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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사무엘서 강해)

왕의 후회 (사무엘상 15:9-23절)

by 소리벼리 2021. 12. 11.

왕의 후회 (사무엘상 15:9-23절)

 

  • 본문은 사무엘이 사울로 하여금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멜렉은 블레셋보다 더 오래된 이스라엘의 적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난 후에 시작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자 마자 사탄의 시험을 받듯이 하늘의 양식인 만나, 즉 말씀과 반석의 물, 은혜를 맛본 이스라엘 민족들이 비로서 만나게 되는 대적이 아말렉입니다. 아말렉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의 후손입니다. 즉 먹고 마시는 문제로 하늘의 축복을 팔아넘긴 육적인 욕망 덩어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말렉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재정을 담당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던 제자였지만 돈 궤를 맡다가 도리어 돈에 눈이 어두어 은 삼십냥에 예수를 팔아 넘기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신앙인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언제나 돈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돈으로 인해서 신앙을 타협하고 포기하고 외면하면 결국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 물리쳤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기도해서 돈이 나오냐 기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인들 중에서도 평상시에는 기도하다가 정작 문제가 닥치면 기도하지 못하고 해결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기도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은 기도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문제에 압도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 사람의 육적 욕망을 의미하는 세력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 하나님은 실수하고 범죄한 사울에게 끊임없이 회개할 기회를 줍니다. 사무엘이 도착하지 않음에도 제사하며 승리를 구했던 사울에게 불완전하지만 요나단으로 말미암은 승리를 주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음식을 먹지 말것을 명령하여 그것을 어긴 요나단을 죽이야만 했던 사울의 거짓 서원에도 죄를 묻지 않습니다. 

15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또다시 사무엘을 보내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안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 돌아옴의 표시로서 아말엑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안의 육적인 욕망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육체를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는 욕망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삼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자기 안의 모든 육신적 욕망,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탐욕과 정욕을 못박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아말렉과 승리하게 하신 후에 아말렉은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승리이시다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바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육신과 싸워 이기는 자입니다.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는 예수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명령대로 아말렉을 쳐서 무찔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리라. (9절) 

 

아각은 아말렉의 왕의 칭호입니다. 애굽의 왕을 바로, 로마의 왕을 가이샤라고 말하듯 아말렉의 왕을 아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말렉을 치면서 왕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의 모든 좋은 것은 진멸하지 않고 자신이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사사기서를 통하여 기드온의 실패를 나누었습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의 미디안 군사를 물리쳤던 기드온의 실패는 미디안의 남긴 보물들을 자신이 소유하고자 했던 탐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탐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보물로 에봇을 만들어 물질을 섬겼습니다. 물질을 섬기니까 그 물질의 자녀 아비멜렉으로 말이암아 집안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에 재앙이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용사를 실패하게 하는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여기에서 지면 어떤 은혜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육신과의 전쟁에서 실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자 11절에 하나님이 뭐라 하십니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나를 따르지 않고 내 명령을 행하지 않는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자기 소욕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찾아온 사무엘에게 사울의 첫 마디가 무었입니까? 

"13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그가 남긴 양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의 죄를 지적하자 사울이 뭐라 말합니까?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자기의 책임을 누구에게 넘깁니까? 백성에게 넘깁니다. 무리가 가져왔다고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하나님을 가리켜 뭐라 말합니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 

21절에도 똑같이 백성이 그랬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그랬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끝까지 사울을 돌이키려 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17절)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십니까?" (19절) 

 

사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나는 실로 (진짜, 정말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텅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20-21절)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변명하고 남에게 전가하고 결국 하나님께 탓을 돌립니다. 

이젠 내가 이거 해서 너의 하나님께 제사할 꺼라고.....

 

ex) 땅 잘팔리게, 도박하여, 복권에 당첨되어 헌금내야지..... 그런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사무엘은 그  유명한 구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이를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음이라."(22-23절) 

뭡니까? 

 점치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래 입니다. 내가 이것 해 줄테니 결국 나 잘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맺어진 관계인데 사울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거래를 원하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만 갖다 놓으면 전쟁에 이길 것으로 생각하듯 사울에게 하나님은 제사만 잘드리면 복 주시는 분, 헌금만 많이 내면 복주시는 분....그것은 결국 점치는 우상숭배, 샤머니즘 신앙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언제 후회합니까? 

 사무엘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이제 왕이 못될 것이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내가 범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가 범죄하였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안된다고 하니까, 이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자기 삶이 힘들어질 것이라 하니까 잘못했다고 자기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말을 두려워하여 백성의 말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어디 그가 백성의 말을 두려워했습니까? 

 

사울이 사무엘의 바짓자락을 붙잡으며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30절) 

 

아 어떻게 이렇게 까지 뻔뻔할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있으니까 예배 잘 드리는 척이라도 하고 가라고 지금 바지자락을 붙잡고 비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는다는 소릴 듣기가 두려워서 자기 무기든 소년에게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사울이 후에 할례 받지 아니한 자에게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죽는 것, 결국 자기 체면, 자기애로서 가득찬 인간의 비굴함과 연약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도 처음엔 그런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모습을 아는 겸손한 자였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효자였고, 또 성실히 일하는 자였습니다. 

왕이 될 만한 자질이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왕이라는 자리가 사울의 모든 것을 망쳐놓았습니다. 

왕이라는 자리가 사울의 인격과 양심과 모든 신앙을 더렵혀 놓았습니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내어 신앙생활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에서의 기득권과 축복이 신앙의 자리를 대신해서 하나님보다 성공을 붙잡고 살다가 이제 그 자리가 위태하니까 회개하는척 하다가 신앙을 회복하려 하기 보다는 세상에서의 체면과 명예를 유지하려다가 더 큰 수치를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안주실까?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의 복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의 복, 물질의 복, 성공의 복이 오히려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망쳐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의 제목은 왕의 후회입니다. 

사울왕은 지금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다 영원한 왕의 자리를 잃어버릴 지경에 온 자신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마치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빼앗겨 버렸던 아말렉의 시조인 에서처럼 사울은 탐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아닌 또 다른 왕의 후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후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말을 떠났고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자유는 그 분 안에 거할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탐심 때문에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지금도 팥죽 한 그릇에 영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말렉은 진멸시켜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나의 삶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후회하신 적은 없었을까? 

 

제가 어느 새벽예배때 받은 은혜를 적은 글을 나누고 설교를 맞칩니다. 

 

 

어느 새벽기도 시간에.....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고

너무 가난해서....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이 갈급하고

앉으면 "주여!" 한마디에 가슴이 매어지고 

한 마디 말할 수조차 없어서 한숨만으로 이루어진 기도를 드리는 

 

그저 날 불쌍히 여겨달라고

날 좀 구해달라고 

하는 그런 숨막히는 공간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가장 순수하며 

가장 진실하며 

가장 갈급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때라는  

감동이 

위로가 

하나님의 따스한 격려가 

 

오늘 

나에게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