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에 잃어버린 믿음 (마가복음 6:1-6 )
예수가 말씀을 전할 때- 듣고 놀라 가로되... (첫번째 반응)
두 번째 - 판단: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들의 형제가 아니냐...우리와 동급이 아니냐? -> 배척한지라...
- 마리아의 아들... 왜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요셉이 죽었기 때문에?
No, 유대인의 법은 죽었어도 아버지의 아들로서 부른다. 오히려 비아냥 거리고 조롱하기 위한 표현이다.
사 53:2-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마른 땅이 어디이냐? 곧 세상이요, 좁게 말하면 갈릴리 나사렛이다.
그러나 그는 생명으로 나왔다. 뿌리다. 겉으로는 나사렛이지만 속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두 번째 판단으로 인해 놓쳐 버리는 은혜.
결국 본질이 아닌 외형의 문제... 외모의 문제, 권위의 문제, 외적인 조건을 바라보는 세상...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
5장의 혈루증 앓는 여인, 회당장 야이로-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께 가까이 가면 고침을 받는다는 믿음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대중들을 뚫고 예수께 나아오도록 인도
"딸아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
회당장 야이로는 사람들의 이목이나 자신의 체면을 상관치 않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앞에 꿇어 엎드리고 나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그런데 고향 사람들- 예수의 말씀과 이적을 보면서도 그럴리가 없다 하면서 예수를 배척.
그들에게 예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1. 예수은 "예수에 관하여"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는 알지 못했다.
예수의 부모가 누군지, 그의 형제가 무엇인지, 그의 자라온 환경은 무엇인지 알았지만 정작 예수 자체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2절) ->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냐? 그것의 Source가 무엇이냐?
자꾸 외적인 것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
2. 선입견이 그들의 눈과 귀를 닫게 했다.
그 사람의 배경에 관한 선입견
은사하면 귀를 닫는 선입견
헌금 얘기하면 눈을 감아버리는 선입견
'주여 삼창하며 기도하면' 마음을 닫아 버리는 선입견...
반대로 침묵기도하면 마음 속에 분란이 일어나는 선입견...
신앙생활 하면서 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 선입견이다. 그것이 정작 예수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신앙생활은 내 취향에 맞추어 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에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비우고 내 취향을 거부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다.
편견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잘 알아서도 일어난다.
나사렛 사람들은 서로 혈연으로 얽혀있는 작은 마을- 그들이 아는 예수, 경험한 예수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는 너무도 달랐다. 이것을 그들은 극복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예수 때문에 더 넓고 크신 그 분을 경험하지 못한다.
체험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새 말씀, 새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내가 유학와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것: 교회 역사와 교회 전통과 신앙의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된 것.
내가 가진 신앙의 그릇이 얼마나 편협하고 좁았는가? 얼마나 다양하게 그러면서도 분명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신앙의 운동이나 모습들이 있었는가?
다르면 부정하고 부인하는 기독인들의 모습...
넓어지는 것 만큼 더 경험되어질 수 있고, 품는 것 만큼 더 깊어 질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
근본주의가 왜 나쁘냐?
자기가 경험 한 것 이외에는 다 부정하고, 상대만 안 하면 되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고, 부수고... 오히려 복음에 방해되게끔...
3. 자기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닥쳤을 때에 일어나는 반응- 그 앞에 엎드리거나 배척
(막 3:31-32)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 가까운 것 같으나 먼 사람들, 가까운 관계 같으나 항상 밖에 거하는 사람들...
열명의 정탐꾼- 그 땅은 좋은 땅이지만 우리는 메뚜기라 . 우리는 그 땅을 감당할 수 없다.
자기의 한계 안에서만 생각.
신앙은 내 한계를 무너뜨리고 주님의 무한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야이로는 예수이 무한앞에 자신이 직분과 체면과 시선을 넘어섰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무한 앞에 군대 장관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내려 놓고 엘리사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섯번의 물음표
- 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적인 지혜와 표적을 보고 놀라 고민하다 내린 결론
- 똑같은 말씀과 이적을 보면서도 거듭되는 물음표 안에서 잃어버리는 것. 첫 경험의 확실함을 잃어버리고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예수를 앞에 두고서도 배척해 버린다.
- 배척하다 (took offene at him)- 결국 거절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대신 공격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고전 3:18-20)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4.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쳤다.
소수의 병자는 누구인가? 자기 편견과 자기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의 병으로 인해 주님을 바라는 자.
자기의 병을 인정하고 예수의 능력을 바라는 자
적지만 그렇지만 그 마을에도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있었다. 믿는 자가 있었다.
자기들과 같이 커 왔고, 같이 자랐지만 이제 새롭게 나타난 예수에게 전혀 다른 기대와 새 희망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기도를 받았다. 그들의 머리를 예수의 손 아래에 두고 겸손히 예수님의 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치유받았다.
묵상질문)
1. 내가 아는 지식과 편견과 전통이 예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 적이 있는가? 방해 될 수 있음을 꺠닫는가?
2. 사람들과의 관계, 주님과의 관계,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모를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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