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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사무엘서 강해)

사무엘상 16장 14-23절 왕의 일

by 소리벼리 2021. 12. 16.

사무엘상 16장 14-23절 왕의 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16장의 앞 부분을 다루면서 다윗의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을 살피며 기름부음의 의미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기름부음의 대상은 왕, 제사장, 선지자의 세부류의 사람만 기름부음을 통해서 임명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할 때에 그리스도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고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할 일이 있다. 그것을 네게 맡기겠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특정한 일을 위해 세움을 받은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특별한 사명의식이 있었습니다. 

 

사울도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삼상 10:6-7)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10절에 보면 

(삼상 10:9-10)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그런데 오늘 읽은 16장 14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 구절을 잘못 오해하면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셔서 사울을 괴롭힌 것처럼 이해하면 하나님을 악령을 보내시는 자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건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에 크게 위배되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았을 때에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부으셨습니다. 왕이라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새마음과 새능력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5장 1절에 보면 사무엘이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 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무슨 소리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함께 주셨는데 이제 그 뜻대로, 하나님 주신 능력을 가지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습니다. 

왕의 전령으로, 왕의 사자로서 파견되었는데 왕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러니까 왕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영을 거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거두시니까 자연스럽게 사울이 사탄의 종노릇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하니까 사탄이 사울에게서 하나님 자리를 대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를 기대어 사는 존재라는 의미 아닙니까? 

 

자, 사울의 불순종을 나타내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블레셋 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오기 전에 스스로 임의로 제사를 드리려다가 불순종한 죄요, 두 번째는 아말렉 과의 전쟁에서 아말렉과 그 소유물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가장 좋은 것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이것은 죄라고 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것은 부도덕 하거나 부정한 일을 저지를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전쟁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행한 일이요,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아니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일은 윤리적인,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철저히 예배에 관련된 죄입니다. 종교적인 죄입니다. 

사울은 전쟁을 치루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사울의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사울의 죄를 자꾸 지적할 때마다 저 백성들때문에, 저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고 변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때부턴가 스스로의 주권을 책임지고 자기가 그 일을 감당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뜻을 향한 전쟁이 어느덧 자신의 명예와 목적을 이루는 전쟁이 되어 버리고 그 전쟁을 위해 예배가 도구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일과 예배 

자, 창세기의 첫 기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함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마지막 날 예배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신 예배 영성의 큰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동산에서 일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바울도 참 예배는 안식일날 하루 나와서 드리는 구별된 시간으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우리 몸, 우리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파견된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들입니다. 

우리의 일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예수님도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연결된 자입니다. 우리의 일을 통해 우리가 드러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 하기도 합니다. 일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하기도 했다가 하나님을 피하기도 합니다. 

 

일은 우리의 본질을 때로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에 우리는 흔히 "무슨 일 하세요?" 이렇게 묻습니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기를 원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의 목적과 삶의 태도와 삶의 테두리를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일은 우리의 정체를 감추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 그 사람의 생각, 인격, 태도 등을 그 사람이 하는 일을 통해 잘 살피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참된 신앙 생활은 일과 예배를 하나되게 합니다. 일이 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잘 표현할 수 있게 합니다. 

엿새를 일하고 칠일째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삶과 예배, 일과 예배를 구별하지 말고 하나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자꾸만 엿새동안의 삶과 안식일의 삶을 구별하고자 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든지 주일날 나와 예배하면 만사가  ok인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건 주일 날 나와서 거룩한 말투로 기도하고 찬양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인것 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인 대화를 할 때와 전혀 다른 말투로 기도하는 분들 있습니다. 흔히들 목사님 말투라고 기도할 때만 나타나는 말투....

하나님은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이 대화를 하기 원하시는 것이지 시낭송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하는 변명이 무엇입니까? 

이건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교회라는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로 얼마나 많은 비난을 면해 왔는지 모릅니다. 

투명하지 않은 재정문제, 깨끗하지 않은 인간관계, 모든 불순한 것이 교회라는 건물과 주일이라는 시간 속에 숨겨져 왔습니다. 

 

디모데서에서 말하는 직분자의 기준은 주일날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해 직분자 뽑으라 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건전한 자인가? 성실한 자인가? 인정받는 자인가? 오히려 그의 일상과 일터에서의 모습을 통해 직분자를 뽑으라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부터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영성, 일과 예배, 삶과 예배의 일치된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에서의 특별한 언어로만 이해되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의 복음은 베들레헴의 말구유, 갈릴리의 고기잡이 배, 삭개오의 집, 나사로의 무덤, 사마리아의 우물가 등 우리의 일상의 언어와 환경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다윗의 기름부음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새로운 일터로 불려 나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첫번째 일터은 왕의 자격을 잃어버린 사울을 섬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다윗은 20여년간 왕으로서의 일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인턴십 과정으로 나뿐 왕, 실패한 왕을 섬기게 합니다. 

왕으로서의 첫번째 코스는 왕의 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기업의 총수의 아들이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밑바닥 부터 일을 가리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왕의 일과 종의 일은 전혀 다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종으로서 섬기는 일이 곧 왕으로서 통치하는 일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내가 선생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기라"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사울을 섬기면서 왕의 직책은 곧 섬기는 직책임을 깨닫습니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때만다 후보자들은 국민을 받들겠습니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말들을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또한 다윗은 사울을 보면서 왕이 하나님의 뜻을 떠났을 때에 어떤 일이 발생되는지를 온몸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의 죄를 지적받았을 때에 그가 외친 기도는 사울처럼 "나를 왕에게게 물러나게 마옵소서"라든가 백성들에게서 내 죄를 감추소서가 아니라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아닌 주의 성령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참 일에는 섬김과 통치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왕이라는 직분은 우리가 가진 역할이고 그 방법이 바로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했던 일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시달리는 영혼에게 찬양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도록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사탄의 지배를 받던 사울이 다윗의 찬양을 통해 그가 상쾌하고 (씻김) 낫고 (치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회복) 라고 증거합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임명하시고 그 일을 감당하도록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가 기름부음 받은 자의 완성, 즉 그 The Messiah, the Christ가 됨으로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자의 대표성을 띈 것은 사도였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대사, 특정한 일을 위해 임명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고백을 다함께 선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도로 임명된 자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거룩한 직분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표현하고 드러내도록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을 통해 혼돈에서 질서를 이루며, 정결해지고, 치유되며, 회복되는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울과 다윗은 둘 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왕이라는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실패한 삶이요, 사탄에게 지는 삶입니다. 

일을 위해 예배를 도구화하는 것은 우상숭배요 타락한 예배입니다. 

 

다윗은 왕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타락한 죄인을 섬기는 왕이 되었습니다. 무질서한 영혼에게 질서를 공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시달리는 영혼을 상쾌하게 해주는 도우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입니다. 

일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을 위해 나를 세우셨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가정에서의 일이건, 회사에서, 가게에서, 자동차 안에서의 일이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십니다. 그 일을 통해 예배하기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