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김이 없는 교회 공동체 (요한복음 21장 1-11절)
1. 배경 설명
(1절) 그 후에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2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후에
부활을 통해 20장 31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심을 믿게 하셨을 때에...
그 이전에도 고백은 있었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 믿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떨어진 믿음을 부활을 통해 다시 일으키신다.
그런데 그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음에도 제자들의 반응 -
디베랴 호수 - 요세푸스의 유대상고사, 갈릴리 호수는 게네사렛 호수, 혹은 디베랴 호수라고도 불린다. 다 같은 호수를 가리키는 명칭.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날이 새어갈 때 쯤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져라"하셔서 말씀대로 순종하셨더니 백 쉰 세 마리의 물고기를 잡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 성경을 좀 읽으신 분들은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에 장면을 떠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장면은 주일설교를 통해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누가복음 5장 1-11절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2. 두 장면의 공통점
1) 게네사렛 호수가, 요한복음에서는 디베랴 호수라고 불렀지만 좀 전에 설명드린대로 같은 지명.
2)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눅 5:5),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더니" (요 21:3) - 물리적인 시간의 밤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는 '영혼의 밤'을 가리키기도...
3)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 내용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주님의 말씀이 임했다..
4) 제자들의 순종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6),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 21:6)
3. 눅 5장 묵상
누가복음 5장의 장면은 베드로를 부르셔서 제자 삼는 장면 -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
그의 배에 오르셔서 -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주님이 되심, 베드로와 같이 3년간의 공생애 시작
- 주님과 동거동락하면서 그 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역
- 그런데 실수도 많고, 꾸중도 듣고, 마지막 십자가의 장면에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
-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신념이 철저히 깨지는 절망을 경험
4. 요 21장의 묵상
왜 처음으로 돌아갔을까? 주님과의 3년간의 동거동락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배우고, 보고, 순종했으면, 변해도 수천번은 변했어야 할 베드로와 제자들.
그것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보게 되고, 그 분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본 그들이 21장에서 너무도 초라하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며 사람 낚는 직분을 다 포기하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
주님은 부활했지만 이들의 삶에는 생명이 없어져 버렸다.
생명은 무엇인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에서 공급되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인데 예수는 부활했음에도 그들에게는 그 부활의 능력, 생명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20장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사역
1) 첫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 (20: 21-22)
그런데 그 파송(선교적 사명)과 성령의 사건은 사도행전2장에 가서 성취된다.
2) 두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29절)
지금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어도 왜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가? 주님을 보지 못하므로, 지금 내 곁이 있음을 알지 못하므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3)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31절)
너희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야 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 잃어버린 생명을 얻게 할 것이다. 하시면서 21장에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에 빠진 제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이 21장의 사건이다.
5. 첫 부르심과 부활 후 두 번째 부르시는 사건은 무엇이 다른가? (오늘 설교의 주제. 중심)
1) 그들은 지금 똑같이 "영혼의 밤"에 처해있다. 그런데 첫번째 밤은 예수 없이 지내던 그들이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밤이다. 두 번째 영혼의 밤은 늘 주님과 함께 했지만 지금 옆에 주님이 없어서 겪게 되는 "주님의 침묵, 주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혼의 밤이다. 은혜도 알고 말씀도 알지만 그 주님의 임재가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 믿는 자는 또 다시 영혼의 밤은 맞는다.
2) 누가복음 5장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주님과의 깊은 관계" 무리가 아닌 제자된 관계, 얕은 물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인되게 살아가는 깊은 신앙, 깊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제자로의 초대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의 부르심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하신다. 오른편에 던지라는 것은 바른 관계, 바른신앙,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다시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읽은 본문 뒷 부분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당부와 말씀
1) 네가 날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치라.
사랑으로 일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 주님이 하신 사랑으로 영혼을 구하라 .
2)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8절) - 네가 주인 되지 말고 주님의 주인되게 살아라. 베드로- 내가 언제 내 마음대로 행했습니까? 주님과 늘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동행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생각과 동기로, 어제 디모데전서 말씀처럼, 주님의 시각으로 일하라.
왜? 제자들의 동기 - 주님 옆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그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 십자가를 피해, 도망하던 모습...
3) 22절: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 다른 사람과 경쟁하거나 의식하지 말고 주의 사역 감당하라.
말씀을 들을때- 저사람은 어떨까, 저사람이 변해야 되는데 하지 말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따르라.
6. 주님의 약속, 보장
10-11절)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생선 - 그물을 내려 낚은 것 - 영혼 구원, 혹은 우리 삶의 열매
그런데 -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눅 5:6) 물고기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물이 찢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삶이 그것을 보여 준다.
지기 열심, 자기 생각과 신념으로 따르다가 십자가 앞에서 도망하고, 제자들을 이끌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되고, 생명을 잃어버린 21장 초반에 나타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 - 찢어진 그물의 상태다.
그러나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김으로,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성령을 통해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더 이상 찢어진 그물이 아니라 찢김이 없는 그물롯, 무기력하고 절망하지 않는 삶으로, 다툼이나 분열이 없는 교회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그 말씀 그대로 더 이상 제자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순교할 지라도 그들의 삶이 찢김이 없이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사랑의 공동체, 연합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주 동안 내년도의 목회의 방향과 표어를 간구하면서 묵상할 때에 주신 말씀 요한복음 21장 11절의 말씀이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장 11절)
- 올라가서 끌어올리니 (순종하는 공동체)
- 가득히 찬 큰 물고기 (열매맺는 공동체)
- 이같이 많으나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연합하는 공동체)
아직 이 말씀의 의미를 다 새기지 못했다. 성도들 모두가 내년에 우리 교회가 힘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찢어지지 않은 그물의 의미와 이를 위해 우리가 새기고 힘써야 할 것들을 묵상하며 의미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찢김이 없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며, 막연한 많은 수가 아니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열매들이 풍성한 우리의 남은 생이 되기를, 그런 2022년을 맞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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