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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사무엘서 강해)

사무엘상 2장 18-21절 (금수저 흙수저)

by 소리벼리 2021. 12. 1.

사무엘상 2장 18-21절 (금수저 흙수저) 

 

오늘 본문은 원래 2장 12절로 끝절 31절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지만 본문이 너무 길므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무엘에 관한 구절을 택하여 전합니다. 12절로 끝절까지는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와 한나의 아들 사무엘의 이야기를 대조하면서 제사장의 아들로서 성전의 제사장 직을 수행하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또한 그들의 부친이었던 엘리 제사장 마저도 저주를 받게 되는지, 반대로 왜 사무엘을 통하여 새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들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1장부터 2장 전반부를 이끌어 오던 한나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이제 홉니와 비느하스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 지고 그 중간에 짤막하게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사시대 말기에 언약궤가 있었던 실로의 성전(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에서 40년 동안이나 제사장 직분을 감당했던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가문은 제사장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자손이었습니다. 

그의 조상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축복이 27-28절에 거쳐서 나옵니다. 

삼상 2:27-28)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는 하나님이 택하신 아론의 후예들이었습니다. 

아론에게는 하나님께 예배 할 때 홀로 제단에 올라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분향할 수 있는 막중한 의무가 주어졌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바치는 화제를 예배 후에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예배 하는 막중한 의무에 따른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12절부터 17절에 따른 말씀을 읽어보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 직을 감당하지만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화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기 전에 자기가 먼저 취하곤 했던 것입니다. 

화제로 드리는 제물은 먼저 불로 구워 그 연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남은 것을 제사장이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환을 시켜 갈고리를 가지고 불에 굽고 있는 고기들을 마구 휘집어 걸려 나오는 것을 취하여 가곤 했던 것이지요. 그것도 이러한 짓을 "그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행하였더라"는 말로 상습적으로 행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젠 기름에 태우기도 전에 사환이 와서 제사장이 날것을 원하니까 불에 태우기도 전에 억지로라도 그것을 취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대단하지요. 

어떻게 제사장인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12절에 보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되 있지만 영문으로 보면 "그들이 행실이 나쁜 이유는 매사에 여호와를 간주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여기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결과가 17절이지요.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이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요즘말로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함이었더라." 

 

제사장으로 특권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백성들의 예배를 돕거나 대신 드리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존경과 물질적 예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를 그들이 멸시하였다 이말은 예배를 우습게 여겼다. 혹은 더 나아가 예배를 몹시 싫어했다. 경멸했다 라는 말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 예배에 대해서 지겹다. 짜증난다. 하나님이 어디있냐는 식으로 예배 자체를 능멸하므로 그들의 관심은 오직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예물에만, 음식에만 관심이 가 있는 것이지요. 

 

그들의 죄악은 22절에서 이어집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이것은 육신적으로 늙은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영적으로 노쇄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영권이 잃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범죄가 어디까지 갑니까?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수종드는 자들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위해 헌신된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는 자들을 겁탈한 것입

 

엘리가 이것을 듣습니다.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이 말이 굉장히 웃긴 것은 "그리하지 말라." 이것은 이미 했어도 앞으로는 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당시는 율법시대요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이 성결하지 못하거나 간음하면 그것은 죽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하여 엘리는 그 죄값을 묻지 않고 앞으로는 잘해라 이렇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문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요. 그들이 행한 일을 밝히려고 하지 않고 소문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로 밝혀지면 율법으로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죠.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을 향한 책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 자녀들이 짓고 있는 범죄에 관하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지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엄중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데 세월 좋게 괜찮아 앞으로 잘해라....이렇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어떻게 책망하십니까?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려 하느냐?" (29절) 

 

내 제물과 예물을 밝았다는 것은 못쓰게 만들었다. 훼손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그 결과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35절)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결국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를 위해 하나님은 그 집을 세우고 함께 하신다.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나의 기름 부은 자 - 가장 가깝게는 사울이고(첫째 왕), 그리고 또한 다윗이며 (합한 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그 안에서 행하게 된다. 

 

그것을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자? 바로 사무엘입니다. 

 

18절)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세마포 에봇- 세마포는 옷감이고 에봇은 그 위에 두는 조끼같은 것입니다. 

주로 대 제사장이 입었지만 다윗왕이 법궤가 성전으로 올 때에 입은 옷이기도 합니다. 

이 옷은 격식이 몹시 까다로워 입는 것 자체에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에봇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돌들이 붙어 있어서 어린 아이가 입기에는 몹시 무겁고 불편한 옷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우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는 것은 무겁고 불편해도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 8절에 보면 이 세마포는 또한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증거합니다. 

 

한나는 매년 제사를 위해 실로에 올 때 마다 사무엘에게 작은 겉옷을 지어다 주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옷은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만든 옷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수치를 느껴 만든 옷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불완전한 옷을 벗기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짐승을 죽여 그 가죽으로 덮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사 제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 제도를 통해 우리는 죄가 가리워 지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가죽옷은 피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해 사람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고 

출애굽 할 때에 문섧주에 바른 피- 피로 그 가정이 구원 

대제사장의 대 속죄일 - 한 제사로 한 민족의 죄를 속죄 

예수 그리스도 -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마태복음 22장 -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 , 길거리에서 아무나 - 그런데 예복을 준비했는지를 통해...

예복은 무엇인가? 선한 행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곧 택함받음의 전제- 예복은 곧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삶이다. 

한나를 통해 매년 입게 되는 옷은 하나님 앞에 아이가 지은 죄를 회개케하는 어머니의 기도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향한 예배였습니다. 

한나는 사무엘과 함께 있을 수 없었지만 언제나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년 겉옷을 그에게 둘러주며 하나님 앞에 그가 부끄럼 없이설 수 있도록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과 옳은 행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관계를 통해 자라난 사무엘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을 때에 

26절)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장은 전체적으로 왜 하나님께서 엘리의 가정을 버리고 사무엘을 택하게 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량적으로 사무엘은 간단히, 홉니와 비느하스의 이야기는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찌보면 이 패턴이 사무엘서 전체에 나타납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 대신에 사무엘을 택하여야 했는지, 왜 하나님께서 사울 대신에 다윗을 택하여야 했는지.. 그 자초지정을 상세히 기술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사랑에서 멀어지고 결국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웃었던 홉니와 비느하스,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은혜를 다윗에 대한 시기심으로, 자기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불순종의 길을 걸었던 사울...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대신에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왜곡시킨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외침은 정작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멀어져 있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정작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마는 그런 택함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 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보면 대 제사장이 집례하러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에 방울을 들고 들어가서 방울이 울리면 산 것이요, 울리지 않으면 정결하지 못함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나오는 그런 제사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를 보면서도 바로 그들을 징벌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면서까지 엘리에게 경고하시겠습니까? 

왜 나중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에게 내가 너를 버렸도다 하시겠습니까? 

그 때에라도 회개하라는 것이요,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경고가 무서우면 무서울 수록 하나님의 마음은 재앙이 아니라 화평을 위해 돌아오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늙어 있는 엘리는 그런 하나님의 경고에도 그저 만사 태평입니다. 자신의 후손들이 이젠 대대로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도 그의 태도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가 늙고 비대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경고를 해도 그저 알았다고 하면서 움직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온 마음을 다해 택한 자가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만하여지고 타락하는 모습을 보며 엘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배드리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찬양하면서도 찬양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만 관심이 가 있고, 

기도를 하면서도 전혀 믿음없이 드리는 기도, 

회개 없이 늘 십자가를 통해 자기 유익에만 밝은 그런 모습.... 하나님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가요? 

 

작년 한 해 동안 유행된 말들 중에 금수저 흙수저가 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현실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현실을 비관해서 자살도 하고 낙심도 하고.... 사회는 금수저를 당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게 하나님의 축복은 장자를 통해, 오직 순혈 유대인들을 통해....

그래서 야곱과 에서가 장자권을 가지고 그렇게 다툼을 하고, 이방인들을 개 취급 하며 멸시하며 왜? 하나님의 축복이 장자를 통해, 유대인, 그것도 레위인이나 아론의 후례를 통해...

그런데 마태복음 1장 1절을 통해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14대에 걸쳐서 장자는 단 5명....

그리고 거기 등장하는 네 여인 다말, 룻, 라합, 밧세바

이방여인이거나 부정한 여인.... 그들을 통해 예수님이 나십니다. 

 

신앙엔 금수저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금수저요, 세마포 에봇을 입은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바른 행실을 하는 자가 금수저 입니다. 

신앙 안에는 모든 자에게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분의 마음을 알고, 그 분 앞에 순종하며, 그 분께 진정으로 예배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