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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꼭 막힌 방 안에서 (디모데후서 4장 9-18절)

by 소리벼리 2022. 11. 6.

꼭 막힌 방 안에서 (디모데후서 4장 9-18절) 

 

1.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 나누었던 설교 제목 : 고독 너머의 기쁨 - 엘리야, 야곱의 예를 들어 하나님꼐서는 우리가 홀로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셨다. (성경 최초의 좋지 않다의 표현) 

그래서 돕는 베필을 주셨지만 타락한 인간은 돕는 관계가 아니라 탓하는 관계, 가리고 숨기는 관계 -

그러한 우리가 철저히 홀로 될 때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그 분의 임재 앞에 서게 하셔서 다시금 삶의 의미를 주시고 살아갈 힘을 주신다. 

 

홀로 되어 외롭고 쓸쓸한 상태 - Loneliness가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선 모습 -solitude 로 나아갈 때 고독 너머 진정한 기쁨을 맞게 된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은 고독, 외로움에 대한 두 번째 설교 -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삶의 고독, 외로움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으며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는가? 

 

예수를 만나기 전 -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았던 극단적 바리새파 

예수 믿고 나서 평생 그는 바리새인을 포함한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따라다녔던 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을 심히 팝박했던 전력이 있는 믿을 수 없는 자, 가해자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늘 따라다녔다. 

어쩌면 이방인의 사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들이건 늘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는 거의 모든 삶을 이스라엘 밖의 지경에서 전도를 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하게 된다. 

그는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을 쓸 정도로 신약성서에도 초대교회에도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외로움과 싸우는 고된 투쟁이었고 그 투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울의 서신서 중 특별히 감옥에서 집팔한 성경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 옥중서신

오늘 읽은 본문 - 디모데 전후서 - 아들처럼 여겼던 후배 목사 디모데에게 주는 글이라 따로 목회서신이라 이름붙여 놓았지만 이 글 역시 로마의 감옥에서 쓴 또다른 옥중서신이다. 

 

비슷한 또래의 한 목사님과 교제를 하는데 특히 긴 코로나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예배를 드릴 때도 혼자 카메라를 켜놓고 설교

설교를 준비할 때도...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어느날 교회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전화가 와서 대답을 하려는데 입이 딱 닫힌  것처럼 말이 안나와서 읍 읍 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식은 땀이 막 나고 안정을 취하고 다시 말을 하는데 몇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앉아 있던 사무실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고 너무 무서웠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주로 혼자 꼭 막힌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공포 - 지금 있는 곳이 감옥같다. 

학생들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곤 홀로 연구실에서 일하는 교수도, 연구가도, 예술가도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때 빈번히 표현하는 것 - 감옥에 있는 것 같다. 

 

혼자 있어서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감옥이라는 이미지는 미셀 푸코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가에 의해 현대 사회를  규정짓는 상징적인 특징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체험이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나가서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아내와 엄마가 느끼는 때로는 평온한 듯 하지만 갑작스레 외로움이 몰려 들 때면 걷잡을 수 없는 

 

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꼭 CCTV가 아니더다도 감시당하며 체크 당하고 있는 것 같은 회사원들...

하루 종일 학교나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생들... 

 

 

2. 바울의 본문 

우리가 읽은 디모데후서 바울이 순교 당하기 전 가장 마지막에 남긴 유언과도 같은 편지. 금요예배를 통해 강해하기도 했다. 

 

1) 죽음의 임박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인지하고 있다. 

-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졌다는 것은 외부적 탄압에 의해서만 목숨이 다했다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 삶의 에너지 역시 거의 고갈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꼭 순교가 아니더라도 그의 육신적 삶이 끝에 다달았다.  

 

9절)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1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실제로 그 겨울이 지나고 바울은 로마의 성 밖에 끌려나와 순교를 당한다. 

 

죽음을 앞에 둔 한 늙은 목회자가 아무런 가족도 없이 아들처럼 아끼던 후배 목회자를 향하여 두 번씩이나 내게 속히 오라 

-> 어떤 마음이었을까? 

 

2) 분리/ 격리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있어도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마음은 외롭고 고독하다. 그런데 그는 육체적 한계 상황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 분리되고 격리 되어 있다. 

 

10-13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한 참 후배였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은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한 명씩 언급했지만 누가 외에 아무도 그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 그가 좋아했던 사람, 그런데 인생의 말년에 그는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외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때 그는 두 번씩이나 디모데에게 "어서 오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다. 

"디모데야, 내가 이 땅에 머물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내 옆엔 아무도 없구나. 네가 정말 보고 싶다" 

 

3) 반대/ 배신/ 상처 

그를 더 힘들고 외롭게 한 것 

14절)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다. - 정확치는 않지만 그에 대해 많은 소문과 거짓 증언을 해서 감옥에 갇히게 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18절) 내가 처름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 

변명 - 법정 용어 (defense)

첫 번째 재판에서 자신을 변론할 때에 자기 편이 하나도 없이 다 외면하거나 떠났다. 

어려운 일이 닥치자 다 나를 떠났다. 누구 한 사람 내 편이 없었다. 

 

4) 질문제기 - 당신이라면 

그 외로움의 깊이가 어떠했을까? 

이 같은 상황이 나에게 온다면 나는 어떻게 이 깊은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 

 

 일반적인 경우 이런 심한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 - 일 중독 -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일하는 것 

 마음의 고통은 잠시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과 영혼은 더욱 망가진다. 

 

 또 다른 중독 - 쇼핑 중독 - 사면 살 수록 더욱 공허해진다. 

 성 중독, 유흥, 타락 - 몸과 마음과 영혼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일단 무엇에든지 중독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된다는 것 - 치료 받을 상태

 

 무기력 -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 동굴 속에 숨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활동 범위가 지나치게 줄어든다. 

 

* 바울의 선택  

 

1) 하나님의 재판 

7-8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로마의 법정에서 바울은 패소하여 감옥에 갇혀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사형 집행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의 재판 결과에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의 재판에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확신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받은 자는 세상의 어떤 불합리한 처벌이나 대우에 좌절하지 않는다. 거꾸로 세상의 법정에서 이기더라도 하나님의 재판에 무너지는 자는 두렵고 넘어진다. 

기독교인의 승리는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2)  지금 여기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11절)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 

 

그는 감옥에 갇힌 사형수였지만 그냥 죽음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망하거나 신세 한탄에 시간을 쏟지도 않았다. 가장 좋은 교육가 가장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바울이 예수 믿고 세상적으로 얻은 것은 핍박받고 오해 받으면서도 그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그는 감옥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때 사람들의 선택 - 탓하고 절망하고나 스스로 자기를 불쌍히 여기며 주저 앉는 것이다. 

그는 자기 몸을 챙겼다. 겨울을 나기 위해 자기 집에 있는 외투를 부탁한다. 

 

3040 세미나 이찬규 목사 - 그 분도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목사님 

젊을 때는 영육간의 강건이다. 무조건 영적인 것이 우선되야 육신도 건강하다. 

그런데 60이 넘으니까 육영건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신이 무너지면 영적인 것에 힘쓸 수가 없다. 육신도 챙겨야 하고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엎드려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말씀을 듣게 하지 않으신다. 

그를 어루만져 그의 육신을 치유하시고 떡과 물을 주어 음식물을 공급하신다. 성경에 보니 음식물의 힘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이르렀다 증언한다. 

 

절망의 때- 그는 육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리고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외투를 챙겼다.

 

외로운 사람들은 대게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제대로 먹지도, 운동도 않하고, 몸에 필요한 것을 잘 챙기지도 않는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 몸을 거룩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몸의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없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 - 영혼을 챙겨라 목사라 그런지 그런 소리 잘 안한다. 

대신 몸챙기라고 운동해야 한다고.... 

힘들 때일수록 더 몸을 챙겨야 한다. 

 

마가를 데려오라.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 

그는 감옥에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시간 마져도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8절에 말한 바와 같이 그에게 남겨진 것은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을지라도 그는 숨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경주하길 원했다. 마지막에 그의 옆에 많은 사람들이 떠났을 지라도 

누가가 함께 있고 마가를 불러와서 그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많은 학자들은 누가 마가와 더불어 바울이 마지막 시간에 한 것은 성경의 집필이었다고 말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라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누가 

마가복음과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여 정리한 마가 

그리고 신약 성경의 절반 가끼이를 남긴 사도 바울. 

 

바울은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다른 11명의 제자 - 복음을 증거하고 순교하느라 성경을 남길 수가 없었다. 오직 순교하지 않고 남은 제자 요한만이 복음서 및 서신서를 남겼을 뿐이다. 

바울은 천성적으로 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성품이 아니었다. 그가 수 많은 교회를 세웠을지라도 가장 오래 머문 교회가 에베소교회로 3년이 채 안되는 시간을 머문 것이고 대부분 일년 미만, 짧게는 3주밖에 안 머물고 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쩌면 하나님이 바울을 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를 감옥게 가두시는 것 뿐이었다. 

바울은 꼭 막힌 방 안에서도 행동을 만들어냈다. 

그곳에서 자기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자기 및 동료들과 함께 성경을 기록한다. 

 

3) 쓸 데 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외로움의 극한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챙기고 의미있는 일을 찾아 몰두했다. 

그러면서 그는 헛된 곳에 자기 마음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외로움과 상처는 중독된다. 

그것을 자꾸 되뇌이고 갇혀있으면 그 안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14절)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6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대부분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외롭고 억울한 환경에 처하면 그 시간을 분개하고 원망하는데 사용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 드라마의 한 장르 

억울한 일을 되뇌여서 원수 갚는 내용 

그런데 실제의 삶에서 그러한 분노와 원망은 스스로 더 깊은 감옥에 자신의 영혼을 가두는 것이다. 

그는 원망하고 분노하는 대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일에 자신을 몰두했다. 

그것이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10절)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모든 악한 일은 비방하고 공격하고 원망하는 일이다. 광야에서 원망하던 사람들은 누구도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다. 

 

Bitter <-> better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삶의 결과는 너무도 다르다. 

 

4)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자기와 함께 있는 진정한 동료를 만난다. 

그가 있는 곳은 감옥이요, 그의 곁에는 다 떠나있는 것 같은 외로운 자리였지만 누가라는 한 사람을 통해 그는 디모데를 오라했고 마가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바울의 마지막을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효과적이고 거룩한 일에 동역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은 감옥 안에서도 모든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도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그는 마지막 까지 그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가 부르심의 목적,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섬겼다. 육신적으로 매꿀 수 없는 공간을 동역을 통해 말씀의 기록을 통해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사명을,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로우면 벽을 쌓는다. 관계의 벽을 쌓고 신앙의 벽을 쌓고 자아의 벽을 쌓는다. 영적 여리고성이다. 

그런데 신앙은 벽을 무너뜨리고 다리를 건설하라 한다. 너무 외롭다고 불평하는 것 보다는 외로운 누군가의 의미있는 존재가 되리를 소망하게 한다. 

그것이 황금률- 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말의 실천인 것이다. 

외로움의 치료제는 사랑이다. 사랑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사랑받을 때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대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결론 

고통스러울 정도로 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자신의 환경이 감옥처럼 여겨질 때가 있는가? 

그 고통의 진공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룰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 우리의 외로움을 아신다. 

예수의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그 시간,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분의 친구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고 그 분을 따르던 무리들은 소리지르며 못박으라 하고 그 분을 떠났다. 

그가 재판정에 서던 때 제자들은 도망했고 베드로는 세번 예수를 부인하다가 그를 저주했다. 

십자가 위해서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절규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분은 외로움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 그래서 내가 정말 외로울 때 그 분은 

"나는 네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안다. 난 여전히 널 사랑하며 너와 함께 있으며 너를 돕기 원한다." 

 

꼭 막힌 공간이더라도 그 분을 향해 눈을 들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동굴에 갇히거나 벽을 쌓는 삶이 아닌 누군가의 다리가 되는 다리를 건설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