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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 산책길...

힐데가르트의 '비리디타스' (복음과 상황 5월호 등재 글)

by 소리벼리 2013. 12. 7.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여성 리더십


        지난 2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모토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국내외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남성적인 이미지가 결부된 정체성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그것이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과거의 경제 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독재자의 억압과 착취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현재까지의 국정 수행 방식과 정책에서는 오히려 남성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다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해야 할까?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의 대부분은 엄마 같은 따뜻함’, ‘부드러움’, ‘섬세함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등의 추상적이고도 얕은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들은 단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는 통속적인 관념을 그대로 투사(projection)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도 이런 수준이라면,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 이른바 중세 중기 시대(High Middle Age)에는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교회에서는 남성 성직자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대체로 가정 안에서의 아내나 어머니로 제한되어 왔고, 그 역할을 넘어 사회에서 리더십을 보이는 여성들은 극단적인 경우 이단으로 정죄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몇몇 경건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요구된 아내 또는 어머니라는 제한된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중세의 여성들은 수도원에서 독신 수도자(anchoress)로 살거나, 베긴회(Beguins)와 같이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여성 공동체를 이루는 등 점차 다양하게 그들의 삶의 범주를 넓혀갔다.그리하여 이른바 중세 여성들의 영성 시대가 열리게 된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때의 여성 신비가들의 활동을 가부장적 신앙 체계에 대한 대안 영성’, 또는 남성 중심의 사고체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대안 영성, 새로운 신앙 운동의 중심에 섰던 여성이 바로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is Bingensis, 1098-1179).


 


빙엔의 힐데가르트와 비리디타스(Viriditas)

        

힐데가르트는 최초의 여성 수도원장, 전기가 남아있는 최초의 여성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특출한 인물이다. 그녀는 1098년 지금의 독일 영토인 뵈켈하임(Böckelheim)에서 한 귀족 가문의 열 번째 자녀로 태어나 가정의 십일조로 여덟 살 때에 수도원에 맡겨졌다. 힐데가르트는 여덟 살 때부터 환상을 본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사회 여건상 그러한 사실을 숨겨왔다고 한다. 그러다 마흔세 살 때에 네가 본 것을 적어 세상에 알리라.”는 강한 음성을 듣고, 그 후 10여년에 걸쳐 길을 알라(Scivias는 역작을 남겼다. 그녀는 신학자로서뿐 아니라, 작곡가, 시인, 의학자, 식품학자로서 다양한 작품과 저술을 남겼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비리디타스(viriditas)’는 그녀의 방대한 사상과 영성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비리디타스는 라틴어‘virtus’(virtue, ), vis(strength, ), 그리고 ‘vita’(life, 생명)가 결합된 말로 힐데가르트는 그녀의 다양한 작품과 글을 통하여 비리디타스를 녹색 생명력’, ‘푸르른 힘 또는 만물에 깃든 생명력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했다. 매튜 폭스(Matthew Fox)나 바바라 뉴먼(Barbara Newman) 같은 학자들은 힐데가르트의 비리디타스 사상은 이전의 남성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독특한 창조영성, 생태영성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힐데가르트는 비리디타스를 통해 모든 창조물 안에 하나님의 영과 그 분의 영이 전하는 치유력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어떠한 생명도 죽어야 할 운명에서 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은 바로 생명 안에 있습니다.따라서 한 그루의 나무는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수액을 통해 자라고, 하나의 돌조차도 그 안의 습기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자신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의 생명력은 생명을 낳는 능력, 즉 영원한 하나님의 비리디타스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 빙엔의 힐데가르트, 힐데가르트의 편지들(The Letters of Hildegard of Bingen), vol 1. Oxford Univ. Press (1994), p.95.


        힐데가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대우주 안에 존재하는 소우주이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다. 자연을 이루는 것들이 인간의 몸을 이루고 또한 정신을 이룬다. 몸과 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서 구원은 곧 몸의 치유와도 같다.그래서 힐데가르트는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악행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고 있는 자연의 탄식에도 귀를 기울였다.


만물의 요소들이 외쳤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지시해 주신 우리의 과제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악행을 저질러 우리를 파멸시키고 휘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악취를 풍기고 정의에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비리디타스는 눈 먼 인간 무리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 빙엔의 힐데가르트, 생명의 보상(The Book of the Rewards of Life), Oxford Univ. Press (1997), p.125-26.


        나아가 힐데가르트에게 있어서 음악은 잠시나마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자연의 빛과 소리에 자신을 개방하고 머무르도록 인도하는 기도이다. 음악은 전체 창조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도록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인도한다. 그녀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력, 비리디타스를 대하게 되는 통로이다. 따라서 힐데가르트는 예배뿐만 아니라 바른 식생활과 자연치료법, 보석치료, 음악, 그림이 모두 영성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에코페미니즘


        힐데가르트의 비리디타스 영성이 얼마나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지는 지구의 환경 문제와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최근의 에코페미니스트들(생태여성주의자)의 주장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생태학(ecology)과 여성주의(feminism)가 결합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여성의 차별과 자연의 파괴가 결국 동일한 원인에 기인하였음을 주장한다. 유력한 에코페미니스트 이론가인 밸 플럼우드(Val Plumwood)는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의 뿌리에는 결국 가부장적 위계질서,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도구적 세계관, 약자를 정복하려는 군사주의, 그리고 극대 이윤과 욕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상하 질서를 강조하는 서구의 가부장제에서는 인간/자연, 남성/여성, 영혼/, 이성/감정 등이 양극을 이루며 분리되어 있고, 이 구조에서 전자는 항상 후자보다 우월하다. 이러한 가부장제 안에서 강자(남성, 인간, 영혼, 이성)는 약자(여성, 자연, , 감정)를 통제와 억압을 통해서 정복하고 이용한다. 이것은 자연히 폭력을 통한 정복, 즉 군사주의적 해결책을 정당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군사작전이 이루어지는 전쟁터에서 특히 여성과 자연이 파괴되어온 역사를 여성과 자연을 타자로 보아온 가부장적 이원론의 결과로 본다. 이러한 억압의 구조가 극대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현대의 자본주의와 만날 때 자연 억압, 여성 억압은 그 극에 달하게 되어, 약자이며 타자인 여성과 자연이 착취의 대상으로 희생된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그 결과 지구 전체가 공멸할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종전까지의 이분법적 사고(여성=자연, 남성=문명)를 탈피하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이 모든 억압의 근원이 되는 자연 지배의 전통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으며, 자연과의 차이점은 물론 공통점을 가지고 지구에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힐데가르트와 마찬가지로 이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자연에 대한 관심과 회복을 통해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사회라는 생태계와 여성 리더십


        남성 중심의 질서가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던 중세 시대에, 힐데가르트는 그녀의 명성을 듣고 지혜를 구하는 수많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억압을 당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독특한 영성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여성 리더였다. 또한 그녀는 남성 중심,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여성과 자연의 희생이 정당화되던 시대에 모든 만물 안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력, 비리디타스를 발견하고,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모두가 동등하게 조화와 평화 속에서 사는 세상을 추구함으로써 창조 영성, 생태 영성, 그리고 에코페미니즘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이제 다시 우리 시대로 돌아와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여성 리더십의 발전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악재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힐데가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 고유의 통찰과 영성을 발전시켜 그것을 국정 수행에 적용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저 치마만 입는 수준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이미지로 치장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대한민국의 여성 리더십의 발전은 기회를 놓치고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말 것이다. 사실 청와대라는 곳은 여성들로 하여금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게 하고,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게 하는 일상생활과 단절되기 쉬운 공간이다. 또한 지도자라는 위치는 그 조직의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가부장적 권력에 의한 희생자로서의 여성과 약자들의 아픔을 잊기 쉬운 자리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매우 남성적이었던 지난 정부 집권 기간 동안, 4대강 개발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으로 자연은 신음하고, 중산층의 붕괴와 빈곤층의 확대로 대한민국 사회라는 생태계는 균형이 무너졌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이 단지 박정희의 딸로서만 역사에 남지는 않기를 바란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게는 훗날의 여성들에게 고유하고 여성다운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줄 역사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 이전의 남성들과는 다른, 여성 고유의 통찰과 영성으로 역사적 사명을 다한 힐데가르트의 비리디타스 영성이 우리 사회의 여성 대통령과 여성 지도자들에게 의미 있는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승구 /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 산책길’(spirituality.co.kr)의 연구원이며, 미국 프리몬트에서 로고스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성결교 첫 여성 목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성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미국 버클리 소재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박사 과정에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 윤리학에 기초한 해석학적 영성연구를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