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내려오라
새해의 표어를 구하며 몇주일을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 라는 말씀을 주셨다. 아니 그 말씀 밖에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구절을 가지고 표어를 만들려니 영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새해에 진취적이고 발전적으로 "올라가라!" 라는 말은 모를까 내려오라니.... 그것도 속히 내려오라니... 아무리 말을 붙이려 해도 새해 표어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다. 며칠을 다른 말씀을 달라고도 기도해보고 마음 속으로 내년도 계획에 맞는 이런 저런 말씀들을 떠오리려 해도 막상 아무런 말씀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속히"라는 말에 생각이 꽂힌다.
어릴적 담장 옆에 나무 위에 놀던 때가 있었다. 어른 들은 항상 올라가지 못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이 보이지 않으면 나무 위에 올라가 놀곤 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 놀던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큰일 난 것처럼 달려와서 혼이 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혼을 내려 달려와서도 나무 위에 있는 아이들에겐 항상 "천천히 내려와, 조심히 내려와"하시곤 했다. 아무리 화가 나고 급해도 어느 누구도 "빨리 내려와, 말씀대로 속히 내려와"하는 어른은 없었다. 급하게 내려오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신다. 나이는 많아도 키는 아이처럼 작은 삭개오에게 '천천히', '조심히'가 아니라 '속히' 내려오라 하신다. 왜 그랬을까?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무로 올라갔다. 자기의 작은 키를 탓하지 않고 그는 주님을 보기 위해 올라갔다. 올라감은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다. 올라감이 없으면 그 은혜가 무언지 깨닫지 못한다. 올라가 본 자 만이 의로움이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 죄가 얼마나 무엇인지 깨닫는다. 올라감의 신앙이란 의로움을 향한 몸부림, 하나님을 향한 갈망, 자기의 연약함을 이기려는 싸움이다.
올라간 삭개오에게 주님은 속히 내려오라 하신다. 왜?
그 위에 머물러 있으면 갈급함이 곧 교만함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 서 있으면 남들이 다 낮아 보이고, 주님 마져도 내려다 보기 때문이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밑에 있다. 남는 것은 자기의 의로움 뿐이다.
신앙의 열심과 교만함은 순간이다.
어쩌면 교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는 올라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려오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열심내는 사람들이 남들을 향해 나는 이정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말하면 싸움이 된다.
올라감이 없으면 주님을 보지 못했듯이 내려오지 못하면 주님과 함께 거하지 못한다. 사람들과 함께 사랑할 수 없다.
삭개오의 올라감과 내려옴 속에서 슬며시 영성의 오랜 두 갈래 길, 긍정의 신앙과 부정의 신앙을 떠올리게 된다. 상승의 신앙과 자기 부인의 신앙을 생각하게 한다.
"아....!"
주님의 말씀엔 항상 깊음이 있다. 감사하며 한달간의 표어를 향한 씨름을 마칠 수 있었다.
"속히 내려오라!"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표어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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