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1-20 (씨뿌리는 비유)
3장 - 하나님 나라의 선포 - 회당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집으로...
많은 무리와 제자들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헤롯당, 그리고 친족 및 가족...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않는 자들이 갈림....
그리고 예수의 비유 중 가장 잘 알려진 씨뿌리는 비유.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4:13)
1. 비유의 목적
예수님의 하신 비유의 한결같은 주제와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씨뿌리는 자'는 곧 예수님이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열매의 씨앗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이고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임함"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늘나라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첫 째, 하나님나라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길 가, 돌짝 밭, 가시덤불 밭에도 예수님을 씨를 뿌리십니다. 좋은 밭에만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 이스라엘의 씨 뿌리는 방법: 우리나라-먼저 고생해서 밭을 고르게 갈았다. 잡풀을 뽑고 돌멩이를 골랐다. 그리고 밭고랑을 팠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씨앗을 심었다. 밭이랑에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일정한 간격으로 내고 씨앗을 정성껏 심었다. 하지만 2천 년 전 갈릴리의 농부는 허리를 숙여 씨앗을 심지 않았다. 위로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한가득 담은 가죽 부대를 어깨에 크로스로 메고, 한 주먹씩 쥐어서 위로 뿌렸다. 그러면 어떤 씨앗들은 씨앗들이 떨어지면서 땅에 콕콕 박힌다. 어떤 씨앗은 바람에 날리워 길가에도, 돌짝 밭에도, 그리고 가시밭에도 뿌려지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마음 밭이 어떠하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사람의 자질을 묻지 않고 뿌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문등병자에게도, 간음한 여인에게도, 사마리아여인과 같은 이방여인, 부정한 여인에게도, 세리같은 매국노에게도, 그리고 심지어 자신을 배반하는 유다에게까지도 예수님은 말씀을 뿌린다.
-> 물론 목회자의 견지에서 저는 성도들의 심령밭이 잘 기경되도록 훈련하고 기도하고 심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밭이 옥토밭이 되도록 제자훈련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찬양대로 세우고, 혹시 홀로 괴로워하실까봐 심방도 합니다. 그런데 설사 그렇지 못하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설사 수준이 안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합니다. 수준을 기다리면 평생 말씀 전할 수 없습니다. 저 자신이 수준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내 마음이 완악했을 때에, 영적인 수준이 완전히 바닥이었을 때에...예수님께서 그 때 날 위해 죽으셨고 말씀하셨고, 구원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나 주신 기회이고 선물입니다.
둘 째, 씨뿌리는 자가 주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이 비유의 첫 번째 목적은 여기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어떠하냐......가 초점이 아닙니다.
천국 말씀이 선포되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천국에 동참하려 하지 않았다....가 초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널리 가르친 이스라엘 동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그 마을이, 그 나라가 흥왕하고 복음으로 넘쳤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였습니다.
진실로!!! 이 비유의 내용과 똑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의 씨가 뿌려졌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뿌려졌으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의 씨가 뿌려졌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천국복음은 배척되었고, 뿌려진 씨들은 모두 열매를 맺지 못하고 허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밭에 뿌려진 씨의 진실입니다.
- 이것이 진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널리 전해지지만 환영받지 못합니다. 씨가 뿌려졌으므로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실제로는 뿌려진 씨는 대부분이 허비됩니다. 결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이 우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하지 못하는 듯이 보입니다. 이것이......복음이 뿌려졌을 때의 반응입니다. 4분의 3이나 되는 대부분의 씨가 허비되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 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씨뿌리는 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세번째 비밀은 무엇입니까?
이 비유의 핵심이 본문의 뒤쪽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대다수의 복음이 허비되었으나, 결실한 좋은 밭이 남아 있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멘!
대다수의 씨는 허비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4분의 1의 씨는 남아 있습니다. 이 씨들은 좋은 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결실을 하였습니다.
결실한 밭의 내용물들을 보십시오.
처음에 뿌린 씨는 4분의 1만 좋은 땅에 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뿌린 씨만큼만 결실하려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4배가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배척받은 복음의 씨가 비록 4분의 1밖에 결실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4배 더 자랐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몇 배의 결실을 이루었다고 말씀합니까? 백배의 결실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천국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 천국 복음이 배척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슬프고 힘든 일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열매가 없으면 힘듭니다. 절망합니다. 씨앗은 계속 뿌리는 데 열매가 없으면 도망가고 싶습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말씀을 전해도 깨닫지 못하고, 변하지 않고, 여전히 넘어지고 절망하고 감정대로 행하고, 입술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끊이질 않으면 내가 그동안 왜 기도했지,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안들어주시지 별 생각이 다 들어옵니다.
주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셨습니다. 오히려 믿는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아끼는 제자들은 깨닫지를 모르고 맨날 엉뚱한 소리만 해댑니다. 따르던 군중들은 한 순간에 돌아서 돌로 치라고 소리칩니다.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죽일 듯이 달려듭니다. 완전히 패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패배처럼 보이는 사실 뒤에, 너무나 놀라운 결과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것 처럼 보이고, 죽어버리고 없어져 버린 것 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은!!!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뿐이지만,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폭발적으로 자라난다!” 는 것입니다.
이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비록 적은 사람에게 환대를 받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쇠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비록 천국복음은 배척받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없어지지도 쇠하여지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박해받는 것을 통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배척당하자 복음은 죽어버렸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버리지 않고 결실했습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에게서지만, 그 환영받은 복음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자란 것입니다.
수 만명이 살아가던 소돔과 고모라 땅에 하나님은 의인 열명만 있으면 이 도시를 구원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불행히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소돔과 고모라 땅에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불에 탔습니다.
난 우리교회 성도들이 전적으로 다 구원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죽어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통치하시는 삶을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같이 그러한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언젠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좋은 밭을 가진, 옥토같은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워 지기만 한다면 100배의 결실이 맺히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고, 저희 성도들이었으면 좋겠고, 저희 트레이시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밭 되시기를, 그 소망을 가지시기를, 믿음의 선한 욕심, 선한 소망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열매맺지 못하는 밭
1) 길 가:
(눅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 말씀을 듣는데 전혀 그 마음으로 듣지를 않습니다. 귀로는 듣는데 머리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합니다. 그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서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왜?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머리 속에 딴 생각들어오고, 피곤하고, 졸리면, '아! 마귀가 날 방해하는구나' '날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구나!'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가 눈에 보이면 얼마나 섬찟 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마귀가 활동하면서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2) 바위 위
(눅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 말씀을 들을 때는 신이나고, 소망이 생기고 기쁨니다.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배 끝나고 집에가면 언제 그 말씀 들었는지 다시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 집니다. 조금만 시련을 당해도 신앙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위해 유다의 것을 택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베드로의 길을 택합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 잘못인 줄도 알면서 행하는, 그러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빌라도의 길로 행합니다.
- 바위 위에 얇게 흙이 덮혀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 흥분과 피상적 열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말씀이 심령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예수께서는 뿌리 없는 믿음이라고 규정하는바 이들의 믿음은 일시적이며 잠정적입니다. 믿음의 진정성 여부는 시험에 견디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검증되어집니다.
- 왜 시험이 오면 넘어집니까? 뿌리가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뿌리는 일상생활의 신앙생활입니다. 주일만, 교회에서만, 성경책을 읽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매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동행하는 것이 뿌리깊은 영성입니다. 또한 뿌리는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고난이 와도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날 용서했고, 날 구원했으면 그가 부활하심으로 나도 다시 살았다는 복음의 진리에 흔들리지 않고 서는 것입니다.
-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마치 뿌리 없는 식물과 같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과실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시험을 견디어낸 믿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약 1:12).
- 뿌리 있는 신앙인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십자가 앞에 나와와 죄짐을 벗도 의의 길, 부활의 길로 들어갑니다.
3) 가시 떨기
(눅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 가시떨기와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어느정도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상당한 정도의 신앙을 갖게 되지만 궁극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가치를 혼동함으로써 결국에는 실패하는 부류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가 문제가 됩니다.
- 첫째는, 이생의 염려입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 대한 염려 때문에 신앙이 온전히 성장하지 못하게 됨을 말함에 있어서는 같은 뜻입니다. 이 염려는 신앙생활에 매우 해로운 것으로 영혼의 저항력을 조금씩 약화시켜 마침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죽은 영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둘째는 재리(財利)입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열망 때문에 진리를 따르지 못한 예는, '어리석은 부자'(12:16-21), '부자 관원'(18:18-23)과 같은 이야기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 셋째는 생의 향락입니다. 일시적이고 표면적이며 충동적인 육체의 쾌락을 위해 영혼의 존귀한 가치를 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4. 좋은 밭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 착하고 좋은 마음
“착하다”라는 것은 “바르다”라는 것입니다. 바르다라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배려가 있다는 겁니다. 자기만 잘되려고 하면서 믿는 것은 결국 샤머니즘적인 신앙입니다. 샤머니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너를 죽여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죽여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어떻게 되든지 우리 교회만 잘되면 되고, 다른 가정 어떻게 되든지 내식구만 잘되면 되고.... 착하고 좋은 마음이 아닙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온유하고, 긍휼이 여기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2) 말씀을 듣고 지키어
- 완악한 자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잘 듣습니다. 잘 들어주는 자가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솔로몬 - 지혜를 구하였다. 지금 성경 - 듣는 마음을 구하였다.
-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 요소는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말씀 듣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이상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이상한 곳에서 축복을 찾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구원받은 교인이면서도 육십갑자로 육갑을 떨어서 결혼날짜와 개업날짜와 이사날짜를 잡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시험 때는 수염을 깎으면 안 된다고 믿고 지저분한 얼굴로 나와 면접시험에서 떨어집니다.
- 성도는 절대로 어떤 미신에도 영향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주님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정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미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운명에 좌우되지 말고 운명을 다스려야 합니다. 누가 운명을 다스립니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운명을 다스리게 됩니다.
3) 인내로 결실하는 자
- 좋은 밭에 있는 자들은 결코 기한 전에 추수하지 않습니다. 알맞게 익은 열매를 추수하는 자입니다.
-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성도는 좋은 마음도 가지고, 말씀도 듣고 지켜야 하지만 무엇보다 끝까지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누가 교회생활을 잘합니까?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헌신하며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묵상 질문)
1. 자기의 영성 상태를 진단해보자.
길가 -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태, 바위밭- 뿌리가 없어서 은혜 받아도 금방 사라지는
가시밭- 염려가 많은 상태 좋은 밭
2. 좋은 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 듣는 마음(지혜), 듣고 순종하는 삶 (행동), 인내로 결실하는 (의지, 믿음,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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