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6:1-3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아 6:1)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아 6:2)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아 6:3)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1. 달라진 예루살렘의 여인들
1절: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아내의 찬사를 들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조롱하던 말(5장 9절)을 거두고 함께 남편을 찾아나서겠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도 그 남편이 얼마나 사랑받을 만하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언자 사람이 움직이는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지켜 볼 때...
술람미 여인과 왕이 서로 함께 할 떄- 부러워할지언정 그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없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잃어버린 자신의 주를 찾아헤멜 떄에 주위의 여인들은 5장에서 "네가 사랑하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를 그토록 찾는가?"하면서 그녀에게 다가옵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주를 설명하며 "이게 내 사랑하는 자요 내 친구다"라고 하자 함께 그를 찾으러 나섭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여인들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하며 함께 주를 찾기 위해 따라자서고자 합니다.
세상: 내가 무엇을 가지고 내가 얼마나 높아지고...그럴때 전도가 되고, 남들이 부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사람들이 감동받는가? 참 사랑의 모습이 이루어질 때..
술람미 여인: 자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분에 대한 설명, 묘사를 함. 이것이 전도이다.
우리의 태도: 내가 그 분을 믿고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전도를 할 때에도 오직 "나의 모습"에 집중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여도 온전하신 분은 그분이다. 그 분을 증거하고 그 분을 사랑할 때 모든 사람들은 그 분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끼고 찾아나선다.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라는 말을 보면 오히려 예루살렘의 딸들이 더욱 적극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기꺼이 나설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녀들에게 있어 술람미 여인의 신랑인 솔로몬을 찾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와 함께 찾으리라'라는 말에서 '함께'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서로 같은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참된 주, 참된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1) 사랑하는 자와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 속하였고'라고 하여 자기의 사랑의 감정을 설명하였고, 이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라고 하면서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3절). 즉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사랑하는 자를 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신앙생활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함께 거할 때에 성령의 열매가 일어나고 나의 삶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주님 안에 내가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정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오해하기 쉬운 것.
1. 내가 그 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나만 열심히 하면 그 분은 언제나 나를 받아주시는 분. 그 분은 상수, 변수는 항상 나.
-> 아니다. 내가 문을 열어도 그 분이 침묵하실 때에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통해서 더욱 주님의 주권을 이해하고 갈망하게 되어 있다. 그 분이 오실 때에 오시면 원하실 때 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2. 난 없고 오직 그 분이 날 다스리는 것.
-> 그 분은 내 자유의지를 꺽지 않으신다. 강요치 않으신다. 하나하나 나의 자원하는 심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원하신다. 내 의지, 상황을 넘어서는 그 분에 대한 신뢰는 나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는데 있는 것이지 정복당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난 스스로 내 의지를 정복함으로서 그 분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부인, 자기 포기: 이것은 스스로 부인하고, 스스로 포기하는 자원하는 순종함이지 결코 주님이 나를 정복하지 않으신다.
2) 신랑이 하는 일에 대해 그녀는 표현하기를 '양떼를 먹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양떼를 먹이는 일'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참 필요를 채워 주는 일입니다. 양떼를 먹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위치를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는 목자로 보았습니다.
②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한 마리의 양만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양들은 모두 그의 보살핌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목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그분이 바로 인류의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는 자마다 푸른 생명의 양식으로 배를 채울 것이며, 풍요로운 삶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백합화
백합화처럼 하나님을 믿는 생활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수한 생활을 상징하며 또 하나님의 돌봄 아래 사는 믿는 이들을 상징하고 있다.
백합화 같은 교회 생활은 보잘 것 없는 아주 낮은 위치의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을 그리스도는 타락하여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귀하게 여긴다.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은 너무도 중하고 귀한 표현이다. 다른 누군가를 통한 것이 아닌 내가 만난 하나님, 나를 구워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그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은 결코 아니다.
은사가 많고, 카리스마가 많은 몇몇의 신앙인들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증거하며 마치 자신만이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한 것 처럼, 자신에게만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말한다.
나의 하나님은 또한 우리 하나님이요, 당신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 크신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양 떼가 되는 것이다.
묵상질문)
1. 당신의 신앙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 함께 잃어버린 길을 찾아 나설 이가 있는가? 누가 나와 함께 주를 향한 여정에 함께 할 것인가?
2. 주가 나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주의 동산에서의 사역을 존중하는가? 나만의 주가 아닌 우리 주, 너의 주로서의 주님의 크신 사역을 기뻐하고 있는가?
찬양)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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