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역사의 시작 (사무엘상 1장 1-8절)
사무엘 하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구약에 있어서 구원의 모델이라고 하는 출애굽 사건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광야생활을 거쳐 드디어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이라는 축복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갔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화로서 타락하게 되는 과정이 사사기서이다. 사사기서의 주제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더라"
그리고 그 왕의 등장을 알리는 성경이 룻기와 사무엘서
룻기는 이방여인이었던 모압여인 룻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참된 왕으로 불리우는 다윗의 조상이 되는가하는 내용이고 사무엘서는 어떻게 다윗이 세워지냐를 다룬 책입니다.
사무엘은 실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던 그 처소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부르기도 하고, 모세 이후의 첫 대 선지자로서도 여겨지며,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과 다윗을 기름부어 왕을 세운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사사에서 선지자로, 왕정국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어찌보면 온 인류의 참 왕이신 예수를 예비했던 세례요한과도 같은 역할이 바로 사무엘 입니다.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부모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1절에 보면 사무엘의 부친인 엘가나를 소개합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가 있었는데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었더라." (1절)
이 족보가 나타내 주는 것은 그가 에브라임에 살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레위 족속인 고핫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다음에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지만 레위 지파에게는 따로 땅을 나누어 주지 않고 6개의 도피성을 비롯한 전국에 퍼져 살게 하였습니다.
레위인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전에서 예배를 집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에 거주하지 못하고 전국에 퍼져 있는 레위인은 퍼져 있는 장소에서 이른바 산당의 예배를 집례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러한 산당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고 쉽게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기 일수 였습니다. 그나마 경건한 제사장들은 해마다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재교육도 받으면서 그들의 경건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엘가나도 그런 레위인이었습니다. 레위인 이었지만 실로에서 집례하지 못하고 멀리 에브라임 산지에서 살며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속된 말로 하면 중앙에서 떨어져 변방으로 밀려난 레위인이었습니다.
엘가나는 패역한 시대에 나름 레위인으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코자 한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두가지 큰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
1) 두 아내: 한나와 브닌나....사랑하는 아내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해서인지 당시의 문화 때문인지 엘가나는 둘째 아내 브닌나를 두었는데 브닌나는 자녀를 생산한 여자였습니다. 문제는 이 두 여인 사이에서 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 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2) 두 번째의 문제는 영적인 공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매년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매년 가는 이 행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유도 있지만 레위인으로서 영적으로 교육받고 무장받고 돌아와 자기 고장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교육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니까 지금 실로의 제사를 맞고 있는 제사장은 홉니와 비느하스 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로 성전에서 음행을 저지르며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패역한 제사장들입니다.
지금 훌륭한 제사장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돌아가도 한 해 동안 사람들을 인도하기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그를 인도하고 지도하는 자들이 가장 부패하고 패역한 제사장이라면 정말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자들이 예배를 인도한다는 것은 엘가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불행이었습니다.
- 엘가나의 두 아내인 한나와 브닌나에게도 행복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첫째 아내였지만 자녀가 없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자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식의 의미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녀의 영혼을 괴롭히고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한나의 이름은 "은총"이라는 뜻인데 자식이 없으니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하나도 없는 듯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반드시 합당한 기업과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어딜 가서도 떳떳하지 못했고 남편이 사랑해도 그것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아무런 열매가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사람구실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느라 브닌나와 그 자녀의 분깃보다 갑절이나 그녀에게 더 주며 물질적으로 그녀를 위로하지만 이러한 영적인 허전함은 남편의 사랑으로도, 남편이 주는 갑절의 물질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둘째 아내인 브닌나는 자녀를 가진 아내였습니다. 4절에 "그의 모든 자녀에게"라는 표현을 보자면 브닌나는 여러명의 자녀를 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녀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남편의 사랑은 언제나 자신이 아닌 한나에게 가 있습니다. 여러명의 자녀를 낳아도 항상 한나가 더 많은 사랑과 보상을 받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 여자에게는 수치 중의 수치 입니다.
한나와 브닌나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마치 야곱의 두 아내인 레아와 라헬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아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열매맺지 못하는 아내.... 두 여인 모두 행복할 수 없는 여인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이 두 여인이 앙숙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채워지지 않는 불행한 삶을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면 그나마 평안할 텐데 사랑받지 못하는 브닌나는 "한나를 격붖ㄴ하게 하여 심히 괴롭게 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레위인인데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집례하지 못하고 에브라임 산지에 머물고 있는 엘가나... 그나마 한 해의 영적인 무장을 위해 실로로 오면 홉니와 비느하스로 인해 더욱 영적인 침체를 벗어 날 수 없는 엘가나
남편의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은혜를 잃어버린 은혜라는 이름의 여인 한나
자식이 있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한 여인 브닌나...
이들의 모습은 단지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 주는 모습이요, 어찌보면 우리의 삶과도 대치해 볼 수 있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 문제를 향한 세사람
세사람은 모두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지닌 문제는 이들의 힘으로는 좀처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엘가나 - 가장 큰 문제 : 가정의 불화
이때 엘가나가 한나에게 하는 위로를 보십시오.
(삼상 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그는 문제를 일으키는 브닌나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한나에게만 내가 니편이니 울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이 한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지금 한나의 가장 큰 고통은 브닌나가 자기를 조롱하고 속을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와서 그 원인도 묻지 않고 단지 내가 널 사랑하니까 다 참으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나에게도 별로 위로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만약 브닌나가 이 광경을 보면 더욱 브닌나의 속을 뒤짚어 놓는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편애는 결국 갈등을 낳습니다. 이삭의 편애가 형제의 우애를 깨뜨리고 야곱의 편애가 오히려 요셉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안겨줍니다.
본문에 비친 브닌나의 성품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요 탐심이 넘치는 여인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가진 것에 분노합니다.
물론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남편을 통해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언제나 한나에게 가서 화풀이를 하고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그녀의 질투는 남편의 사랑보다도 한나에게 돌아간 갑절의 물질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러한 시기와 탐심으로 한나를 대하면 대할수록 남편의 사랑은 점점 더 멀어져 갈 것이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5-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어찌보면 자기의 불행을 하나님 탓으로 전가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녀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탓이요 변명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자기의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요, 그것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 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문제에 대해서 엘가나에게 탓하지도 않고 브닌나와 맞서서 싸우질 않습니다. 오직 자기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고 그 앞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문제를 만난 세명의 인물은 이제 한나에게로 시선이 집중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브닌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언제나 문제를 키우고야 마는 엘가나
모든 문제의 근본이 하나님 앞에 있고 그 해결 역시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그 앞에 엎드리는 한나...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옮겨가는 전환점에 우리는 중요한 두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룻과 한나라는 두 여인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모압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베들레헴으로 와서 결국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
한나는 모든 문제 앞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서 자기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며 그 앞에 업드림으로 기도의 어머니, 기도의 사람의 대명사가 됩니다.
어찌보면 구원의 이야기는 잉태치 못하는 자가 잉태하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잉태치 못하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잉태하는 이야기,
잉태하지 못하는 마노아가 순종함으로 삼손을 잉태하는 이야기
잉태치 못하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앙태하는 이야기...
잉태치 못한다는 것은 삶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땀흘려도 보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그런 현장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를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다가 더 큰 구렁이에 빠지지만
신앙의 사람들은 잉태치 못하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선택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고난이 있기에 우리는 기도할 수 밖에 없고 또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닥쳤는데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엘가나와 브닌나가 되지 마시고 한나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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