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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9.08 참된 예배 (요 4:21-24)

참된 예배 (요 4:21-24) 


[요 4:21-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예배의 본질,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본론) 

요한 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율법학자이며 유대인들의 지도자 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종교적이고 많이 배우고 그가 열심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구원을 갈망해도 자기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예수를 주로 영접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알지도 못하고 찾아오지 않은 한 여인을 찾아 가십니다. 

[요 4:3-4]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Now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이 사건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사마리아라는 지역이 그렇습니다. 북쪽 갈릴리와 남쪽 유다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섰을 때에 북왕국에 위치한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은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였고 때로는 그들과 혼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우상숭배하고 이방인들과 혼인을 한, 날 때부터 부정한 여인이라고 취급하면서 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을 재 건축할 때 이스라엘 민족의 온 힘을 모아 성전을 건축하였고 사마리아 인들도 이 성전 재건축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부정한 민족이라 거부하였습니다. 

성전건축에 배척을 당하자 사마리아인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자, 이번에는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 산에다가 자기들끼리 소위 ‘사마리아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주전 322년경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에 성전이 두 개가 세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 두 성전의 갈등이 그로부터 2백 년 동안 계속되다가, 주전 129년에 유대인 지도자였던 요한 힐카누스라는 사람이 그리심 산에 세워진 사마리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때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 사마리안인과 유대인들은 서로를 적대하며 원수지간처럼 지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지나간다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 일일 뿐만 아니라 남들이 알면 굉장히 부정하고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우연히,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서 가야만 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이전에 일면식도 없고 그녀가 자기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교적으로 열심이 있는 여인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릎쓰고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도착해서 보니 시간이 여섯시쯤 되었더라고 6절에서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의 6시는 우리 시간으로 하면 정오입니다. 사막지역에서 낮 12시는 가장 더울 때입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그 시각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르러 왔습니다. 그녀는 왜 남들이 다니지 않는 시각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복을 상실한 사람들은 이렇듯 목이 마릅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였기 때문에 영적인 만족감이 있어야 만족합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인간은 영적인 만족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갈증을 느끼고 우물가를 찾는 것입니다. 그 목마름은 그러나 세상의 어떤 우물로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계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눈과 귀가 멀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래도 성경을 알고 말씀을 통해서 미련하게 나마 예수님께 찾아오는 열심이라도 있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나마 무엇이 자기를 갈증에서 해결 해 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그날도 자신의 공허함과 갈증을 매꾸고자 우물을 찾은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갈증을 해결할 길이 없어 갈급해 하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야말로 복음이었지요.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샘물을 주리라. 

그러니까 여인이 흥분해서 말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 이런 수고, 이런 방황하지 않게 나에게 생명의 생수를 주소서. 간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희한한 말씀을 합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6절)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8절) 

뭐, 이것이 실제 남편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녀가 섬기고 있던 우상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주석마다 해석이 여러가지지만 왜 여기서 남편을 이야기합니까? 

그녀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녀가 세상에서 취해왔던 그녀의 땅의 의지처들을, 이제 쓸모없으니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너에게 아무런 위안도, 해결도 될 수 없음을 고백하라는 것이지요. 


그 말씀을 마친 후에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인 예배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바뀌게 됩니다. 

그녀의 갈증, 갈망,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그렇지만 여전히 수고하고 뙤약볕에 물을 길으러 나온 여인, 다섯 남편을 통해서도 한 번도 안식이 없었던 여인에게 이제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주리라 하니까 이제 그녀의 육신적인 의지가 다 사라지고 예배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분을 인정하게 될 때에 비로서 영적인 것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영적인 의문을 달아서 질문합니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2절 말씀을 먼저 보면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예배: 이방예식이 혼합된 예배, 성경은 모세의 5경만을 따르고... 정열적이고, 열광적이고, 흥분되어 있고, 충성된 것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예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예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예배: 구약성경을 모두 받아드리며 구원에 대해서 가르침을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신령함이 없었다. 그들은 예배의식을 모두 가추고 예배를 드렸으나 예배에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다.  *(요나- 말씀도 알았고, 체험도 있었고, 순종도 하였지만....그가 없는 것-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처럼 예루살렘에는 진리는 있었으나 신령이 없었고 사마리아에는 신령은 있었으나 진리가 없었다. 이는 예배의 두 극단이다. 그리심산에는 열광적인 이단이 자리하고, 예루살렘에는 황폐하고 생기없는 정통이 자리했다. 유대인들은 예배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모두 갖고 있었으나 뜨거운 마음이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은 뜨거운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정이 모두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중에 하나라도 결핍하게 되면 참된 예배가 아니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정열적인 예배는 휼륭한 예배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진리에 기초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예배를 드려야한다.


그러니까 21절에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내 말을 믿으라...-> 잘못된 표현 -> Believe me. 내 말을 믿으라...가 아니라 나를 믿으라. 

그러면서 사마리아의 예배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예배도 아니고 너희 아버지께 예배 드려라. (예배는 '어떻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의 문제이다. ) 

참된 하나님을 믿는가?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이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찌니라." 


  • 영과 진리의 예배가 무엇인가? 

1) 성령 안에서 진리의 말씀의 예배를 드려라. -> 예배는 신자가, 성도가 드리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 믿으라고 서비스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영, 거룩한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것-> 살아계신 예수님을 앞에 모신 여인: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와 통하고 그를 경배하는 것. VS. 예수님을 알기 전의 여인- 어디에서 예배드려야 합니까? 누구 앞에서? 예수 앞에서... 바리새인, 유대 종교지도자들. 예수님을 앞에 두고 성전 모욕죄로 예수님을 무시, 고발.

눈 앞에 없는 예수-> 성령 안에서 예수와 교제하고 예배함.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예수. 

왜 예수를 눈 앞에 두고도 그를 믿지 못하였는가? 너무 평범해서. 너무 초라해서.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그를 볼 수 있었다.  

21절) 내 말을 믿으라가 아니라 나를 믿으라.. 어디서 예배합니까? 나를 믿으라. 


2)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라. 

 [롬 12:1-2]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삶을 드리는 예배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창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 3:23)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자기만을 가꾸며 살아가게 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했다. 

자기 만을 위해 살다가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예배 

아벨의 예배: 양의 첫 새끼와 기름... 죄를 회개하는 예배. 하나님께 순종하는 예배 


3)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라. 

[고전 2:10-12]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4) 입술의 열매 삶의 열매를 드려라 

[히 13:15-16]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마리아 여인 

- 남과 관계하지 않는 소극적, 소외적, 도피적 여인. 왜? 자신의 죄, 남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만 육신의 목마름을 가지고 뜨거운 중에 물을 찾아 갈망하는 여인 

- 사마리아땅에서 열광적인 예배를 드리는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은 예배를 통해서 그녀를 만나신 것이 아니라 일대 일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서 그녀에게 찾아오신다. 

- 주님은 언제나 내게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찾아오신다. 물론 예배가 그 수단과 장소가 될 수 있지만 그 안에 속해 있다고 그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열쇠는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고 대화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마리아 여인- 곧장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전한다. 

- 다메섹 도성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만나고 마을로 달려가 그동안 기피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 예수를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다. 예수는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베드로에게 우리가 내려가자. 우리가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 만나기 위해 왔다고 증언한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또한 사람들을 만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예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성도의 교제이고 세상 밖의 전도이다. 

성령의 역사는 항상 공동체를 지향한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는 더 많이 만나고 어울리게 하신 역사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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