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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마리아, 평안의 의미를 새롭게 하다. (눅 1:26-38)

by 소리벼리 2021. 12. 10.

마리아, 평안의 의미를 새롭게 하다. (눅 1:26-38)

 

어제- 요셉을 통해 의로움의 의미를 일깨웠다면 

오늘 - 그 아내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 주시는 꿈과 평안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가 바라는 평안 - 문제가 없고, 갈등이 없고, 호수같이 평화로운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죄의 근본을 몰아내고, 원인을 몰아내는 평안

                                 - 폭풍 가운데서도 주와 함께 함으로 얻을 수 있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 

                                 

[눅 1:27-28]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1. 하나님 주시는 평안 - 한 번도 가지 아니한 길을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정혼했다. 

흔히들 말하는 동정녀 신학 - 예수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잉태 

처녀를 통해서 태어나야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그러면 정혼하지 아니한 정말 결혼을 모르는 처녀이지 왜 정혼한 여인을 택했나. 

그러면 마리아가 갈등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지... 

 

마리아는 결혼을 앞두고 요셉과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정혼의 기간 동안 신부는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결혼에 합당한 예를 갖추어야 하는데 천사가 나타나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하면서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하고 하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려 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법으로 결혼하지 아니한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곧 처형입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혼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마리아 뿐만 아니라 신랑될 사람의 인생도 큰 일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 벼락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도저히 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산 다는 것,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렇게 큰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꿈을 꾼 요셉에게 그 형제들마저 
"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우리가 그를 죽여 그의 꿈이 어찌 되는가 시험하여 보자"하면서 그를 죽이고자까지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으로 인해 노예로 팔려 갔다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고 또 다른 꿈의 사람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죽을 위기를 넘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은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이요, 하늘의 가치관과 하늘의 습관과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세상이 비록 그들을 몰라주고 비아냥거리고 핍박해도 결국은 우리에게 주신 꿈으로, 말씀으로, 그것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정혼했다는 것은 정해진 길이 있는 상태. 약속된 삶이 있는 상태.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때에 임합니다.  

 

"본터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 미리 주어진 삶을 떠나는 데서부터, 머물던 곳을 벗어나는 데서 부터, 말씀 따라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모세-> 이제 미디안에서 아내를 만나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있는데 애굽으로 가라 하신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시 방문했던 도시들을 방문하려 짐을 꾸리고 사람을 모아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 마게도냐로 가라 한다. 

 

내가 익숙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살 것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아니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으로 걸어갈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신다. 말씀은 곧 꿈, 비전으로 온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온 이 하나님의 꿈을 외면하고 산다. 익숙했던 삶의 패턴, 삶의 영역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에리히프롬 - "자유로부터의 도피" :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원하는 것 같고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해왔지만 또 한편 정작 자유를 얻는 것을 두려워한다 .

익숙해져 있는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결국 자유로부터 도피한다. 

그러나 예수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신다. 

구원은 출애굽은 결국 애굽의 노예로 살 것인가? 익숙해져 있는 노예의 삶을 살 것인가? 충애굽 하여 자유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말씀을 통해 꿈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는 데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살피지 않고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만물에게 종살이 하듯 삽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의 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비로서 그 꿈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과 똑같은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2. 하나님 주시는 평안 - 우리의 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평안, 적극적 평안 

 

요나 - 비둘기, 평화라는 의미

존경받던 당대의 국민적인 선지자, 예언자. 국가 부흥의 원동력 

그런데 그에게 원치않는 말씀을 주셔서 그의 근본을 보게 하신다. 불손종하는 똥고집

자기 마음에 안드니까 완전히 거꾸로 향하는 못된 근성, 이전의 자신의 삶에 전혀 드러나지 않던 죄된 선지자의 모습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으로 요나라는 평화가 비로서 참 평화의 사람이 된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 일곱번이나 애굽으로 가라 

못갑니다. 안갑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난 말을 못합니다....(믿음 좋고 지혜롭던 그의 민낯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죄를 끄집어 내서 드러내서 고치게 하시는 평안

우리의 죄를 수술하시는 평안 . 

베드로의 성급함을 끄집어 내시고, 바울의 잘못된 열심을 거꾸러 뜨리고, 솔로몬의 잘못된 지혜의 망상을 무너뜨리고...

 

우리는 잘못을 감추고, 외면하고, 방치하지만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연약함 중심으로 들어오셔서 끄집어 내신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돌을 굴러내라" 하시면서 그 무덤 깊은 곳으로 와서 죽은 나를 살리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근본적인 평안, 나의 본질을 바꾸시는 평안이다. 완전한 평안이다 

 

  • 마리아의 고백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앞서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가브리엘의 말에 웃다가 벙어리가...

모세- 거역하다, 길 가에서 죽을 뻔한...

아브라함과 사라 - 이삭을 낳는다는 말에 웃음...

마리아의 고백- 전적인 믿음의 고백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엘리사벳이 45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물론 하루 하루 살아가면 자꾸 비전을 놓쳐 버립니다. 꿈을 잃어버립니다. 

현실의 장벽에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이고 신앙의 공동체 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 앞서 그 꿈을 받은 자입니다. 비록 남편 사가랴는 불신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은 말씀의 능력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선배요, 먼저 경험한 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마리아는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마리아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엘리사벳에게 보냅니다. 

 

3.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39절) 

 

꿈을 받은 여인을 일으켜 빨리 엘리사벳에게로 가게 합니다. 왜? 주신 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꿈을 얻은 자. 오랫동안 생각하면 두 마음이 들어오고, 결국 말씀을 놓쳐 버립니다. 

둘 다 애를 낳을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둘 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견뎌야 할 환경과 남들의 시선이 말도 못합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예배하러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애를 가져도 자랑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청첩산중입니다. 요셉의 집안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자신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만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게 하십니다. 서로 축복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곳입니다. 말씀과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곳입니다. 네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고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은혜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병든 믿음, 죽은 믿음은 항상 두 마음을 가집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넘어집니다. 무너집니다. 

열매맺지 못합니다.

애굽으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지다. 

신앙은 불신앙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이 망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신앙이 날 어렵게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고백합니다. 

이른바 마리아의 찬가- 성서에 출애굽 당시 소개되는 미리암의 찬가와 더불어 신구약을 대표하는 여이들의 찬양입니다 .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컫으리로다." (47-48) 

 

만약 마리아가 정해져 있는 삶에 안주했더라면 그녀는 평범하고 비천한 한 여인의 삶이었을 뿐이지만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에 그녀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사도신경을 통해 인류역사가 가장 순결하고 믿음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건해진 마리아는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마리아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집을 나올 때의 발걸음은 두려움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은 견고함이었고 평안함이었습니다. 

교회를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흔들린 마음, 두려웠던 마음, 염려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되고 평안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4. 신앙은 꿈 꾸는 것이다 

 

신앙은 꿈 꾸는 것입니다. 

허무 맹랑한 꿈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주시는 꿈

그 꿈이 이루기 까지는 세상을 견뎌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열매맺을 때까지 물을 주어야 합니다. 

말씀은 씨를 뿌리는 것이요, 말씀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믿음은 곧 잉태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 교회는 이 말씀이, 꿈이 태어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가꾸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꿈을 꿉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받읍시다.

아브라함은 아무 열매 없이 75세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삭을 낳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평생 의미없이 광야에 도피해 살다가 하나님의 꿈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꿈이 있으면 죽음도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 가운데 세상에서도 천국 가운데 살고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을 삽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로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습니다. 미국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예배는 꿈꾸는 자들이 모인 처소입니다. 

 

이민교회 목회를 하면서 많은 어르신들의 장례를 치룬다. 

어느 분은 나이가 들고 연약해질수록 더 변화없는, 그저 고요한 삶에 머문다. 평안한 것 같지만 남은 것이라곤 죽음을 기다리는 것 밖엔 아무런 꿈이 없다. 

어느 분은 힘들고 어려워도 연약한 몸을 이끌고 와서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어울린다. 같이 기도하며 꿈을 꾼다, 말씀을 들으며 꿈을 꾼다.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기에 힘이 남아 있는 한 꿈꾸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난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 성도님들, 우리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꿈꾸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림절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날들이다. 벅찬 꿈을 기다리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라" 고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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