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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강 인문주의와 칼빈의 영성  

by 소리벼리 2016. 10. 29.

제 10 강 인문주의와 칼빈의 영성  

  1. 칼빈의 영성의 배경 – 인문주의 (Renaissance Humanism) 

  • 인문주의: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중세시대는 신중심, 교회 중심의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진리와 신학을 강조한데 반해 인문주의는 인간개인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역할이 주된 관심이었다. 

  • 인문주의자들의 영성: 하나님은 인간과 영원히 근본적으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초월자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활동인 계시를 통해서 경험한다. 따라서 인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은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느껴지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신앙인의 목적이 된다. 

  1. 칼빈의 삶 

  • 존 칼빈(1509년~ 1564년) 은 장로교를 창시한 프랑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파리대학에서 인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변호사로 양성되었지만 그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적용하여 종교개혁에 접목시켰다. 그는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집대성하여 종교개혁 및 장로교의 근간을 형성했다. 
  • 또한 영국 청교도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청교도들은 성공회의 온건한 종교개혁에 반대한 칼뱅주의 개신교도들로서,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칼뱅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오직 성서(Sola Scriptura)를 주장하여 신앙의 진정한 권위는 성서에 있지, 교회에 있지 않음을 선언한 종교개혁자이기도 하다. 
  

    칼빈의 신학

  • 그는 인문학자로서 성경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성경의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그는 중세시대의 수도원의 사회적 배타적인 성격을 이유로 서구카톨릭의 금욕적인 영성 전통에 반대했다. 그의 신학은 반대로 사회참여적이고 포용적이다. 
  • 칼빈에게 있어서 영적인 지식은 지식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다. 그는 "진정한 믿음은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며 이해보다는 하나님의 영향력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한 지적 지식은 무용한 것이다. 또한 믿음은 현실세계에서 필요하고 적용가능한 실용적인 것이다"고 말한다.  
  • 자신의 교만함을 야기시키는 선행과 덕은 믿음과 상반된 것이다. 
  •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초월성과 인간의 절대적인 의존상황을 강조한다. 
  • 그는 심판하시고 무서운 하나님보다는 온화하고 친절하며 인간에게 공감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강조했고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에 비유했다. 그 사랑 때문에 칼빈의 예정론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닌 안전하고 위안을 주는 교리였다. 
  • 인간의 절대적인 부패성에 대한 교리는 인간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에 있어서 스스로 구원을 취할 수 있는 죄의 영향력을 벗어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데서 발생된 신앙적인 것이다. 그는 영적인 자기 점검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자신의 죄의 추악성을 발견할 수 있고 이 발견과 자각이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부정함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라는 두 가지 통로에 의해서 성도에게 이뤄진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의지를 그 분의 뜻 앞에 복종할 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왕이 되신다. 
  • 그는 가톨릭의 타락에 몹시 울분을 느꼈으며 이미 교황청은 고위 성직자들의 욕망과 권력 때문에 은혜의 구원의 복음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말씀의 권위 회복을 통해서 흩어져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데 열정을 기울였다. 
  • "행동과 실천"은 그의 영성의 궁극적인 표시였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는 사회를 위해 쓸모 있게 일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가톨릭의 수도원을 비판했다. 
  • 그는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라고 인식했으며 교회를 이상적인 사회공동체로 생각했다. 그는 성찬식을 교회의 공동체성과 하나됨, 일치의 중요한 상징과 통로로 보았다. 
  • 영성적인 생활은 이 세상에서 인간 존재의 목적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 그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교회직제의 기초를 세웠다. 칼뱅은 "하나님이 구원과 멸망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사람은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는 예정설을 주창했다. 그의 예정설을 놓고 개신교 내부에서도 격한 논쟁이 일었다.
  • 칼빈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 목회적 사역에 전념하였다.  칼빈은 '완전히 탈진한 채' 설교했고, 모세 오경의 마지막 네 권에 관한 주석을 마쳤고, 여호수아서 주석을 재고했고, 신약성서 번역과 각주들을 검토했으며, 그가 죽기 8일 전까지 자신의 편지들과 저술들을 받아쓰게 했다. 목소리와 숨이 결국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운명했다.
  • 지성과 영적인 것의 통합: 경건과 교육의 결합을 통해서 신학은 경건의 교리가 되었다. 

  1. 칼빈의 영성 

  1. 그리스도와의 연합칼빈의 영성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는 그의 신앙과 신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그의 중심사상이요 신앙의 핵심이 된다.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통하여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 연합으로 이루어진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가 이루신 모든 것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을 전달받는 것이며 그의 유익을 받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실 때까지 우리는 이 비할 데 없는 선을 가질 수 없다"고 고백한다 
  2. 성화의 영성 

  • 루터가 칭의를 강조한데 반해 칼빈은 칭의 이후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시작되는 성화를 강조했다. 칼빈의 ‘성화’의  영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중세 이래 뿌리 깊게 내려온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의 사상이다. 이 사상은 머리에만 머무는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고대 기독교 이래 수도자들과 중세 수도원 전통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성’ 전통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 칭의는 외적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상태에 관한 사법적 행위이다. 성화는 인격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내적인 중생을 일으킨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화와 칭의는 비록 구별이 되었지만 서로 떨어질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칭의는 실제로 의로움의 선포인 반면 성화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을 위해서 하는 계속적 투쟁과 변화과정이다.
  • 성화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적 삶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성장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을 향한 성장은 기독교인의 변함없는 목적이며 목표이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성화의 사역은 철저히 하나님의 것이다. 성화에 있어 인간이 행하여야 할 노력과 훈련의 차원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성화는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다. 칼빈의 자기 부정과 금욕 주장 등은 이 빛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말씀의 영성 

  • 칼빈의 경건은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에 뿌리를 두고 성경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말씀중심의 영성이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개혁자들의 구호는 중세 교회의 타락한 권위를 부정하고 내세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권위이다. 그러나 성경중심의 경건과 신학을 실제적으로 완성한 사람은 칼빈이라고 할 수 있다. 
  • 칼빈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강조하였다. 칼빈은 기록된 말씀(성경)의 저자가 하나님 혹은 성령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친히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그는 성경은 인간이 이성이나 교회의 권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진리를 가르쳤다. 
  • 무엇보다도 칼빈은 설교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살았고, 수많은 설교문과 성경주석을 집필하며 말씀의 영성을 친히 실천하였다. 칼빈은 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의무들을 안고 있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주 설교를 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동안 4,000번 이상의 설교를 했는데, 이것은 매년 170번 이상의 설교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기도의 영성

  • 영성의 핵심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칼빈은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심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도 기도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길며, 또한 그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었다. 
  • 칼빈을 기도와 전혀 상관없는 주지주의적 사람이며 책상 위의 학자요 강단 위의 무미건조한 설교자로 이해하는 것은 무지와 몰이해에 해당된다. 칼빈은 기도를 통해 기도의 신비를 이해하였으며 이를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적 신비적 체험에 몰두할 정도로까지 밀고 나가기까지 하였다. 그가 기도를,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여 주는 본문이 있다. 

 "열렬한 감정은 우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서 떠오른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하며,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거의 목을 메이게 한다. 마음의 감정은 너무나 타올라서 그것이 혀와 신체의 사지를 빠르게 하며, 그리고 신자들은 날마다 그와 비슷한 것을 경험하며, 그들이 기도할 때마다 생각하지도 못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하소연을 하게 된다."

  • 칼빈의 신학에서 기도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매우 크다.  칼빈은 1559년 수정 증보된 기독교 강요 제3권 제20장 전체를 기도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기도란 "성령의 역사에 의한 믿음의 열매로서, 성도들이 일생 동안 유지하고 지켜야 할 신앙의 연습이자 확증’"이라고 강조하였다.

  1. 지성과 감성의 균형 

  • 칼빈은 지성 중심으로 치우친 사람이 아니었다. 칼빈의 영성은 감정을 배제한 지성적 영성도 아니며 지성이 결여된 공허한 영성도 아니었다.  칼빈에게 있어 지식은 넓은 의미에서 경건의 개념 속에 포함된다. 예레미야(10:25) 주석에서 칼빈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경건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가져다 준 열매요, 경건의 증거이다. 칼빈은 또한 경건과 사랑을 관련시킨다. 에스겔을 주석하면서 그는 경건이 사랑의 뿌리라고 말한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의미한다. 
  • 칼빈의 글 속에 심장(coeur)이라는 용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크다. 칼빈은 이러한 표현을 그의 신학 속에서 ‘심장의 신앙’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신앙은 우리의 영혼 중의 영혼이다." 신앙은 머리 속에서만 왔다갔다하는 단순한 합의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단지 혀끝에서만 가지고 있는 사변적 신념이 아니다. "신앙의 합의는 차라리 뇌의 것이 아니고 심장의 것이며, 지성의 것이 아니고 감성의 것이다."

  1. 참여의 영성 

  • 칼빈은 오로지 세상을 포기하고 물러나 수도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상을 공격했다. 중세식의 수도원 전통인 ‘그리스도를 본받아’ 식의 영성전통에 따르면, 교회는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는 기도와 묵상 전념하는 것을 그 본질적인 임무로 하는 영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 영성은 유리된 종교적 현존 가운데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구원의 나라로써 실제화된다. 이 영성은 매일 매일의 생활 자체가 ‘신성한 예배’이며 ‘세상’은 하나님과 만나는 현장, 곧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라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과 개혁주의 영성은 세상 속에서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