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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7-13 (제자의 길) 

 

사람들을 모아 씨 뿌림의 비밀, 천국의 비밀들을 말씀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이 여기 저기 뿌려지지만 열매 맺는 땅은 극히 적다. 그러나 그 열매 맺는 땅의 열매는 나머지 땅의 기근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 풍성한 은혜다. 충만한 은혜이다. 

 

그것을 말씀으로 뿐망 아니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메시야의 사명을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고향에서는 오히려 예수를 반기지 않는다. 똑같은 말씀, 똑같은 이적을 베푸시는데도 그들은 판단하고 정죄하고, 애써 폄하한다. 

고향땅의 자기 친지들과 이웃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 

 

믿지 못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가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 

3절의 배척한지라- 그를 반대하기로 택하다. 

 

사람들은 믿어져야 믿지 어떻게 억지로 믿냐?하고 질문한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느다고도 한다.  

모세 때 처럼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면 믿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매일같이 보아도 믿지 못하는 것이 인간. 

모세가 시내산에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에 사람들이 한 일.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예배. 

그 때에는 구름 기둥 불기둥이 없었나? 40일동안 만나가 내리지 않았나? 아니다. 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되었지만 그들은 우상을 만들고 섬겼다. 

 

결국 믿음은 선택이다. 내가 믿는 것을 선택하느냐, 믿지 않는 길로 선택하느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전에 과외를 가르치다 보면 부모들이 항상 하는 소리 

"얘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나빠요..." 

그런데 과외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나쁜 머리 아니면 공부 안해서 성적 나쁜 아이 가르치는 것이 훨씬 힘들다. 

머리 나쁜 아이는 열심히 할려고라도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천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지능의 학생이 조금만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교과서라든가 시험이 만들어진다. 

 

정말 머리가 나빠서 해도 안되는 아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머리 좋은데 공부 안해서 못한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정말 많이 혼나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말 말씀을 읽을 기회도, 교회를 다닐 기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도 어떤 영문인지 예수 앞에 나오는 자들이 있다.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도 없이, 교회도 없이, 예수 믿는 것이 발각나면 죽는데도 그래도 예수 믿는다고 굴을 파고, 아궁이라도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성경책을 사주고, 예배 나오라고 전화하고, 죽어라 중보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쳐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서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이상한 마음이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사람들 앞에 나오면 위험한데도 예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나온다. 

회당장은 자기의 체면도 권위도 다 내려놓고 예수앞에 나온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한다. 안믿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를 몰래 믿는 자들이 많았다. 

가족 전도는 기도는 할 지언정 입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집에서 전도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는데 무슨 그리스도인이고 전도를 하냐고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가정이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고, 가정이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바르게 살면 집안에서부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내 옆의 가족부터 전도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해도 해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하고 진실하게 대하려고 하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려고 해도 이미 굳어진 관계로부터 나온 마음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들도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하고 나서 믿지 않자 곧 열방을 향해 눈을 돌린다. 

가족을 처음 부터 포기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자 연연하지 않고 그러고나서 모든 촌으로 눈과 발을 돌린 것이다.

 

그럼 가족들은 영원히 포기되었는가? 

아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인정하고 언제인지 모르게 형제들도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갈리리의 여인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나사렛이란 동네 자체가 존귀하게 되었다. 

 

7-a)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제자는 백성과 다르다. 무리와 다르다. 주님과 동행 할 뿐 아니라 사역을 나누는 것이다. 

복음전파의 사역, 귀신을 쫓는 사역,. 회개를 선포하는 사역.... 

 

제자를 삼으실 때는 한 사람씩 부르셨는데 동역자로 파송할 때에는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낸다. 

1. 동역하게 하신다. : 하나였던 자들이 둘이 되게 하신다. 영적인 일을 감당해야 하므로 이 둘은 믿음 안에서 또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꼭 맞는 자들이 짝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마태와 시몬처럼 극과 극인 사람도 짝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둘이기 때문에 이들은 의지할 수 있었고, 예수가 옆에 없어도 서로 격려할 수 있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 자체가 동역하기 위해서이고, 온전함의 열매 역시 동역이다. 

 

2. 증인되게 하신다. 

복음 전도자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받아들이는 자,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7-b)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은사는 봉사를 위해 주신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이적을 베푸시지 않고 인간을 위하여 남을 위해서만 이적을 베푸셨듯이 권능은 언제 나타나느냐? 복음 증거하고 남을 위해 사용될 적에 나타나는 것이다. 

 

8-10)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티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왜 그러셨을까? 

1. 주님께 맡겨라. 

너 자신을 믿지 말고 보내신 자를 믿어라.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거나 누구를 가르치라 하면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준비되면 나중에 한다고 한다. 

제자들의 상태는 어떠했을까? 

엉성하였다.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믿음이 있으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준비 되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연약하지만 보내신 자를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일하는 것이다. 

 

2. 타인에 전념하라. 그에게 집중하고, 생명을 다해라. 

하나님께만 의지해라와 동시에 내가 전하는 자에게 올인하라. 

분산되지 말아라. "그곳을 떠나기까지 그곳에 머물라." 

내가 일을 완수할때까지, 다른 것에, 다른 곳에 신경쓰지 말고 그곳에 푹 잠겨 있으라. 

 

3. 내가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값진 것인지를 알고 당당해라. 

아무리 내가 귀한 사람이라도 한 곳에 오래 유숙하면서 신세를 지면 죄송하다. 비굴해진다. 

그때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서 돈을 주거나 귀한 선물을 준다. 

그런데 주님은 사전에 그런 감정의 비굴함으로부터 제자들을 경계하셨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의 값짐, 귀함을 잊지 않도록 하셨다. 

 

11절) 어느 곳에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매정하게 끊어 버리라? 

주님은 전하다가 안들으면 소금 뿌리듯 그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하시는 것일까? 

 

1. 구원을 거부하는 죄인들과의 고통스러운 이별 

(눅 13: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아픈 마음에 대한 표현 

가룟유다에 대해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시지만 죽음의 길로 내닫는 제자. 

 

2. 먼지를 더 이상 마음 속에 품지 말라. 

마지막 만찬 때 그들의 발을 씻기시며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구원받은 자가 해야 할 회개 

날마다 살아가면서 지어왔던 먼지같은 죄

 

내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 들게 되는 생각. 저주와 분노 

 

그곳을 떠나면서 자기들을 증오하고 조롱하며 모욕하며 핍박하여 왔던 악인들로 인하여 그들을 향하여 혹시 가질 수 있었던 사단이 준 미운 마음, 분노, 좌절감, 절망감, 무기력

 

너희들의 먼지를 털어버리라. 

 

묵상질문) 

1.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음에도 열매가 없을 때, 혹은 별 기도없이 말했는데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할 때, 열매는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고 뿌리는 것 

 

2. "발 아래 먼제를 털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는 말을 묵상해보자. 왜 이런 말을 하셨을까? 아직 털어내지 못한 먼지가 있지는 아니한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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