히려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지 폭스 역시 심각한 영적 혼란과 영혼의 방황을 경험했다. 그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교파의 여러 목사들과 구도자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지만 그가 만난 목회자들이나 구도자들은 폭스의 영적인 갈급을 채워주기는커녕 지극히 세속적인 모습으로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폭스에게 해결책으로 술과 흡연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폭스의 눈에 비친 성직자들의 모습이란 성직을 도구로 장사를 하는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성직자들이나 설교가들 중 아무도 그를 영적 혼란과 방황에서 건져주지 못했기에 폭스는 커다란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이 때 그에게 한 음성이 들렸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제 외부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너의 상태를 말해 줄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요동쳤다. …… 그리스도는 나를 깨우치셨으며 자신의 빛을 내게 주어 믿도록 하셨다. 그분은 내게 희망을 주셨으며 내 속에서 직접 희망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내게 그의 영과 은혜를 주셨다.

- 조지 폭스, 《조지 폭스의 일기》, 71-73.


 

줄곧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찾던 폭스는 1946년 어느 날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우리 인간은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내면의 빛(Inner Light)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은 그 내면의 빛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시며, 그들을 생명과 진리로 이끄신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이 체험은 곧 폭스의 소명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길에서 불러내어 새롭고 산 길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라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모이는 교회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교회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로 인도하라는 …… 세상의 예배들로부터 떠나게 하라는 …… 명령을 받았다.

- 조지 폭스, 《조지 폭스의 일기》, 88-89.


 

이것이 ‘친우회’ 혹은 ‘형제회(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면 ‘몸이 떨렸다’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퀘이커(Quaker)라고 불렀다. 그들은 기존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들, 이를 테면 예배 음악, 성직자들의 설교, 성례의식을 일체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말씀하시는 빛의 소리만을 듣기 위해 침묵하는 그들의 예배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교회의 제도나 다른 은혜의 수단들을 거부하고 직접적인 계시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조지 폭스는 당시 영국 국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개혁주의 목사들로부터도 핍박을 받았으며, 수차례 감옥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리고 퀘이커는 한국에서도 몇 차례 이단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퀘이커를 이해할 때에 영적인 갈급함을 호소하는 구도자들에게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한 분열되고 타락한 제도적 교회를 배경으로 발생하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의 퀘이커 교회들은 부분적으로 목회자나 리더들을 인정하고 음악과 같은 예배 형식 등을 수용하기도 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계통의 집회들이 요란한 음악이나 통성기도와 같은 ‘열광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지만, 퀘이커는 외적인 방법을 차단하고 철저히 침묵을 통한 자기 내면의 성찰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존 버니언과 이야기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저자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은 조지 폭스와 동일한 혼란기를 살았다.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버니언은 종교를 끔찍이 혐오하며 방탕하게 살다가 독실한 신자인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결혼을 하며 두 권의 책, 《보통 사람이 천국으로 가는 길》(The Plain Man’s Path to Heaven), 《경건의 실천》(Practice of Piety)을 가지고 와서 버니언에게 읽어 주었는데, 그는 이 책들을 통해 경건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주위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외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을 때, 버니언은 길을 지나다가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그들 안에 일어나는 영적 시험, 사탄의 방해,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거듭남과 같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사람들의 칭찬으로 은근히 자기 신앙에 자부심을 느끼던 버니언은 아낙네들로부터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영적 무지를 깨닫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버니언은 이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 속에 깊이 파묻혔고, 점점 더 깊은 진리에 눈이 뜨이게 되었다. 버니언은 급기야 그가 속한 작은 공동체의 설교자가 되지만, 이 공동체 역시 국교회를 반대하는 무리였기 때문에 12년간이나 옥살이를 하여만 했다. 《천로역정》은 이 수감생활 중에 남긴 역작이다.


 

나는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시대 신자들의 생활양식과 신앙생활에 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다가, 어느덧 그들의 인생 여로와 구원의 영광에 이르는 길에 관한 비유를 구상하고 20가지가 넘는 비유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까 20가지의 비유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 비유들은 불타는 석탄에서 튄 불똥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듯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 존 버니언, 《천로역정》(해누리 출판사, 2008), 14. 저자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버니언은 책과 성경,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통해 자기가 경험한 진리를 전하고자 했다. 갖가지 비유들과 이야기들로 구성된 《천로역정》이 세상에 나왔을 때에 어떤 이들은 원고를 없애라고 비난하였다. 이 책이 애매모호하게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익사시키고, 비유를 통해서 눈을 멀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버니언은 그들의 비난에 이렇게 맞선다.

내가 은유나 비유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진실성이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계명들 역시 상징, 은유로 주어지지 않았는가? ……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간직한 빛과 은총을 발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비유 속에는 채굴할 가치가 있는, 그것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서 채굴해야만 하는 황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묻혀있는 것이다.

- 존 버니언, <천로역정>, p. 17-18.


 

버니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은유, 비유, 이야기가 진리를 전달하고 경험하는 탁월한 매개 수단이라고 확신하였다. 조지 폭스가 타락한 제도 교회와 성직자들로부터 눈을 돌려 오직 ‘내면의 성찰과 침묵을 통한 직접적인 계시’에 집중했다면, 존 버니언은 ‘책과 성경’에 집중함으로써 그만의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같은 시대, 똑같이 국교회에 반대해서 거리에서 설교를 하다가 감옥에서 생의 한 부분을 보내야 했던 거리의 설교가, 폭스와 버니언은 같지만 다른 방법으로, 다르지만 순전한 영적 갈망으로, 혼란을 넘어 제도 교회 밖에서 길을 찾아 나갔다.


 

새로운 길을 찾아

잘 알려진 것처럼 개신교의 영어 표기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이다. ‘저항(protest)’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종교개혁(Reformation)은 이전 것을 허물고 다시(re) 형성(formation)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을 다시 형성한다는 말인가? 이미 제도화, 형식화, 세속화 되어버린 ‘죽은 종교’에 저항하여, 영적 순수성과 생동감을 가진 신앙을 다시 형성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러한 ‘재형성(reformation)’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어져야 할 신앙 운동이다. 기독교가 ‘비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3)도 이러한 개혁 정신을 계승, 실천하고 있다.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 말에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다며 비관하고 푸념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풍조를 ‘재형성’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라는 초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과거의 명성을 빛바랜 훈장처럼 달고 사람 없는 큰 건물만을 관리하는 ‘종교적인(Religious)’ 교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하여 SBNR도 품을 수 있는 영적인(spiritual) 교회로 생명력을 이어갈 것인가는 현재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시급한 과제이다. 조지 폭스와 존 버니언이 제도화, 형식화된 교회를 넘어 ‘침묵과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간 역사는 오늘 SBNR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정승구 /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며, 미국 프리몬트의 로고스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또한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 윤리학에 기초한 해석학적 영성을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생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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