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6장 1-8절 빈 무덤

by 소리벼리 2021. 5. 8.

마가복음 16장 1-8절  빈 무덤 

 

안식일이 지났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아침 일찍

해 돋을 때에 세 여인이 예수의 무덤을 간다. 

세 여인이 해 돋을 때에 모여 무덤에 간다는 것은 셋이 밤을 새었을 것이다. 

단지 죽은 예수의 시체가 썩지 않도록 향품을 바르러 간 것이다. 

 

마치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어 "낭비"라고 하는 제자들의 원성을 들었던 것처럼 

남자제자들이 보기에 자신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예수의 시체에 향품을 사다두었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가를 여인 셋이 찾은 것이다. 

 

또 하나의 여인들의 무모함이 있었다. 

당시의 무덤은 땅 밑에 장사된 것이 아니라 동굴처럼 지상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입구에는 장정 몇명이 붙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큰 돌문이 가로막혀 있었다. 

여인 셋이 아무리 힘을 합쳐 보았자 꿈쩍도 하지 않는 그런 큰 돌이다. 

 

무덤을 방문했던 여인들의 심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돌아서서 초라하게 죽은 시체 앞에 여인들은 무엇을 바라고 그 새벽에 그 무덤을 찾았을까? 

무언가를 바랬던 사람들은 모두가 예수의 십자가 앞에 뿔뿔히 도망했다. 

여인들은 오히려 예수 앞에 아무런 바램이 없었기에 죽은 예수를, 그것도 뜬눈으로 밤을 새워, 자기 돈을로 향품을 사서라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대교회 때부터 사람들은 기도 하기 앞서 자기 마음에 있는 것들을 비우는 훈련을 했다. 

자기 마음이 더러우면 예수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여"라는 한 마디를 내 뱉기 전에 마음 속에 조그마한 잡념이나 순수하지 못한 욕망이 기도를 방해할까봐 자기 마음을 온전히 비운 후에야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하고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훈련하고, 그렇게 기도를 시작했다. 

 

물론 기도는 어려워서는 안된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기에 내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 분은 내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기도를 들여다보면, 끝난 뒤에 무엇을 이야기 했는지, 주님이 느껴졌는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때가 수두룩 하다. 

무언가 잔뜩 부르짖기도, 간구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내 마음의 한풀이로 자기 감정의 정화만을 남긴채 아무런 교제 없이 기도의 처소를 나올 때도 많다. 

여인들은 예수를 보는 것 이외에 아무런 바램이 없었기에 돌 문이 막혀 있음에도, 새벽 녁 자신들의 집을 나올 수가 있었다. 

 

예수를 보는 것 이외에 아무런 바램이 없었기에...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바램 때문에 오히려 예수의 얼굴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 

부르짖어도 내 뜻에 요동하지 않는 예수의 침묵에 실망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은가? 

그 바램이라는 것이 정말 주님의 존재를 대면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인가? 

 

(요한복음 11장 38-39)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십자가의 사건 전에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에 예수님의 능력을 방해한 것은 바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었다. 

 

죽은 예수의 무덤 앞에서 여인들 외에 아무도 예수의 무덤을 찾지 않은 이유도 아마도 예수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크고 무거운 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돌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하고 이미 치워져 있었다. 예수님에게 무덤의 돌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장애는 그 돌 때문에 예수 앞에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내 의식이 문제이다. 

 

우리에게도 예수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돌들이 있다. 

죄책감, 두려움, 누군가에 대한 풀지 못한 감정, 무지...

그런데 예수 앞에 서는 순간 그 모든 돌들은 사라진다. 수 많은 돌들은 그저 예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의 형틀인 것이다. 

 

묵상질문) 

1. 오직 예수를 보는 것 외에 다른 바램이 없었기에 예수의 부활에 동참한 여인들을 묵상해 봅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헛된 바램들은 무엇입니까? 

 

2. 나로 하여금 예수 앞에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