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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강 종교개혁과 마틴루터의 영성 과 중재의 기도

by 소리벼리 2016. 10. 23.

 

제 9 강 종교개혁과 마틴루터의 영성 과 중재의 기도 


  1.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   

1) 종교개혁의 토양 - 중세후기 서부 유럽의 시대상황

● 교회의 타락 - 교황과 성직자들이 권력과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도덕적으로 부패

● 근원으로의 회기에 대한 갈망 - 헬라철학과 고대 사본 대량 유입으로 이른바 르네상스(고전, 본래로 돌아가자!)는 요구

● 대중들의 불만 가중 - 지주들의 착취로 인한 경제상황 악화와 고위 성직자들의 사치

● 봉건제도의 몰락 - 민족주의(Nationalism)의 등장으로 라틴어에서 각국어 사용

● 과학의 발전과 세계관 변화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새로운 가치관, 종교관의 요구, 기존에 강요되던 권위에 반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요구됨. 

● 인쇄술의 발달 - 새로운 생각들과 출판물의 급속한 보급

2) 종교개혁의 촉발

중세에 들어와서 서구의 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수도원들의 활기와 생명력은 사라져가고, 교회들은 대형 성전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면죄부 판매와 성직매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고, 젊은 신부 루터는 비텐베르크 캐슬교회의 문에 95개 항목의 반박문을 내걸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 날이 먼 훗날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리라는 것을 루터는 알지 못하였다.


2. 루터의 논쟁과 종교개혁

  • 1517년 10월 31일(35세) 루터는 교황 레오10세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내용을 포함한 ‘95개 논제’를 라틴어로 기록하여 캐슬교회의 문에 붙였고, 만성절(All Saints Day) 축제를 맞아 비텐베르크를 찾은 방문객들의 공감을 얻으며 삽시간에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퍼져나갔다.
  • 1518년 교황은 루터가 속한 어거스틴 수도회에 치리를 부탁하였고, 결국 루터는 자신의 동료 수도사들 앞에서 ‘십자가 신학’을 설명하는 하이델베르크 논제를 발표한다. 그 결과 교황의 기대와는 달리, 수많은 수도사들이 그의 가르침에 지지하고 동조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 1520년 교황은 엑스수르게 도미네(Exsurge Domine) 칙령을 통해 "산돼지가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았다"고 선언하며 루터를 파문하고 그의 저서들을 불태우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이미 루터에게 동조하는 세력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신학적으로 그에게 동조하는 종교인은 물론, 수많은 인문주의자들과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루터의 대열에 합세하였다. 
  • 루터는 종교개혁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종교개혁 3대 논문;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같은 해인 1520년 8월과 10월, 11월에 각각 발표하였고, 그 해 12월10일 교황의 출교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움으로서 교황청과 결별을 선언한다.
  • 교황 레오10세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1521년 보름스(Worms) 제국회의에 루터를 소환하였고, 황제 및 독일 제국의 대 영주들 앞에서 주장의 철회를 강요받지만 끝내 거부한다. 
  •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에 소환되어 황제의 ‘주장철회 압력’을 받았을 때 루터가 황제 앞에서 했던 답변 속에 당시의 긴박성과 루터의 진실성이 담겨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 그 후 그는 삭소니 지방의 선제후 프레드릭의 도움으로 1521년-1522년 기사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바르트부르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루터는 1522년 신약성경을 출판하였고 1534년 구약성경도 출판 하였다. (개혁의 중점에 그가 몰두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말씀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 1525(43세) 수녀 출신의 캐더린 본 보라와 결혼을 하여 여섯 자녀를 둔다. 루터의 가정생활은 행복하였으나 그는 항상 육신의 병에 시달렸고 종교개혁가로서의 힘든 투쟁의 삶을 살았다. 루터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바쁜 삶을 살면서도 이주에 하나씩 책이나 소책자를 써냈다. 

3. 루터의 영성 

  1. 이신득의 (오직 믿음으로) 
  • “어떻게 하면 의로우시고 준엄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수 있겠는가?" 이것이 수도사로서 갖는 루터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cf) 법학도였던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한 동기 - 낙뢰사건 
  •  루터는 이 고민을 풀기 위해서 수도원 안에서 수도원의 모든 규율을 철저히 지켰다. 그는 완벽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얻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루터는 후에 수도원 때의 삶을 회상하며 "나는 육욕을 많이 느끼지도 않았고 외적으로 나는 선했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선행과 고행이야말로 루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기에 충분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항상 자기 자신안에 있는 죄악성과 이로 인한 공포감을 심하게 느꼈다. 그는 "나의 영적 시련은 내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데서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경건에 힘쓰고 작은 일에도 회개해도 그는 늘 부족하고 불안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더 불안했다. 경건생활에 대한 그의 투쟁은 결국 그를 거의 자포자기 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다. 
  •  그의 대 발견은 아마도 로마서를 강해하기 시작하였던 1515년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로마서 1:17을 곰곰이 묵상하던 중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말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의는 신자들에 대한 처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오히려 의인들의 공의, 혹은 의가 인간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들이 의롭거나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켜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며, 믿음과 칭의 모두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나는 의로우신 하나님, 죄인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나는 신성 모독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조용한 중에서도 (내심으로는) 굉장히 투덜대면서 하나님께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그렇지만 나는 바울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불타는 열망으로 바울이 말한 그 구절을 끈질기게 두드렸다....밤낮을 쉬지 않고 이 구절을 두고 씨름한 결과 마침내 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이 구절의 의미를 깨달았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속에서 그 구절의 답이 있었다. 하나님의 의는 그 분을 믿는 자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그 분의 사랑이다. " 

ex) 그리스도인의 자유

  - "믿음은 영혼에게 참 많은 것을 부여해서, 영혼이 신성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도록 합니다. ……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은 또한 영혼을 신부로서 그녀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만듭니다. 이 결혼 후에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영혼이 한 몸이 됩니다”(엡5:30)" (I. 12)  -> 믿음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의 영혼이 하나되도록 만드는 결혼반지이다! 

  - "이렇게 [영혼과 그리스도가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좋든지 싫든지 간에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믿는 영혼 그 자신의 것이 되고, 그 영혼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스도께는 모든 소유들과 복들이 속해 있는데, 이제 그것들은 그 영혼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에게 지워져 있던 모든 악들과 죄가 이제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신나는 맞바꿈과 분투가 시작됩니다." (I. 12.) 

  -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 …… 아버지는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자신의 소유들을 나에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아주 기뻐하실 일들을 자유롭게, 기쁘게,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 관련하여서는 내가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곧 내가 볼 때 내 이웃들에게 필요하고, 유용하며, 복된 것이라 여겨지는 것만을 행하겠다. 왜냐하면 난 믿음을 통해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충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Ⅲ. 27.)

  1. 오직 말씀으로 
  •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최종적 권위로 정립시켰다. 가톨릭측에서는 정경의 결정이 교회에서 이루어진 만큼 교회가 성경보다 우선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하였지만, 루터는 성경과 교회 모두를 존재하게 한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성경이 교회나 교황, 그리고 전통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다고 하였다.
  •  기본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이처럼 창조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이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셨으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시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행동이시다.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계시되셨다. 또한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의 세력을 극복하셨다. 하나님의 계시는 곧 하나님의 승리였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그 가운데서 예수님 즉 성육하신 말씀을 만나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루터는 성경의 최종적 권위를 주장하면서도 그 일부분에 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였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에는 일련의 행동규범만 있고 복음을 발견할 수 없기에 ‘지푸라기’라 하였고, 요한계시록 역시 문제거리였다.
  1. 십자가 신학 
  • 루터는 순전히 합리적, 혹은 자연적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에 관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통적 신학에 동의하였으나, 이것들은 모두 진정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천국으로 기어오르고자 하는 모든 인간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며, 이러한 노력들을 가리켜 "영광의 신학"이라 불렀다. 
  • 하나님의 가장 고상하고 위대하신 자기 계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서 발생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영광의 신학 대신 "십자가 신학"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신학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하는 장소, 혹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적 계시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약하고, 고난을 받으시며, 걸림돌이 되신다. 이는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행동하심을 의미하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모든 선입견을 버려야만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이성, 혹은 양심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이미 깨달았다고 생각하였던 모든 관념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 만인 제사장4122540.
  • 모든 신자, 성도는 제사장이고 곧 성직자이다. 루터의 만인 제사장 교리는 교회의 공동체적 의미를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킨다. 신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더 이상 계급주의적 제사장 제도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믿는 이들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 속에서 상호 협력하여 서로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신자들의 덕을 세운다.
  1. 루터의 개인 경건 
  • 루터가 하루에 할 일이 많으므로 아침에 세 시간씩 기도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적어도 일 년에 성경을 두 번씩 읽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성경을 일 년에 두 번씩 읽는다. 성경이 큰 나무이고 성경의 말씀 하나 하나가 나무의 가지라면, 나는 성경의 말씀 하나 하나를 알고 또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를 다 흔들어 보았다."
  • 루터는 마귀를 영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물질세계에서 감각하고 투쟁하였다. 루터가 성경을 공부하고 있을 때 마귀가 방해를 해서 잉크병을 마귀에게 던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향하여 불같은 비판을 뿜어냈지만 그는 가톨릭교회를 분리하는 것이 하니라 개혁하고자 하였다. 1522년 루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루터의 이름을 따서 종교개혁 운동과 교회를 칭하고자 하였으나 루터는 여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 모든 당파 이름을 지우고 우리를 다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이라고만 부릅시다. 나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주적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II. 중재(중보) 의 기도 

하나, 말씀으로의 초대 

  1. 마가복음 2:1-12절을 읽으십시오. 특별히 1-5절의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2. 이 말씀의 이야기와 중재의 기도를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 더 깊은 말씀 속으로의 기도 

  1.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합시다. 많은 사람이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쉼과 치유를 경험하고 있고 그 분이 계신 문 앞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난 이제 멀리서부터 그 분이 계신 곳까지 나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2. 당신의 도움, 혹은 예수님의 도우심이 가장 필요한 한 사람을 당신의 중심에 생각해 봅시다. 그는 당신이 도움이 없으면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네 사람이 각기 네 모퉁이를 붙들고 그를 붙잡습니다. 당신은 그 네 모퉁이의 한 부분을 붙잡고 있습니다. 자, 가운데 힘없이 누워있는 한 사람을 바라봅시다. 지금 이순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도록 당신이 도와주어야 할, 당신이 잡고 힘을 다해 매고 지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이끄는 당신 자신을 상상해 봅시다. 무엇이 당신의 친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이 그를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노력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누가, 혹은 무엇이 그와 당신이 노력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4. 그 모든 방해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당신의 선한 의지와 의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당신과 당신의 친구를 분리시키는 지붕의 한 막을 뜯어 내십시오. 거기에 또 다른 지붕의 막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막들은 무엇입니까? 
  5.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내리십시오.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시는지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요? 당신의 친구가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의 빛 안에서 온전함을 얻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6. 이제 당신의 친구를 그 분께 온전히 넘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상상하십시오. 당신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을 나누십시오. 
  7.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혹은 다른 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