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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5장 42-46절 아리마대 요셉

by 소리벼리 2021. 5. 8.

마가복음 15장 42-46절 아리마대 요셉 

 

고난 주간에 겹치는 부분이 많고 또한 매해 돌아오는 사순절과 부활절을 위해 예수의 죽음은 남겨두기로 하자. 

오늘 나눌 중심인물은 아리마대 요셉이다. 

 

불과 일 주일 전만 해도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에 대한 백성들의 태도는 환호와 기대였다. 

이스라엘 전체가 떠들썩 할 정도로 온 무리가 진동을 했다.

그들이 왜 주님을 따랐는가? 오병이어 때와 마찬가지로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다. 자기 유익을 구했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면 한 자리 할 것 같고 성공할 것 같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얻을 것 같기에 주님을 따랐다.

 

복음서는 주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자기를 위해 주님을 따른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주를 떠나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던 무리들이 자기들의 뜻에 어긋나니까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외치는 군중으로 돌변한다. 

 

그런데 이 때에 돌연 나타나 주님과 함께 했던 자가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 -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겼던 자 - 요한복음 3장에 밤 중에 예수를 찾았던 자 - 니고데모처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는 자 -

 

누가복음 23장 50-51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마가복음 15장 43절)

 

마가복음의 기사 - 당돌했다. -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 빌라도에게 시체를 요구 - 에스더서에 보면 왕비라 할 지라도 왕에게 요구하는 것 - 목숨을 건 행동

 

그리고 행한 것 -자신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 지냄

마태복음 27장 -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

 

당시의 무덤 - 개인의 묘라기 보다는 가문, 가족의 묘

예수 - 공식적으로는 사형수

 

  • 요셉의 행동- 목숨을 담보로 한 당돌한 행동

- 가문의 명예를 실추 할 수 있는...

-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다 잃을 수 있는 행동

그런데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 - 유대인이 두려워 제자였음을 숨겼던 그가 죽은 시체가 된 예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의 시체를 장사 지낼 뿐만 아니라 모두가 버리고 간 예수의 시체를 위해 자신의, 자기 가족의 무덤을 내어 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복음서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해 헌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삶을 헌신했다는 말이다. 

 

  • 외경 - 빌라도 행전 -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후에 예수의 시체를 빼 돌린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서 40년형을 선고

감옥 속에서 예수가 나타나 예수의 피가 담긴 성배를 주고 가서 그 성배의 힘으로 감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언급

초대교회 유명한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감옥에서 풀려난 아리마대 요셉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전하고 있고 영국은 실재로 아리마데 요셉을 영국 기독교의 창시자로 정하고 있다.

그가 지니고 있던 성배를 찾아 기사들이 모험하는 내용이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인 그 유명한 아서왕 이야기.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에나 존스도 그 성배를 찾아 떠나는 여행 - 그 영화에서도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요한복음 19장 41절)

At the place where Jesus was crucified, there was a garden, in the garden a new tomb, in which no one had ever been laid.

 

눈에 띄는 대목 - 동산이 있고 그 동산에는 무덤이 있는데 사람이 놓여 있지 않은 무덤이다.

 

  • 성경에는 동산이리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 동산은 히브리어로 "칸"이라고 부르는데 70인역 성경에서는 이 칸이라는 말을 낙원 (paradise)로 번역해 놓기도 했다.

 

  • 고대 교부 가운데 시릴(Cyril)이라는 사람은 에덴 동산과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설명하기도 한다. 철학자 파스칼도 "인간은 동산에서 멸망하고 동산에서 구원받았다"고 하였다.

 

에덴동산은 그 뜻이 "즐거움, 기쁨"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복이다.

그런데 인간의 죄는 그 동산을 파괴하였다. 아무도 거할 수 없는 동산이 되어 버리게 했다. 최상의 장소가 인간으로 말미암아 최악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멸망의 동산이 되었고. 추방의 동산이 되어 버렸고 죄의 발원지가 되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동산을 회복하신다.

요한복음 18:1에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고 한다.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히신 곳이다. 요한복음 19:41에는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고 말한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은 바로 예수가 십자가를 지신 겟세마네 동신에 있었다.

 

겟세마네라는 의미는 "기름을 짜다"라는 의미이다.

감람 열매의 기름을 짠 곳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몸의 진액을 짜면서 기도하셨다.

구원은 기름을 짜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졌다.

 

왜 에덴 동산에 무덤이 있었는가? 사람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정녕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무덤에 사람을 죽게 하지 않고 잠시 동안 떠나있게 한 후에 그 무덤의 주인으로 예수를 눕게 하신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가 그 무덤 속에 장사지내었다가 그 무덤은 영원한 빈 무덤, 즉 생명이 된다. 

 

우리에게 다시금 에덴을, 기쁨을,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 주신 최상의 것도 최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파괴의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그 무덤을 다시금 빈 무덤 되게 하신다. 광야를 에덴 되게 하신다. 죄악으로 무너진 모든 것을 다시 에덴으로, 축복으로, 구원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리고 그 무덤의 주인, 자기가 죽어야 할 그 무덤을 주님께 드린 자.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지위를 잃고 죄수가 되지만 결국 무덤에서 나와 영국이라는 기독교 국가의 복음의 전설이 된 사람. 

그가 버린 모든 지위는 결국 자기가 죽어 놓일 무덤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무덤을 주께 드리자 모든 인류가 잃어버렸던 실낙원, 에덴이 회복된다. 

 

묵상 질문) 

1. 늘 예수를 따르다가 십자가의 현장에서 예수를 버린 사람들과, 늘 피하는 자였지만 십자가의 현장에서 주님을 장사지낸 자를 묵상해봅시다. 늘 예수를 따르며 십자가의 현장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요? 

 

2. 예수를 믿으면서도 동시에 놓아 버리지 못하는 자신 만의 무덤이 있습니까? 

 

찬양) 짐이 무거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