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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장 29-38절 베드로의 실패와 예수님의 기도 

 

베드로하면 떠오르는 단어 - 열심. 가장 열심인 제자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 언제나 있던 자타공인 수제자. 

 

가룟유다의 배반을 예언하는 장소에서 다른 모든 제자들이 "나는 아니지요?"라고 걱정하며 물어볼 때에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습니다." "내가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장담했던 예수님이 수제자. 

 

물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장담은 금물이다. 누구도 하루 앞의 인생을 내다볼 수 있다. 오늘 참인 것이 내일 거짓이 되어 버리는 인생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거듭해서 하나님 앞에서 "서언" 맹세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상황이 변해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장담할 때에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의 장담을 무력하게 만드신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면전에다가 이런 말씀을 남기셨을까? 

베드로의 장담을 무력화시키셨을까? 

후에라도 예수님은 베드로가 알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우리의 장담이 얼마나 허망하고 신뢰받지 못할 것임을....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철저히 주님에게서 나온다. 나는 연약하고, 실패할지라도, 그 실패를 덮고서 부활의 능력으로 나를 일으키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부른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확신과 자기 신념, 자신의 성품과 인격에 근거한 확신과 신념은 베드로처럼 무너지기 십상이고, 때론 참 믿음의 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념과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실패 너머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뒤 이어 이어지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베드로의 실패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신다. 

 

엄밀히 따지자면 하나님과 근본 동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가 필요없으신 분이다. 그 분의 존재 자체가 말씀이고, 그 분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은 거의 모든 순간, 자신의 사역을 앞두고 기도하셨다. 

무엇을 보이고자 한 것일까? 주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모든 일을 행하기에 앞 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보이셨던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두 가지의 갈등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기도다. 

나의 원과 아버지의 원 

나의 원은 이 잔을 옮겨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 잔은 물론 고난의 잔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 고난의 잔이 의미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시는 육신적 고난인지, 십자가를 지심으로 발생하는 제자들과 자신을 기대했던 모든 자들이 겪을 정신적 방황함과 신앙적 아노미에 대한 고통인지 묵상할 때마다 그 잔의 의미는 날마다 더해진다. 

 

결국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내 신념을 굽히는 것이다. 내 장담함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내 존재를 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을 향하는 삶은 기도 없이는, 절대로 행동에 옮길 수 없는 영적인 길이다. 

 

우리는 "믿습니다"를 외치며 나의 뜻을 강요하는 그런 기도에 더 익숙하다. 

하나님의 뜻이 이럴지라도 그 분 보다 더 큰 소리로 "내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한 번만 들어주시면 ~~게 하겠습니다." 하면서 하지 말라 하는 서원을 종종 하기도 한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는, 그 곳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원하는 기도였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런데 그토록 피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예수님 앞에, 그리고 그 예수님의 세 번에 걸친 간곡하 부탁에도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는다. 육신적, 영적 피곤함으로 인해 한 시도 기도할 수가 없다. 이 때 베드로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호칭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단 한 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 그 이름을 베드로로 불러주셨던 예수님께서, 자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너 다시 시몬이 되었느냐? 예전으로 돌아갔느냐? 물고기나 낚으며 죽을 것이냐?" 하고 그의 예전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이다. 

 

정말 겸손히 나를 내려놓고 말씀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로 가는 나의 삶,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보게 된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바로 그 주님의 모습을 향하게 된다. 

 

내 뜻을 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내 자존심을 내세우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토록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처절히 하셨다면 우리는 날마다 죽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믿음은 그 피의 기도의 결과로서 내 삶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묵상) 

1. 자신의 뜻을 꺾기 위해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까? 지금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찬양 ) 믿음이 없이는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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