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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강 요한 웨슬레 (1703-91)  와 시편 139편 묵상 

  1. 웨슬레 영성의 배경  

  • 웨슬레는 역사적, 교리적으로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켰던 가톨릭의 "거룩한 삶"의 전통과 개신교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전통을 하나로 이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 그의 영성은 종교 개혁 이래로 계속 되어져 온 개신교의 발전의 역사의 흐름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다. 

a. 경건주의: 은혜에의 참여, 은혜의 결과. 경건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연합 및 구원의 믿음의 결과와 증거로서의 선한 행위를 모두 강조했다

b. 성공회 전통은 또한 웨슬레에게 거룩한 삶과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예배의식 (기도, 성경에 대한 탐구, 성찬식 등)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하였다. 

c. 영국 청교도들은 은혜와 성화의 교리에 있어서 "회심" 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서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의 은혜의 중요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인의 완전을 향한 영적인 여정을 강조"했다. 

  • 웨슬레의 위대성은 분리되어 있던 두 가지 영성의 축 (은혜의 구원과 성도의 거룩한 삶)을 하나로 이끈 그의 탁월성에 있었다. 그는 내적 믿음과 외적 선행, 개인적 경건과 공동체적 사귐,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 영적인 경험과 사회 참여, 금욕적 동기를 삶에 대한 적극성을 하나로 통합했다. 
  • 다시 말해 웨슬레는 개신교의 "믿음의 교리"와 가톨릭의 "거룩의 강조"를 하나로 만들었으며 외적으로 상반되는 듯한 칭의와 성화 및 기독자의 완전의 신학적인 정의를 명확하게 했다. 웨슬레에게 이러한 교리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내적인 영적 과정의 단계였다. 칭의 및 성화, 기독자의 완전은 은혜의 절대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응답으로서 인간 영혼의 참여를 전제하는 것이었다. 


  1. 웨슬레 영성의 발전 

  • 출생과 성장: 웨슬리의 조부와 외조부는 성공회를 반대하여 강단에서 추방될 정도로 고난을 당한 청교도 전통의 성직자들이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아버지 사무엘과 어머니 수잔나는 이런 비국교도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회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에 웨슬레의 부모는 근면, 검소, 정직 등의 덕목을 지키는 매우 국교도이면서 동시에 청교도적인 신자들이었다. 피할 수 없이 웨슬리는 성공회와 청교도의 영향을 두루 받으면서 자란 것이다. 웨슬리는 나중에 성공회와 결별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는 성공회원으로서 여길 정도였다. 그가 나중에 갖게 된 내적 확증과 같은 것은 성공회에서는 극히 위험스럽게 여겼지만, 그러나 애국적 태도라거나, 성찬의 영성이라거나 하는 것은 결코 성공회와 다르지 않은 영성을 그가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준다.
  • 옥스포드에서 (1725-28):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쳐치 대학을 졸업하고 1725년에 서리사제(deacon)로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옥스퍼드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1725-1728), 이 때에 웨슬레는 성공회의 저술가인 제레미 테일러(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범과 실천)와 토마스 아켐피스(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고 윌리엄 로(기독자의 완전)과 같은 책들에 심취하게 된다. 
  • 홀리 클럽 (1729-35): 1729년에 링컨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하여 옥스퍼드로 돌아왔는데, 동생 찰스등이 함께 하는 신성 클럽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으며, 이 모임을 통해 멤버들은 옥스퍼드 감옥을 방문하고 그들의 빚을 갚아주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을 하였다. 웨슬레는 홀리클럽을 통하여 사회적, 예전적 상황에서 그의 영성을 발전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영성은 독립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내적 거룩의 열매로서 사회적 참여와 외적 선행 또한 강조했다. 또한 그는 홀리 클럽의 멤버들에게 교회의 예배 및 예식을 은혜의 수단으로서 신실하게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영국 교회의 은혜의 수단의 개념들은 웨슬레에게 예전적인 틀을 제공했다. 
  • 조지아 (1735-37): 조지아에서 웨슬레는 여러 번의 영적인 경험과 신학적인 작업을 이루었고 이는 후에 감리교 조직의 기틀을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그는 독일어를 공부하여 많은 수의 독일어 찬양을 번역했다. 웨슬리는 1735년에 신대륙 거주자를 위한 선교사역을 떠났는데, 배를 타고 오고 가며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풍랑에 배가 요동할 때 자신은 두려워하는데, 모라비안 교도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찬송을 하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조지아주에 머물면서도 모라비안들과 교류하였다. 
  • 모라비안 교도와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경험 (1738-39): 폭풍우치는 배 위에서 만난 모라비안 교도와의 만남은 그의 신앙에 도전을 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믿음에 의한 칭의와 믿음에 의한 삶이 실재적인 삶으로 인도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1738년 올더스 게이트 채플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 낭독을 듣고 극적인 변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움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를,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죄악들을 제거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 모라비안 교도와의 결별 (after 1739): 그러나 웨슬리는 항상 모라비안에게 배우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지나친 ‘오직 믿음’의 태도와 정적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은혜의 수단 및 선행의 중요성에 대한 재고를 통해 그는 모라비안 교도와 결별하게 된다. 


  1. 웨슬레 영성의 특징 

  • 은혜 구원과 거룩한 삶과의 정교한 조화: 웨슬레는 믿음과 거룩, 칭의와 성화의 조화를 추구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과 성화에 있어서 모두 필수적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과 달리 은혜는 인간의 협력을 통해 성취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재적 은총이 있다. 구원은 분명,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은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동의를 요구한다. 게다가 성화된 삶, 거룩한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영적 훈련, 순종을 통해서 자라나고 유지된다. 

  •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 웨슬레에게 영성은 개인의 경건에 극한 된 것이 아니고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 삶의 전 영역에서의 영성: 웨슬레는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교회 안에서의 영적인 삶에만 성도의 삶을 제한 하지 않고, 삶의 전 영역에서의 영성을 주장했다. 삶의 전 영역이란 세속적인 일이나 더 넓은 사회도 포함한 것이다. 
  • 내적 거룩과 외적인 열매: 영성은 내적이며 동시에 외적이다. 내적 영성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고, 외적인 영성은 다른 성도들과의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내적 거룩과 외적인 열매는 항상 같이 간다. 


4. 웨슬레의 영적 훈련: 소그룹 안에서 영적인 성장 추구 

  • 소그룹 활동: 웨슬레가 이룩한 영성에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바로 소그룹 활동이다. 소그룹 활동은 영적인 성장을 위한 중심지였다. 
  • 은혜의 수단: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다양한 은혜의 수단들이 필수적이다. 소그룹을 통해 영적인 여정을 수행해가면서 개인은 예정된 시간에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고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 사회적 의무: 웨슬레는 소그룹을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와 영적인 성장 사이에서의 조화를 추구했다.  
  • 개인의 영적인 성장의 목표: 개인의 영적인 성장의 목표는 공동체의 이상, 즉 교회의 목적과 이상을 깨닫는 것이다. 



II.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기도 (시편 139편 묵상)

  1.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시든지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갈망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영적 자유함을 구하는 기도를 다시 드린다.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해서 주의를 집중한다. 예를 들면, 깊은 호흡을 반복하거나, 한 두개의 단어를 반복하다가 침묵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몇 분 가량 침묵 속에 머문다. 
  2. 조용히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라. 그 분이 말씀하시고 나는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영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3절)

  • 당신은 하나님께서 속속들이 아신 바 되었습니다. 완전히 아신다는 사실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안도감, 두려움, 흥분됨…?
  •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에게로 더 가까이 가기 원합니까? 아니면 숨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습니까? 
  • 당신을 아는 분이 누구인지가 당신에게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주께서 나의 앞 위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였나이다. (5절)

  • 둘러 싼다는 것은 울타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울타리는 안전감을 제공해 줍니까, 아니면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설적이게도 둘 다입니까?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6절) 

  • 이 신비 안에서 잠시 머뭅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도서 저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께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7-12절) 

  • 당신은 이 친밀함에서 도망하기를 원합니까?...아니면 그 안에서 쉬기를 원합니까? 사랑이 많고 자비로운 하나님께 완전히 알려짐으로써 오는 자유함이 점점 당신의 존재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고, 가장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음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3-16절) 

  •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더 무한정하게 큽니다…?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 시편 기자의 감탄이 당신 안에서도 자라나게 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안에는 폭력적인 어두운, 죄악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것들 역시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19-22절) 

  • 당신 안에 있는 이런 부분들까지도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까?...당신은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시는 것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십니까?...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에서 일하시도록 허락할 수 있습니까?...당신은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정의를 행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아멘,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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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강 닛사의 그레고리, 침묵기도 

지난 주 복습: 

  1. 초대 교회 순교의 영성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 혹은 변화 발전 되었는가? 
  2. 현대 기독교 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수덕적인 삶의 방법은 어떤 모습들이 있고 어떤 모습들이 부족한가? 
  3. 자기 비움의 영성과 자기 채움의 영성이 영성을 구분 짓는 한 방법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 두 가지 영성은 어떻게 표현 되는가? 


  1. 닛사의 그레고리의 영성 (Gregory of Nyssa: 332-395) - 모세의 생애 

  • 오늘날의 터키지방인 카파도니아 지방에 Cappadonican Fathers라고 불리우는 세 명의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의 바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그리고 오늘 다룰 닛사의 그레고리이다. 그 중 닛사의 그레고리의 형인 바실은 교회의 감독으로 교회의 제도 속에서 수도원 운동을 수용하여 공동체적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즉 은둔적인 수도원 운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교회에 정착시키는데 공헌한 인물이다. 
  • 그레고리는 당시의 고전적인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과 헬레니즘 문화를 공부하여 고전 문화와 기독교, 헬레니즘과 기독교 정신을 종합시킨 한 당대 최고의 사상가요 학자였다.  
  • 또한 그는 신비가로서 교리보다는 영성을 중시하며 교리란 이성적인 작용을 전제로 하지만 영성은 그것의 원천이며 완성이라고 보았다. 수도생활에 대한 중요한 글들, '모세의 생애,' '아가서 주석' '완전에 대해서'' 등 많은 영성적 저술을 남겼으며 그를 비잔틴 영성의 대표적 인물로 보고 있다. 
  • 그는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기독교란 신성을 닮는 일이다." 즉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우리 인간을 그들의 근원적인 축복된 상태, 즉 하나님의 모양/형상대로 창조된 바로 그 원상태로 환원시켜 준다. 따라서 기독교란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을 닮아가는 삶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삶의 한 방식이며 길인 것이다.  


  1. 플라톤 주의와 기독교

  • 로마로부터 자유를 얻고 기독교에 대한 공인을 받은 후 기독교는 새로운 기회와 동시에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올 하나님이 나라에 대한 복음 (Good News)을 대중들에게 전해주워야 할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의 전통과 교육에 익숙한 지식인들을 포함한 열방에 복음을 소개할 사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성서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성서, 즉 예수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유대교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고도로 발달한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들보다 미개한 (Barbarian)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아시아의 종교를 통합적, 혹은 혼합적으로 수용할 의사는 있었지만 절대적인 메시야나 기독교 신앙에 회심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닛사의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를 저술했다. 그의 이전에 이미 유대인 필로 (the Jewish Philo)와 오리겐 (the Christian Origen)과 같은 사람들은 이미 헬레니즘과 유대교 성서 사이의 다리놓는 작업을 시도했고 그레고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 따라서 닛사의 주요 업적은 그가 성공적으로 교회와 성서, 그리고 헬레니즘 전통을 타협이나 혼합없이 유지하면서 동시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모세- 유대인이지만 동시에 애굽이 학문에 밝은 자. 세상에 눈이 띄여진 자. 
  • 그레고리의 학문적 목적- 헬레니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전달할 것인가? 그들에겐 전적인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어떻게 그들 학문과 지평의 확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가 아닌 메시야로서 받아들에게 할 수 있는가?유대인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헬레니즘이 사람들의 관점에서 다가갈 수 있는, 초대할 수 있는 하나님.  


  1. 부정신학의 시초 (모세의 인생) 

  •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세가지 단계 

  1. 빛 (출 3:3-5): 불타는 떨기나무 숲에서 하나님 자신을 모세에게 계시
  2. 구름 (출 19:9): 구름 가득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 대면
  3. 어둠 (출 20: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 속으로 가까이 가니라. 


  • 하나님을 경험하는 여정은 빛으로부터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이 어둠은 나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절대적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출 20:2, 4: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 in the form of anything  

  • 일단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점점 하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서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미 자신이 제한해버린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미 우상이다. 따라서 그 하나님과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편견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은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 긍정신학: 성육신 신학, 어떻게 하나님이 창조 질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시는가? 교회에의 참여, 하나님께 대한 체험, 공동의 훈련, 자연 등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방식, 이해, 언어 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지 우리에게 알리시는지 설명해 준다. 그러데 한계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경험과 이전의 모든 세대가 남겨준 신앙의 경험들과 이해들을 다 수집하고 배운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아는 한계에 스스로 하나님을 가두어 버린다. 
  • 우리가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이해의 신학에서 신비의 신학으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을 표현하는 언어는 더욱 더듬거리게 된다..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 분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 긍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내재하신다) 부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우리 너머에 계신다. (초월하신다) 긍정신학은 하나님이 이 물리적 세계를 통해 우리를 어떻게 드러내시는지를 알게 한다. 그런데 동시에 그 물리적 세계를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인도하신다. 부정신학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엄청난 한계를 직면함을 또한 배우게 한다. 우리는 항상 전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Practice 1. 침묵기도 (solitude and silence)  사막 영성

  • 기도할 때 자주 경험했던 일- 기도작정(시간, 장소, 도구..) 방해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외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방해 받은 경험들 
  •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해지기 위한 기도의 시작이 곧 침묵과 고독의 기도이다. 
  • 사막으로 간 그리스도인들  why? 하나님과 방해 없이 기도하고 교제하기 위해.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침묵하고 홀로 기도에 안식하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고,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바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 하나님이 내 삶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공간을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곧 침묵 기도의 목적이다. 
  • 내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이야기를 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과 생각에서 멈추고 그 분이 나에게 말걸어오시도록 내 공간을 비우는 것이 곧 침묵기도이다. 
  • 내 안의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끊임없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 속에 조용히 계속적으로 'NO'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감정에 'Yes'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 내가 날 비우고 침묵해도 그 분이 잠잠할 수 있다. 내가 침묵했으니 말씀하라는 것도 나 중심적인 생각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분이 말씀하실 때에 내가 들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다.  
  • 실천 

  1. 하루 중에 가장 고요하고 혼자 될 수 있는 시간을 찾으라 
  2. 하나님께 그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임을 아뢰고 잠잠하라. 그리고 내면 속에 혹은 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점검하라. 
  3. 특히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나 감정들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라. (어떤 방해거리가 있는지..)
  4. 당신의 마음이 침묵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라 (화가 난다던지, 답답하다던지, 혼란스럽다던지, 아니면 평안하다던지?)
  5. 모든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감사하라. 좋은 경험을 못했더라도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살피고 내려놓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그 공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채워질 수 있도록 간구하고 기도를 마쳐라. 



  • 점검 및 적용

  1. 내 신앙 안에 육과 영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는 없는가?
  2.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만들어낸, 혹은 잘못 생각한 하나님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가?  
  3. 침묵기도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나누어라.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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